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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은 카나다 온타리오에서 1860년에 출생하여
"퀸즈의대"(Queen's University - Faculty of Health Sciences)를 졸업하고
미 감리회 의료 선교부에서 빈민가 의료선교를 하다가 "로제타"와 약혼했다.
1890년 "로제타"가 먼저 조선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제임스"도 중국 선교를 접고
약혼녀가 있는 조선으로 1891년에 들어왔다.
조선으로 와서 1892년 6월, 서울에서 조선 최초의 서양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로제타"는 한양에서, 남편 "제임스"는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가끔 만났는데
1894년에 평양에 가정을 꾸미고 병원과 교회 사업을 시작하였다.
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난 다음에 "윌리엄"은 "로제타"를 두고
최초의 평양 의료 선교사로 "광성학교"를 설립하여 사역하던 중에 전염병에 걸려
한국에 온지 불과 3 년만인 1894.11.24일 둘째를 임신한 아내 "로제타"를 남겨 두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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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1865년9월 19일 뉴욕에서 출생하여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6세때인 1890년 10월에 미 감리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일년 후 뒤따라 온 약혼자 "윌리엄 제임스 홀"과 1892년 한양에서 결혼했다.
선교초기에는 간호사를 양성하고 "스크랜톤"이 경영하는 남대문 상동의 "시(施)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스크랜톤" 선교사가 설립한 최초의 여성전문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진료를 시작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찾아 직접 성 밖으로 왕진을 다녔다.
또한 당시 천민과 농민들이 주로 살았던 동대문 지역에 부인병원을 세워
동대문 바깥에 사는 소외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의료 사역을 다져가며,
수도권 일대에서 강습회와 무료 진료를 계속해 나갔다.
그 당시 "로제타 홀"이 운영한 동대문 부인병원은 현재 "이화여대 목동 병원"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 2년 반만에 남편 "윌리암"이 죽어 불과 29세의 나이에 홀로 되어 잠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딸 "에디스"를 낳은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윌리엄"이 이루지 못한 조선을 향한 사랑을
내가 이루리라 결심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1898년 평양에 광혜여원(廣惠女院)을 설립하고 미국서 배운 맹인 점자로
맹인 교육을 실시하여 평양 맹아 학교의 시작이 되었다.
또한 "홀"의 기념병원인 "기홀(記忽)병원"을 평양에 설립하기도 했다.
이 병원은 북 장로회가 운영하던 평양 제중원과 통합하여 1920년 평양 기독병원이 되었다.
그리고 직접 여자의학전문학교인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세워
6명의 여자 의사를 처음으로 배출해낸다.
경성 여자 의학강습소는 경성 여자 의학전문 학교로 승격된 후,
고려 대학교에 병합되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 되었다.
"로제타 홀"은 전적으로 한국 여성을 위해 한국 여성이 스스로 교육을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간 것이다.
"로제타"의 유복자인 딸 "에디스"도 이질에 걸려 죽고 마는데
그녀는 남편과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녀의 헌신은 43년 계속되었다.
"로제타 홀"은 한국에 도착하면서부터 마음에 두었던 최초의 한국 여성의료인 양성도 시작한다.
이화학당에서 생물학과 약학 등을 가르치며, 여성 스스로 교육과 의료에 눈을 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중 수제자처럼 데리고 있던 "박에스더"를 미국 "볼티모어 의과 대학"에 입학시켜
한국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박에스터"의 본명은 "김점순"이다.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 집에서 잡일을 봐주던 김흥택의 딸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이 되었다.
영어를 곧 잘하여 "로제타"의 통역을 맡았고 수술을 할 때는 조수역할을 했다.
"로제타"의 주선으로 요리사 "박유산"과 결혼을 하고, "로제타"가 남편 사망 후 일시 귀국할 때(1894년) 동행하여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 최초의 여자 의사가 된다.
김점순의 이름은 결혼과 동시 미국식으로, 성은 남편의 성인 박으로 이름은 세례명인 "에스터"로 바꾸었다.
졸업 후 미 감리교 소속 해외 선교사가 되어 평양 "광혜여원"으로 파견되어
"로제타"와 정식의사로 협업하였다.
박에스터와 로제타 홀, 그리고 박유산.
그러나 두 사람 모두 30대에 "박유산"은 미국에서, "박 에스터"는 평양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박유산"의 묘는 미국 볼티모어의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에 있지만, "박에스터"의 묘는 소재를 알 수없다.
"로제타 홀"은 전적으로 한국 여성을 위해 한국 여성이 스스로 교육을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간 것이다.
"로제타"의 유복자인 딸 "에디스"도 이질에 걸려 죽고 마는데
그녀는 남편과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녀의 헌신은 43년 계속되었다.
그녀는 4권의 일기와 2권의 육아일기를 남겼는데,
그 속엔 고난 속에서도 조선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여 선교사의 삶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1940년 한국을 떠나 1951년 4.5일 85세의 나이로 "뉴저지"에서 사망하여
유해는 화장되어 양화진의 남편 곁에 묻혔다.
양화진에 묻힌 그녀의 묘비 아래에는
"Whether We Live, or die, We are The Lords."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다”
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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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셔우드 홀"(Shewood Hall)은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과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사이에서 1893년11월 10에 태어났다.
대한 결핵협회에서 1993년 "셔우드 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양화진에 공적비를 세웠는데,
비문에 그의 생애와 한 일이 다 담겨 있다.
"셔우드 홀"은 조선에서 평생을 헌신한 부모의 뒤를 이어 의료 선교사로 헌신했으며,
특히 우리나라 결핵 퇴치사업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셔우드 홀"은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셔우드가 출생 직후 온 가족이 평양으로 이주하고 평양선교를 시작했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은 1894년 11월, 아버지 "윌리엄 홀" 선교사가 순직하고 말았다.
남편의 뜻을 잇기 위해 다시 조선에 온 어머니 "로제타"의 양육 아래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셔우드 홀"(그는 평양외국인학교 첫 입학생이었다)은
1910년 미국으로 돌아가 오하이오 주의 마운트 유니온대학(University of Mount Union)을 다녔으며,
그곳에서 "마리안"을 만나 1922년 결혼했다.
"셔우드"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태어난 조선에서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다짐했고,
이를 위해 그는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의사가 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 남매같이 함께 지냈던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가 된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사망한데 충격을 받고 결핵전문의가 될 것을 결심했다.
"셔우드"는 1926년 4월,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가 되어 같은 의료선교사인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결핵퇴치운동의 선구자가 되다.
"셔우드" 선교사는 1926년 7월부터 1940년까지 24년 동안
해주 구세병원(求世病院 :Norton Memorial Hospital에서 헌신했다.
조선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는 결핵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헌신했다.
1928년 10월에는 해주에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요양원인 "구세요양원"을 설립했으며,
결핵환자들의 건강한 급식과 회복 후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농장을 세워 운영했다.
그는 평안도 "운산 금광"의 자문의사로도 활동했는데
이 역시 폐결핵 환자가 많은 광산의 환경을 고려하여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1932년 12월, 우리나라 최초로 결핵퇴치 자금 마련을 위한 "크리스마스 실"(seal)을 발행했다.
크리스마스 실 발행은 우리나라 결핵퇴치 사업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고,
이는 결핵협회 창설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첫 크리스마스 실 도안을 태극기 문양으로 하려고 했으나
반일감정 확산을 우려한 일제의 탄압에 의해 남대문 도안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셔우드" 선교사는 진심으로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
셔우드 선교사는 1940년 가을, 일제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가택 연금을 당했으며,
결국 그해 11월,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다.
한국을 떠나는 "셔우드 홀" 가족은 부산 항구 앞 공원에서 해주의 교인들이 전해 준 태극기를
나무에 걸고
한민족의 해방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고 한다.
한국을 떠난 "셔우드" 선교사는 아내와 함께 인도로 가서 그곳에서 의료선교사로 22년 동안 헌신했다.
그곳에서도 "셔우드" 선교사는 결핵퇴치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1963년 선교사직에서 은퇴했으며,
캐나다로 돌아가 자선봉사 의사로 헌신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정리한 회고록
"With Stethoscope in Asis : Korea(닥터 홀의 조선회상)을 펴냈다(1978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8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셔우드" 선교사는 1991년 4월, 캐나다에서 "리치먼드"에서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캐나다에서 화장되어 한국으로 와서,
그해 4월 17일 양화진에서 대한결핵협회장으로 안장되었다.
대한결핵협회는 1993년 11월, 양화진 묘지에 공적비를 세웠다.
카나다人 셔우드홀은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자라면서 많은 조선인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결핵퇴치에 헌신할것을 결심
터론토 의대졸업후 역시 의사가 된 매리언 버텀리와 결혼하여 1925년 함께
감리교 산교 의사로서 해주 구세병원에 부임했으며 한국 최초로 1928년에
근대적 결핵치료 요양원을 그곳에 설립하고 1932년에는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다.
194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추방될때까지 결핵환자 진료와 씰 발행을 계속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모범농장을 일구어 새 영농기술을 보급하고 의창학교장으로서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부친 윌리엄 제임스 홀은 평양에 최초로 기독교와 서양의학을 전하고 광성 학교를 설립했으며
모친 로젯타 셔우드홀은 처음으로 점자를 도입하고 농아학교와 고대의대전신인
한성여자의학강습소와 이대부속병원 전신인 동대문부인병원을 설립하였다.
2대에 걸쳐 한국민에게 봉사한 공을 찬양하여 1984년 셔우드홀에게 우리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울특별시에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다.
1991년 카나다 뱅쿠버에서 영면한 셔우드홀은 그해 9월 19일 그를 뒤따른 부인과 함께
유언대로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땅 이곳 부모님 곁에 안장되었다.
우리는 셔우드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기에 공적비를 세워 불망의 은인을 추모한다.
우리가 보통 부르는 강원도 화진포의 김일성 별장은 원래 "셔우드 홀"의 별장이였다.
1940년 일제는 "셔우드 홀"이 크리스마스 실로 독립자금을 모았다는 누명을 씌워
간첨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겨우 풀려나 조선을 떠나게 되어 미국 선교 본부로 부터
인도에 의료 선교사 파송을 받아 인도에서 1963년까지 결핵 퇴치 운동을 벌였다.
그가 조선에서 활동한 기간은 1891.12~1894,11,24일 까지이다.
1991년 4월 5일 98세를 일기로 소천하여, 4월 10일 "리치먼드 사우스 암"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유해는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1991년 4월 17일 대한결핵협회 장(葬)으로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홀" 가문의 4명의 선교사역 기간을 합치면 무려 79년이다.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 카나다 1860년1월16일 ~ 평양 1894년11월 24일)
부인 로제타 홀 (Rostta Shewood Hall : 미국 1865년9월19일 ~ 미국 1951년4월 5일)
셔우드 홀 (Sherwood Hall : 한국 1893년11월 10일 ~ 카나다 1991년4월 5일)
이디뜨 마가렛 (Edith Margaret : 미국 1895년 ~ 한국 1898년)
후
"마리안 보텀레이 홀"(Marian Bottomley Hall : 영국 1896년 ~ 카나다 1991년 9월 19일)
(셔우드홀 부인)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 한국 1927년 ~ 카나다 2012년)
죠셉 게이트레이(Joseph Keightley :한국 1932년 ~ 카나다 1998년)
필리스 마리안 (Phyilis Marian : 한국 1934년 ~ 미국 2018년)
프랭크 셔우드(Prank Sherwood : 한국 1934년 ~ 한국 1934년)
"셔우드 홀"의 딸 "필리스"와 쌍둥이로 태어난 날 죽은 "프랭크"
이중 "윌리엄 제임스"와 "필리스 마리안"은 한국에 묻히지 않은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