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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이 나의 얼굴로 다가들었다. 하마 같은 몸에서 양파 섞인 시큼한 냄새가 얼굴로 쏟아졌다. 으악, 너 왜 그래. 술 먹었어? 저리 못 가? 으앙. 아빠 뽀뽀. 커다란 덩치가 작은 나의 몸을 짓눌렀다. 싫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몸은 전보다 더 불어 있었다. 그냥 좋아서요. 아버지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어요. 아들은 그 큰 몸에 어울리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 TV를 끄고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진이는 오늘도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웃었다. 자기들이 나를 얼마나 알아? 경칠 녀석들. 두고 보라지, 그 잡화점 곧 없어질걸. 홀아비 냄새나는 사장은 왜 그리 내 몸을 훑어 보는 거야. 그녀는 사장의 눈초리가 지렁이 같아 슬그머니 셔츠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 그러나 어디 가서 일을 구하지? 한숨은 늦은 저녁 행인들 속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수원에서 출발하는 전철은 그녀를 계속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만 참자. 얼마 안 남았다. 이 지긋지긋한 지옥. 한편으로, 살점 없는 어깨에 붙이는 녀석의 가슴을 밀치며 노약자 좌석이 있는 창가로 그녀는 밀려났다.
아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장바구니를 풀었다. 아차. 2천 원짜리 오이가 어디 갔더라? 내 금방 여기에 넣었는데. 이리저리 찾아봐도 없다. 깜빡깜빡 기억력이 없어진다고 스스로 느끼는 요즈음인데 돈 허투루 쓰지 않은 습성에 생채기가 났다. 현관문을 나가서 승강기 앞까지 나가봤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계속 시장길을 되새김했다. 어디지? 아! 그 버스. 앞 동 아줌마와 수다를 떨다가 내가 줬지. 손사래 치는 것을 억지로 쥐여주며 동사무소 회의에 꼭 나오라고 당부했었지. 내 정신 좀 봐. 참나. 아내는 두부와 콩나물을 서둘러 손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둑한 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차를 아파트에 두고 반년째 버스와 전철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성준 부장님! 오늘도 전철에서 내리시던데요? 화사한 미국 여배우를 닮은 소희는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대중교통이 편해. 가끔 버스도 타고 주위 구경이 쏠쏠하거든. 네. 그렇군요. 그리고 지난주에 먹은 저녁은 감사했어요. 부장님. 머리를 잠깐 숙이고 지나가는 여사원에게서 향긋한 샴푸 냄새가 따라갔다. 그래. 다음에 식사 한 번 더 하자고. 그쪽 부서는 할 만해? 그럼요. 아니 부장님 밑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빠요. 그때가 좋았어요. 그러나 나는 돌아서는 그녀의 표정에서 전보다 화색이 더 돌고 있다고 느꼈다. 얼마 전에 부장으로 승진한 후배 밑이 좋겠지. 더구나 젊은 남자 사원들로 붐비는 쪽 일이 더 생기가 돋을 거로 생각했다. 예전만큼 판단이 뚜렷하지 못하고 감정이 앞서간다는 느낌이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더욱 생기가 없어졌다. 점심시간에는 어느새 자리에 혼자만 남아 있었다.
“아빠! 후루 밥 줬어?”
“응? 아니.”
“지금 몇 신데?”
나는 채널을 돌리며 딸의 눈치를 살폈다. 부랴부랴 밥그릇에 먹이를 붓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주말을 컵라면으로 때운 속이 허전했다. 허겁지겁 먹는 녀석은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나보다 낫네. 녀석은 다 먹고 나서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점박이가 제법 커졌다.
“아버지. 강아지 어떻게 할까요?”
“버릴까요? 인제 와서 어떻게 해요. 네?”
아들은 자고 있던 나를 깨우며 불만 가득하게 대들었다.
“후루라고 불러요.”
“후춧가루?”
“놀리지 마시고. 그냥 후루요.”
얼마 전에 아들은 애견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한 달도 안 된 강아지를 안고 들어왔다. 이래 봬도 독일산이고 영리하다고 떠들어댔다. 6개월 동안 서로 대화도 없었던 여동생과 급격히 말문을 튼 것도 그 강아지 때문이었다. 번번이 떨어지는 취업 시험에서 최고조로 올라온 긴장과 스트레스를 아버지에게 분출하는 거로 생각했다. 오히려 동생과 예전처럼 수다를 떨고 밥상을 같이 한다는 점에 더할 나위가 없었다. 기침은 어느 정도 강아지와 거리를 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도 개를 좋아했다. 이름은 자키라고. 검은 잡종견이었는데 초등학교까지 등굣길에 따라다녔다. 내가 다른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득달같이 달려와 그 개의 목덜미를 무는 질투심 많은 개였다. 나에게는 순종적이고 산에서 족제비를 물어 오는 용감한 개였다. 마을 공터에 잡아놓은 독사를 우습게 보다가 턱을 물려 며칠 보이지 않더니 주둥이가 퉁퉁 부은 모습으로 학교 운동장으로 나를 찾아온 개였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마을에는 잔치가 벌어졌고 어른들은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자키를 찾았으나 누구도 그 개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뒤로 자키는 내 주위에서 보이지 않았고 나는 중학교 진학으로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닥스훈트라고요. 오소리와 토끼를 잘 잡는다고 아들은 떠들었다. 요즈음 같은 시절에 어디 가서 그런 것을 잡아 올까마는 한 마리 강아지에 대하여 오누이의 정성은 극에 달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거실에는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들의 득달에 잠이 깨어나고 이성을 잃은 아들의 모습에 주마등 같은 과거가 떠올랐다. 얼마 후에 진이 없어지면 누가 강아지를 길들이며 밤낮으로 보호할 것인지 딸과 아내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귀여움과 사랑으로 데려온 개가 커지면 유기한다는 뉴스를 예로 가져오며 앞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지 따져 물었다. 10여 년을 같이 먹고 자며 같은 공간에서 생활할 텐데 책임질 의사는 있는지도 되물었다. 무엇보다도 털에 대한 기침 알레르기가 있는 나였다. 어쩌면 집 밖에서 키우는 개라면 허용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집에 데리고 온 지 한 달이 넘어서야 이제는 어떻게 하느냐고 아들 녀석이 따지며 잠든 나를 깨운 것이었다. 그 후, 강아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야, 인마! 나도 너 좋아. 흐흐”
회식 후 들어온 밤, 배 위에 올라가 얼굴을 이곳저곳 핥아서 내가 손으로 밀치자 강아지는 나의 사타구니로 내려와 냄새를 맡았다. 옆에서 아내는 연신 웃고 있었다. 나는 거실 바닥을 뒹굴며 녀석을 찾았다. 강아지는 살랑살랑 다가와 손을 한 번 노려보더니 냉큼 아내의 가랑이 사이로 올라갔다. 4개월이 지났다. 주먹만 하던 강아지가 팔뚝만 해졌다. 제법 주위 눈치를 알아보고 자기가 나설 때와 제집으로 들어갈 순간을 가렸다. 하지만, 소변만 깔아놓은 패드를 이용했을 뿐, 똥은 이곳저곳 아무 곳이나 보았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작은 고구마 덩어리를 치웠다. 물론, 그때마다 투덜거리며 소리 질렀다. 야! 똥 좀 잘 쏴! 강아지는 그럴 때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눈망울을 굴리며 엉금엉금 제집으로 들어가서 조용해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외출한 어느 날이었다. 내가 퇴근하니 아무도 없고 현관 펜스를 넘으려고 꼬리를 치며 깡충거리는 녀석을 보았다. 작게 짖기도 하는 녀석을 보고 나는 놀랐다. 여간해서 내 근처로 오지 않던 녀석이 꼬리를 치고 있었다. 싫지는 않았다. 씻고 나와 녀석에게 “간식”하자 강아지는 재빨리 내 무릎 밑으로 달려왔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눈치를 보는 녀석에게 한 조각을 던져주자 얼른 물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하다가도 녀석이 오면 그때 말을 걸었다. “엄마, 형은 어디 갔니?” 강아지가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신기하게도 녀석은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짖기 시작한 지가 2개월이 지났는데 현관밖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강아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식구가 나가면 낑낑거리며 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했다. 강아지는 서서히 우리 식구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자기대로의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였다.
후루의 태생이 어디인지 몰랐다. 정상적으로 키워진 어미에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소위 공장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우리 집에 들어와 조금씩 크는 모습에 호기심이 커졌으며 녀석의 과거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 혼자가 아니었을 텐데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안고 들어왔으니 알 턱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데리고 온 아들 녀석에게 오히려 까칠한 항의를 듣고 요즈음은 곁에서 보기만 하는 상태였다. 다시 돌려보내라는 말도 못하고 나를 제외하고 이미 가족 모두는 강아지를 가족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리숙한 방임으로 인해 다시 반박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단지 강아지의 귀여움만으로 녀석의 미래를 무작정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그 사랑이 후루의 생명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먼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있었던 똥 사건으로 나는 최후통첩을 모든 가족에게 하고 말았다. 거실에서 밀려나고 가족 구성원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술을 잔뜩 먹고 들어 온 날이었다.
“강아지 돌려보내! 아들이나 딸, 그리고 당신이 영원히 책임질 수 없다면 하루속히 다른 곳으로 말이야!”
나는 그 말을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고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그 후, 가족은 침묵으로 시위하였고 나는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일찍 반대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방임을 지나 동조에 가까우며 그것은 허용의 갈음이라고 집사람과 아이들은 되묻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무언의 비난을 피하여 안방을 강아지 출입 금지 공간으로 선포하였다. 그것을 이미 감지한 강아지 녀석은 슬금슬금 내 표정을 살피며 내가 있는 안방 접근을 멀리서도 피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없으면 이곳저곳 신나게 뛰어놀다가 내가 나타나면 잽싸게 자리를 떴다. 영리한 녀석이다. 나의 심리를 알아차리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강아지와 나는 결정의 한가운데서 서로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얼마 전에 녀석은 정기적인 예방접종을 마치자 조금씩 몸짓이 불어나고 있었다.
“이모부! 후루 보내지 않으면 안 돼요? 제가 이모네 집 가서 후루 잘 볼게요. 그리고 저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네?”
“하현아, 강아지에게도 권리가 있어. 행복할 권리 말이야.”
가끔 집에 오는 조카는 예견되는 강아지의 파양을 걱정하며 말했다. 그 아이 집에서도 골든레트리버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다. 작년에 병으로 죽자 처제는 더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상실감으로 몇 달 동안 고생한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났다. 한창 회의하고 있었는데 열린 문틈으로 작은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회의하던 직원들이 모두 놀라 주의를 그쪽으로 돌렸다. 회의는 둘째로치고 4층까지 개가 어떻게 올라온 건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몸꼴이 매우 지저분한 강아지는 직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런 녀석이 이리저리 냄새를 맡더니만 잠시 후 밖으로 사라졌다. 회의는 다시 진행되었고 며칠이 흘렀다. 비 오는 어느 날 분수대 옆을 지나는 녀석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강아지 모습은 더욱 말라 있었다. 이번에는 사람을 피하고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그 뒤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방송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놓은 작은 강아지가 주인 차를 죽을 둥 쫓아가는 영상이었다. 그 강아지는 결국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주인 차는 멀어져갔다. 영상은 뒤차 블랙박스에 그대로 녹화되었다. 그 강아지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상상하면 끔찍했다.
강아지는 진의 조련으로 조금씩 사람의 말귀를 알아갔다. 기다려. 손. 밥. 간식. 붕어. 쉬 등등의 말들을 딸은 잘도 교육했다. 강아지는 나를 제외하고 가족과 더욱 밀착해졌으며 녀석의 생활은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었다. 아들은 병원 검진에서 개털의 알레르기 반응이 없다는 것만으로 후루를 제 방으로 안고 들어가 같이 자기도 했다. 하지만 나만은 계속 기침으로 개를 멀리하였다. 후루 녀석도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극구 내 곁으로 오는 것을 피했다. 언제나 용변 때문에 바로 비명지르는 내 소리를 듣고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식구에게는 스스럼없이 다가갔고 살갑게 굴었다. 가족이 한 명이라도 나가려면 먼저 현관문으로 달려가 낑낑거렸다. 그때에는 간식을 거실로 던져주고 잽싸게 나가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짓도 통하지 않아 가족은 서로 쩔쩔매기 시작하였다. 나만 유독 예외였다.
딸의 이모가 들고 온 간식에 강아지는 환장하였다. 얼마 전에 우리 딸의 이모가 후루 입양을 심도 있게 고민하였으나 그녀의 남편 반대로 포기한 상태였다.
“아니,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것보다 개가 죽으니 더 크게 울더군요.”
어느 날 나와 술잔을 같이 하며 동서가 한 말이었다. 그 개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죽자 처제는 강아지를 화장시키고 한동안 우울증에 걸렸다 하였다. 그래서 언니네 집에 와서 후루를 보고 한동안 위안 삼으며 잠시 잊고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아쉬움과 상처를 저 강아지가 영원히 대신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또 다른 상실감을 가져올 거라고 동서는 말했다.
“징가징가 물어 와.”
후루는 아내의 지시대로 소리 나는 장난감을 물고 왔다. 이번에는 “물고기”하자 녀석은 두리번거리다 금방 물어왔다. 밤이면 잠도 자지 않고 둘은 소파 위에서 TV를 켠 상태에서 잘도 놀았다. 강아지가 제집으로 들어가야 아내는 거실의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새벽이면 안방을 박박 긁어 나와 아내의 곤한 잠을 깨웠다. 그와 같은 방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래도 아내는 하품하면서도 금방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랐다. 등이 길어진 대신 다리는 더욱 짧아 보였다. 그래도 녀석은 식탁이나 거실 싱크대 밑으로 신나게 달리며 놀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파 위로는 오르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 반동으로 달려와 점프하지만 번번이 앞다리만 걸치고 곧바로 뒤로 자빠졌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약이 오르는지 계속 반복하였다. 아내가 더는 안쓰러웠는지 잡아 올려주면 신이 나서 소파 위를 뛰어다녔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리면 냅다 뛰어 내려가 현관 앞에서 짖었다. 그러다 누가 들어오면 다시 소파로 달려와 올라오려고 끙끙거렸다. 아내가 먹는 것은 무엇이든 달라고 짖었다. 무도 먹었고 배추도 먹었다. 어떨 때는 약봉지도 물고 달아났다. 그럴 때는 기겁을 하고 녀석의 입에서 빼앗느라고 소동을 펴야 했다. 녀석은 하나의 식구로서 강력한 일원이 되었다. 그것을 강아지는 즐겼으며 모든 식구 앞에서 짖는 것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였다. 녀석이 잠들어 있을 때 식구가 모두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얼마 후 녀석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제집에서 나와 아무 곳이나 용변을 보았다. 그리고 아내의 옷을 찾아 물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집사람이 외출하여 없을 때는 그 위에서 침울하게 머리를 박고 누워 기운이 없어 보일 때가 있었다. 펜스를 놓아 현관 앞을 넘지 못하자 한동안 신발을 물지 못하는 대신 녀석은 전깃줄을 물기 시작하였다. 충전기 선이나 식구들의 냄새가 밴 모든 물건을 자신의 놀잇감인 양 물어뜯었다. 그때마다 새것으로 다시 샀으나 녀석은 그것을 호시탐탐 순간을 노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샌가 녀석은 사고를 치고 있었다. 언젠가 나의 충전기 선을 물어뜯어 머리를 쥐어박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녀석은 더욱 내 곁으로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안방도 물론이었다. 그러나 내가 없고 아내가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들어왔다, 내가 싫다는 것을 공포한 뒤로 안방 문은 닫히게 되었고 어쩌다 열려있는 경우에 강아지는 나를 한 번 획 쳐다보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 실례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얼굴을 밖으로 향한 채 눈을 반짝이며 누웠다. 안방에서 나오다 나와 눈을 마주치면 머리를 반쯤 돌리며 무관심하게 머리를 숙였다. “너 사고 쳤지?” 하면 더욱 눈을 내리깔았다. 냄새를 찾은 나는 소리소리 지르고 결국은 소변이나 똥을 치우며 투덜거렸다. 그러면 녀석은 머리를 제집 안쪽으로 돌려버리고 작은 꽁무니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잔뜩 화가 난 내가 집 앞으로 가서 손을 넣으면 배를 발라당 까고 두 발을 벌렸다. 제 딴에는 항복하는 모양새인데 나는 용서치 않고 녀석의 꿀밤을 깠다. 그런 사실이 어쩌다 들켜 득달같이 달려온 딸이 나에게 소리쳤다.
“새끼강아지가 뭘 안다고. 때릴 때가 어딨어요?”라며 눈을 부라렸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피하며 “냄새가 나잖아?” 하였다.
“어머니! 후루 입양 갈지 몰라요.”
“언제?”
“내일 데리고 나가봐야지요. 적당한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설마 했는데 집에서 정말로 후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날이 먼 훗날에 올 줄로 알고 있었다. 아니면, 남편이 포기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남편이 잠잠한 요즈음에는.
“아들이 키울 거야? 아니면 당신이?”
“확실히 해요. 누가 책임지고 녀석을 키울 거냐고.”
어제 저녁을 먹으며 나는 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후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조용히 제집으로 들어갔다.
“냉정해 보세요. 아들은 직장에 나가고 당신이 강아지를 봐야 하는데 24시간, 그것도 제 생명 연장 10여 년을 책임질 수 있냐고?”
“그건, 좀….”
집으로 후루가 들어온 뒤부터 아내는 밖으로의 외출을 무척 자제하였다. 동사무소 모임이나 친구들과 긴한 약속도 번번이 포기했으며 아내는 오로지 집안 생활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있는 시간에 셋이서 깊게 의논하였다. 결론은 파양하는 것으로. 후루를 가장 잘 보살피며 다루던 딸이 며칠 전 외국으로 떠나며 집안 사정상 강아지를 키우기에 너무 부족한 환경이라고 자인하였다. 그리하여 강아지가 좀 더 어릴 때 한시라도 다른 가정으로 보내는 것으로 모두 결정하였다. 그날이 바로 내일이다.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퇴근하니 후루가 제집에서 후다닥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계속 풀이 죽어 있던 녀석이 갑자기 현관문 소리에 고개를 바짝 들고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씻고 나오니 녀석은 거실에서 나를 반겼다. 녀석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자 허겁지겁 먹더니만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모두 어디 갔니?”
녀석은 꼬리만 치고 내 손을 줄곧 쳐다봤다. 뉴스를 보며 한 조각 던져주자 냉큼 물고 제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와 식탁에 걸린 아내의 옷을 입으로 끌어내렸다. 그 위에 잠시 장난을 치더니 옷 위에 누워 머리를 폭 처박았다. 내 눈치를 한 번 보고 이제 더는 간식의 기대가 사라졌는지 녀석은 내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날 저녁에 녀석은 집에서 사라졌다. 아들이 후루를 입양했던 친구네 가게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강아지는 이 사람 저 사람 넉살 좋게 따라다녔다.
“후루야! 엉아 간다.”
그래도 녀석은 들은 채 않고 바닥을 쏘다녔다.
아내는 그날 밤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바로, 후루는 안양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고 했다. 10년 된 시츄 견이 있는 집이라고 했다. 새벽이 오는데도 아내는 멍한 눈으로 강아지 사진이 있는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강아지의 맑고 동그란 눈을 보며 중얼거렸다.
“후루야! 잘 있니? 보고 싶어.”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어느 월요일이었다. 밀린 일들을 분주히 처리하고 있었는데 아들 녀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들의 목소리는 착 내려가 있었다. 지난주에 승용차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내리던 강아지가 앞쪽으로 달려간 뒤에 생긴 일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을 친 여자는 얼굴을 가렸다고 했다. 작은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돌아봤다고 했다. 장소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서관 앞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때 구름 한 점이 하늘 저편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들과 이 사실을 비밀로 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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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려견,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잠시의 이기심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애완동물 천 만이 넘고 그들을 키우고 버리는 현실을 너무 자주 목격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부터 반성합니다.
한쪽엔 동물보호법이 있고ㆍ다른쪽에선 동물실험을 하고ㆍ동물장례식을 하거나 로드킬을 당하거나ㅡ인간은 동물을 불평등하게 대하죠 ㅡ어느 것도 동물을 위한건 없어보입니다 ㅡ개팔자라는 말 맞는 말입니다
우리도 동일한 짐승이지요. 지구의 제왕으로 책임질 시간이 자꾸 지나고 있습니다. 방법을 찾아주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작품 올렸네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가 기르기는 편해요. 물론 털도 날리고 손은 많이 가죠~
네. 호불호는 각자 다르지만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지요. 개든 고양이든 평생을 같이 한다는 것 또한 쉽지는 않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애완동물 입양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된 만남은 가족도 사람도 동물 모두에게 상처를 줍니다.
요즘 모임에서 미둔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수원이라고 하셨나요? 함 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화원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