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52구간(한계령-회운각)
1.산행코스 : 한계령 ←(2.2km)→ 능선삼거리 ←(4.1km)→ 끝청 ←(1.2km)→ 중청 ←(0.75km) → 대청 ←(3.1km)→ 회운각대피소
0.한계령 - 1시간20분 - 귓때기청봉갈림길 - 2시간 - 끝청봉 - 30분 - 중청봉 -10분 - 중청산장 - 30분 - 대청봉 - 45분 - 소청봉 - 45분 - 희운각산장
2.산행거리 및 시간 : 11.8km, 6시간 30분
3.산행 안내 : 동서울 터미널에서 07:30.버스타고 09:40.한계령에 도착
- 회운각대피소에서 숙박
한계령-희운각 구간
대간 완주를 위해 설악으로 마지막 떠날 계획을 세운다. 처음 계획은 한계령에서 회운각대피소에서 숙박과 미시령 3일째 대간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진부령을 삼일에 산행을 끝내고, 길고 길었던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을 가슴 속에 고이 넣어 두려고 했다. 하지만 작년과 다르게 체력적인 한계로 인해 만월봉에서 중탈한 경험이 나에겐 알게 모르게 대간을 이어가는데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구간을 원 샷에 산행
을 끝내기 위해서는 동서울에서 7시30분 버스로 한계령 9시30분 쯤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백두대간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는 합법적인 등로이지만 마등령에서 미시령까지는 비탐구역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미시령초소를 피해가야 한다. 또한 공룡능선은 이미 네 번이나 산행을 했었던 곳이라 생소하지 않지만 대한민국 너덜길의 대명사인 걸레봉과 황철봉으로 가는 길은 초행길이다. 초행길에 대한 설렘도 공존하지만 이틀 분량의 먹거리를 배낭에 넣었더니 그 무게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남쪽의 점봉산에서 이어진 대간은 바로 한계령 휴게소 옆으로 이어져 서북능선을 따라 대청봉에 올랐다가 공룡능선을 따라 마등봉과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으로 가는 길이다.
산행이 시작되는 한계령(寒溪嶺)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기린면, 그리고 양양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고갯마루로서 영동과 영서 지역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옛날부터 있어온 내륙지방과 동해안을 잇는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교통로이자 국경이기도 하여 오색 아래에 있는 ‘관터(혹은 관대)’라 하는 곳은 신라의 국경수비대가 주둔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계령휴게소 왼쪽으로 나 있는 백팔계단을 따라 가며 백팔번뇌(百八煩惱)의 속세를 벗어나 승속의 길로 접어들면서 마치 구도자와 같은 길을 오르노라면 속계와 선계의 경계 같은 백팔계단의 끝에 설악루라는 누각에 도착했다. 돌아보면 남설악 방향으로 가리산과 주걱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설악루에 서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설악산과 점봉산의 중간 오색협곡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남설악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어디 한가하게 경치 구경할 시간은 없다. 발걸음을 몇 발 옮기니 길 중간에 위령비와 위령비 뒤쪽에 매표소가 나를 맞이한다. 위령비는 44번 국도의 한계령 구간을 군부대에서 맡아 공사를 했을 당시 사고로 희생된 장병들을 위로해서 세운 비석으로 그 당시 공사를 맡은 부대의 군단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金載圭)여서 뒷면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작금에 와서는 그의 이름을 지워버린 것 같다. 시대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혀 지면서 이젠 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기억에서 살아 움직일 것 같다. 간혹 망각은 우리들을 편안하게 할 때도 있음이 아닌가?
너덜길을 따라 고도를 높이며 돌아보면 맹주였던 남설악의 점봉산이 편안한 모습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한계령에서 계속되는 된비알로 힘겹게 오른 곳에 첫 이정표를 만나지만 불과 0.5km를 지나왔을 뿐인데 벌써 힘겹다. 아직 대청봉까지는 7.8km가 남았는데 .......무더운 날씨와 바람 한 점 없어 힘겨운 발걸음이라 그늘에 한참을 쉬었다. 된비알을 따라 고도를 높이다 보니 ‘한계령에서 1.0km 지점에 있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순서가 적혀있는 입간판을 지나며 등로는 진정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서 보이는 귀때기청봉의 너덜길이 눈에 들어온다. 당분간 편안한 산행을 하다가 고도를 올리며 곧 한계령 갈림길 삼거리(1380m)에 닿는다.
왼쪽으로 너덜길의 흔적으로 고통 속에 숨 쉬고 있는 귀때기청봉의 아픈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무너져 내린 듯 보이는 돌을 보며 황철봉의 너덜길을 연상케 한다. 여기 너덜은 황철봉의 너덜에 비하는 알라(?)라고 하던데...... 몇 년전 아내와 야간 산행으로 한계령에서 남교리(12선녀탕)구간을 새벽에 귀때기봉청 너널길을 오르는데 가을 서리가 내려 바위가 미끄럽고 휴라쉬 건전지가 약해져서 잘 보이지는 않고 엉금엉금기어서 올라 간 추억이 새롭게 생각이 났다..
완만한 오르막의 능선길이 계속되는 가운데, 저 멀리 중청과 대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첨봉으로 가득 찬 설악의 속살이 뚜렷하게 보이는 등 초록과 함께 눈에 담고, 마음속에 그리며 산행을 지속한다. 서북능선을 따라 크게 어렵지 않게 오르면서 끝청에 올랐다. 끝청(1610m)은 한가운데에 서 있는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만큼 봉우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작은 언덕처럼 보일 뿐이다. 설악의 전망이야 어느 곳인들 부족함이 있겠는가 마는 여기서의 설악이 자랑하는 굽이쳐 흘러내린 능선미가 유난스럽게 아름답다.
남설악 방향에 있는 산그리메 중에 가리봉과 주걱봉 그리고 귀때기청봉이 설악의 위용을 새삼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급경사를 오르고 한결 기분 좋게 끝청에서 1.2km의 거리인 중청봉(1676m)으로 향한다. 암릉을 따라 조금 오르니 백담사로 내려 오르는 산행을 4번 했지만 저 멀리 용아장성능과 그 아래 보이는 봉정암이 정겨운 모습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몇 번을 봐도 지겹지 않는 봉정암!
설악이 사랑한 봉정암!
봉정암을 흠모하여 첨봉을 만든 용아장성!
그렇게 봉정암은 구름과 안개를 이불 삼아 잠을 자려는 듯 설악의 깊고 깊은 품속에 몸을 숨기고 그는 오늘도 오가는 님들과 함께 그 곳에서 불심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용아릉을 산행한 기억이 새삼스럽게 살아나고, 봉정암 사리탑에서 시작한 용아릉의 짜릿함이 살아 있는 한 봉정암은 나에게는 신념 이상이기에 저 멀리 보이는 봉정암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음이다.
조금 더 등로를 따라가면 중청과 대청이 푸르름을 자랑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가 싶더니 곧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벌써 먼저 오신 분들의 고기와 술 내음으로 대피소를 휘감고 돌아간다. 배고픈 줄 모르고 산행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음식 냄새를 맡으니 갑자기 배가 고파 온다. 소주 한 잔 생각이야 왜 없을까 마는 눈길을 주지 않고 곧바로 대청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설악의 정상인 대청봉에 섰다. 이미 대청봉에 많이 올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붐비면 인증을 하지 않고 지나치기를 여러 번 했었지만 오늘은 정상이 한적하여 인증을 하고 다시 중청으로 내려선다. 오른쪽에 공룡능선과 화채봉 그리고 멀리로 마등봉과 황철봉까지 조망이 되고 있어 바라만 보고 있어도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남쪽으로는 가리봉과 귀때기청봉이 산그리메를 그리며 설악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중청에 내려서서 지친 발도 위로할 겸 간식과 물을 먹으며 한참을 쉬었다가 오늘 산행의 종착점인 희운각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청에서 끝청 갈림길을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공룡능과 화채봉 그리고 멀리로는 마등봉과 황철봉까지도 조망이 된다. 또한 한층 더 가까워진 용아장성능을 바라보며 봉정암 갈림봉인 소청봉에 닿는다. 또다시 오른쪽으로 급하게 고도를 내리면서 공룡의 멋진 모습을 원없이 바라보며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서 담요 각 석 장(12,000원)과 햇반 6개, 파이 한통을 사서 잠자리를 마련해 두고 저녁상을 차렸다. 간편한 햇반과 멸치,김치,김으로 채우고 일찍 대피소에 들어갔으나 씻지도 못하고 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벌써 친구와 옆 객들은 코를 골았고 바로 앞 자리에는 20대 외국 여성이 핫팬티를 입고 속 옷이 다 보일 정도로 있었으나 전혀 생리적으로 무감각이니 나도 이젠 청춘이 다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