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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서화부는 그리움 그 자체이다 함께 했던 사람이 그립고 시절이 그립고 정이 그립다 그리움이 있는 인생은 복되고 또 복되나니 그리 하여 이렇게 서화부를 그리워 하는 나는 복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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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4년간의 서화부는 내 가슴에 녹아있네. 내 안에 스며든 노란집의 추억은 나를 늘 생기있게하고, 행복하게하네. 아! 진워니형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이, 노명호의 굿이, 인학형의 first of may가, ....오늘도 나를 미소짓게하네. 페치카의 불꽃이 영원히 나를 깨우네, 커이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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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호응도가 안 높아 지금 많이 고민중인데.. 역쉬 경희&은애선배님이세요!!!
다른 선배님들도 부담가지시지 마시고 가벼운 맘으로 꼭 몇 글자 남겨주세요.. 거듭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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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거 빼먹은거 같아서.. 하나 더 알립니다!!
백자 쓰시기가 너무 부담스러우시면 오십자만 쓰셔도 됩니다... 그리고 백자 넘는다고 편집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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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라 맹서하건만/ 못 잊을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고나//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든고/ 모두 다 흘러 가면 덧없건마는/ 외로운 별을 안고 밤을 새우면/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고나...(애수의 서화회..."서화부는 나의 종교였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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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동지가 '개교 100주년 기념 고대미전'에 걸맞는 행사를 치루고자... '100인 100자 글 남기기'를 하자는데... 아무쪼록... 바쁜 일일랑 잠시 접어두고... 한 소절씩 부르시오... 아무쪼록... 상념이 아니 떠오를짝시면... 호미회 홈... 이전게시판 '988'번 - 서화야사(e-Book) -을 작동하시면...유장한 가락이 흐르노니... 한소절은 생각 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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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주 금요일 호미회 임원모임에거 제가 제안하여 미전 팜플렛 마지막 페이지 조건부로 확보해논바 기왕 하는거 모두 실을순 없지만 많은 사람의 목소리 담아보고자 하는마음에 시작해 본겁니다...
시작해놓고 보니 시간이 많지 않기에 다음 주말까지 최대한 많은 목소리 담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나다.. 모두들 가벼운 마음에 이름 석자 남겨주시면 작은 의미나마 어른부터 막내까지 같은 곳에 같은 아니면 혹은 다를지 모를 우리 서화회에 대한 애정이 섞여 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글쓰는게 어색할지 싶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또한 같이 선후배가 어우러질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라 생각들고요..
암튼 아직 열흘 남았으니까.. 많이 동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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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지 수고가 많으니...시작해놓고 보니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하니...이런 방법도 더불어 고려해 보게나... 이전게시판 글들 중에서도 따다 쓸 게 많을 것이네... 소생이 한 예를 보여 보겠네... 이전게시판2의 345번 글에서 따온 것이네... 설근희 동지의 글이지...
설근희(간호92)
지나온 저의 삶 속에서 고대서화회가 자리잡고 있는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듯합니다. 저의 고독을 달래줄 수 있는 그리운 고향인 셈이지요. 지금은 비롯 한국을 떠나와 있지만 언젠가 돌아갈 나의 고향을 늘 그리며 살고 있답니다. 이 또한 저뿐만아닌 여러분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모든 서화회 선후배님, 사랑합니다!! 볼티모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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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같습니다.. 적극 반영하지요 일단은 최대한 본인이 쓰는 글을 모아보도록 하고요.. 그리고 예전에 올린글중 좋은 귀절있으면 따 오겠습니다..
대신 제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으니 좋은 귀절있으면 퍼와 주세요.. (퍼 오실때 출처(게시판 위치,올린 시간, 올린이)도 같이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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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함께 지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호미회!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렵니다.
100주년 미전의 성공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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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질기도다.
삼십오년 동안을 비틀고,꼬고,땡겨도(곤드레~만드레~도 추가!) 끊어지지 않고... 더 끈적끈적 해 지는 ... 이 모임!
본관 4층 다락방에 둥지를 튼 후 노란집으로 옮기고.. 또 다시 이사 하면서.. 지금은 '호미 게시판'을 맴돌고 있는 동그라미들.. ^.^
끈적거리는 물감 탓 일까 ? 아니면 먹물 ? 아냐~ 그것만이 아니야..! '나그네 야그'와 '야그 속편'에 등장하는 야사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꺼야..! 아마도 그럴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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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용권 (금속 69)
아마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우리 동지들은 모두 그 기분 알 거야 어둡고 적막한 노란집 문을 밀고 들어 서면 막걸리 구성진 목소리로 부르던 노래
고독이 사무치는 외로움 속에 아련한 별빛 따라 님을 보냈소 슬픔이 강물 처럼 여울져 가는 . .
정말 그 시절은 못 잊을 날들이지 우리들의 젊음을 삭여 버린 노란 집 뻬치카 . . 그 곳에 우리의 젊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예술이 있고 . . 짙은 우정이 있고 . .
왠지 생각하면 조금 우울하기도 하지만 아마 저 세상에 가더라도 놓을 수 없는 끈끈한 정이 배어 있는 . .
누구나와 같이 나의 삶 속에 그리고 하루 하루의 나날에서 우리 서화회 그리고 우리 호미회는 커다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를 거야
정겨운 동지들 정말 고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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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의 그 시절은 왠지 모르게 어둡고 추웠다. 同人展을 준비하던 그 해 겨울 ... 殘雪이 남아있는 거리에는 시커먼 나무들이 서 있었으며, 찬 바람에 나뭇잎들만 이리 저리 뒹굴었다. 그러한 학교 앞 길을 얼마나 걷고 또 걸었던가? 하지만 당시의 우리들 마음은 순수했으며, 그림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강렬했다. 아직도 동인전 팸플릿에 쓰지 못했던 귀절이 떠오른다. "봄은 우리에게 당연한 봄이다." 그렇게 그렇게 ... 우리의 靑春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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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6에 직장 그만두고 오로지 판,검,변호사의 꿈을 꾸며 고대 법대 뺏지를 달았건만
청운의 꿍을 접게한 고대 서화회여 내청춘을 보상할 필요는 없다.
평생의 우정과 인연을 주었으니 나는 그대에게 빚을 젔노라.
사랑하는 사람들아, 사랑하는 사람들아! 나는 그대들과 함께 내 젊음에 감사하며 적포도주 가득히 축배를 드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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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가 서화회 얘길 하면 그게 뭐하는 써클이냐고 묻지요.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붓글과 서양화를 그리는 곳이라고 말하곤, 표정을 살피다가...이내. 후렴을 붙이지요. "서화회를 댕겼다고 모두 글씨를 왕희지처럼 쓰는 거 아니고, 모두 Vincent Van Gogh처럼 잘그리는 것 은 아니다"라고.... "그냥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말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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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대(화학74)
정말 보고 싶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가슴에 상사화가 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흘전 함평에 있는 용천사를 찾았지요.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꽃무릇 최대군락지'가 있는 곳이지요. '석산', '상사화'로 알려진 꽃입니다. 꽃은 잎을, 잎은 꽃을 보지 못해 서로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로 불립니다.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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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에 부어 마시는 막걸리,통금 후에 떼거리로 몰려가서 쑤셔 박혀자던 여관방...등에는 체질 상 적응하기 힘들었고, 있는 듯 없는 듯 변방에만 조용히 머물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영원히 낯설줄 알았는데...고려대학교는, 고대 서화회는 모든 것을 동화 시키는 펄펄 끓는 용광로였습니다. 진달래,개나리,백목련...우뚝 솟은 시계탑에서 흘러나오던 '새야새야 파랑새야~<지금은 아마 사라졌지?> 고연전의 짜릿함,아~아 다락방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들... 여전히 설레이고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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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교복에 교모에 뱃지달고 서화회선배님들의 막걸리심부름에 본관4층의 다락방에서 줄이 내려오면 총각집에서 사온 막걸리로 꽉찬 주전자 매달아드리고... 보고싶은 병옥,완순선배님.... 먹갈아드리고..... 시시때때로 굿판이 벌어지면 선배님들의 바이올린, 통기타연주를 듣는 것이 대학시절의 행복이었습니다. 교련반대데모,유신반대데모 ,10.15위수령은 다 잊혀져도 ....아니 잊혀지는 서화회... 그림 하나 그리지 못한 농부이지만 개교100주년기념미전을 같이 기뻐합니다. 내가 100년을 살아도 서화회,호미회사람들과의 만났음을 생각하는 것이 가잔 큰 행복입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님의 얼굴을 그리워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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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 고대개교 100주년 기념미전에 작품하나 내고 싶었는데..... 나의 게으름이여 후회한들 무엇하리.. (위 글귀에 호미회 석자가 들어있어요, 호미회 3행시라 할까나 ?) 내년도 미전을 위해 이제부터 준비하리라 마음먹으며 수고하신 선,후배님들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 4년간 정들었던 서화회는 26여년을 호미회로 살게했고 앞으로도 쭈욱 우리 오성(곽규숙, 서태혜, 이경미, 이연희, 정기안 이상 가나다순)들로 하여금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할 원동력일 것입니다. 여성의 감성이 호미회를, 고대를,국가를 키웁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