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만나고 돌아온 가장자리 벗들 각자가 조금씩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무엇을 느끼고 변해오리라는 강박은 없었지만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변했는데...우물 우물 입속에서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문장이 고프고 길어올릴 단어가 많지 않은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표현하지 못해 요 며칠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희망버스로 다섯 시간을 달려가 밀양에 닿았습니다. 낮의 끝자락, 푸근한 가을볕이 너른 논 위에도 그 옆을 흐르는 강 위로도 쏟아져 내려 눈이 부신 곳이었습니다. 마을의 길마다 양옆으로 까치밥을 남겨둔 감나무가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서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른 가지뿐이지만 꽃이 피고, 붉은 감이 익어가고, 가지마다 함박눈이 가래떡처럼 소복이 쌓이는 매 순간이 장관일 것임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시원한 청량감이 기분 좋아 자꾸만 깊은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주민들이 추위를 쫓으라고 피워준 모닥불에서는 그리운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 향내가 났습니다. 흙모래와 물웅덩이가 뒤섞인 길 위를 걸으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옆 사람의 발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공중에서 건축 자제를 민들레 홀씨처럼 매달고 산 위로 옮기는 헬리콥터 소리라던가 개미떼같이 모여든 형광색의 경찰들 같은 몇몇 요소만 없었다면 밀양은 누구나 동경하고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꿈속 마을의 전형적인 평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밀양에 촉각으로 가 닿아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밀양의 주민들은 분명 자신의 땅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터였습니다. 밀양의 땅이, 이 마을이 그들 삶의 증거이자 미래이고 희망이며 직장이자 가족인 사람들. 한 곳에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온 나무 같은 사람들에겐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겠구나... 어느 곳에서도 고향이란 푸근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고 한 해 걸러 한 번씩 이삿짐센터의 손을 빌려 조금의 미련도 없이 삶의 터를 옮겨온 저로서는 함부로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습니다.
8년이 넘는 긴 싸움은 주민들을 전사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미 목숨 내놨다. 우리가 범죄자가? 비키라! 길트라! 사랑했데이. 경찰니그들. 정말 사랑했데이. 근데 내가 송전탑 싸움함서 보니까 니들은 국민 편이 아니더라. 니들 집 앞마당에 철탑 세운다카먼, 니들은 가만있겠나아아아!!” 할매의 부르짖는 절규.... 할매의 절규는 아무리 악을 써도 들어주고, 기록하고, 옮기고, 떠벌리는 사람이 없으면 채 몇 걸음밖에 가지 못하는 작고 낮은 소리였습니다. 찰나의 순간 공중에 머물 뿐 허망하게 흩어져 버리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천성이 발언하는 자보다는 듣는 자에 더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 절규가 너무도 절절하고 비참해서 입도 벙긋하지 못했습니다. 가을 낙엽처럼 바삭바삭한 목소리는 금세라도 갈라지고 스스로 부서져 버릴 것 같이 위태로웠습니다. 위엄있게 호통쳤으나 그 안에 공포와 절망이 잡힐 듯 느껴졌습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아름다운 사람들 축에 속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러 온 위선일지도 모른다는 제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듣는 것밖엔 못했습니다.
혼이 없는 얼굴을 한 경찰은 단지 침묵할 뿐입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들은 죄수처럼 이름도 없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귀마개로 귀를 막고 눈은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은 채 조직 속에 융해되어 개인의 신념이나 사유를 포기한 듯 보였습니다. 몇몇은 지나치게 열심이었고 대부분은 기계적인 복종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신념과 성실함의 조화가 얼마나 큰 불행을 낳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었습니다. 이튿날도 그들은 이미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공사현장에 이르는 비탈길을 올라 길을 막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싸움은 이제 일상이 되어 일상이 전쟁이 된 지 오래고 그 전쟁은 계속됩니다.
현장에 다녀온 저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의무감은 한쪽으로 사라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단지 죄책감을 털어내고 홀가분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느낍니다. 촉각으로 만난 그 시간 이후로 비로소 밀양은 내문제의 일부분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애써 밀양을 잊고 살았습니다. 가끔 그곳의 곤란함을 신문으로 접하면 기껏해야 답답한 체기 같은 걸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의무감이 아닌 저절로 이끌리는 관심의 방향으로서 밀양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 나는 밀양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던가.... 다시 기억해 봅니다. 그러나 요약 기사로 파악하는 사건은 한 사람을 그의 이력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공감이나 이해와는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 느리고 긴 것일수록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 공유하는 촉각의 세계에서만 기억할 만한 지나침으로 남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쁜 것만 세련된 것만을 좋아한 저의 세계는 이미지로 이뤄진 세계였습니다. 더는 아무것도 체험하지 않기 위해 세상을 향한 촉수를 돌돌 말아 진공의 세계 안으로 침잠한 시간을 지나 책과 만나고 가장자리와 만나면서 감각적이지만 표피적인 이미지의 세계는 언어로 사유하는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촉각으로 직접 경험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유와 실천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거의 같이 움직이는 어떤 쌍인 것 같습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걸 너무도 싫어하는 저는 자신에게 말해봅니다. 다시는 촉각의 세계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주민들이 말하는 희망은 신념이라기보단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 주문이 신념이 되고 신념의 보상으로 신념이 실현되는 날을 위해 번번이 무시되는 약속이 아닌 맹세로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더 많은 이가 즐겁게 강렬하게 서로의 배후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선함을 향한 힘의 방향이 모인 자리는 사람의 온기로 분명 따뜻했다는 것입니다.
첫댓글 사유의 공통재가 된 밀양.. 경찰들에게 고립된 할매에게 주문에 걸린 것처럼 다가가던 미경씨의 안타까워하던 표정이 생각나네요. 섬세한 표현 따뜻한 온기 느끼며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이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언어를 통해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을까, 언어를 통해 무언가를 촉각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어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쓰는 글에서 (물리적 귀로는 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들리는) '음악'을 단 한사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언어를 내가 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통의 언어가 나를 매개로 해서 대신 표현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고. 밀양을 다녀와서 무언가 간절히 쓰고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럴 수가 없었어요. 대신 미경씨가 촉각적인 글을 써주었네요. 고맙습니다.
"사유와 실천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거의 같이 움직이는 어떤 쌍인 것 같습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걸 너무도 싫어하는 저는 자신에게 말해봅니다. 다시는 촉각의 세계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깊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