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조 말엽의 기인 이종오는 자신이 저술한 ‘후흑학(厚黑學)’이라는 책에서
“중국의 역사상 영웅호걸로 불리는 자들이 난세를 평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두터운 낯가죽(면후·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心黑)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종오는 중국의 역대 인물 중 춘추시대에 활약한 월왕 구천(句踐)을 후흑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고 있다. 낮에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오왕 부차(夫差)를 섬기다가도
밤이면 땔나무와 지푸라기에 누워 쓰디쓴 쓸개를 씹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통해
결국 부차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천하의 패권을 차지한 인물이 바로 구천이다.
구천은 회계싸움에서 패한 뒤 스스로 오왕 부차의 신하가 되었으며
그의 처는 부차의 첩이 됐다. 후흑학에 따르면,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면후’다.
훗날 구천은 와신상담 끝에 오나라를 깨뜨렸다.
부차는 사람을 보내 통곡하며, 자신은 신하가 되고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빌었지만
구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심흑’이다.
구천의 이 같은 행보는 세계 최빈국이었던 중국이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아래서
실력을 길러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Group of 2)로 떠오른 과정과 비슷하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힘을 길러온 중국이 최근 항공모함을 건조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은 ‘칼날의 빛을 칼집 속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라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요즘 국내외 정세를 보면, 중국은 동북공정 및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내세우며
한국을 위협하고 있고 일본은 재난을 지원해 준 은혜는 도외시한 채 독도도발로
실리를 챙기려는 형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궁색한 형편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대의나 명분만을 내세워 성난 얼굴로 상대를 몰아세우기보다는
‘면후심흑’의 묘리를 활용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얼굴 두껍고 속이 검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이 남긴 발자취 !!
중국 청(淸)나라는 1616년 여진족(女眞族만주족) 누르하치(Nurhachi 努爾哈赤)가
후금(後金)이라는 이름으로 건국해서 그 아들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愛新覺羅皇太極)가 청(淸 청 태종)으로 나라 이름을 바꿔 1912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였다.
인조의 병자호란(丙子胡亂)때 홍타이지(皇太極)가 직접 와서 지금 롯데월드타워가
있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인조(仁祖)의 항복을 직접 받았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머리를 땅에 찧고
9번 머리를 조아리다
1911년 손문(孫文)이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淸)나라의
296년 역사는 끝났다.
청(淸)나라가 망할 무렵 리쭝우(李宗吾)라는 청나라 학자가 “후흑학(厚黑學)”이라는
책을 내놨다.
얼굴 두껍고(面厚) 속이 검은(心黑) 역사적 인물들을 연구한 내용이다.
※후흑학(厚黑學)-얼굴 두껍고 속이 검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약자다.
중국역사에서 낯 두껍기로는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가 1순위다
삼국지를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을 중심으로 읽는 사람이 있고
조조(曹操)를 중심으로 읽는 사람이 있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형주를 공격하였다.
이 일로 유비 군은 조조 군과 유표 군에게 협공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유비는 급히 달아나면서 장판파에서 크게 패하였다
다급한 유비는 아내와 자식까지 버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이로 인해 유비는 “자식과 아내를 버린 비열한 인간”이라고 조롱을 받는다.
익주목사 유언(劉焉)의 아들 유장(劉璋)은 어리석고 나약하여 촉(蜀)을 능히 다스리지 못했다.
접경 지역의 장노가 촉(蜀)을 치자 여러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비(劉備)에게
구원을 청하여 유비를 끌어들였다가 오히려 촉(蜀)을 유비에게 빼앗긴다.
이를 두고 유비는 족하의 땅을 빼앗는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인간이란 말을 듣는다.
뱃속 검기는 조조(曹操)가 대표적이다.
조조는 곤궁에 처해 쫒기어 다닐 때 아버지의 친구인 여백사 집에 들렸다가
자신의 행적이 탄로 날까 하여 여백사를 죽인다.
자기가 위험해지면 은인(恩人)도 가차 없이 죽이는 자가 조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