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장 폴 벤젤(Jean-Paul Wenzel) 원작, 이선형 역, 하일호 윤색/연출의 <남아있는 나날들>을 보고
공연명 남아있는 나날들
공연단체 극단 종이로 만든 배
작 장 폴 벤젤(Jean-Paul Wenzel)
역 이선형
연출 하일호
공연기간 1월12일~2월3일
공연장소 혜화동 선돌극장
관람일시 1월16일 오후7시
혜화동 선돌극장에서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장 폴 벤젤 원작, 이선형 형 역, 하일호 윤색/연출의 <남아있는 나날들>을 지난 2011년 11월 혜화동 나온 시어터에서의 관람이후 2013년 1월에 다시 한 번 관람을 했다.
<남아있는 나날들>의 원제목은 <머나먼 아공당주(Loin d'Hagondange)>로 역자인 이선형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김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이사, 극단 ‘삼산이수’ 상임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곰팡이 빵(2010)> <프랑스 현대연극의 이론과 실제(2007)> <예술영화읽기(2005)>등이 있고, 공저로는 <연극·영화로 떠나는 가족치료(2010)>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퀘벡 연극, 변방과 중심―로베르 르빠주의, 안데르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2010)> <대머리 여가수>에 나타난 언어의 문제:“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2009), <외국연극 수용의 현대적 흐름(2008)> 등이 있다. 역서로는 희곡<지하철의 연인들> -장 타르디유 작 외 많은 작품이 있다.
장 폴 벤젤(Jean-Paul Wenzel,1947~)이 1975년에 발표한 머나먼 아공당주(Loin d'Hagondange)는 은퇴 후, 한적한 전원에서 노년을 보내는 부부의 일상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 남편의 취미생활에 대한 기벽(奇癖)과 집착, 사사건건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가부장적(家父長的) 권위, 음식과 관련된 자기본위의 식습관, 70이 넘은 부인에게 어이없는 잠자리 요구, 부인을 하대하는 남성우월주의적(男性優越主義的)성격이, 40년 전의 프랑스의 모습이지만, 현재 우리의 대다수의 노부부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남편의 부인에 대한 구박과 타박(打撲), 몰인정과 몰이해, 무관심과 애정의 결핍이 하나하나 축적되고, 부인의 돌연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필자를 비롯한 우리의 노부부의 여생을 그대로 복사해 놓은 듯싶은 작품이다.
무대는 한적한 전원풍경에 어울리는 조촐한 공간과 노부부가 일상을 보내기에 알맞은 거실과 침실로 만들어지고, 남편의 작업실로도 사용되게 꾸며졌다. 무대 오른편에 조성된 억새풀이 무성한 정원과 집의 출입구는 한적한 소도시를 절묘하게 구현해 낸 무대로, 실내공간에 비치된 식탁과 의자 등 생활 집기와 식기는 물론 라디오 전화기에 이르기까지 잘 짜인 무대다. 특히 무대 전면 객석 가까운 곳에 만들어 놓은 꽃밭, 벽돌을 깔고 그 위에 만들어 놓은 담배 파이프와 받침대는 노인의 기호와 취향까지 객석에 전달시키는 절묘한 역할을 했다.
음악 역시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의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나 빠리의 하늘아래 (Sous Le Ciel De Paris) 같은 샹송을 사용하고, 부인이 케이 세라세라(Que Sera Sera)를 가끔 부르는 것도 노부부의 삶과 노년의 분위기에 적절하게 어울려 실버 세대 관객에게는 옛 추억에 젖도록 만드는 효과까지 창출시켰다.
노부부로 김연진과 홍성춘이 출연해 첫 장면부터 한 잔의 차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라든가, 남편이 사사건건 자신의 주장만을 내 세우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생일까지 잊고 전력 몰두하는 남편에게, 케익을 만들어 작업실로 들고 온 고마운 아내에게 화를 내고 핀잔만 퍼붓는 장면에서, 문득 필자 자신을 보고 그려놓은 듯싶어, 내심 부끄럽기도 했고, 아내가 먼저 급작스레 세상을 뜨자, 늘 마주앉던 식탁에 앉아 아내를 생각하며, 아내가 앉았던 자리를 향해 남편이 손을 내미는 마지막 장면은, 아내 없는 텅 빈 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 자리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김연진과 홍성춘이 노부부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잡지사 기자로 홍재옥과 임정선이 출연해 노부부에 대비되는 상큼 발랄한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재공연을 관람하면서 이 연극을 60세 이상의 배우들이 출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전송이의 음악, 류백희의 조명, 이명아의 의상, 김지영의 무대, 윤헌태의 사진, 최 선의 분장, 장경진의 디자인, 김형용의 조연출, 홍재옥의 기획, 김지민과 서청란의 홍보 등 스탭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장 폴 벤젤 원작, 이선형 역, 하일호 윤색/연출의 <남아있는 나날들>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월 26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