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7권
7. 현화품(現化品)
70) 부처님께 번기[幡]를 보시한 인연
부처님께서는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 니구타(尼拘陀)나무 아래 계시었다.
당시 성중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재보를 지닌 장자가 있었다. 그가 어떤 문벌 좋은 집의 딸을 골라 아내로 맞이하여 온갖 음악을 즐겨 오다가, 그 아내가 임신을 하여 열 달 만에 한 남자 아이를 낳으니, 아이의 용모가 남보다 뛰어나게 단정하고 수승 미묘할 뿐만 아니라 처음 출생하던 날 허공으로부터 큰 번기가 내려와 온 성중을 두루 덮으므로, 사람들이 아이의 이름을 파다가(波多迦patka:幡)라 하였다.
아이가 점점 장대하여 여러 친구들과 함께 성문을 나가서 유희하다가 니구타나무 아래에 이르러 불 세존의 그 32상과 80종호로부터 마치 백천의 해와 같은 광명이 비춤을 보고 곧 환희심을 내어 부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다.
부처님께서 4제법을 가르쳐 주시자,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수다원과를 얻어서 집에 돌아와 그 부모에게 출가할 뜻을 말씀드렸다.
부모가 사랑하는 마음에서 굳이 만류할 수 없게 되자, 아이는 곧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출가하기를 원하였고,
부처님께선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자 머리털이 저절로 깎이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의 모습을 이루었으며, 부지런히 도를 닦고 익혀 아라한과를 얻고 3명(明)ㆍ6통(通)과 8해탈(解脫)을 구족하여 모든 천상ㆍ세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이때 다른 여러 비구들이 이 사실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파다가 비구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남달리 단정하고도 수승 미묘한 몸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허공으로부터 큰 번기가 내려와 온 성중을 두루 덮고,
또 부처님을 만나서 출가 득도하게 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과거 91겁 때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이 이 바라날국(波羅捺國)에 출현하시어 두루 교화를 마치고 열반에 드시자, 그때 반두말제(槃頭末帝)란 국왕이 사리를 거두어 높이 1유순이나 되는 4보탑(寶塔)을 만들어 공양하였다.
때마침 어떤 사람이 큰 모임을 베풀어 공양을 마침과 동시에 긴 번기 하나를 그 탑 위에 달아 둔 다음 발원하고 떠나갔다.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91겁 동안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 태어날 때마다 항상 번기가 정수리 위를 덮은 채 하늘의 쾌락을 받아 왔으며, 이제 또 나를 만나서 출가 득도하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당시 탑 위에 번기를 달아 둔 사람이 바로 지금의 이 파다가 비구니라.”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