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칼럼] (43) 프란치스코 교황과 미국의 애증 관계 / 존 알렌 주니어
예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에 관한 기사를 망치는 경향이 있긴 했다. 예를 들어, 2013년 브라질 세계청년대회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내가 누구라고 (동성애자를)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발언은, 코파카바나 해변에 뿌려진 색종이 조각들을 미처 다 치우기도 전에 사람들이 교황의 세계청년대회 방문을 까맣게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평소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최근의 폭탄발언은 엄청났다. 모잠비크 사목 방문길에 비행기 안에서 한 프랑스 기자에게, 자신은 “미국인들에게 공격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라 크루아’지 기자 니콜라 세네즈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반대하는 미국 보수 가톨릭계에 관한 책을 최근 출판했는데, 그와 기내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이 발언은 사상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애초부터 강대국 미국과 맺어온 애증 관계에서 지금까지 나온 최종 결과물이 됐다.
확실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자회견 같은 공식석상에서 말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옹호하는 책을 쓴 저자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만큼 당연히 좋은 말을 해 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기자들로 북적이는 비행기 안이었고, 느슨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뱉은 말이 종종 본심을 드러내는 법이다.
대충 네 가지를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모든 미국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싫어하지는 않으며, 교황도 모든 미국인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작년에 있었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교황의 지지도는 성직자 성추행 문제 때문에 급락했지만, 여전히 미국 전체 성인의 51, 미국 전체 가톨릭 신자의 70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우호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분명 대다수 미국인들을 좋아할 것이며, 그 중에는 특히 자신이 임명한 미국인 추기경 세 명도 있다. 교황청 평신도와 가정과 생명에 관한 부서 장관 케빈 파렐 추기경, 시카고대교구장 블레이스 수피치 추기경, 그리고 뉴어크대교구장 조셉 토빈 추기경이다. 이들 미국인 추기경 세 명은 프란치스코가 서임한 70명의 새 추기경 가운데 4를 차지하며, 전 세계 가톨릭 인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6에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에 미국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특히 뉴욕 방문에 대해서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표현하기 위해 이탈리아어에는 없는 ‘스트라리미타타’(stralimitata)라는 새로운 말까지 만들어 썼다. 교황이 어느 국가를 방문하고 나서 그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렇게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적이 있었던가.
그러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판은 평범한 미국 가톨릭 신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정치적 목적, 특히 교황이 승인하지 않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지도층을 향한 것이었다.
둘째, 다 아는 사실이니 이야기하자. 이미 미국 보수 가톨릭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들을 매우 싫어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교황이 전혀 빌미를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예컨대, 2년 전 교황의 측근들은 교황청 발행 잡지의 한 기사에서 미국 보수 가톨릭계가 복음주의 교회 신도들을 상대로 ‘증오의 에큐메니즘’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교황의 이번 발언은 그런 생각들을 바로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은 미국 가톨릭계의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는 말과 행동에 사사건건 반발할 원인을 제공하고, 적대심만 더욱 굳히게 할 것이다.
셋째, 교황청 대변인 마테오 브루니가 “교황은 언제나 비판을 영광으로 여기며 특히 주요 사상가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주요 국가의 비판이었던 것”이라며 교황의 발언을 미국에 대한 칭찬으로 돌리려고 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설득력은 떨어진다.
어쩌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부 미국인들이 자신에게 화를 낼 정도로 자신을 진지하게 고려해 준 것을 영광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 미국인이 아니며, 가톨릭 신자로서 사회 정의를 지향하고, 개발도상국의 민중 지도자를 자처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인의 교만 또는 특권과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은 오랫동안 분명히 드러났고 이번 발언에는 더욱 짙게 배어 있다. 말은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으나, 이 발언을 칭찬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넷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른바 ‘주변부의 교황’이라고 하지만, 이제 언론 매체는 그가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을 하려는지가 아니라 그가 중심, 곧 미국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는 역설도 인정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장면을 일부러 연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려던 게 아니라 그저 책 한 권을 선물 받고 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래도 내가 모잠비크 사람이라면, 교황이 로마로 돌아갈 때까지는 가만히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전 세계 언론 앞에서 강력한 발언으로 이목을 끌면서 모잠비크 방문을 퇴색시키지 말고 말이다.
이는 그의 발언이 진심이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처음부터 자신을 공격해 온 일부 미국인들의 심기를 긁느라, 자신이 그토록 중시하는 개발도상국을 향한 관심마저 위기에 빠뜨렸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공격을 멈추기는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존 알렌 주니어(크럭스(Crux) 편집장)
※존 알렌 주니어는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존 알렌 주니어 편집장은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그는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