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이에게는 역사가 매우 소중합니다.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앞으로 더 살아가야할 희망을 만들어주지요.
역사를 잃어버린 自는 아픈 상처를 정확히 기억하지만 역사를 성공한 자는 끊임없이 부풀리고, 삭제하는 添削(첨삭)행위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나간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왜곡된 사실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마저 잃어버린다면 노예나 다름 없는 인간이 될 것입니다.
해방후 내가 태어나서 어릴 때 받은 우리 역사교육으로 아예 발해는 국사교과서에 없었읍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후에야 발해란 나라를 우리 역사에서 겨우 볼 수 있었지요.
고구려가 망한 텅빈 광활한 대륙에 갑자기 원시 부족처럼 보이는 말갈이 나타나고 발해가 보이죠.
그리고 궁예의 태봉. 震國을 거쳐 왕건의 고려가 나타납니다.
이런 명칭의 혼돈시대에도 발해는 스스로를 발해라고 한적이 없어요.
역사적으로 보이는 발해 관직명의 주인공은 나관중의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이 조조와 친구였다가 얻어터지고 홧병으로 죽은 발해태수 원소가 있읍니다. 이것은 무얼말하느냐? 발해(고려)를 '해동성국'이라고 한편으로 칭찬하지만 언제나 때려 잡을 수 있는 우리 중국의 1개 郡縣밖에 안된다는 曲筆이 숨어 있는 것이죠.
자신의 이름을 고(구)려라고 했지만 적대국인 나라에서 역사를 기술할 때 제네들 생각에 따라 발해라고도 했다가 고려라고 한 것 이죠. 여기서 적대국은 당이나 (통일?)신라가 되겠지요. 당이나 신라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참후에 신라의 최치원이 등장합니다. 최치원은 당에 유학하여 관직에도 오르고 그의 탁월한 학문을 당과 신라에도 널리 펼칩니다.
사실 후대에 그의 학문을 칭송한 많은 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의 사대관을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관점은 수용할 수 없읍니다.
당이 고구려를 滅하고 얼마되지않아 대걸걸중상이 나라를 세우지요. 걸걸은 접두어이고 대氏가 고(구)려의 고氏를 그대로 잇는 것이죠. 이 대중상의 아들이 대조영이고 2代 발해(고려) 왕이 되는 것이죠.
맨처음 신라의 박,석,김,처럼 고氏가 대氏로 바뀐 것인데 마음대로 지금의 발해만 가까이 중국 유주, 영주쯤에 있는 발해군 정도의 발해이름으로 역사를 기술하지요. 지금도 일부 재야사학자말고는 계속 발해라고 기술하고 있는 데 우리나라의 이름이 코리아, 고려이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200년의 발해를 고려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뒤의 고려하고 헷갈리지 않나하고 생각하는데 남을 생각하여 지 이름을 바꾸는 얼간이가 어디 있나요? 아무튼 이쯤 최치원은 당의 착취에 봉기한 황소의 난에 그 유명한 '황소격문'을 완성하여 당의 조정을 위로합니다. 이때쯤 황소는 以夷制夷의 전략을 구사한 관군에게 서서히 토벌됩니다.
말하자면 껍데기만 남은 발해군 관직명을 고려(발해)에게 self수여하며 계속 때리는 거죠. 고려(발해)가 코웃음치며 등주 지금의 산동지방을 공격하지요.
그러한 사대사관이 투철한 최치원이 말하고 있읍니다.
고구려, 백제가 전성할때 강병 100만으로 남으로 오, 월을 多勿하고(다스리고) 북으로는 幽, 燕, 齊, 魯를 多勿(;점유)하여 조정의 근심거리였고 수나라의 멸망도 요(동)의 동쪽 정벌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얘기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간격은 매우 짧은 시기이었어요. 당나라 태종 貞觀 연간에 6군을거느리고 고구려를 치니 고구려가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화친을 청하였기에 당나라 文帝가 항복을 받고 돌아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신라 태조 무열왕이 당에 들어가 朝謁(조알)하고 무열왕이 7차례나 입조하여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였읍니다..........당 고종(高宗) 현경 5년에 소정방에게 명하여 백제를 대파하고 부여도독부를 설치한 것인데 계속 반란을 일으키므로 그사람들을 河南(하남)으로 옮겼다고 한다........당 총장(摠章) 원년에 이적(李勣)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깨고 안동도호부를 두어 그 사람들을 하남의 농우 지방으로 이주시켰다?.....아무튼 이러한 사건들은 대륙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소환합니다. 을지문덕의 을지와 연개소문의 연의 간격은 짧은 간격으로 왕의 권력보다 더 큰 實勢 대대로 이었어요.살수는 좁은 청천강이나 대동강이 될 수 없어요. 황허강 유역이 더 설득력이 있읍니다. 수, 당시절부터 그쪽에서 쭉 쿵탁거리며 싸워왔으니 대륙백제, 대륙고구려, 대륙신라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