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용이성 심리
회상 용이성 어림짐작 연구는 1990년대 초에 크게 발전했다.
당시 노르베르트 슈바르츠(Norbert Schwarz)가 이끄는 독일 심리학자들은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범주에서 사람들이 막연히 느끼는 발생 빈도는
해당 사례를 특정 개수만큼 나열하라는 요구에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
독자도 한번 직접 실험해보라.
우선, 단호하게 행동했던 사례 여섯 가지를 나열해보라
그 다음, 자신이 얼마나 단호한 사람인지 평가해보라.
이번에는 단호하게 행동했던 사례 열두 가지를 나열해보라 (대다수가 열두개는 힘들어 한다.)
이제 자신의 단호함이 달리 보이는가?
슈바르츠가 동료들과 함께 관찰한 결과,
사례를 나열하다 보면 아래의 두가지 경로로 단호함 판단이 달라졌다.
ㅇ 회상한 사례의 수
ㅇ 회상하기 쉬운 정도
사례 열두 가지를 나열하라는 말에 머릿속에서 두 가지 결정 요소가 경쟁을 벌인다.
한편으로는 단호하게 행동했던 인상적인 사례 몇 가지가 이제 막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하념,
또 한편으로는 단호했던 사례가 서너 개는 금방 생각나는데
열두 개를 채우려니 쉽지 않아 회상 속도가 느려진다.
이때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미칠까? 회상한 양일까, 회상하기 쉬운 정도일까?
이 경쟁의 승자는 분명했다.
열두 가지 사례를 어렵사리 나열한 사람은 여섯 가지를 나열한 사람보다 자신의 단호함을 낮게 평가했다.
게다가 단호히 행동하지 '않은' 사례 열두 가지를 나열해야 했던 참가자들은
되레 자신을 매우 단호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온순하게 행동했던 사례가 쉽게 떠로르지 않는다면, 자신을 전혀 온순하지 않은 사람으로 결론 내리기 쉽다.
자기 평가는 해당 사례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사례가 얼마나 쉽게 생각났는가는 사례를 몇 개나 생각해냈는가를 압도했다.
회상 용이성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같은 연구 집단의 다른 심리학자들에게서 나왔다.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단호했던(또는 단호하지 못했던) 행동 여섯 가지를 나열할 때 툭정한 표정을 짓게 했다.
어떤 참가자에게는 광대근을 수축시키는 미소를 짖게 했고,
어떤 참가자에게는 눈살을 찌프려 찡그린 표정을 짓게 했다.
독자도 이미 알다시피, 인지적 압박을 느낄 때 얼굴을 찡그리지만,
거꾸로 얼굴을 찡르리라고 하면 일은 더 열심히 하고 인지적 압박도 더 강하게 느낀다
연구원들은 얼굴을 찡그려야 했던사람들은 단호하게 행동했던 사례를 회상하는데 더 어려움을 느낄테고
따라서 자신을 상대적으로 단호함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하리라 예상했다 실험 결과도 그랬다.
심리학자들은 모순되는 결과가 나오는 실험을 좋아해서,
슈바르츠가 발견한 사실을 지곳저곳에 신나게 응용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ㅇ 사람들은 자전거 탔던 사례를 조금 회상할 때보다 많이 회상해야 했을때
자신의 자전거 이용 빈도를 더 낮게 생각한다.
ㅇ 사람들에게 선택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대보라고 하면 선택에 자신감을 잃는다.
ㅇ 어떤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방법을 실제보다 많이 나열한 뒤에는
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는다.
ㅇ 자동차의 장점을 많이 나열해야 했다면 자동차에 대한 인상이 예전만 못해진다.
UCLA의 한 교수는 회상 용이성 편향을 써먹을 기발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학생들을 여러 집단으로 나눠 수업을 개선할 방법을 나열하게 했는데,
각 집단에 그 방법의 수를 다르게 요구했다.
예상대로 수업 개선책을 더 많이 생각해야 했던 학생들이 현재 수업의 질을 더 높이 평가하는게 아닌가!
이 모순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모순이 항상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러는 회상 용이성보다 내용에 더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떤 행동 유형을 제대로 이해했는가는 그것을 뒤집을 방법을 아는가로 증명할 수 있다.
슈바르츠와 그의 동료들은 이런 현상이 일어날 조건을 찾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단호함의 사레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는 회상 도중에 바뀐다.
처음 몇개는 쉽게 생각나지만 금세 무척 어려워진다.
물론 실험 참가자들도 회상 속도가 점점 떨어지리라고 예상하지만,
사례가 여섯 가지일 때와 열두 가지일 때의 회상 속도 차이는 참가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크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은 단호하게 행동한 사례를 떠올리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걸 보면
자신은 아주 단호한 편은 아니라고 추론하게 된다. 이 추론의 기반은 놀람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회상이 예상보다 훨씬 더디다니!
이들이 적용하는 회상 용이성 어림 짐작은
'설명할 수 없는 회상 불가' 어림짐작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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