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진리를 따라 걸어온 은혜의 발자취
전무출신의 서원을 세우고 걸어온지 어느덧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모든 순간들이 법신불 사은의 크나큰 은혜였고
수많은 인연들의 보살핌 덕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제가 마지막 근무지였던 영등교당에서 퇴임을 앞둔 한 달 전부터 교화현장 43년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며 다음 내 카페에 어설프게 생각을 더듬으며 적어 놓았는데 퇴임하고 1년뒤 원음방송에서 “삶의 추억”에 출연하라 해서 망서림없이 원음방송에 출연했더니 몇 번이나 재방송을 보았다는 도반들의 얘기를 들으면 부끄러웠다. 그런데 얼마전 월산 김일상교무님께서 어느 교도님이 보내준 카페 메일을 통해 나의 회고록을 읽었다며 진솔한 교화담이니 앞으로 후진들에게 신앙과 수행 그리고 봉공하는 삶에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될거라며 전자책으로 라도 남기면 좋겠다해서 부끄럽지만 그렇게 하자 대답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면 세상에 우연은 없고 다 어떤 까닭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원불교를 만나 서원하고 전무출신 한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고 숙세의 깊은 법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퇴임후에 알게 되었다. 저희 조부이신 回山 曺元善 할아버님께서는 원기 14년(1929)에 일산 이재철 선진의 연원으로 소태산 대종사를 처음 뵙고 喑夜에 광명을 얻은 듯 앞길이 열림을 느껴 입교하셨고 원기 15년에 정산종사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하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更山 曺喜悅 아버님께서도 전무출신 서원하고 영산에서 공부하던 시절 久山 宋碧照 교무님께서 자네 내일 남부 가세 하여 아무뜻도 모르고 구산님을 모시고 남부 신천리 연촌 사가집에 왔더니 무슨 보따리가 있어 저게 무엇입니까 물으니 자네! 내일 장가가네 하시면서( 道山李東安선진님과回山曺元善조부님과 절친이라 서로 소개했다) 應山님 둘째 따님을 신부로 신흥교당에서 구산님 주례로 원불교 신정예법에 따라 식을 올렸다 합니다. 그런 숙연으로 저도 출가서원을 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나는 1971(원기56년)2월26일 교학대를 졸업후 3월에 일선 교화의 첫 발령지로 승타원송영봉교무님이 근무하는 원남교당에서 교화의 첫발을 디딘후 원기99년 1월에 퇴임했습니다. 승타원송영봉교무님과는 해외 계시거나 국내 계시거나 한때도 마음이 떠난적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숙세의 지중한 법연인 것 같습니다. 아마 스승님과의 만남은 제 전법 여정의 가장 큰 축복이자 소중한 보물이였지만 한편으로는 스승님의 크신 법력 앞에 제 발자취가 너무도 부끄럽고 미흡하게만 느껴 졌습니다. 그러나 은연중에 그 어른의 신앙과 수행력과 심법을 체받고 닮으려는 마음으로 지금도 조심스럽게 가까이 모시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일선 교화 현장에서 교도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서툰 발걸음 중에 첫 주임교무로 흑석선교소에서 이수교에 교당을 신축한 후 교화가 활발해져서 방배동에 다시 교당을 신축하는데 마침 재가 교도 기산 박홍렬,열타원 김건희교도님께서 건축에 조예가 깊어서 전문 건설회사에서 설계를 낸 후 두 교도님이 직접 감역하여 방배교당을 신축하니 일반, 청년, 학생, 어린이 교화까지 자리를 잡아 원목회,정진회 원화회에서 청소년들을 후원하니 청소년 교화도 정착했었고 그 무렵 소록교당 건축이 거론되었고 병원 측의 특별한 배려로 고흥군 도양읍 소록 선창길에(신사터옆)교당을 신축하도록 허락을 해주어 방배교당 두 교도님께서 그곳에서 숙식하며 직영으로 교당을 신축하여 봉불식에 2천여명이 함께 축하 하는 쾌거를 이루게 한것도 잊을수 없고, 아프리카 어린이돕는 모임과 인연은 원기 77년도 내가 대명교당에 있을 때 김혜심 교무님이 원광대약학대 학장으로 근무때 방학을 기하여 최성덕교무님 소개로 남아공을 다녀오더니 그곳에서 개척교화를 한다는 말을 듣고 말류할 목적으로 이정은,장경안 두 법사님 모시고 남아공을 갔었다. 마침 남아공 대사관에 영사로 계시는 김계원교도님 댁에 일원상을 봉안하고 교도님 10여명이 법회를 보면서 김혜심 교무님은 그곳에서 할 일이 많다며 넓게 교화장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강한데 나는 낮설은 타국에서 교화할 자신이 없어서 마음속으로 한가지 서원을 했다. 김혜심 교무님이 아프리카에서 하는 일에는 끝까지 적은 힘이나마 협조해야 되겠다고 나 자신에게 굳게 다짐하고 돌아왔기에 지금껏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압구정 교당에서부터 아프리카 어린돕기위한 아나바다 장터와 하루찻집을 열며 후원하다 원기 87년도 서신교당으로 부임 후에 활발하게 교화와 봉공활동을 하던중 합창단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어린이돕 모임”을 위한 작은음악회를 열어 그 음악회가 23회 차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뜻깊지 않을수 없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은혜롭고 축복받을 일이고 또한 저의 삶은 온전히 대종사님의 교법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때로는 부족함에 좌절하기도 했고 때로는 한 영혼이 깨어나는 기쁨에 밤잠을 설쳐가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지나온 삶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서 세상에 내어 놓으려 합니다. 이 글은 제 개인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모자란 한 사람이 이 법을 만나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일원의 진리가 얼마나 따뜻하고 위대한지를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이 책이 서원의 길을 고민하는 후배 전무출신들에게는 작은 위로와 이정표가 되고 현장에서 마음공부에 힘쓰시는 교도님들에게는 든든한 도반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제가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가르침을 주신 모든 스승님들과 부족한 교무를 믿고 따라 주신 모든 인연들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여정의 근원이 되어주신 법신불 사은의 은혜와 끝으로 간절하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교단의 미래를 생각하며 특별히 간곡하게 권해주신 월산 김일상 교무님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원기 111년 8월
중앙수도원에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