선포적 설교-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생애와 교훈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 을 선포하는 설교
교훈적 설교- 성경의 진리와 교리, 신학을 담아 가르치는데 목적을 둔 설교
치유적 설교- 상처받은 영혼과 삶의 아픔을 싸매 주는 목양을 목적으로 하는 설교
예언적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곁길로 가는 사회와 개인을 바르게 인 도 하기 위한 설교
사막의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아침 일찍 맑은 물을 마셔보겠다는 의지로 어머니와 약수터에 갔습니다. 약수터에 도착하자 길고 긴 행렬의 사람들과 물통들, 그리고 끊겼다 이어지는 지하수의 변덕이 그 사람을 지치게 했습니다. 처음엔 오랫만의 아침 나들이라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30분, 1시간, 2시간...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사막의 해는 점점 강하게 내리쪼이기 시작했다. 아침의 단잠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기다림의 지루함은 더해만 갔습니다. 물을 마시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는 물만 바라보면서 좀더 시원스레 콸콸 쏟아지지 않는 것을 원망하는 듯했습니다. 어떤이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2시간이 경과한 후부터는 빠른 귀가를 포기하고 그냥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끝에 물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림이란 인내를 필요로 하고 어떤 기다림은 그 기다림의 결과를 얻기도 전에 포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였을때, 아니 잊고 있었을때, 오래전 그 예언의 말씀을 기다리며 충실히 자신들의 임무를 계속하는 가운데 준비하며 그 기다림의 답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접근 및 재 경청
〈①중심 단어의 해석② 당시대의 정황③저자. 수신자④표현의 장르⑤자신과 회중의 언어로 본문을 재 번역〉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시끄러워 졌을 때,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곳곳에서 기록하며 세상을 구원하실이, 이 험한 세상에 변화를 주어 새롭게 개혁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거짓 예언자들의 이야기는 빗나갔습니다. 그들이 예언한 그 시간에 메시야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메시야의 기다림을 잊었을때쯤 세상의 한곳에서는 그 기다림의 소망을 잃지않고, 준비하며 자신들의 직분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 사람의 동방박사입니다. 그들은 전설로 여겨질만한 고대의 책들을 조사하며 지혜를 찾았고, 메시야의 예언을 사실로 받아 들였으며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며 메시야를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바로 그날, 별을 관측할 때 유난히도 크고 밝은 별이 움직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언자의 말씀대로 ‘유대인의 왕’의 오심의 징조였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5:2)”
동박의 박사 세사람은 서둘러 짐을 싸고 주님이 나시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크고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 가는 길은 참으로 먼길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즐겁고 기쁨이 가득찼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주제의 부상
〈주제로 사용된 예수님의 탄생 5회 이상 언급 〉
예수님의 탄생은 모두에게 기쁨의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죄지은 자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 권력가가 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신분 상승이 아니라 가장 낮은 모습! 더 이상 낮아 질 수 없는 구유속의 낮은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섬기는 자의 모습을 예고하는 시작이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정의(what)-NO, NO, NO, YES.〈3회 정도의 부정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사전적 정의, 문학, 신학, 철학 등에서 정의를 2개 정도의 소개한 후 마지막에 성서적인 정의 제시〉
예수님의 탄생이 준비된 곳은 왕의 저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누우신 곳은 비단 침대의 비단요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 왕의 후계자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사전적인 뜻을 찾아보면 하나님은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구세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장 14절)
이라고 쓰여 졌습니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시고, 태어나셔서 죄지은 주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한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오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제의 필요성(Why)
〈부정적인 사례를 들어 절박한 동기를 유발을 시켜 질문을 유도〉
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날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에 이르러 이상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눈으로 인해 먹이를 얻지 못한 참새들이
집 문 앞에 비실비실 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먹이를 가져와서는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먹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푸드득 하며 날아 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하여 “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죽는다구......”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베풀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 품을 떠났던 거야.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께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하셨어......”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표현이 바로 예수님을 보내심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성탄절은 어떤이에게는 기쁨이기도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어디에 속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할 준비가 충분합니까? 여기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한 이방인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탄을 맞을 준비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주제의 실천방안(How)
주안점: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선포: 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2:9-10)
해석: 별을 관측하던 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멀리 동방으로부터 올 때는 기대가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여행에 지친 그들은 지혜롭지 못하게 신중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니 그들은 그렇게 위대한 메시아의 예언의 성취는 왕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둠속에서 밝게 빛나던 별의 안내를 잘 따르던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별의 위치가 어디있는지 찾은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들의 고정관념대로 헤롯왕이 있는 왕궁으로 찾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시는지....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묻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때 천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탐욕에 눈멀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헤롯과 그의 잔당들은 깜짝 놀랍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예언이! 자신들의 자리를 위태롭게 느끼던 그 예언이 오늘날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왕의 탄생의 소식은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며 자신들을 옭아 메는 목조임의 느낌이었습니다. 헤롯왕은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두 아들을 죽인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소식은 자신의 왕권에 크나큰 도전이고 위협이었습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자가 자신의 후계자 아니 자신을 왕위에서 쫒아낼 이가 태어났음을 아는 것은 싹이 자라기 전에 제거해 버릴 수 있는 기회였음을 늙은 여우는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들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헤롯왕은 다급히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을 소집해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나실 곳이 어디인지를 물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이야기 하며 베들레헴을 지목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 6) 라는 선지자의 기록 말씀을 가르쳐 줍니다.
이를 들은 헤롯왕은 박사들에게 메시야가 나신 곳을 찾거든 경배하게 고하라 이야기하며 보냅니다. 헤롯왕궁을 빠져 나온 박사들은 자신들의 경솔함에 얼굴을 붉혔습니다. 어느곳으로 가야할지를 모르고 어깨를 축 늘어 뜨리고 있을때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던 밝은 별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시는 그 별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한눈팔지 않고 별을 쫒았습니다. 별은 어느 여관건물 옆에있는 마굿간 위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고 이해되지 않은 장소라 설마를 연발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때 그들은 더 이상 망설이며 문밖에 서성일 수가 없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작고 초라한 그곳에서 새어나오는 밝은 불빛과 어린아이 울음 소리는 그들을 낙타에서 망설임 없이 내리게 하였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메시야께선 마굿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메시야가 나신 주변의 환경이나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메시야로 오신 이만이 중요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던 왕궁이나 멋지고 안락한 곳이 아니어도, 메시야의 탄생을 살아 생전에 볼 수 있음이 목격할 수 있음이 기쁘고 기쁜일 이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거부해서도 안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깨닫고 이해하며 수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마냥 거부해선 안됩니다. 만약 세명의 박사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곳을 하나님이 설마 선택하셧겠어 생각하고 그곳을 지나쳤다면 그들은 인류 역사의 그 위대한 현장에 목격자로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곧바로 그들이 기뻐하고 받아들였기에 하나님의 사역한 가운데에서 그들은 동참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삶속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고정관념으로 걸름없이 받아들이는 순수한 존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화: 돈이 많은 한 사람이 말을 타고 행차하다가 앞길에서 거지와 같이 보이는 사람이 기뻐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돈이 많아도 춤출 일이 없는데 거지는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가 그 이유를 궁금해하며 물었습니다. 그 거지는 대답하기를 기뻐서 춤을 추는 이유가 세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기쁘고 둘째는,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불구자이나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심한 불구자가 많고 세째는, 세상에서는 날 부러워할 사람이 없으나 죽으면 하나님 품안에 있을 것이므로 기뻐서 춤을 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뻐할 수 없는 중에 기뻐한 사람처럼 동방이 세사람은 길을 잃고, 안내하던 별도 잃고, 기대하던 왕궁이 아님에도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기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거처는 어느곳이든 예수님의 탄생 자체를 기뻐하며 또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기쁘고 기뻐했다고 성경을 말합니다.
주안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경배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경청하시겠습니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였다”(새번역 2장 11절)
선포: 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마 2:11)
해석: 박사들이 들어간 마굿간 안에는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왕의 나심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그 부모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왕중의 왕!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는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초라한 말구유에 누워 계셨습니다. 아니 주님을 위해서 준비된 것은 말 구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롭고, 현명했습니다. 아기 예수님과 그 부모님을 둘러 싸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방의 세사람은 아기예수님을 바라보고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분별력을 가졌습니다. 외형적인 장소와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은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 드렸습니다.
적용: 동방의 세박사들은 경배의 대상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왕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찾아 뵙고 엎드려 경배하고 왕에게 드릴 예를 갖췄습니다.
예화: 러시아를 통치하던 니콜라이 황제는 많은 업적을 남긴 왕입니다. 그는 친히 군대를 관리하였는데, 종종 평복으로 갈아입고 진영을 살펴 직분을 태만히 하고 자리를 비운 자는 엄히 벌하고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 자에게는 포상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떤 장교의 처소를 방문했을때 잠들어 있는 장교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자기의 빚진 것을 종이에 적어 그 빚이 너무 많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음을 탄식하며 종이 끝에 "이 산 같은 빚을 갚아 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 글을 읽은 황제는 책상위의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고는 그 밑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고 그곳을 나왔습니다. 장교는 아침에 일어나 종이 위에쓰여 있는 황제의 필적을 보고서는 놀랐습니다. 그날 밤 황제는 또 평복으로 순찰하면서 장교의 처소에 들어와 봉투에 돈을 넣어 장교의 책상에 놓고는 조용히 나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돈을 발견한 장교는 너무 감격하였고,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진 물질의 작은 빚을 대신 갚아주어도 그 은혜가 큰데, 이 세상에서 지은 많은 죄의 빚을 탕감해주러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경배하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하늘의 높으신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 그분을 뵙고 경배드리지 않을 이가 그 어디 있겠습니까?
주안점: 세째로,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드리라” 말씀하십니다.
선포: 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새 번역 마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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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한 후 동방의 세박사들은 준비한 보배 함을 열어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왕을 알현 할 때 황금을 선물로 드리는 것이 예의 였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황금 이외에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자신들의 믿음의 표현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값진 것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유향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심을 고백하면서,
몰약은 십자가의 대속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하나님이 낮아지시고, 하나님이 지극히 작은자의 모습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기다리며 준비한 보배합을 열어서 아기 예수님께 바치는 동방의 세 박사처럼 우리도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주님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그분에게 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동방의 박사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주님께 기쁨으로 경배하며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당신의 지극히 작은 자에게 우리의 보배합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화:
먼 옛날 어떤 나라 도시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고
종탑이 높다랗게 서있었습니다. 종탑에는 종은 있으나 종을 치는 줄은 없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종은 성탄절 아기 예수께 가장 값진 선물을
드릴 때 저절로 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왕이, 값진 선물을 바쳤으나
종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어느 해 성탄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바쳐 종소리를 들으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석을 어떤 사람은 금화를 가득히,
어떤 작가는 자기의 책을, 심지어 왕은 자신의 왕관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종탑에서는 바람소리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소리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가대가 마지막 찬송을 부르려 할 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리게 한 것은 눈길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주느라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던 형 대신에
아기 예수께 은전 하나를 예물로 바친 동생의 손길을 통해서였습니다.
결과(what then)
〈주제대로 행했을 때 생겨지는 긍정적인 결과(Good news), 사례 제시〉
보웬 부인은 결혼한 후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일을 구해서
며칠 동안 일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크리스마스 한 달 반전에 첫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일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줄 놀라운 선물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아기를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아름다운 리본을 매어
남편에게 선사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아기를 선물로 주고받고 하면서 즐겁게 즐길 때,
그녀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이 아기를 내 남편이 아닌 딴사람에게 선물로 준다면 내 마음은 어떠할까?'
그녀는 독생자를 우리들에게 주실 때의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들을 죽음에 길로 내 준다는 심정의 괴로움과 아픔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의 날이었습니다.
⑨결론
〈설교의 요점의 반복, 경이적이고, 충격적인 표현, 격려의 형식, 시의 사용, 축복의 형태, 명령적이고, 교훈적인 형식, 본문을 비롯한 성구의 낭독〉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습니다.
그는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ꡒ내일 크리스마스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ꡓ
잠이 깨었을 때는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크리스마스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을 약속 받았으므로 그는 크리스마스 때만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구둣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밖을 내다보니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길 건너편을 향해 ꡒ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ꡓ
청소부는 너무나 좋아서 빗자루를 던져두고 언몸을 녹이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점심 때가 되도록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한 누더기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들고 걸어옵니다.
노인은 측은하여 그를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무심코 아기의 발을 보니 빨갛다 못해 파랗게 얼어 있었습니다.
아기가 신발이 필요할텐데. 쯧쯧.하면서 어젯밤 보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겨울의 해는 빨리도 넘어갑니다.
이미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준비를 위해 올려둔 스프와 빵이 데워지고 있을 때
한떼의 거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언제나처럼 노인은 그들에게 자신이 먹을 스프와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들은 모처럼 성탄절에 행복했고 파파파노는 기뻤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녁이 되어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자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않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
혹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쳐버렸나..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ꡒ파파파노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ꡓ
꿈 속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ꡒ어디 계십니까.ꡓ 묻자 ꡒ나는 오늘 할아버지 가게에 세 번이나 방문하였지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번은 아기를 안은 누추한 여인으로.
한 번은 거지로 말이에요.
나에게 베푸신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습니다.ꡓ
부지중에...우리의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것...그것은 주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