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파마
2014. 6.14. 발제자 최인정
옛날 벽지를 연상시키는 누런빛 꽃무늬 바탕에 거울에 정신을 판 듯한 못난이 꼬마와 빨간 혓바닥을 길게 늘인 삽살개. 이 책의 표지를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졌고 그 전 ‘넉점반’ 책과 같은 감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었다.
영남이네 집은 기역자 초가집. 오늘은 엄마가 장에 간 이유로 영남이 혼자 집을 보며 놀고 있다. 영남이의 빳빳한 단발과 통통한 볼, 노는 모양새가 참 귀엽지만, 영남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이 무척 한국적이어서 영 마음에 안 든다. 엄마의 화장품을 발라보고 머리를 요리조리 해 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엄마처럼’ 파마를 해보려는 생각에 젓가락을 불에 달궈 파마를 시도해 보는 영남이. 그렇게 앞머리를 태워먹은 참에 친구 미희가 놀러와서 아카시아 파마를 해주겠노라고 손을 잡아 끈다. 한 손을 잡혀 가면서도 파마 한다고 손거울을 꼭 쥐고 가는데 동생 영수가 반 협박으로 따라붙고, 덩치가 애들보다 큰 삽사리도 영수를 따라온다.
화창한 아카시아 숲에서 아이들은 미용실을 열고 시술을 시작한다. 파마값은 나중에 살구 한 바가지라니 곱기도 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영남이와 제법 미용사처럼 입에 아카시아 줄기를 물고 양손을 요리조리 놀리는 미희. 덩달아 삽사리를 파마시켜주는 영수와 버둥거리는 삽사리 장면에서는 정말 너무나도 즐거웠다. 파마가 되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을 거쳐 드디어 줄기를 풀었더니, 짜자잔 하고 곱슬곱슬해진 머리카락! 감탄하며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온다. 급하게 토란잎으로 비를 피하지만 아카시아 파마는 허무하게 풀려버렸다. 다시 파마해주겠노라고 미희가 달래주는데도 불구하고 영남이는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울어버린다. 그러다 다시 하늘이 말갛게 개고 하늘에 무지개가 걸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뚝 그치고 아이들은 아카시아 숲을 향해 달려간다.
매 장면 장면이 너무나 화사하고 예뻐서 모든 장면이 얼마나 흐뭇하고 다음 장을 넘기기가 싫은지, 그림에서 5월의 따스함과 달콤함이 묻어나 오래 오래 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을 보자니 그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놀이하던 기분이 기억났다. 별 것 없는 물구덩이에서도 아주 진지하게 물을 퍼다 흙을 반죽하고, 오묘한 단맛을 찾아 이름도 모르는 풀뿌리를 캐 먹던 그 때의 기억.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 집은 월명산 아랫자락에 있었는데, 평소에는 그저 산이지만 5월만 되면 온 산이 아카시아 숲인 듯 하얀 꽃 천지였고 온 동네에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고 따뜻하게 감돌았다. 가시를 헤쳐 가며 아카시아 꽃숭어리를 잔뜩 따다 먹어대던 기억은 지금도 내게 좋은 장면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을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했다. 온갖 캐릭터와 티비에서 광고하는 장난감을 ‘소비’하는 우리 조카에게서도 이 쪽의 흙을 저 쪽에 옮기는 등의 사소하고 진지한 ‘놀이’의 씨앗을 발견하게 되는 걸 보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놀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잘 것 없지만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어떤 것. 그것이 좀 더 자연과 생활에 가깝고 풍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어른들의 기억에서도 희미해진 예전의 그런 놀이를 이렇게 책으로나마 떠올리고 전해주게 되어 다행이다.
<국시꼬랭이 시리즈>
01 똥떡 02 꼴 따먹기 03 싸개싸개 오줌싸개 04 고무신 기차 05 야광귀신
06 쌈닭 07 숯 달고 고추달고 08 논고랑 기어가기 09 눈 다래끼 팔아요 10 아카시아 파마
11 풀 싸움 12 달구와 손톱 13 밤똥 참기 14 도마뱀아 도마뱀아 비를 내려라
15 각시각시 풀각시 16 돼지오줌보 축구 17 막걸리 심부름 18 엄마손은 약손
19 책보 20 국시꼬랭이
이춘희 작가는 <국시꼬랭이 시리즈> 를 통하여 짧은 작가 생활 경력에 동화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시리즈는 잊혀져 가는 자투리 문화를 살리자는 색다른 기획으로 주목을 받으며 그녀의 첫번째 권 『똥떡』이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의 시리즈는 전통문화에 주목하며 옛날의 풍습이나 놀이를 그 주제로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는 신기함으로 책을 함께 읽는 부모들에게는 향수로 친근하게 다가갔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 게임이나 컴퓨터에만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예전 풍습과 함께 하는 문화를 가르쳐줄 수 있는 책으로 그녀의 책은 인기가 높아졌다. 외래문화에 젖었다고 평가되는 외국동화에 대한 우려와 한국동화에 대한 무관심은 전통문화를 다룬 그녀의 동화가 사랑을 받으며 조금 누그러들었다.
전통문화를 다룬 동화를 위하여 이춘희 작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공부한다. 예를 들어 그녀의 첫번째 책 『똥떡』의 경우에는 화장실에 빠진 아이를 위해 액땜용 떡을 돌렸던 민간 풍속을 조사하기 위하여 도서관의 문서와 자료들을 철저히 조사했다. 또한 각 권의 주제에 맞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의 풍습과 민간요법들이 다시금 세상의 빛을 받고 있다. 각시풀과 민들레의 이야기를 통해 풀각시 인형을 만들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가뭄이면 용과 도마뱀을 잡아다 기우제를 지냈던 사내아이들의 놀이가 다시 펼쳐지고, 눈다래끼가 났을 때 행했던 다양한 민간요법들이 소개된다. 이렇게 우리의 잊혀졌던 전통문화가 동화라는 이야기 형식을 빌려 다시 살아남에 부모도 아이도 함께 즐거워하며 이춘희의 작품에 주목하고 있다. ( yes24 퍼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