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는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대단히 민감하고도 핵심적인 이슈이다. 몇 년 전 내가 잘 아는 한 공공기관에서는 세종시 지방 이전을 두고 전 직원 투표를 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이 기관은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 운 좋게도(?)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추가 이전 대상으로 지정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럴 바에 수도권과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는 선수를 치자는 의견이 있어 전 직원 투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투표는 부결되어 세종시 이전은 무산되었지만, 이 기관은 몇 년 후 결국 지방 이전(세종시가 아닌 다른 곳) 대상 기관이 되고 말았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대명제의 달성을 위하여 지방 열 곳에 혁신도시가 지정되었고 혁신도시에는 수도권에 집중한 공공기관의 분산배치가 추진되었다. 강원도 원주, 충북 진천·음성, 전북 전주·완주, 전남 나주, 경북 김천, 대구광역시, 경남 진주,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이렇게 총 10곳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대전과 충남이 혁신도시로 추가 지정되었다. 총 12곳인 셈이다. 그리고 실제 혁신도시로 수많은 공공기관이 분산 배치되었다. 가령 한국전력은 서울에서 나주로, 한국도로공사는 김천혁신도시로, LH공사는 진주로 이전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공공기관 근무 형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방 이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가족과 이별하여 지내게 되었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집이라면 전체 가족이 이주하지 않고 해당 직원만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교육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도시를 막상 가보면 주말에는 마치 고요한 죽음의 도시가 된다. 주중에만 근무하고 주말에는 각자의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일부 혁신도시는 수도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워 심지어 출퇴근이 가능해 본인도 이주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다. 매일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혁신도시까지 출퇴근한다. 충북혁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진천과 음성 경계점에 위치해 서울에서 출퇴근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은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세종시에는 서울이나 수도권 각지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무척이나 많다. 출퇴근 시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방 이전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면 지방 근무는 불사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대부분 본사가 지방에 있으므로 지방 근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 또한 본사가 서울에 있다고 해도 지사가 지방 곳곳에 있는 공공기관들이 아주 많다. 한국도로공사나 한국농어촌공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설사 입사 자체를 본사나 서울로 하거나 첫 근무지가 수도권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지방 근무를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심지어 격오지 근무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일하려면 지방 근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과거 나는 현대아산이라는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그룹 계열사에서 약 5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최종면접에서 가장 유심히 물어보던 질문이 ‘북한에서도 근무할 수 있습니까?’였다. 이 질문은 5명의 최종면접자에게 했던 공통질문으로 내가 가장 마지막에 답변했다. 첫 면접자는 ‘북한에서 근무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두 번째 면접자는 ‘근무는 가능하나 가급적 남한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면접자는 그저 ‘북한에서도 근무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이윽도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무엇인가 강력한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여 ‘북한에서 근무하는 줄 알고 지원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나만 합격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방 근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말자. 오히려 숙명이라고 생각하자. 우리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때로 본인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순간에는 받아드려야 한다. 그것이 미덕이다. 좋게 생각하자. ‘나는 지방 근무를 위해 공공기관에서 일하고자 한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대전의 공공기관으로 이직하면서 대전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세종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를 분양받아 지금은 세종시에 살고 있다. 기존에 살던 곳은 경기도 고양시 즉, 일산신도시였는데, 일산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처음 대전에 내려와 생활할 때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대전에서의 생활에 대해 대전에 살던 동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조금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적응의 문제가 남을 뿐이다. 첫 6개월은 내 고향과도 같던 일산신도시가 자꾸 생각이 났지만, 이제는 완전히 적응되어 일산을 추억의 도시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은 원래 그런 동물인 것이다. 공기도 좋고, 집값도 싸고, 차도 안 막히고 여러모로 생활하기에 편하다. 주말이면 공주, 청주, 부여, 청양, 군산, 옥천 등등 인근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에도 너무 좋다.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는 법이다. 또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한국서부발전이라는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전력의 10% 정도를 담당하는 화력발전소다. 이 회사는 서울에 있다가 몇 년 전 충청남도 태안으로 본사를 이전했다고 한다. 막상 가본 태안군은 정말 시골에 있었다. 태안에서 제대로 된 건물은 서부발전 본사밖에 없었다. ‘다들 참 시골에서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다니다 보면 익숙해진다. 너무 지방 근무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말자. 이런 상상을 하자. ‘손바닥 만한 대한민국에서 어디 살던 무슨 상관인가?’. 마인드를 바꾸면 지방도 아름다운 삶의 장소가 된다. 인식의 전환! 그것이 중요하다.
공공기관을 다니며 지방 생활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공공기관을 다니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