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제3절 일원상(一圓相)의 수행(修行)
70. 진리를 내면화하는 삶
진리처럼 만물을 두루 감싸 안고 우주살림을 하여도 '나'라는 흔적이 없듯이,
우리의 마음도 원래 그러니 내면화하자는 뜻이다.
아는 것을 넘어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이 마음속에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리함을 말한다.
달리 표현하면 진리를 내면화하여 인격이 되도록 하자는 의미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을 사회화된 말로 '비움'과 '마음다함'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반인과 수행하며 진리를 삶 속에 드리우는 데 효과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비움과 마음다함으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을 모두 드러내기에는 아쉽다.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이란 점에서 출발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원만구족하려면 최소한 비움은 되어야 한다.
내재된 열정이 은혜의 길로 가는 데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공무사하려면 최소한 마음다함이 되어야 한다.
은혜 창출에 바탕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이 비움과 마음다함이 내면화되면
잠자다 일어나거나 길가다 누가 툭 건드릴지라도 생각이 아닌 동물적 반응으로 나온다.
평소에 그럴싸한 이야기로 감동을 주어도
예기치 않은 일에서 편협한 욕심이나 나태심이 나타난다면 인격화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내면화하는 방법으로 우선 마음 비움으로 존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생각과 감정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표면의식부터 비우는 것이 좋다.
사물과 사람을 볼 때 관념을 내려놓고 바라보면 비움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수행을 좀 하면 진리 인식의 잣대로 접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잣대마저 놓아야 비워진다.
비움이 어렵다면 마음 평온함을 먼저 챙기는 것도 좋다.
마음을 비우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마음 평온함을 챙기면 자신이 그 동안 쌓고 경험한 평온함에는 이를 수 있다.
그 마음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수양이 된다.
하지만 깊은 비움을 느끼려면 좌선, 염불, 기도 등을 통해야 한다.
깊은 비움은 마음에 힘이 있어야 하는 만큼 마음 모으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는다.
힘이 생기면 마음을 고요히 단전기운에 걸면 심연에 빠져들 듯 선정에 든다.
특히 좌선은 비움의 깊이를 더해가며 느낄 수 있어 이해와 묘미가 깊다.
마음다함을 그 순간에 깨어있음으로 연습한다.
어느 정도 되면 작은 나를 넘어선 범주를 키워간다.
대산종사가 작은 배를 큰 배로 갈아타라고 하였듯이
전체 속에 개체를 유기체로 이해하고 그 개체가 전체를 품는 것처럼 마음을 가지면
어느덧 내 마음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느끼는 데 이른다.
시작이 어려우면
기도로써, 마음을 비워 존재하고
하늘 마음이 되어 만물을 덮어주고
땅 마음이 되어 만물을 실어줄 수 있도록 기원하면 마음의 싹이 틔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