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 주자들은 연습이나 연주 때를 제외하면 악기와 활을 케이스에 넣어둔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악기를 직사광선이나 습도 변화(적정 습도는 45%),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거리의 악사들에겐 "동전 수집함"으로도 변신하는 악기 케이스.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소재일수록 비싸다. 메고 다닐 수 있게 배낭으로 만든 것도 있고 에어백이나 알루미늄 소재도 있다.
9.11 테러 이후 수하물 크기 제한 때문에 더욱 까다로워진 악기는 첼로다. 그래서 비행기 짐칸에 넣어도 끄떡 없는 섬유유리.탄소섬유 소재의 첼로 케이스도 최근 5종이나 시판 중이다. 무게는 2.3~15.8kg, 가격은 1백15만~2백70만원선이다. 하지만 악기 케이스엔 악기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연주 여행을 많이 다니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겐 악기 케이스는 "움직이는 사무실"이다.
손톱깎이·연필·안경·립스틱 …
바이올린 케이스는 ‘만물상자’
케이스 안쪽이 송진, 여분의 현(보통 두 벌)과 활(2개 이상), 악보, 연필, 지우개, 악기를 덮어두는 부드러운 천, 어깨받침, 손톱깎이, 조율용 소리굽쇠, 메트로놈, 안경 등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책상 서랍이라면 바깥쪽 커버는 악보와 여권.공연허가증.연주회 프로그램 등을 보관하는 서류 파일이다. 비행기 짐칸에 맡기는 옷가방에 넣었다가 분실하면 정말 큰일나는 중요한 물건들이다. 연주복이 갑자기 찢어지는 경우를 대비해 반짇고리나 옷핀도 넣고다닌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월간 현악 전문지"스트라드"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악기 케이스에 콤팩트.립스틱, 열다섯살짜리 남동생이 생후 2개월 때 찍은 사진, 휴대전화 배터리, e-메일과 팩스 주소록, 잔돈까지 넣어둔다고 고백했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사탕도 넣어둔단다. 호텔에서 옆방에 방해를 주지 않고서도 연습할 수 있는 약음기도 넣고다닌다. 뾰족 튀어나온 쇠붙이라서 공항 검색대에서 경보가 울릴 때마다 번번이 용도를 설명해 줘야 하는 게 흠이다.
뉴욕필하모닉의 더블베이스 수석주자 유진 레빈슨은 연주복과 구두까지 악기 케이스에 보관한다. 항상 세워서 보관.운반하는 까닭에 옷걸이까지 준비돼 있다. 이쯤 되면 대형 트렁크라 해도 무방하다. 뚜껑에 달린 주머니에 여분의 현과 활 두 개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연주는 몰라도 외국 순회공연 때는 통관 문제로 케이스엔 악기 외엔 아무것도 넣을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