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대필 작가로 살기
이인규/소설가
귀촌 후, 6년째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휴대 전화 메일을 확인하는 거다. 뭔가 하면, 의뢰인이 보낸 대필의뢰서인데, 물론 의뢰자가 직접 보내진 않고 회사(대필전문업체)를 통해 보내온다.
그러니 시골 작가의 일상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의뢰서 건수에 따라 양이 많으면 오후까지, 그렇지 않고 짧으면 대충 오전에 처리하는데, 주로 편지, 반성문, 탄원서, 자기소개서 등의 글이 여기에 해당한다. 확인이 끝나면, 아내가 직장에 출근한 뒤 간단한 아침밥을 챙겨 먹고는 노트북을 켠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골 작가의 프리랜서 자택 일과가 시작된다.
오늘은 어떤 불륜 중년 남자가 결혼 사실을 알고 헤어지자고 선언한 내연녀를 설득하는 편지이다. 대충의 사연을 읽고 나는 이내 그 남자의 처지가 된다. 왜냐하면 실제 그 사람의 상황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필 의뢰의 주(主)는 편지, 그것도 연애편지이다.
그러면 여기서 많은 사람은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편지는 자기가 쓰면 되지, 이런 걸 구태여 대필 작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선입견을 품은 편협한 시각의 소유자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진행하면서, 세상에는 근원적으로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절로 깨달았다. 게다가 최근 2~30대 젊은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SNS에 과도하게 몰입하다 보니, 긴 문장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글이 안 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친구들은 주로 취업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직무수행서 등을 의뢰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길로 들어섰을까. 그건 일전에도 밝혔듯이 힘들었던 귀촌 초기로 돌아간다. 본시 도시 태생이고, 농사일은 물론 간단한 허드렛일도 못 하던 내가 시골에서 일정 금액의 돈을 버는 건 역부족이었다. 두 번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한 번은 시골에 와서 빈둥빈둥 놀던 나를 딱하게 여긴 마을 이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밤 농장에서 하루 일꾼으로 불렀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광경을 본 이장은 오전이 채 끝나기 전에 하루 일당을 주며 다음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두 번째는 더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겨울이 되자 화목 보일러에 땔 나무를 패고 있는데, 당시 인근의 대안학교에 다니던 아들 녀석이 “아니, 아빠! 도끼를 내리쳐야지, 그리 떨어뜨리면 어떡해요.”, 하며 날 띄엄띄엄 보는 게 아닌가.
충격받은 나는 그때부터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대필 작가 급구’란 어떤 사이트를 보고 지원하였는데, 덜컥 걸린 것이다. 그래서 첫 의뢰서를 받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나에겐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의뢰자는 유명 법대에 진학하려는 고3 아들의 모의재판 중 변호인 측 ‘의견서’를 요구한 극성 엄마였다. 평소 법은커녕, 경찰서나 법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아! 생각해 보니 귀촌 초기에 음주 운전하다 걸려 경찰서에 딱 한 번 갔다) 내가 변호인 의견서를 쓴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그런데도 나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현직 변호사인 조카의 도움을 받아 가며 근근이 첫 의뢰서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의뢰자 측에서 몇 번이나 수정을 요구하여 결국, 돈도 받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 몇 번의 도전 끝에 지금의 대필업체와 연을 맺었다. 여긴 여 시인이 운영하는 업체였고 대표인 그녀는 이 분야에서 꽤 명망이 있는 분이었다. 결국, 시인과 소설가의 합이 잘 맞았는지 나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무탈하게 대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가끔 지인들이 내게 시골에서 소설가가 아닌, 대필 작가로서 무엇을 이루었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힌다. 지금까지 나는 앞서 말한 편지 등 간단한 대필만 쓴 게 아니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정치인의 연설문, 일부 교수의 성과보고서, 고위급 문화예술인의 자소서를 비롯한 직무수행서, 인터넷 신문사 기획 기사 등이 모두 내 손을 거쳤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문예 작품, 시나 단편소설, 산문 등도 썼다.
따라서 대필,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상상력과 문장력 그리고 스토리텔링(통틀어 거짓말)이 현저히 향상되었다. 대필을 시작한 201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빠짐없이 나의 장편 소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무엇보다 이 원고료로 나는 창작활동의 필수인 음주 및 가무 비용을 대고, 가난한 시인들에게 술을 사며, 대학에 다니는 막내딸에게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준다. 한마디로 대필은 소설도 잘 팔리지 않는 이 암울한 상황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가뭄 속의 단비’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편지에 이어 어떤 여성 의뢰인이 쓴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대필을 쓰고 있다. “아니, 남성 작가가 웬 육아일기를 써?”, 하고 물으신다면, 난 세상의 모든 글을 대필할 수 있는 능력자니까, 하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최근엔 대필 시장이 꽤 어렵다. 그놈의 AI, 즉 책 GPT의 등장으로 젊은 층의 의뢰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영상(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등장으로 시나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 거 같이, 이 판도 그 꼴이 난다고 생각하니, 술맛이 떨어진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쓰면서 그럭저럭 버티는 수밖에. 난 대필에 관한 한, 세상의 모든 글을 쓰는 프로니까.
이인규
경부울문화연대 스토리위원장
등단 :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저서 : '53일의 여정' 등 다수
음반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창작곡 '비와 그대' 등 8곡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