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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크 비교 | 비포장 도로 주행 속도 | 포장 도로 주행 속도 | 장갑 두께 | 무장 |
| 영국 마틸다 II | 14km/h | 26km/h | 20~78mm |
"2 punder 40mm 대포", 7.92mm Besa 기관총 |
| 나치 독일 1호전차 | 37km/h | 50km/h | 7~13mm | 7.92mm MG 13 기관총 2정 |
나치 독일의 초기 탱크들 역시 크기도 소형에 화력도 별볼일 없었고 심지어 장갑 두께는 영국 보병탱크의 대표격인 마틸다에 비해서 현격하게 얇아서 1호 전차의 경우 적 보병들의 기관총 사격에도 구멍이 숭숭 뚤릴 정도로 장갑이 약했지만 대신 기동성에 있어서는 "보병탱크"들의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빠른 속도가 가능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탱크들에게 기동성이 중요시된 이유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전술 개념과 달리 탱크가 보병들의 지원 역활이나 하는 입장이 아니고 독립적으로 전선을 뚫고 앞서 나가는 역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치 독일의 초기 탱크들을 가리켜 "경전차"(Light Tank)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위에 표를 보면 비포장 도로 주행시 영국 마틸다 II가 고작 14km/h인데 반해 1호전차는 무려 37km/h의 속력으로 쾌주가 가능했습니다. 대신 장갑 두께를 비교하면 마틸다 II 에 비해서 1호전차는 양철판으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얇고 빈약한 조건이었습니다.
(2차대전 초기에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1940년)에 대항해 지원된 영국군 보병부대가
마틸다 I 의 뒤를 따라서 진격하는 모습. 보병들의 진격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가는
보병탱크의 경우 장갑만 두꺼우면 속도는 거의 보병들의 보행 속도와 비슷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병탱크"의 개념은 탱크가 향후 지상전에서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도 못했던 고루한 영국과 프랑스 지휘관들이 탱크를 자신들이 해왔던 1차대전 방식의 구식 전술에 적용하다보니 생겨나게 된 지극히 피동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마틸다 마크 I , 초라한 역사
여러분들은 "빅커즈 기관총"(Vickers Machine Gun)이라고 하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아~~~ 이 기관총! 하고 대번에 알 것입니다.
(동그랗고 길쭉한 원기둥 통 모양의 총신이 특징인 이 구형 기관총은
1차대전때부터 제1차 중동전쟁(1948년)과 한국전쟁(1950년)을 지나
196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 국경 분쟁 때까지 실전에 사용된 영국제
기관총입니다.)
바로 이 빅커즈 기관총을 생산하던 영국의 빅커즈-암스트롱社가 1935년에 영국 육군으로부터 "보병탱크"라는 개념의 새로운 탱크를 개발해달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육군의 첫번째 요구는 "저렴한 생산비의 탱크"였습니다. 그리고 보병의 진격을 지원할 수 있는 두꺼운 장갑과 보병의 보행 속도에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속도면 만족하였습니다. 게다가 생산비 절감을 위해서 민간용 트랙터들의 부품을 공용하길 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회사가 육군의 요구에 충실히 맞춰서 개발한 마틸다 마크 I 은 작은 체구의 두명의 기갑병이 차체에서 조종과 사수 역활을 수행하고, 자그마한 포탑에는 주포가 아니라 빅커즈 기관총으로 무장되었습니다. 이 기관총 1정이 이 꼬마 탱크의 무장의 전부였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마틸다 I과 마틸다 II과 비록 이름은 동일하게 "마틸다"라는 여성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 두 탱크 간에 외형이 비슷하지도 않고 부품을 공용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틸다 I의 이름이 "마틸다"로 명명된 것은 빅커스社가 프로젝트 명을 결정할 때 왜소한 체구에 오리 모양의 몸체를 보고 연상되는 이름으로 "마틸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길이가 4.85m, 폭 2.28m의 자그마한 탱크였지만 장갑 두께는 10~60mm였습니다.
위에서 비교했던 1호전차의 경우 길이 4.02m, 폭 2.06m로 마틸다 I 과 비슷했지만
장갑 두께는 휠씬 얇고, 대신 기동성에서 엄청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40년에 5월 초에 나치 독일이 프랑스 침공을 시작하고 불과 1개월 12일만에 점령해버립니다. 5월 21일에 프랑스 북부 벨기에 국경에 근접한 지역인 아라스에서 벌어진 전차전에서 마틸다 I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틸다 II 와 함께 롬멜의 기갑부대와 교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틸다 I은 포탑과 차체만 장갑이 두꺼울 뿐이지 왜소한 체구에 속도까지 느림보에 캐터필더가 모두 노출되어 있어서 조금만 적 탱크의 피탄을 받으면 바로 캐터필더가 끊어지고 앉은뱅이가 되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무장이라고는 달랑 기관총 1정이 전부인 탓에 1차대전이라면 모를까 2차대전에서 더 이상 적 탱크들과 상대할 수 없는 조건임이 입증됩니다.
프랑스에서 영국 지원군들의 치욕적인 패배로 그 유명한 던커크 철수작전 (6월 2일)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 패잔병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차량이나 탱크, 심지어 개인 화기까지 내팽개치고 영국에서 보낸 수송선에 뛰어오르는 통에 영국이 프랑스 방어를 위해서 보냈던 마틸다 I은 전부 프랑스 땅에 버려지게 됩니다. 프랑스 공방전에서 마틸다 I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성능으로 인해서 영국군은 더 이상 마틸다 I을 실전에 투입하는 愚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마틸다 II 의 탄생
공식명 "보병탱크" 마크 II는 흔히 마틸다 II로 더 잘 알려져있습니다. 2차대전 발발 싯점에서 거의 종전때까지 운용되었습니다. 특히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활약을 하였지만 그 이전에 1940년 프랑스 공방전 당시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부대에 포함되어 투입되었고 롬멜이 이끄는 기갑부대와 아라스 전투에서 최초의 전차전을 치룹니다. 같이 참전했던 마틸다 I 이 실망스러운 성능으로 독일 기갑부대에게 파괴된 반면 마틸다 II 의 경우는 롬멜조차 당황할 정도로 활약을 하게되는데 그 이유는 밑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936년에 영국 육군에 의해서 제안된 기존의 마틸다 I 보다 큰 보병탱크 프로젝트에서 마틸다 II의 개발은 시작됩니다. 마틸다 I 보다 길이는 1미터 이상 길었고 폭도 몇십센티 넓어진 사이즈였으니 일단 주문처의 요구는 맞춘 셈이지만 나치 독일의 경전차들과 비교해서 월등하게 큰 몸집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발발(1939년) 1년 전에 영국에 유명한 기관차 제조회사였던 벌칸 주조(Vulcan Foundry)회사에서 140대가 최초로 생산되었습니다. 마틸다 I 에 비해서 두배 이상 무거워진 마틸다 II(27톤)는 마틸다 I 이 자그마한 포탑 위에 기관총 1정이 무장의 전부였던데 반해서 훨씬 커진 포탑에 2 파운더 탱크포 (40mm)를 올려놓고 총 3인이 탑승할 수 있는 탱크로 설계되었습니다. 유압 모터로 360도 회전이 되는 포탑에 장착된 주포는 하향 15도, 상향 25도까지 각도를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틸다의 가장 심각한 약점은 뜻밖에도 주포의 포탄이 철갑을 뚫기 위한 철갑탄이었다는 것입니다. 철갑탄은 장갑 차량이나 탱크를 공격할 때는 효과가 있었지만 장갑을 하지 않은 보병 부대들이나 수송 차량들을 공격하는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즉 포탄이 목표물에 피탄되는 순간에 폭발이 일어나야 넓은 면적에 적 보병들이나 차량들이 손상을 당하게 되는데 철갑탄은 철저하게 구멍만 뜷으면 된다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몇 미터 옆에 떨어지더라도 주변에 별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장갑으로 보호되지 않은 목표물을 위해서는 차체 전면에 장착된 기관총 1정이 화력의 전부였습니다.
다른 영국의 보병탱크와 마찬가지로 가장 얇은 부분이 20mm 두께의 장갑이 사용도었고 최고로 두꺼운 전면 부위의 경우는 78mm 장갑으로 지금 보면 별로 크지 않은 몸집에 장갑 두께는 정말 딴딴한 편이었습니다. 참고로 타이거 I이나 판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나치 독일 기갑부대의 최강 탱크였던 4호전차가 프랑스 침공때 장착했던 KwK 37 L/24 75mm 대전차 포가 마틸다 II와 교전하면서 장갑을 뚫지 못하게 되자 결국 75mm Pak 40 L/46 포로 교체할 정도로 마틸다 II의 장갑은 강력했습니다.
1940년~1941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영국군 주력 탱크중에 하나로써 더 이상 "보병탱크"가 아니라 사막에서 나치 독일 기갑부대와 정면 승부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마틸다 II의 강력한 장갑은 롬멜 군단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과 이태리군이 사용하는 대전차 포는 37mm~50mm 포들이었는데 이런 화력으로는 마틸다 II의 장갑을 뚫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런 포들이 주로 사용하는 포탄이 철갑 관통을 주목적으로 하는 철갑탄이 아니라 피탄시 폭발을 통해 파괴하는 고폭탄(High Explosive)인 탓에 더욱 더 마틸다 II의 장갑을 뚫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롬멜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평가되는 대공포 전용의 75mm PAK 40을 하늘을 향하는 대신 마틸다 II 를 향해 발사하며 대전차 무기로 용도 변경을 한 순간부터 마틸다 II의 장갑의 위력은 더 이상 효과를 발할 수 없게 됩니다.
어쨌든 초기에 마틸다 II의 장갑은 분명히 나치 기갑부대에게 큰 위협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몸짐에 비해서 두꺼운 장갑을 적용한 마틸다 II가 당연히 기동성에 있어서는 형편없이 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막 지형에서는 시속 9.7km라는 거의 보병의 진군 속도보다 조금 빠른 수준의 스피드였던 것입니다. 애초에 마틸다 II 의 용도는 "보병탱크"였던 탓에 장갑만 두꺼우면 됐지 보병들이랑 함께 움직이는 입장에서 기동성이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의 전술을 구사하던 영국 지휘관들의 생각은 막상 사막에서 기동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롬멜 군단의 날렵한 탱크들을 만나게 되자 엄청난 오판이었음이 입증되게 됩니다.
마틸다 II의 엔진이 파워가 약한 것도 기동성을 저하시키는 이유였는데 실제 이탱크는 두개의 버스 엔진을 한개의 쉬프트에 연결해서 탱크를 구동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구동 시스템은 실제 탱크 운전에 있어서 휠씬 어렵고, 고장이 자주 발생할 뿐 아니라 유지 보수에도 애로사항이 많은 탱크였습니다.
1938년 벌컨 주조 회사에서 최초 양산이 시작된 후에 5개 이상의 회사들이 마틸다 II의 생산을 맡게 되었는데 1942년에는 한해 동안 1,330대가 생산되어 최고 생산대수를 기록하였고 943년 8월까지 생산이 계속되었습니다.
1940년 프랑스 공방 : 최초의 전투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 투입되었던 영국군의 마틸다 II)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그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나치 독일은 이듬해인 1940년 5월 마침내 프랑스와의 전면전을 시작합니다.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서 급파한 근위 제7 기갑 연대의 탱크들 중에서 23대가 마틸다 II 였습니다. (나머지는 프랑스 점령 후에 무용지물인 것으로 입증되는 마틸다 I 이었습니다.) 1940년 5월 21일 아라스 전투에서 당시 독일 기갑 부대 지휘관이었던 롬멜은 마틸다 II의 강력한 장갑을 뚫기 위해서 88mm 대전차 포를 동원할 때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88mm 포를 사용해서 마틸다 II의 장갑을 뚫고 타격을 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영국 기갑부대는 허둥지둥 퇴각을 하게 됩니다. 원래 아라스 반격 작전이 6월 2일 이루어진 던커크 해안에 대규모 철수 작전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프랑스와 영국간에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영국군 혼자서 나치 추격군을 대항하다보니 결국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마틸다 I 과 마틸다 II 전량 영국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던커크 근처에 버려지게 되는 치욕을 겪게 됩니다.
1940년~1942년 북아프리카 전역
(1940년 콤파스 작전에 투입된 마틸다 II 탱크)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어진 롬멜 군단과 영국군 간에 혈전의 역사는 제가 이미 올렸던 글들을 읽어보시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마틸다 II에 촛점을 맞춰서 설명하면 1942년이 될 때까지 마틸다 II는 대부분의 이태리와 독일 탱크들을 상대해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진 탱크였습니다. 강력한 장갑 덕분에 당시 북아프리카 군단의 주력 전차들이었던 2호,3호,4호 전차들의 화력으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고 포탑에 장착된 2 Pouner 대전차포도 2호나 3호 전차와 이태리의 허접한 구형 탱크들을 파괴하는데는 충분한 파괴력이었습니다.
1940년 영국의 "콤파스 작전" 기간동안 영국 제 7 기갑 사단의 마틸다 II는 이집트에 이태리 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당시 이태리 군이 보유한 L3 Tankette와 M11/39 중형 탱크들은 마틸다 II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영국군이 진격을 계속하면서 그 선봉에서 마틸다 II가 그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결국 이집트를 침공해 들어왔던 이태리군들은 영국군의 공세에 밀려 이집트 밖으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리비아에 바디아와 토브룩과 같은 중요한 거점들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영국군의 전공에 있어서 마틸다 II 의 공헌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1941년 11월까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작성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의 보고서 내용중에 마틸다 II를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의 포와 탱크들이 시급히 지원되어야 한다는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콤파스 작전의 결과로 포로가 된 이태리군 병사들, 1940년 12월 ~ 1941년 2월 3개월동안 진행된 영국의 콤파스
작전은 이집트(영국 식민지) 내륙에서 시작하여 시리아(이태리 점령지역) 중심부까지 진격하여 이태리군을
밀어붙힌 결과 이태리군 3,000명이 전사하고 11만5천명이 포로가 된 반면 영국측은 고작 500명 전사의 비교적
적은 희생을 치룬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마틸다 II가 초기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활약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보병탱크"로써 갖고 있던 문제점들이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신속하게 적을 밀어붙혀야 하는 입장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1.너무나 느려터진 속도
2.철갑탄 위주의 주포의 한정된 파괴력
3.복잡한 구동 시스템으로 잦은 고장
이 세가지 문제는 멍청한 이태리 군을 상대할 때는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이 아프리카 군단을 지휘하기 위해 부임하게 되면서 그가 88mm 대공포를 대전차 공격용으로 용도 변경을 하게 되자 마틸다 II는 더이상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배틀액스 작전과 액시스 작전 중에 롬멜의 대공포를 사용한 대전차 공격은 엄청난 숫자의 마틸다 II를 사막 한가운데서 불쏘시개로 만들어버렸고 12대의 마틸다는 아프리카 군단에게 탈취되어 사용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집니다.(실제로 이태리나 독일 마크로 페인팅된 마틸다 II가 북아프리카 전역에 기록 사진들에서 종종 발견되곤 합니다.)
(1941년 독일군에게 탈취당해서 독일군 마크를 새롭게 도장하고 사용되던 마틸다 II가 다시 영국군에게
재탈취되어 상대방 탱크를 사용하던 독일 기갑병들이 포로가 되는 모습)
(마틸다 II 탱크처럼 "보병탱크" 개념의 발렌타인 탱크는 최소한 마틸다보다 빠른 속도와
저렴함 생산비의 잇점을 가진 탱크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리카 군단은 강력한 주포를 장착한 탱크들과 대전차 포를 공급받게 되면서 마틸다 II 는 점점 더 그 위력을 상실해갑니다. 게다가 마틸다 II의 포탑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더 큰 구경의 대포로 교체가 불가능한 탓에 4호전차 정도만 해도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가지 마틸다 II의 문제점은 생산비가 비교적 비싸다는 것입니다. 주요 생산 공장이었던 빅커스社는 마틸다 II 대신에 발렌타인 탱크를 생산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는데 같은 "보병탱크" 개념이면서도 비슷한 장갑 능력과 동일한 화력의 주포를 장착하고 더 빠른 속도가 가능했고 저렴하게 생산이 가능했던 기종이었기 때문입니다.
1941년 가을에 발렌타인 탱크들이 추가로 공급되자 점차 마틸다 II 는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더 이상의 추가 공급 없이 점차 뒷전에 물러나게 됩니다. 1942년 여름에 진행된 크루세이더 작전과 가잘라 전투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마틸다 II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해 말에 벌어진 엘 알라메인 전투에 투입된 영국군 탱크들 중에서 전투에 참가한 마틸다 II 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대신 25대의 마틸다 II 는 지뢰 제거용 특수 목적의 탱크(일명 "마틸다 스콜피온")로써 공헌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 중에 마틸다 II의 활약
(뉴기니아 후온 반도 전투에서 활약중인 호주군의 마틸다 II 탱크)
한편 태평양 전쟁에서 마틸다 II 는 거의 종전 때까지 영연방 호주군에 의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일본군의 탱크들이 워낙 보잘 것 없고 대전차 무기 역시 나치 독일에 비해서 턱없이 허접했던 탓에 마틸다 II나 미국 셔먼 탱크정도만 해도 엄청나게 훌륭한 탱크였습니다. 특히 1943년 9월~1944년 1월 태평양 남서쪽 뉴기니아 후온 반도 전투에서 호주군의 마틸단 II 탱크는 효과적으로 일본군을 격퇴하는데 공헌하게 됩니다.
영국은 독소전쟁 기간 중에 소련군을 지원하기 위해 1,084대의 마틸다 II를 공급해주었는데 그중에 수송선 격침으로 바다속에 수장되버린 숫자를 제외한 918대가 소련군에 의해 운용되었습니다. 모스크바 공방전부터 소련군의 마틸다 II 는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데 1942년 내내 주력 탱크들 중에 하나로써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당시에 마틸다 II 탱크의 근본적인 결함인 너무 느린 속도와 가뜩이나 가혹한 동토의 날씨에서 쉽게 퍼져버리는 구동 시스템의 불안정한 품질이 소련군들은 엄청 속 썩였습니다. 게다가 케터필터를 완전히 뒤집어 씌운 "스커트"가 진흙과 눈이 끼어서 서스펜션을 멈춰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졌습니다. 이런 두꺼운 장갑과 느려터진 스피드의 약점은 곧잘 소련군의 KV-1 탱크와 비교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KV-1은 76.2mm 주포의 위력으로 화력만은 마틸다의 2 Pounder 주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였습니다. 1942년에 거의 대부분의 마틸다 II 탱크들은 전투중에 파괴되거나 고장으로 퍼져서 버려졌고 극히 소수만이 1944년 말까지 동부 전선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유빈아빠님의 작품 고증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닷!!!
우선 유빈아빠님의 마틸다 II를 보면 "PHANTOM"이라는 마킹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아래 사진을 보면 동일한 단어가 페인팅되어있는 유빈아빠님 작품의 실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팬텀이라는 단어 옆에 T6958은 차량 번호를 의미합니다.
이 탱크가 속한 부대는 영국 육군의 제 42 왕실 기갑 연대 (the 42nd Royal Tank Regiment)로써 42 기갑 연대는 마틸다 II 와 마틸다 I이 함께 구성된 연대로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 참전하여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와 최초의 전차전을 치룬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 철수할 때 가지고 갔던 탱크들은 전부 프랑스 해안에 버리고 돌아오는 치욕을 겪습니다. 영국에서 새 마틸다 II를 비롯한 탱크들을 공급받고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투입됩니다. 1941년 1월 크루세이더 작전에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입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마틸다 II가 롬멜 군단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유빈아빠님의 마틸다 II는 정확하게 "Matilda II A Mark III"로 판단됩니다.
즉, 초기 모델 Matilda II에 "A"가 붙으면 초기 AEC 엔진에서 New Leyland 디젤 엔진으로 바뀌었음을 의미 합니다. 또한 애초 사용했던 빅커스 기관총을 Besa 기관총으로 변경했음을 의미합니다.
(Besa 기관총)
유빈아빠님이 사용하신 타미야 1/35 Kit는 Matilda II A 중에서 Mark III 또는 Mark IV 두가지 버전을 선택하여 조립할 수 있습니다. Mark IV의 경우 포탑 램프가 제거된 것이 외형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유빈아빠님이 포탑 램프를 부착하신 상태이므로 Mark III 로 조립했다고 봐야 합니다.
(1941년 리비아 침공에 투입된 제 7 왕실 기갑 연대의 마틸다 II)
도장과 마킹을 하다보면 흰생-붉은색-흰색의 사각형 마크가 무엇을 의미할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바로 "왕실" 기갑 연대를 의미합니다. 또 오묘하게 삼색으로 비스듬히 위장색을 칠해놓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 실제 이런 배합의 위장이 영국군의 실험 결과 사막 지역에서 매우 우수한 위장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하여 이렇게 도색을 해놓았습니다.
(참! 보면 볼수록 명작입니다. 유빈아빠님의 마틸다 II 를 보면서 저의 제작 의욕이 팍 꺾이곤 합니다. 헐헐)
결국 위에 디오라마는 1941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크루세이더 작전 중에 제42 왕실 기갑연대 소속 마틸다 II의 한창 잘나갈 때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막 아프리카에 도착한 나치 독일의 명장 롬멜 장군이 아프리카 군단의 지휘봉을 쥐게 된 상황에서 앞으로 교활한 "사막의 여우"와의 혈전을 앞두고 있는 그때만 해도 영국군 주력 전차였던 마틸다 II의 모습이지요. 아직 롬멜의 영원한 맞수 몽고메리 장군은 이곳으로 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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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 읽어보니 위에 오타가 있네요. 컴퓨터 이미 꺼서 내일 수정할랍니다.
저도 유빈아빠님 처럼 잘 만들어서 김작가님 깨알 이야기에 올라야 할텐데 아직 먼 길 같습니다.^^
휴머니스트님의 작품을 다음 고증 작품으로 선정해도 될까요?
야. 작품 하나에서 이리 흥미로운 이야기를 길게 이끌어내시다니요! 오늘도 일본의 한 식당에서 혼자 저녁 먹으며 다 읽었네요.
이게 제가 게시판을 만든 목적입니다. 축적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드디어 우리 카페에 회원님들 작품의 본격 고증이 시작됩니다!
오타 수정했습니다.
흥미롭게 잘읽었습니다. 앞으로 대전물은 피해서 만들어야겠네요. ㅋㅋㅋ
하하하하 그러지 마세요 ^^
제가 만든 킷의 실제 사진을보니 제작할때 찾아 볼껄 하는 후회가 생깁니다.
계속되는 망년회 모임에 컨디션이 너무 않좋아서 월요일날 출근해서 재미있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글 감사드리구요, 형님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아이쿠 감사합니다 유빈아빠님도 해피 뉴이어요!
형님은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의심스럽습니다.
정체 예전에 얘기했었는데?? 식당 주인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