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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 먼곳 산행 ☜ 스크랩 지리산 종주팀 종주기
이제학(백두) 추천 0 조회 93 11.09.19 11:1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지리산 종주팀

    지리종주 하면 화대종주(화엄사 -대원사)를 일반적으로 종주라 하지만 요즈음은 노고단 언덕부터 천왕봉 정상까지 26.7km를 종주라고 한다.

매년 1회 이상 지리산종주를 했었는데 작년에 종주를 못했다. 지리종주가 하고 싶어 애절 할 때 용인신문  김 사장이 종주를 하고 싶다기에 체력이 되냐고 하니 자전거를 50-60km를 타서 괜찬을 거라고 한다. 그래서 종주를 계획하는데 용인아이 송 대표가 함께 하잔다. 두 사람 모두 지리종주가 처음으로 천왕봉을 아직 못 올랐다기에 혹시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도중에 포기하면 천왕봉 정상을 못 오를 경우를 생각하여 백무동 코스를 선택했다. 이리하여 3인이 추석날 24시 심야버스로  지리산 종주를 하는 종주팀을 만들었다.

 중산리코스는 천왕봉을 제일 짧게 오르는 코스이지 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조금 힘이 드는 백무동을 택했다.

 

준비사항

 

추석날 오전에 고속버스 승차권 23.300원씩 3장 예매를 마쳤다.

준비물 (회비 100.000원)

* 기본

등산화       배낭 40리터이상      코펠(1조)      버너2       연료(부탄) 2개       버너바람막이   우비

 2리터물통(빈것)       500cc물 랜턴

* 식품

햇반 6개        참치캔 1개        햄           치즈         사탕        과자        라면 6개      컵라면 3개 휴지       치킨타올 1롤(설거지용)          초코렛 3개         양갱3개        인스탄트미역국 2개

3분 카래 3개       술         커피

* 의류

속옷상하        긴팔         양말         바지        모자        수건          손수건 여러장     칫솔

보온덧옷

* 기타

스틱        카메라        선그라스,       나침반       지도        칼        라이타     비닐 주머니(여러장) 물컵        개인휴지     수푼     저분

기타 추석 차래상에서 남은 과일 포도 사과 김치 전 고기 북어찜

 

 

출  발

추석 귀향 차랑이 밀릴 것을 생각해 조금 일찍 출발하여 밤참을 먹고 심야버스에 올랐다. 차내는 대부분이 등산객이다.

12시에 출발하여 휴계소 1회 쉬고  함양. 일월, 마천 면소재지 그리고 3시 50분에 백무동에 도착한다.

주차장 공터에서 온몸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4:00  정각 장터목으로 출발한다.

백무동 코스는  5.6km로 보통 4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야간산행은 랜턴빛을 따라 올라 가기 때문에 빨리 오르가가 쉽지 않다. 그래서 모두 천천히 조심을 한다. 하동바위 앞 철게단을 새로 만들어 등산코스도 새롭다. 중간쯤 참샘에서 물을 챙겨 장터목에 도착한다. 코스가 경사지가 많아 조금 힘들었지만 중간에 샌드위치 김밥으로 허기를 조금 채?다.  8시를 조금 넘겼지만 배낭무계를 보면 느린 템포는 아니다.

장터목(1653m)

연휴인데도 그리 인파가 많지는 않다. 조리장도 싫고 조리대 평상도 싫어 넓은 흙바닥에서 아침 준비를 했다. 스케줄 대로 아침은 햇반에 3분카래다. 식사후 설거지(치킨터올로 휴지는 배낭으로)용변과 몸 치장을 마치고 배낭짐을 챙겨 한 귀텡이에 두니 두 사람이 찜찜해한다. 산에는 도둑이 없고 짐(배낭)이 무거워 가져 가지도 못한다고 하니 조금 안심하는 모습들이다.

9:00 물과 스틱 카메라만 들고 마의 천왕봉코스로 달려들었다. 가파른 첫 게단을 통해 고사목의 제석봉을 향한다. 제석봉을 넘어 안부에서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지나니 하늘에 올라 서 인지 산바람이 시원하다,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는 속설에 어께가 조금 으쓱해진다.

 배낭을 지고 오르는 등산객을 보며 우리가 현명하고 탁월한 선택을 했음을 실감한다. 정상으로의 마지막 경사다. 어느 산이든 정상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오르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은 더 높은 곳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여 결국 산위에 올랐다.

천왕봉(1915m)

10:30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1915m)정상 천왕봉에 올랐다. 남쪽의 산하를 내려다 보며 호연지기 하며 모두 즐거움 속에 준비한 정상주를 마신다. 여유롭다. 아침에 볼 수 있는 “천왕일출 지리 십경”의 하나를 상상의 눈으로 보며 북쪽으로 널어져있는 “칠선계곡 지리10경” 을 내려다보며 마폭포 칠선폭포 벽송사를 회상해 본다. 동쪽 중봉 넘어로 대원사 치밭목 유평 대원사까지.  남쪽  법계사  칼바위 중산리를 봅니다. 그리고는 서쪽으로 멀리 우리가 갈곳 노고단과 남도의 산릉을 내려다 보며 합장합니다.

“지리산 선도성모님이시여 굽여 살펴 주옵소서”

정상에 서면 내려서기 싫다 그러나 내려서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이치 앞에 고개숙인다. 인간아 기껏 100년 뿐이 못 살면서 뭘 그리  그러십니까?  오늘 우리 나를 버리고 모두를 놓고 신선이 되어 봅시다. 다시 장터목으로 향한다. 다 버려도 시간은 가는데 시간의 개념도 버리고 하산합니다.

 

장터목(1653m)

12:30 장터목에서 식수를 챙겨 출발합니다. 계획 된 시간보다 1시간 오버 했다. 세석(잔돌)평전까지는 2시간이 소요 되지만 현재의 조건으로는 벽소령까지 가서 저녁 일을 보기에는 조금 무리수 같아 보인다. 과감하게 세석에서 1박 하기로 합의하고 여유 있게 지리산을 즐기는 산행으로 패턴을 바꿨다. 참 잘한 결정이었다. 이젠 시간이 널널하다. 여유를 부려가며 쉬엄쉬엄 세석으로 향했다. 이미 꽃이 진 모싯대를 지나  외길을 따라 가면 오묘한 산이 연하봉이다. 

연하봉(1730)

 “지리십경중 연하선경”이다. 연하봉에서 사진찍는 덩치큰 사람을 만났다. 거구에 대형카메라 20리터 물두통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배낭을 꾸리는 사람의 등산화는 군화다. 우리는 특수부대 군인. 아니면.....결국 우리는 슈퍼맨이라 이름 붙쳐 주고 슈퍼맨을 보았다. 연하선경을 카메라에 담고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안부는 지리산에서 제일 아름다운 안부다 특히 신선봉에서 천왕봉과 안부의 조화는 아는 종주꾼들 에게는 갑진 사진 촬영 장소다. 후에 사진을 감상 하노라면 압권이다.  안부를 벗어나 신선봉에 올라보니 운무가 드나 들어 신비함은 춤만했지만 천왕봉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 곳이 신선봉의 포터에리어다. 세석으로 향하며 멋진 바위에 기대 쉬며 별에 별 공상에 망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촛대봉으로 향한다.

촛대봉(1701)

 촛대봉에는 음양수에 얼킨 눈물나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호야와 연진의 사랑이야기를 감상해보자

 

 

세석평전 음양수 전설   

 

이 물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산신에게 기도를 하고 마시면 누구나 소원대로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예

 

부터 전해오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한쌍의 남녀로서 아득한 옛날에 대성동 계곡에

 

서 살았다고 한다. 남자의 이름은 호야(乎也)요, 여자의 이름은 연진(蓮眞)이라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은 남해안에서 섬

 

진강을 따라 화개골을 거쳐서 지리산의 비경을 찾아든 첫 번째의 인간 가족인 것이다. 다정다감한 그들 남녀는 씨족

 

사회의 엄한 규율과 간섭을 벗어나 연인끼리 남몰래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가정을 꾸미고 맛좋은 산채와 과일을 따서

 

배부르게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그러던 어느날 남편인 호야가 산과(山果)를 따기 위하여 산골 깊이 들어가고 없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검정 곰이 찾아와서 연진을 위로하며 하는 말이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 딸

 

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알려주었다.이 말을 들은 연진은 기뻐 어쩔줄을 몰라

 

하면서 남편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혼자서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서 기적의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호사다

 

마(好事多魔)라고 평소에 곰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호랑이가 곰과 연진 여진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엿듣고는 이것을

 

그대로 지리산 산신령에게 고해바치니 산신이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속에 잡아 가두었

 

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百獸)의 왕이 되었고 또 음양수의 샘물을 훔쳐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을

 

주어 잔돌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혼자서 외로이 철쭉꽃을 가꾸게 되었다. 그날부터 연진 여인은 뜻하지 않았던 자

 

신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니 철쭉꽃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연진여인은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서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까지나 꽃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석의 철쭉꽃은 절세가인 연진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그처

 

럼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연진 여인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어 그처럼 애련하게 해마다 피고 진다는 것이다.그후

 

연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으며, 촛대봉

 

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 그것이란다. 천왕봉 산신령도 연진 여인의 가련한 희생을 보고서는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기적의 샘 음양수를 인간에게 개방하였으며, 그 혜택을 받게 하니 그 후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한편 연진 여인의 남편인 호야는 산과를 따러 나간 사이에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부인

 

연진을 찾으려고 날마다 계곡과 그리고 밀림, 산령을 넘어 지리산 일대를 헤매다가 칠성봉 중턱에서 까마귀로부터 연

 

진의 소식을 전해 듣고 단숨에 세석평원으로 달려갔으나 산신령의 저지로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세석평원 중턱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서 발돋움을 하고 세석평원을 향하여 연진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목청껏 날마다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칠성봉에서 세석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호야봉(乎也峰)은 그때 그가 애태우며 섰던 자리라 하

 

여 그런 이름을 부르게 되었으며 언제까지나 부르다가 지쳐서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서 있는 호야의 굳어진 그대로라

 

한다.수 천년을 두고 남모르게 꽃을 피우고서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찬탄하는 이 없더니 근년에 이르러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불어나서 매년 6월의 첫 번째 주에 전국의 산악회원들이 철쭉제를 올리게 되는데 그 원색의 차림은 이 고용한

 

평원에 만산의 성황을 이룬다. 이것이 풍수설에서 예언한 천호만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서 이

 

곳에도 산장이 지어져 이용객이 끊이질 않는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면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릉이 촛대바위 봉이다.

촛대바위 정상에서 세석산장(대피소)의 모습은 대피소 라기 보단 거대산림속에 산장이다.

운무가 밀고 불어주는 세석의 바람은 피로를 잊으려 바위에 기댄 우리 에겐 단비 처럼 느껴진다.

10여 분이면 내려서는 세석대피소는 조금 있다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촛대봉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을 느끼고 있다.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은 지리산을.

천왕봉 일출을 거리상 볼 수 없는 산객은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며, 벽소령에서 보는 달구경도 이곳 촛대봉에서 많이 들 본다. 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세석으로 내려선다. 왼편 세석?지를 지나면 지리산에서 제일 큰 대피소 세석산장이다. 우선 거림 쪽으로 500여m 내려서면 식수대에서 물도 마시고 머리도 요령 것(수건으로)감고 치약(치약 비누는 사용금지) 없이 칫솔로 양치한다. 수건도 빨고 귀하 디 귀한 물을 오아시스에서의 기분을 느껴 본다.

 

세석대피소(1560m)

3:30 세석대피소는 너무 이른 시간 이므로 산객이 적다. 그래도 벌써 몇 몇 식탁에는 식사나 약주가 오간다.

우리는 내일 아침까지 이용할 식탁을 찜해버렸다. 햇반, 김치찌개+참치+햄+전 그리고 북어 고추장찜에 반주는 오늘 12시간의 도보여행의 피로를 먹어버렸다.

예약은 안 했지만 공휴일 연휴가 아니라 대피소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7시에 입실료 7천원 모포 2 *1000원 도합 9000원으로 오늘 밤은 산장에서 보낸다.

야 하늘을 보라 팔월 대보름 달이 어제는 숨어 있더니 오늘 밤에야 우리를 반긴다. 산속에서 보는 달과 별들은 도시 보다 가까워서 그런지 정말 더 크고 더 찐해 보였다.

“세석철죽 이 지리십경”인데 철이 철인지라 철죽은 없고 지리10경 중 벽소명월을 벽소령에서 못보고 세석에서 보는 맛도 그리 싫치는 않다. 물론 조금 서둘렀으면 벽소명월을 볼 수 있었겠지만 죽은 놈 모 만지기지.

대피소는 9시 소등전에도 코고는 소리 입실 하는 소리 등으로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소등전에 밖에서 세석의 야경을 즐기는 것도 지리종주의 맛중에 하나다. 소등 후에도 신경 쓰이는 일도 많다 그래서 집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이곳에서도 느낀다. 이빨 가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2시다 머리 맡 물통 핸드폰 베개와 선반위의 등산화 배낭을 챙겨 1층 식탁으로 내려선다. 우선 화장실로 향한다. 수세식에 좌면기는 아니지만 이용 하는 데는 불편함은 없다. 세석의 화장실은 앞에 유리창 넘어로 촛대봉의 바위들을 감상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오늘 종주를 마치려면 서둘러야 한다. 4시 정도에는 떠나야 하는데 1시간 만 넘어도 속보를 해야 하므로 우리 일행에게는 조금 힘들 것 같다.

아침은 햇반에 미역국 햄부치미 김 김치(아껴야 하는데)로 후딱 해 치웠다. 용변후 식수를 보충했다. 다음 식수터는 선비샘, 벽소령,연하천,임걸령으로 2-3시간이면 식수터를 만나는 것은 지리산이 산객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영신봉(1652m)

4:30 출발이다 세석 뒷산 영신봉에 오르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본다 어제 보다는 뻑뻑 하지만 견딜만하다.

나는 영신봉을 만세봉 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초보자들이 지리종주를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죽기 살기로 달려와 급경사 180게단에서 세석 세석 헛소리하다. 언덕위에서 세석산장을 상징하는 영신봉 이정표를 보면 다 왔다는 안도의 첫마디가 만세다. 눈물 겹도록 좋은 봉우리 영신봉 만세 만만세

이젠 우리가 180게단을 렌턴에 의지 해 내려선다. 원래 칠선봉에서 보면 저 봉우리를 올라야해 하고 겁먹는 봉우리로 등산로(탐방로 라함)는 이산을 빗겨 가기 때문에 조금은 쉬운 편이다. 로프를 집고 내려서며 밤이라 보이지 않치만 지리산에서 바위가 재롱을 부리는 코스로 아주 기기묘묘 한 바위의 조화를 노치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제 하루 종일 보고 오늘도 수없이 볼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호강에 겨워서 인 것 같다.

칠선봉으로 오르는 능선으로 여명이 비친다. 이미 일출을 포기 했지만 혹시 칠선봉에서 일출을 만났으면 하는 욕심에 찬 바램을 갖고 칠선봉에 오른다.

칠선봉(1558m)

이정표에는 칠선봉이란 표식이 없지만 전에는 있었다. 어느 지리산 전문가가 옆에 있는 봉우리가 여기 봉우리보다 더 높은 칠선봉인데 왜 이 작은 바위봉에 칠선봉이라 썼냐고 했다고 한다.

칠선봉의 바위에서 어둠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만난 바위봉은 넓은 쉼터다. 안내판에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등 우리가 걸어온 산릉을 알아 보기 쉽게 만들었다.

여명의 아침을 끌고 왔다. 오묘한 조화의 바위를 후집고 돌아오면 선비가 되고 싶었다는 선비샘을 만난다. 식수를 챙기는 일은 이미 일상 처럼 자연스럽다. 선비님께 감사드리며 시원하게 한잔 들이킨다. 내속이 시원하고 세상이 다 후련해보인다.

 

덕평봉(1522m)

오르막 덕평봉은 지루한 코스다. 산속에 만난 꽃 들이 아침이라 더욱 예뻐 보인다 항시 머리를 내민 투구꽃, 털머리 산오이꽃, 노란색이 예뿐 달맞이꽃, 보랏빛 용담, 오랜지색 동자꽃, 고려엉겅퀴(곤드레) 그리고 널 부러지게 피어있는 야생국화 를 쑥부쟁이 구절초 아니 야생 산국화 일께다.

벽소령 대피소가 눈에 들어온다. 널은 산밑 도로는 해방이후 빨지산 토벌군(국군)이 만든 도로다. 무거운 마음으로 아군이건 적군이건 이데오르기의 희생자의 넉 영혼에게 걸어가며 명복이나 빌어준다 지장보살 자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벽소령

8:00 벽소령 대피소도 한산한 편이다. 손님이 없는 식탁을 잡고 컵라면을 끓인다. 식수가 모자라 300m 대피소 아래에 있는 샘으로 내려선다. 물탱크에 수도꼭지가 있어 쉽게 물을 받았다.

지리산 모든 대피소(산장)에는 라푸마 마크를 달아 두었다. 벽소령대피소는 아담합니다. 아기자기하고 화장실이 대피소에 붙어 있어 이용하기 편합니다. 지리종주의 중간쯤입니다. 대피소 남쪽으로는 의신, 쌍계사, 불일폭포, 화개장터로 갈 수 있고 북쪽으로는 삼정리 음정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임도가있어 위급시 탈출로로 이용되는 곳입니다. “벽소명월은 지리 십경” 중에 하나입니다. 어제 밤에 달을 벽소령 분위기로 느껴보고 벽소주월도 만났으니 이 보다 좋을 수야. 연하천으로 향합니다.

9:00 고즈넉한 산중의 산장을 버리고 너덜지역으로 출발합니다. 오름과 내림을 상대적입니다 오른 만큼 내려 가고 내려 갈수록 올라 갈 길이 깁니다. 바위를 잡고 오르고 돌아가는 산길은 몇 개 개선문에 밧줄 언덕 그야말로 바위가 우리를 히롱 합니다. 산객을 가지고 놀리는 기분입니다. 전망 좋고 운무가 구름에 습기를 싣고 연실 밀려듭니다. 아이구 좋아라. 가슴을 열고 두팔로 맞이합니다. 오늘 따라 운무가 많이 핍니다.

 

형제봉(1452m)

큰 바위가 앞을 가려 올려다 보니 그 유명한 형제봉이다. 바위를 돌아 작은봉에 올라 음정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감상 하노라면 지리산의 방문에 대한 대접을 제대로 받는 기분입니다. 정상바위 위에 앉으니 내가 신선이다. 나무위에 바위에서 신선이 되어 살고 싶으련만 뒤로 가파른 등산로는 빨리오라 손짖합니다.

환상의 바위 능선을 지나면 넓은 공터가 삼각봉입니다. 전에는 쓰러진 고사목이 있었는데 지금은 빈터에 지리종주 흰색 이정표에 01-26은 (윗칸 1은 지리종주 아래 26은 500m*26 =13km 노고단이 13km 남았다,

 

(지리     01= 종주  47=500m*47=23.5km)연하봉 근처

천왕봉 52) 지리 종주의 중간을 의미하는 이정표입니다. 이곳에 서는 성삼재 출발점인 노고단, 반야봉이 보이고 최종지 천왕봉까지 양쪽을 한눈에 볼수 있는 중간 점입니다.

내려서면 음정으로 이동하는 갈림길이 나타나며 이어서 연하천 까지 작을 오름은 연하천에서 흐르는 물과 주목군락지를 지나칩니다. 물기 먹은 땅을 만든 천혜의 샘터 연하천입니다.

 

10:00  물이 넉넉한 곳 연하천에서 점심상을 만듭니다.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곁들인 전형적인 등산인의 표준점심 모델입니다. 치즈에 햄을 곁드리면 금상첨화죠. 물을 이용 할 수 있는 대피소에서 캔깻잎을 매점에서 3000원에 구입해 먹어봅니다.

11:30 연화천에서 명성봉(1586m)쪽으로 오르는 길은 350여 게단은 조금은 편안 길입니다. 전에는 여러 모델로 길을 만들었던 기억이 남니다 고무타이어를 이용하기도 하고 잔 자갈나무계단에 검은플라스틱틀에 철게단까지 결국은 나무게단이 현실적인것 같습니다.

 명성봉을 돌아 내려서는 길은 평탄한 길로 나무계단에서 부터 너덜지역 입니다. 능선을 오르는 동안 다양한 길을 걸어왔는데  토끼봉으로 오르는 계단이 어렵고 힘이 켬니다. 반대 쪽 토끼봉오름 보다는 쉬운코스지만 그래도 지루하게 올라섭니다. 이 구간을 통과 하면서 구례구까지 5시 목표를 수정합니다. 기차 예약이 7시46분이므로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지금의 걸음 거리로는 어려워 보입니다. 평지에서는 팍팍 치고 나가야 하는데 걸음들이 무거워 보입니다.

토끼봉(1536m)

토끼봉 정상바위 헬기장을 뒤로하고 긴 내리막길로 화개재로 향합니다. 내려서는 토끼봉 길엔 올라오던 선답자들의 땀과 욕과 신음소리가 배여납니다. 또끼봉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은근히 위로가 됩니다. 우린 내려간다. 넌 언제나 가니. 토끼봉은 묘봉으로 반야봉에서 묘(토끼)시 방향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묘봉이라 부르지 않고 토끼봉이라 부름니다.

넓다란 공터에 나무 계단으로 뺑 둘러 장터 기분은 안나지만 남쪽 전망대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하동의 준엄한 산릉과 북쪽 대단한 뱀사골 계곡에서 풍요를 느낀다. 전라도 남원사람 경상도 하동 사람과 만나 던 장터라니..

 

 

 이어 만나는 천왕봉 역 종주의 하이라이트 마의계단 입니다. 힘이 많이 드는 화개재 563게단(직선거리330m 폭 1.5m)을 넘어 서기만 하면 다 온 기분이다. 다리가 퍼질 것 갔지만 올라서면 기분이 해결해 줌니다. 힘모아 작은 바위길로 삼도봉바위에 도착한다. 경남 전북 전남 3개도에 걸쳐진 바위봉은 원래 날라리(별 볼일 없는) 봉우리였다, 삼도봉의 화살촉 같은 상징탑을 세우고 나서는 인기가 폭주하는 봉우리로 변했다. 이어 이름 모를 묘를 지나 친다 이 산속에 묘지라니 아마 뱀사골 간장소에 빠진 소금장수의 묘지라 생각했다. 바위길로 노루목에 도착하면 반야봉 갈림길입니다. 반야봉은 지리산릉 남쪽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같은 높이의 중봉과 쌍둥이 봉우리입니다. “반야낙조라 하여 지리10경” 중 하나입니다.

노루목 전망바위에서 노고단이 보인다. 이 바위의 모습이 노루가 노고단을 보는 노루 목아지같다하여 노루목이라 부른다.

 

 

반야봉은 생략하고 임걸령 샘으로 향한다. 노고단 쪽 지리종주에서 처음 죽여주는 언덕 길이지만, 내려 서기도 만만하지는 않은 길이다. 바위가 어울어진 임걸령약수는 약수터표시가 없어 모르는 산객은 무심코 지나 칠 수 있는 샘터다. 옛날에 의적 임걸이 기거했다는 임걸령에서 물을 실컷 마셔본다.

이어지는 직전(파아골) 갈림길이 나옵니다. 피아골은 “직전단풍(논에나는 피(직) )도 지리”십경입니다. 이어 하산길은 돼지령으로 이어집니다. 이 코스는 평지 지만 지친 종주객에게는 힘들고 지루하긴 마찬가지다.  까마득 멀리 노고단 언덕이 보이는데 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니 걱정이 앞습니다. 멀리 길게 느껴집니다. 천근 같은등산화를 끌고 올라서면  언덕 위의 작은 문이 (종주의 시작과 끝점) 보입니다. 환한의 찬 미소로 완주를 마칩니다. 만세 만세 2일간 24시간의 긴 산길 여정의 피로가 싹 가시는 순간입니다.

지리산 종주를 마친 산객의 마음을 누가 어떻게 알겠읍니까? 종주산객에게 박수를 보냄니다. 고생하셨읍니다. 비록 몸은 힘들어도 머리속엔 진한 김동이 숨쉬는 그들의 표정은 포만입니다. 

5:00 노고단 언덕에서 멀리 보이는 노고단을 시간상 갈수 없어 눈으로 만 봅니다. 그래도 “노고단의 운해”는 보고십습니다 지리십경중에 속하니까요

조금 쉬고 500m아래 노고단 대피소에서 성삼재까지 2.5km를 걷는 품이 힘들었습니다

성삼재에서 택시로 구래구역까지  30분 (3만원)만에  도착 합니다(6시 40분)

 

 

지리종주를 하며 지리 십경 중에 만난 곳이 1 천왕일출(천왕봉) 2 칠선계곡 (천왕봉) 3 연하선경(연하봉) 4 세석철죽(세석평전) 5 벽소명월(벽소령) 6 반야낙조(노루목) 7 직전단풍(피아골 갈림길) 8 노고운해(노고단언덕) 그리고 못만난 곳은 1 불일폭포(쌍계사) 2 섬진청류(섬진강) 입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2번째 높은 산이지만 3위인 설악산(1708m)보다 높은 산이 중봉 (1874m)  제석봉(1808m) 연하봉(1780m)  하봉 (1781m)  반야봉(1732m) 반야중봉(1732) 6개나 되는 큰 산릉입니다.

이렇게 크고 높고 넓은 국립공원 1호를 종주했읍니다.

지리종주팀 추억 만들기는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 집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산, 눈 감아도 떠오르는 산 하루만 지나도 다시 가 보고 푼 나의 마음의 산.

지리산입니다.

 

함께 동행한 종주팀 김사장 송대표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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