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리
고점리, 체메기, 여동골인 자연부락 3개를 1914년 대원리로 통폐합하였다. 마을의 환경은 깨끗하다. 장승이 맞이하는 마을 입구를 지나 오른쪽에 커다란 느티나무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중앙 연꽃생태연못 옆 정자에서 오가며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정자근처에는 200년 된 우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디딜방아도 설치되어 있다. 돌담길이 정겹다. 노씨 집성촌이었지만 원주민보다 외부에서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마을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마을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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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우물
전설
○ 검단산(높이767m)
─ 고운 최치원 선생의 탄생 설화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 여동골 마을 뒷산인 높이 767m의 검단산이 있다. 이 산은 백제 때 검단(儉丹)이란 중이 살았는데 이로 인해 검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이 산에는 금빛을 한 돼지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이 금돼지는 몇천 년을 묵은 것이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돼지가 고을 수령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내려와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특히 온 고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고을 수령의 부인을 잡아가는 일이었다. 이 고을에 새로운 수령이 부임하기만 하면 금돼지는 사람으로 변하여 읍내에 내려와 어떤 술책을 써서라도 수령의 부인을 납치해 가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수령은 온 고을 안에 방을 써 붙이고 현상금을 내걸었으나 조화가 무궁한 금돼지의 행방을 알아 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문은 멀리 서울까지 퍼져 사람들은 이 고을 수령으로 가기를 꺼려하였고 혹시 임명을 받아도 병이나 집안 일을 핑계하면서 도무지 가려고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고을을 폐읍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을 수령을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도 없는지라 무척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침 그때 아주 담력이 세고 힘이 센 장수 한 사람이 고을 수령을 자청하게 되었다.
신관사또가 이 고을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관속들을 불러놓고 금돼지의 행패에 대하여 물어 보았지만 어느 누구 한사람 속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령은 한참동안 고민을 하다가 관속들을 향하여“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가서 오늘 해지기 전까지 명주실 오천 발만 구해 가지고 오너라” 하고 명령을 내렸다. 관속들은 도무지 영문을 몰라 궁금하였지만 신관사또의 명의 지엄하므로 그날 저녁 때까지 명주실을 구해 왔다. 그날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수령은 명주실을 가지고 내실로 들어가 실 한 끝을 자기 아내의 치마주름 끝에 단단히 매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의 곁에서 자는 체 눈을 감고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한밤 자정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옆에 누워서 곤히 자던 아내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려 살펴보고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수령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옆에 끼고 있던 명주실을 슬슬 풀어 주었다. 명주실은 계속하여 풀려 나갔다. 오천 발이 다 풀리자 실은 더 당겨지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날이 밝자 수령은 그 명주실을 따라 집을 나섰다. 그 실은 검단산 깊은 골짜기로 자꾸만 뻗어 나갔다. 한참 따라가니 명주실은 어느 작은 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원체 겁이 없고 담력이 큰 사또인지라 컴컴한 굴속을 조심조심 걸어갔다. 굴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그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수령이 몸을 꾸부리고 살금살금 더 들어가니 촛불이 보였고 불 아래 수십 명의 여인들이 수심이 가득한 채 앉아 있고 그 중에 자신의 아내도 보였다. 수령은 너무 나도 반가워서 “여보”하고 부르면서 아내에게 뛰어 갔다. 수령을 본 아내는 깜짝 놀라며 “당신이 이곳에 웬일이십니까? 만약 금돼지에게 발각되면 큰일이니 어서 돌아가세요.” 하였다. 그러나 굴속에 들어온 사람이 신관사또라는 것을 알자 먼저 잡혀왔던 여인들이 구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 수령은 한참 생각을 하다가“ 자. 여러분 이렇게 하십시다. 오늘 금돼지가 들어오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십시오.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는 당신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하고 단단히 다짐을 하고 있을 때 굴 입구 쪽에서 금돼지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령은 즉시 몸을 피하여 숨고 여인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돌아오는 금돼지를 맞아 들였다. 금돼지는 만족한 듯 코를 벌름거리면서 원의 아내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여인들은 시녀처럼 금돼지의 허리며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등도 두드리자 금돼지는 흡족하여 눈을 사르르 감았다. 그때 한 여인이 금돼지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당신도 무서운 것이 있습니까” 금돼지는 그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물어 본 여인을 노려보면서 “아니 갑자기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왜 물어 보느냐”하고 벌컥 성을 내었다. 그러나 여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이제 우리는 당신을 평생토록 모셔야 할텐데 혹시 모르고 당신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멀리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물어본 것이지 별 뜻이 없으니 노여워하지 말아요.”하자 금돼지는 껄껄 웃으며 “아. 고맙소, 나야 세상에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소마는 다만 한가지 사슴가죽만 보면 무섭단 말이요.”했다. “아이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까짓 사슴가죽이 무엇이 무섭습니까” 여인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자 금돼지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사슴가죽만 보면 사지가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며 꼼짝할 수가 없다”하면서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옳지. 저놈이 사슴가죽을 무서워하는구나’ 사또는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사슴가죽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허리끈에 차고 다니는 고을 수령의 직인 주머니였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펴보니 천만다행으로 그것은 사슴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수령은 인장주머니를 들고 뛰어 나가면서 “이놈아, 네가 무서워하는 사슴가죽 여기 있다”라고 소리쳤다. 금돼지는 사슴가죽을 보자 정말로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하여 금돼지를 처치하고 자기의 아내와 여인들을 구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수개월이 지나자 사또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었다. 금돼지의 새끼를 밴 아내는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사또의 간곡한 위안과 만류로 그럭저럭 만삭이 돼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 때 유명한 문장가요,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라는 것이었다. 이 검단산에는 고운암(孤雲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최치원이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 신선봉(높이640m)
옛날에 이 마을에 젊은 나무꾼 한 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나무를 한참 하다 보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두는지 나무꾼은 도끼를 옆에 두고 정신없이 두 노인의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치자 두 노인의 바둑은 끝났다. 그리고 두 노인은 서로 손을 잡고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정신을 차리고 옆에 놓아두었던 도끼를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갈 양 도끼를 찾아보았더니 어느 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는 온데 간데 없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하도 기가 막혀 따져보았더니 자신의 아내는 이미 50년 전에 죽고 손자 내외가 아이들과 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무하러 가서 두 노인의 바둑구경을 하는 사이에 10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더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은 후부터 바둑을 두던 두 노인은 신선이 된 검단과 최치원이고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편의시설
마을체험-대안에너지(풍력, 태양광), 농촌계절체험, 떡만들기, 별자리 관측소, 야생화농장
숙소정보
마을에서 운영하는 산촌생태체험관 사무실 070-8888-4050, 사무장 010-5271-3919
속리산활목재 산장농원 010-4271-5969, 010-4279-5969
교통정보
농어촌버스 신흥운수 043-542-2510
보은공용버스터미널 043-543-1580
보은군청 민원과 교통계 043-540-3071
맛집정보
단체주문시 마을에서 준비가능
지도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