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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자비와 지혜의 빛으로 민중을 비춰라!
정의의 스크럼을! 청년의 대열을! 이체동심의 단결로 세계를 맺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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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정확히 60년 전, 1953년 봄이었습니다.
‘금요강의’로 친숙해진 도다(戶田) 선생님의 일반강의가 새로 지은 이케부쿠로 도시마공회당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도시마는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이 국가권력의 횡포에 맞서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평화원류(源流)의 땅입니다.
올해는 초대 · 제2대의 사제(師弟)가 법난(1943년)을 당한 지 70년이 됩니다. 당시에는 두 분이 투옥된 도쿄구치소(패전 후는 스가무 형무소)가 공회당근처에 있었습니다.
‘은사가 법화경에 신명을 바친 땅인 이 공회당에서 광선유포의 싸움을 시작하자!’ - 도다 선생님은 강하게 결의하고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강의가 있던 날 저녁,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이케부쿠로 역에서 공회당으로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어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처음 참석하는 사람이 역 앞에서 “공회당은 어딥니까?” 라고 물으면 “저기 저 큰길까지 가면 검소한 옷차림으로 큰 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뛰어가는 게 보일 거예요. 그 뒤를 따라가면 공회당입니다.” 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일반강의는 누구라도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로, 어떤 사람은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또 어떤 사람은 올 때 전차비만을 손에 쥐고, - 모두 저마다 괴로움을 안고 필사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삶의 확신을 얻기 위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동지들이 공회당 복도에도 넘쳤습니다. 건물에 못 들어가는 참가자들을 위해 인접한 ‘나카이케부쿠로공원’ 쪽으로 장외 스피커도 설치하였습니다.
“대장군의 강의를 할 테니까”
도다 선생님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한회 한회의 강의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목이 부은 날도 있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강의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회합장소에 도착하면 대기실에서 주위 사람들을 격려하다가 시간이 되면 의자에서 일어나 “그럼 시작해 볼까. 대장군의 강의를 할 테니까.” 하며 의연하게 연단으로 향하셨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질문회 시간에 동지의 절실한 고민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진지하고 세심하게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서(御書)에는 한 글자 한 구절에도 대성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중 한 구절이라도 심간(心肝)에 새긴다면 대단한 일이다. 나는 마음 오저로 배독하고 강의를 하고 있다.”
“불가사의하게도 어서를 배독하면 다른 모든 것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게 된다. 생활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에 막힘은 없다.”
도다 선생님의 기백과 대 확신 그리고 자애(慈愛)를 접하고 동지는 진심으로 이해하고, 환희하고, 분기하며, 마치 목욕을 끝낸 뒤와 같은 상쾌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금요강의’에서 생명을 충전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대화의 제일선에 뛰어든다. - 이러한 ‘광선확대의 리듬’으로 학회는 크게 전진했습니다.
어서를 배울 때, 도다 선생님이 가장 기본으로 삼은 것은 종교의 진가를 밝힌 ‘문증(文證)· 이증(理證)· 현증(現證)’의 원리였습니다. - 그 의처로 하는 문증이 이번에 배독하는 <삼삼장기우사>입니다.
진실한 불법이 맥동하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 - 니치렌대성인불법(日蓮大聖人佛法)의 진수를 함께 배웁시다.
◇
<본문> (어서 1468쪽 1행~2행)
대저 나무를 심는 데는 대풍(大風)이 불어도 강한 지주(支柱)를 세우면 넘어지지 않으나, 본래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라 해도 뿌리가 약한 것은 넘어지느니라.
무기력(無氣力)한 자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넘어지지 않으나, 조금 다기(多氣)진 자도(刺刀)나쁜 길에는 넘어지느니라.
<현대어역>
대저 나무를 신는 경우 큰 바람이 불어도 강한 지주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본디부터 심은 나무라도 뿌리가 약하면 넘어진다.
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강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조금 다기진 사람이라도 혼자라면 나쁜 길에서는 넘어지고 만다.
격동의 시대에 진짜를 구한다
첫머리는 ‘선지식(善知識)’의 소중함을 나무에 비유한 유명한 글월입니다.
이 어서는 1275년 또는 그 이듬해에 니치렌대성인이 미노부에서 저술해, 스루가 지방(시즈오카현 중앙부) 후지군 니시야마향(西山鄕)에 사는 문하, 시시야마입도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당시는 ‘문영의 전쟁’으로 불리는 몽고내습(1274년)이 있던 직후로, 사람들은 두 번째 내습을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위기감이 고조된 막부와 조정은 몽고를 조복(調伏)하는 기도를 각지의 유력한 사찰과 신사 등에 명령합니다. 그 결과 널리 거행된 것이 진언밀교(眞言密敎)에 따른 가지기도(加持祈禱)였습니다.
진언은 헤이안(平安)시대 초기에 고보(弘法)가 중국에서 들여와 세운 종파입니다. 이윽고 천태종에도 지카쿠(慈覺) · 지쇼(智證)가 진언의 가르침을 크게 받아들여 천태종도 밀교화 되었습니다.
대성인 재세 시, 진언사(眞言師)들은 역병과 천재지변 등에 대처하여 막부가 요청하는 기도를 전면적으로 떠맡아, 무사들이 신봉하는 스루가오카팔번궁(鶴岡八幡宮)의 요직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니치렌대성인의 눈에 비친 진언은 불교와 너무 동떨어진 실태(實態)였습니다.
‘밀교’라고 자칭하며 법화경 등을 경시하고 거창한 의식이나 주술(呪術)로 신바람을 가장했지만, 성불의 근거가 되는 확실한 진리를 밝히지 않고 공허한 교의(敎義)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법화경의 근본이며 성불의 근본 가르침인 ‘일념삼천(一念三千)’도 도용했습니다.
이러한 불교의 본의를 잃어버린 가르침에 의지하려고 하면 ‘망국(亡國)’의 과보(果報)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눈을 떠라! 진실을 제대로 분간하라!
- 이 어서 외에도 <선시초><보은초> 등 1275년부터 1277년 사이에 쓰신 어서에는 끝까지 불법의 정의를 지키려는 대성인의 사자후가 담겨 있습니다.
니시야마전이 사는 스루가 지방의 후지 방면은 막부 권력자의 소령(所領)이 많은 지역입니다. 또 니시야마전의 가족은 닛코상인(日興上人)과 인연이 깊은 일가라고 추측됩니다.
아마도 갖가지 압력에 시달리며 신심에 면려하면서도 대성인께 여러 번 공양물을 보내셨습니다.
그런 니시야마전에게 첫째로 가르친 것은 ‘선지식을 구하라.’였습니다.
‘선지식’은 사람들을 선(善)으로 이끌어 불법의 정도(正道)로 향하게 하는 ‘좋은 벗’을 말합니다.
갓 심은 나무라도 강한 지주가 있으면 큰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다. 길을 떠나는데 험하고 나쁜 길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쓰러지지 않는다.
우리가 불도(佛道)를 곧바로 전진하면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한 지주가 ‘선지식’입니다.
◇
<본문> (어서 1469쪽 3행~9행)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이 한토(漢土)에 건너갔을 때는 당의 현종의 시대이니라.
대한발(大旱魃)이 있어서 기우(祈雨)의 법(法)을 분부 받았는데 대우(大雨)가 내려 상일인(上一人)으로부터 하만민(下萬民)에 이르기까지 크게 기뻐하였던바 잠시 후에 대풍(大風)이 불어와서 국토를 파괴하였으므로 흥(興)이 깨졌느니라. (중략)
이는 일본국의 지자(智者) 우자(愚者)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 일이니라. 알려고 생각한다면 니치렌이 살아있을 때 상세히 물어 배울지어다.
<현대어역>
선무외삼장이 중국에 건너갔을 때는 당나라 현종의 시대였다.
큰 가뭄이 있어서 기우법요를 분부 받아 큰 비를 내리게 했으므로 상일인으로부터 하만민에 이르기까지 크게 기뻐하였으니 잠시 후에 큰 바람이 불어와서 국토를 파괴하였으므로 모두가 실망했다. (중략)
이 일은 일본국의 지자도 우자도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알려고 생각한다면 니치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상세히 물어 배우시오.
역사의 대전환을 구축하는 정신투쟁
중국 진언밀교의 개조인 선무외(善無畏) · 금강지(金剛智) · 불공(不空)이라는 삼삼장(三三藏, 세 사람의 삼장<고승>)이 8세기경 잇달아 기우법요를 행했습니다.
대성인은 기록(≪송고승전≫등)에 근거해 설명하십니다.
그에 따르면 세 삼장의 기도로 비가 한번 내리긴 했으나 곧 전대미문의 큰 바람이 불어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괴롭히는 참담한 결과로 끝났습니다.
“이는 니치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알고 싶으면 니치렌이 살아 있는 동안에 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건의 전말은 남았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더구나 그 원인은 대성인만 아신다는 의미라고 배견됩니다.
대성인은 이어서 일본에서 고보(弘法)의 기우법요가 실패한 현증을 들고 있습니다.
또 고보는 역병이 유행했을 때 기도했더니 한밤중에 해가 뜨더라,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 때 기도한 도구를 던졌더니 그것이 고야산(高野山)에서 나오더라 하며 그것이 고보의 덕을 증명하는 것인 양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삼증’의 태도와 완전히 동떨어진 주장에 대해 대성인은 “망어(妄語)”(어서 1470쪽)라고 파절하시고 있습니다.
이어서 대성인은 시대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즉 당시 여러 종파의 혼란, 그리고 타국에서 공격을 받는 일본국의 양상은 대체 어디에서 뒤틀려버린 걸까.
그 원흉은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고보와 천태종의 제3대 좌주(座主) 지카쿠, 제5대 좌주 지쇼라는 세 사람이 천태와 진언의 승렬에 대해 그르쳤다고 갈파하시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선시초>에서 당시 유행하던 염불종, 선종이라는 신흥 종파와 오랜 전통이 있는 진언종을 비교하고, 그 잘못의 정도는 진언종이 훨씬 뿌리 깊고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보은초>에서는 진언종과 밀교화된 천태종을 대비시켜 “(진언의 개조) 고보가 바로 첫째가는 방법자(謗法者)라고 생각했지만, (천태종의) 지카쿠와 지쇼는 고보 이상으로 당치도 않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어서 308쪽, 취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고보의 잘못은 물과 불의 차이처럼 뚜렷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쉽지만, 지카쿠와 지쇼의 잘못은 푸른색과 검정색의 차이처럼 쉽게 구별하기 어려워서 모두 의심도 하지 않고 속아 넘어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카쿠와 지쇼 이래로 천태종은 진언의 여러 경전을 받아들여 밀교화했습니다.
진언의 밀교를 ‘동밀(東密)’, 밀교화한 천태종을 ‘태밀(台密)’이라 부르듯이 법화경을 제일로 하는 천태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도 일본에도 진언 때문에 불교는 신비적인 의례(儀禮)에 치우쳐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대성인이 가마쿠라 시대 일본에서 ‘법화경 행자’로서 일어서서 진언을 파절하신 것은 불교의 쇠퇴 · 멸망을 저지하는 역사의 대전환을 이루는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어서에서 “해이(解弛)하는 마음이 없었다.”(어서 1471쪽), “물러서는 마음이 없었다.”(어서 14781쪽)고 말씀하시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근본정신은 일체중생을 어떻게 해서라도 구하고자 하는 바람뿐입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말법에 정법의 행자가 출현하면 사법(邪法)의 중들이 왕신(王臣)과 결탁하여 정법의 행자를 없애려 한다.
이에 대해 무량의 제천선신(諸天善神)이 이웃나라 왕의 몸에 바꿔 들어가 정법을 비방하는 나라에 쳐들어가 벌하려고 한다는 경문의 취지를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그래서 지금 일본은 몽고의 공격을 받고 있다. 망국의 위기에 있는 일본을 근본적으로 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니치렌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깊은 통찰과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 승리의 경전 ‘御書’에서 배운다 (50) ‘삼삼장기우사’ 에서
☞ 승리의 경전 ‘御書’에서 배운다 (50) ‘三三藏祈雨事’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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