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바윗길서 얻은 깨달음의 기쁨
5월은 빨간 색 공휴일이 7일이나 되는 초여름의 문턱이요, 온갖 초목이 생명의 감로수를 끌어올려 새파란 옷을 두름으로써 잦은 산불로 인한 지방 공무원들의 비상출동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호시절(好時節)의 들머리이다.
1일 근로자의 날을 필두로 2일 석가탄신일, 5일 입하(立夏) 절기이자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5일 스승의 날이자 세계 가정의 날, 21일 소만(小滿) 절기이자 부부의 날, 28일 단오절(端午節), 31일 금연의 날이자 바다의 날 등 공휴일과 기념일이 특히 많은 달이기도 하다.
초여름의 정취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은, 온 산야(山野)를 뒤덮는 신록(新綠)의 푸르름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수놓아지는 ‘화려한 빛의 잔치’를 즐기기 위해 산과 바다로 나가 싱그러운 초여름의 생기를 듬뿍 마시기도 하면서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필자 역시 신록으로 물드는 산길, 바윗길을 오르고 사찰을 참배하면서 초여름의 자연을 한껏 즐기는(樂天)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지난 2일 가솔들과 함께 승용차를 이용해 군내 마천면 삼정산 영원사에 들러 참배한 뒤 가솔들은 내려가고 홀로 영원사 뒷길 경사면을 경유 해발 1100m 고지(高地)의 상무주암에 당도해 참배한 후 두암 노스님의 배려로 법당 안에서 나물밥 점심을 맛있게 먹은 다음 10여명의 참배객들과 함께 차와 과일을 곁들여 자연스레 ‘죽염과 건강’을 주제로 한 담소를 약 1시간에 걸쳐 나누었다.
오후 2시 무렵, 한 시간여 쏟아지던 비가 그치는 것을 기화로 상무주암 절문을 나서 1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문수암을 향해 길을 떠났다. 30여분 만에 목적지에 당도해 참배한 다음 오랜 만에 도봉스님과 정담(情談)을 나누고 다과와 오미자 곡차를 두어 잔 마신 뒤 하산 길에 나섰다.
때마침 감로(甘露)의 봄비가 또다시 내리기 시작해 먼저 절에 와있던 여 운보 함양보건소장과 함께 기꺼이 비를 맞으며 하산해 승용차 편으로 외마마을의 고담사로 이동, 마애석불을 참배한 뒤 곧이어 도착한 배 종원 함양군의회 의원이 동참한 가운데 ‘노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심진 스님과 1시간가량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가 귀가 길에 올라 ‘초파일 3사(三寺) 순례’를 마무리했다.
이튿날인 3일은 김 용기 등산학교 암벽등반 2009년 봄 초급자 과정 수료생들과 실전 팀들이 함께 인수봉을 등반하기로 한 날이어서 새벽 4시에 기상, 승용차를 이용해 대전역에 도착한 뒤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다시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오전 8시 10분, 북한산 도선사 입구 안양암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20여 명의 등산학교 암벽 등반 팀들과 합류해 자일과 퀵드로, 그리그리, 미니트랙션 등 장비를 담아 총 20여 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재를 넘어 인수봉으로 향했다.
오전 9시 30분쯤 인수봉 남면에 도착한 등반 팀은 총 4개조로 편성해 인수봉 정상을 향해 각 루트별로 출발했는데 필자는 코끼리바위 밑 암각 미륵불상(彌勒佛像)의 곁으로 난 난이도 5.10a급의 23m에 달하는 ‘하늘 길’ 첫 피치(마디)를 오르는 것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젖 먹던 시절의 힘까지 모두 동원해 5.10c급의 제 2피치를 지나 제 7피치 5.10d급 20m 구간까지 총 일곱 피치 187m의 인수봉 암벽을 등반하여 정상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30분이 지나서였다. 모두들 손등 발등은 바위에 긁혀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고 얼굴은 물론 온몸이 땀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으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때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은 뒤 단체 촬영을 한 후 60m 직벽을 차례로 하강했다.
하산주(下山酒)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마친 뒤 뒤풀이 여흥시간을 갖는 자리에서 15살의 아들과 함께 인수봉을 오른 한 참가자는 “참 행복한 하루였다”고 서두를 꺼낸 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 중의 한 가지 소원을 오늘 비로소 이뤘다”며 감격스러워했고 또 다른 30대 중반의 한 여성 참가자는 ‘바위를 문(門)으로’ 바꿀 수 있었다며 감개무량한 심정을 토로(吐露)하기도 했다.
이 날의 인수봉 암벽등반은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벽에도 잘 찾아보면 분명히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계기도 되었고 서로를 이어주는 자일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해 바위를 오르며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으며 눈앞에 펼쳐진 백운대, 만경봉을 뒤덮은 연두빛 잎새들과 분홍빛 꽃들이 벌이는 빛의 잔치를 인수봉 정상에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듯싶다.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