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노구를 돌보지 않고
불사(佛事)에 참여하시려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외려 기쁜 마음으로 서울까지 오신 종정 고암 노스님을 서울 봉익동 대각사
신축 법당 이층에서 뵈었을 때 스님은 그 특유의 인자스런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맞이하여 주셨다.
“노스님 엄동설한에 법체청안하십니까”하고 세 번 절하려니 기어코 한 번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홍콩 신도분들, 안부를 물으신다. 호주 시드니 신도분들 소식도 궁금해 하신다.
얼마 전에 육신의 옷을 벗은 백봉 김 기추 거사의 애석함도 잊지 않으시는 자상함은 바로 보살을 대하는듯 하신다.
새해 신년 벽두 문안 탐방 기사를 위해서 찾아왔노라고 아뢰었더니
다른 방으로 가셨다가 불자명심(佛子銘心)이란 몇 장 안 되는 팜프렛을 가지고 오셨다.
인생 구순을 바라보면서도 본질적 자비의 실현은 무루하시다.
“부처님 제자들은 항상 네 가지를 생각하여야 하느니라.”하신다.
그리하여 불교의 교주는 석가모니불이고, 경전은 금강경이며, 신도들이
지켜야 할 계율은 십중대계(十重大戒)이며 일상해야 할 일은 참선임을 강조하신다.
노스님께서는 절에 오래 다닌 신도들에게
불교의 교주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것마저 모르고
또 우리 조계종의 소의경전과 신도들이 일상생활 덕목이 무엇인지
몰라 서성이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적은 팜프렛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교 신도라면
매일 새벽 기도를 실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기도할 때는 삼귀의를 하고, 십중대계를 외우고,
천수경을 한편 염송하고, 예불을 하여야 한다고 하신다.
집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아도 일곱 번 절하는 예불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스물한 번 독송하고, 교주 석가모니불을 108번 부르고,
관세음보살을 1,000번 염불한 뒤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마음속으로 축원하되, 내 몸, 내 형제,
내 가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급한 것이 남북통일이므로 속히 이루어지도록 염원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부처님께 드리는 네 가지 큰 맹세인
사홍서원을 하고 참선(參禪)을 하라고 자상히 말씀하신다.
불교 신도라면 최소한 매일 이런 수행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여느 노스님 같으면 산중이거나
어디 조용한 안식처에서 몸과 마음 편안히 일신을 돌볼 터인데….
그저 노스님 곁에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하여
천하를 얻은 듯한 행복감은 직접 친견하지 않고 어이 알랴.
노스님께서는 L.A 수도사에서 많은 신도들에게 마음의 등불을 켜도록 격려하시고,
시드니 달마사에서 신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어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인연 따라 다니며
부처님 말씀 전하기 여념이 없으시다.
그리고는 이북 망나니들로부터 금강산을 되찾기 위해 발원하며
그 방법의 하나로 금강경 독송회를 만들어 금강경 독송하는 공덕으로
금강산을 되찾아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도록 불보살의 가피가 있을 때까지 정진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신다. 금강경 독송회에서 독경할 금강경을 새로이 출간하여 지금 인쇄 중에 있다고 하신다.
이러고 보면 九순의 노스님이 저토록 고구정녕 자비를 실현하시는 모습은
과히 보살이 아니고 어이 그럴 수 있으랴 싶어 한편 얼마나 기쁜 마음이 샘솟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노스님과 필자의 인연은 깊은 편이다.
노스님께서 종정으로 계실 때 종정원이 해인사 극락전에 있었다.
그 해에 해인사는 6.25 이후 새로 총림을 시작하여 율원이 극락전에 있었으므로
그 때 필자는 율원생으로 노스님 슬하에 2년 동안이나 자비를 힘입고 살았다.
그 때 노스님께서는 오후 불식을 하시었다.
철없는 필자는 노스님께 왜 오후불식을 하느냐고 어리석게 물었다.
노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부덕(不德)한 사람이 이름이나마 종정으로 있으니
내 한사람 오후불식하는 이 인연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가 있었으면 하는
뜻에서 오후불식을 한다"고 하시었다.
그 때 젊은 나이의 필자에게
부처님 목소리처럼 닿았던 그 말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렇듯 자비를 입으로만 하는게 아니고 직접 몸소 실현하시는 노스님.
어느 날인가 겨울, 새벽 예불 뒤에 우물가에 나가니
노스님이 큼직한 주전자에 찬물을 가득 담아 들고 가시기에
그것을 받아들려고 하였다가 그 빙판 위에서 노스님은 주전자를 주지 않으려고 몇 바퀴 돌은 일이 있다.
그렇게 겸손하시고 자비하신 노스님.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시는 모습으로
주처없이 자비를 실현하는 일만이 노스님의 일인 듯하다.
이 같은 노스님의
중생제도를 향한 밝은 자비의 미소 속에서
이 땅의 중생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시고 계시는 노스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뜨거운 가르침을 들려주시고 계신다.
두 시간 넘게 말씀하시면서
간곡히 당부하시는 것은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부처님 제자들이 하여야 할 일이 너무나 막중하므로 부지런히 노력해 달라는 말씀이시다.
불교 신도들의 생활 규범을 위한 헌신적
발원과 금강경을 독송하자는 염원을 노스님으로부터 듣고
이런 신선한 충격을 온 누리에 다 울리도록 알리고픈 심정이었다.
노스님은 엄동설한인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념이 없으시다.
특히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되어
이북 땅에도 부처님의 자비가 내리시길 기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금강경을 독송하라는
노스님의 큰 뜻을 듣고 가슴에 와 닿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각사 뜰을 나서니 겨울인데도 촉촉이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2시간 남짓 필자에게 당부하신 말씀 하나 하나가 큰스님의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말씀이었다.
첫댓글 그래서 저는 이 날 이 때 까지 사시기도 때엔 오로지 금강경 독송으로 시작을 한답니다. 모름지기 금강경의 구절구절을 다 새겨 일상을 살아간다면 무상이 저절로 익혀질 것입니다. 중생의 희노애락이 네 가지 상 때문이기에,,,,
불교입문후 처음 손에 잡혀진 금강경.
오랜 벗처럼 느껴져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