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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에 해당하는데 상원일수도
중요사건이 잘 발생한다.
1974년
8월 9일 - 워터게이트 사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사임하고 부통령 제럴드 포드가 38대 대통령으로 취임. 이로써 워터게이트 사건은 종결되었다.
8월 15일 - 육영수 저격사건, 광복절 기념행사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다 부인 육영수 여사를 피격·살해한 사건이 발생.
18세의 박근혜가 충격을 받고 최태민을 만나는 계기가 되다.
8월 22일 - 신민당, 당수에 김영삼 의원 선출.
8월 23일 -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1호, 4호 해제.
9월 4일 - 미국,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 국교수립.
60년전 제1차세계대전 본격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비극적인 해이다. 이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던 1871년 시작된 벨 에포크 시대가 막을 내린다. 조선총독부 통치 하의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제가 부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여 여러 군과 면이 통폐합되어 사라졌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명칭과 영역의 기반이 되었다
1614년
스페인 모리스코 종교재판으로 지적상인 유출로 쇠퇴하기 시작
4월 5일 존 롤프와 포카 혼타스, 결혼
10월 에도막부가 도요토미씨을 공격해 멸망시킨 오사카 전투가 개시되다.
이수광이 《지봉유설》쓴다
조선 선조의 막내아들 영창대군이 성급한 북인세력으로인해 죽이니 후일 반정의 빌미가 된다.
71년전 을사사화,110년전 갑자사화로 사림위축
68년전 스페인 펠리페2세 즉위.
스페인 안트베르펜 군인들 반란
60년전 상파울루가 건설되었다
주세붕사망.김시민탄생
장현광탄생
50년전 사망한 페르디난트 1세는 근세 이후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중부 유럽을 호령한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 가문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다
막시밀리안 2세 등극.
40년전 샤를 9세사망.프랑스 왕국의 국왕.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 3세 즉위
25년전 스페인 남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인구 절반이 준다.화란으로 이동.
앙리 3세뒤를 이어 매부였던 앙리 드 부르봉이 즉위해서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되었다
20년전 당항포해전
10년전 초신성폭발
10년후 1624년 이괄의 난이 발생하다.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의 저항을 물리치고 타이완 섬남부에 거점을 마련하였다.
20년후 영국령 아메리카에서 메릴랜드 식민지가 성립되었다
30년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는 베이징에 입성하여 중국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40년후 계갑대기근.인조에 이어 효종4~5년차에 대기근발생.
이은 현종 1~2년.11~12년차도 대기근.
갑술환국 다음1~2년차도 대기근발생한다.
백두산폭발
50년후 목성의 대적반이 처음 발견되었다
프랑스 동인도 회사, 프랑스 서인도 회사 설립
60년후 갑인예송으로 숙종이 서인대신 남인을 중용한다.
그것도 잠시 66년후에 경신대출척,75년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위축되고
114년후 영조가 소론제거하고 192년후 시파제거
1254년
독일은 대공위시대가 됨.
최자가 《보한집》을 완성하다.
몽골의 고려6차침입이 전국토가 피바다가 된다.
고종 41년(1254)부터 전개된 6차 침입은 몽고는 사신을 보내와 최항을 비롯한 고려정부의 완전한 개경환도를 요구하고 동시에 차릴타이가 홍복원을 향도로 하여 고려를 유린 다른 어느 때 보다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던 기간이었으며 피해 횟수 또한 많았다. 이 기간동안 몽고는 주력부대를 경상도 남단과 전라도의 남단에 이르기까지 번갈아 오르내림으로써 강화도 정부를 혼란에 빠뜨렸다.
60년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의 몸값을 받고 그를 석방시켰다.
3월 10일 - 라이 인근의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마지막 술탄 토그릴 3세가 호라즘 왕조의 술탄 알라 웃딘 테키시와의 싸움에서 전사하여 하마단인근에 남아있던 셀주크 제국이 멸망하였다
50년전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나코 절벽 전투에서 몽골군이 나이만 - 자다란 군대를 대파하고 구르베수를 사로잡았다.
몽골 군이 메르키트를 공격하였다.
테오도루스 1세가 니케아 제국을 건국하였다
40년전 금선종이 금나라의 수도를 중도에서 남경 개봉부로 옮겼다
- 부빈 전투에서 필리프 2세의 프랑스 왕국군이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4세와 잉글랜드의 존 왕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부뱅 전투)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8세가 안달루시아의 베이자를 포위하였으나 이베리아 반도를 덮친 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철수하였다.
30년전 제국 군대가 5차 탕구트 원정을 감행하여 서하의 수도인 흥경 (인촨)을 포위하였다.
서하의 헌종 이덕왕이 몽골에 항복하고 인질을
바치는 대가로 국가를 보전하였다.
남송과 금나라가 화의에 합의
20년전 금멸망.몽고3차침입
10년후 몽골 제국군이 사할린을 침공하였다.
독일의 튀링겐 계승 전쟁이 종결되었고 헤센 주가 튀링겐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유주가 되었다
20년후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전함 900척과 병사 3만 5천으로 구성된 여몽연합군이 합포를 출항하며 제 1차 일본 원정이 시작되었다.
30년후 원나라 군대가 버마의 뜨가웅을 함락한 후 남하하여 한린을 포위하였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알 만수르 칼라운이 예루살렘 왕국과 정전 협정을 맺었다. (1290년에 어긴다.)
노가이 칸이 이끄는 킵차크 한국이 두번째로 헝가리를 공격하였다.
40년후 테무르 칸이 원성종으로 즉위하였다.
제노바 공화국와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2차 제노바 전쟁이 발발하였다.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간의 동맹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4세가 서로에게 선전포고 하였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의 꼭두각시 왕 존에게 프랑스와의 전쟁에 종군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스코트 - 프랑스 동맹, 독립 전쟁의 발단)
50년후 1304년 충렬왕 국학에 대성전이 완성되다
원나라와 여러 칸국들이 화의를 맺어 몽골 울루스의 내전이 종결되었다.
60년후 - 루이 10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고
독일은 2명의 신성로마황제가 따로 임명됨.
충숙왕원년.원인종원년
894년
진성여왕 8년 신라, 최치원이 <시무10여조>를 올리니 왕이 이를 가납하고 아찬으로 삼았으나 이미 해가 기울어 888년부터 견훤이 무진주에 자기군영을 갗추고 양길등이 독자세력화 했다.
10월 궁예가 북원으로부터 하슬라(何瑟羅, 강릉)에 들어갔는데 무리가 600여 명으로 자칭 장군(將軍)이라 함.
60년전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못하고 골품별 소비재사용의 법적 제한을 만든 834년은 그 유명한 장보고와 청해진의 전성기로, 해외무역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50년전 루트비히 2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용주사가 창건되었다.호리크 1세 : 데인족의 왕사망
30년전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보리스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일 3세를 대부로 삼고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였다.
10년후 후고구려의 왕 궁예가 국호를 후고구려에서 마진으로 변경하였다.
20년후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갈리시아의 오르도뇨 2세가 레온 왕국의 왕도 겸하게 되며, 레온 - 갈리시아 왕국의 판도는 코임브라 백작령, 포르투 백작령,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을 포함하게 된다. 이 동군연합은 10여년간 지속된다.
30년후 - 마자르족들이 이탈리아의 도시 파비아를 불태웠다.
기나라가 멸망하였다
1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 시메온이 라쉬카 (세르비아)를 점령하였다. 세르바아는 930년에야 재차 독립한다
40년후 맹지상이 후촉을 건국하고 후촉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운주 전투에서 유금필의 맹활약으로 고려가 또다시 후백제에 승리하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로 넘어감으로써 서부 전선에서도 고려의 우위가 굳어지다. 이후 후백제는 기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50년후 944년 광평시랑 한현규와 예빈경 김염을 진(晋)나라에 보내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알리고 거란족을 쳐부순 것을 하례하였다.
이복 동생 왕요와 왕소가 왕위에 도전하고 있음을 눈치챈 왕규(王規)는 945년(혜종 2) 이 사실을 알렸다
60년후 후주의 초대 황제인 곽위가 죽고 시영이 2대 황제로 즉위하다. 이는 곽위의 일족이 후한의 은제 유승우에게 몰살당했기 때문에 곽위가 시영을 후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534년 신라 진흥왕이 태어날 무렵.중국 북위가 동·서로 분리되었다.
534년 북위의 승상 고환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한 효무제는 관중의 장안으로 도망쳐 당시 관서 대도독이었던 우문태의 보호를 받았다.
이로 인해 북위는 동서로 분열했다. 고환은 업에서 효정제를 옹립하여 동위가 되었고, 우문태가 문제를 옹립하여 서위가 되었다. 이 때 우문태는 서위의 승상으로 승진했다.
534년에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興輪寺)가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 기원사(祇園寺) 등의 불사가 이어졌다.
테오다하드가 동고트 왕국의 제3대 국왕이 되다.
반달 왕국 멸망
파푸아 산에서 저항하던 겔리메르가 비잔틴 제국에게 항복하며 반달 왕국이 멸망하였다
톨레도가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60년전 율리우스 네포스가 포르투스에 도착하여 군대를 이끌고 라벤나에 입성하여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글리케리우스를 퇴위, 유배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동로마도 황제바뀜.
개로왕 전사
50년전 알라리크 2세가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발라시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40년전 동부여가 고구려에 합병되었다.
룽먼 석굴이 착공되었다.
북위의 효문제가 다퉁에서 뤄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30년전
동고트 왕국군이 베오그라드를 약탈하였다.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이 건설되었다.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다
20년전 법흥왕 즉위
10년후 베트남에서 이남제에 의해서 전 레 왕조가 세워졌다.
비잔티움 제국의 베살리우스 장군이 오트란토를 공격하던 토틸라 왕의 동고트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20년후 관산성 전투 : 백제의 왕 성왕이 백제군을 이끌고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군에게 패배고 전사하였다.
- 볼투르노 강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프랑크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티베리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김유신어머니 만명부인탄생.
50년후 진평왕 584년까지 조모(할머니)인 사도왕후 박씨가 섭정을 맡았다
174년 엘레우테리오가 13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60년전 트라야누스 개선문이 완공되었다
51년전 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40년전 빌라 아드리아나가 완공되었다.
일성 이사금이 신라 7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 충제(후한)가 2살의 나이로 후한 제9대 황제가 되었다.
제방(堤防)을 수축하고 전야(田野)를 넓게 개간하도록 명하였으며, 백성들이 금은주옥(金銀珠玉)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20년전 아달라이사금 즉위
9년전 길선의 백제도주후 백제와의 평화가 깨짐.
10년후 황건적의 난
석씨왕 벌휴이사금즉위
20년후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가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제2차 이소스 전투 : 이소스 평원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이끄는 군대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후 조조가 업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40년후 초고왕이 진과에게 명하여 군사 1천을 이끌고 말갈의 석문성을 공격하여 취하도록 하였다.
- 구수왕이 백제 6대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헌제황후 복씨와 그 일가를 모두 처형하였다
기원전 187년안티오코스 3세죽고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 즉위
메대를 병합하는데 성공한 페르샤의 고레스 대왕은 기원전 547년 소아시아의 부국(富國)인 리디아(Lydia)를 먼저친다
bc547년, 리디아의 왕인 크로이소스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한다.키루스는 리디아에서 가는 곳마다 승리했고, 결국에는 크로이소스를 포로로 잡고 리디아를 점령한다.
기원전 907년에 뤼페안(Luqpean) : 이온제국 초대 황제침대 위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잠들었다....
B.C 2347년순이'천자(天子)'로 대 행하다
좀다른 중원갑자
1794년
이란 카자르왕조 개창
2월 4일 - 프랑스 혁명: 프랑스 공화국이 노예 제도 폐지를 선언.
4월 5일 - 조르주 당통이 처형되다.
5월 8일 -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처형되다.
6월 23일 -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가 유대인들에게 키에프 거주허가를 하다.
7월 26일 - 공회 의원들이 로베스피에르에게 대항하다.
7월 27일 -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 로베스피에르가 쫓겨나다.
7월 28일 -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다.
60년전 프로이센 왕국의 작곡가 바흐에 의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작곡되었다.
대영제국의 시인 포프가 인간론을 출판하였다.
50년전 툴롱 해전이 발발, 프랑스-스페인 연합해군이 영국 해군을 격파(!)
- 예카테리나 대제가 표트르 3세와의 결혼을 위하여 러시아 정교로 개종.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이 프라하를 함락.
40년전 프렌치 인디언 전쟁
- 영국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주먼빌 글렌 전투가 발생하였다.
-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항복하다. 프랑스군은 기사도에 입각하여 영국군을 석방시키다.
30년전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고구마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래되다.
영국의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발명하였다.
북사르전투에서 영국 군이 벵갈 군대를 격파하였다
20년전 미국독립전쟁
6년후 노론벽파 집권
10년후 이운규탄생.120년후 최제우 탄생
20년후 - 대 프랑스 동맹군이 파리를 점령하다.
- 루이 16세의 동생이 왕위에 추대되면서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다.
30년후 영국 네덜란드가 협정을 맺어 네덜란드는 보르네오 남부와 자바 섬 북부 (아체) 를, 영국은 믈라카를 지배하기로 하였다. (2년 후 시행)
-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샤를 10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다.
40년후 독일 연방 가맹국 사이에서 관세동맹(Zollverein)이 체결되다.
헌종이 조선의 24대 국왕으로 즉위하다
50년후 1844년 나폴레옹하 장군이었던 칼 14세 요한 사망하여 아들이 스웨덴왕 즉위
60년후 프랑스 제2제국과 영국이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하다. 크림전쟁이 발발하다
77년후 보불전쟁이 끝니고야 서유럽전쟁 종료.
1434년
장영실이 세계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제작했다.이천, 김조가 앙부일구를 제작했다.
60년전 최영이 제주도를 공격해 원(元)의 목호 세력을 진압함(목호의 난)
자제위(子弟衛) 홍륜과 최만생이 개혁군주 고려 공민왕을 살해함.
50년전 야드비가가 폴란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카라 무함마드가 흑양 왕조의 군주로 즉위하였다.
명 홍무제가 과거제를 정비하였다.
명나라에서 서안종루가 건립되었다
40년전 조선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다.
한양에 경복궁과 종묘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위협을 느낀 보스니아 왕국이 헝가리 왕국에 자발적으로 복속하였다.
오스만 제국군이 아나돌루 히사르를 건설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 1402년)
30년전 토리노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20년전 지기스문트가 제창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가 남독일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에 소집한 기독교의 공의회인 콘스탄츠 공의회가 시작되었다
.
10년후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폴란드군 간에 바르나 전투가 발발하였다.
역서 칠정산이 편찬되었다.
전세제도인 공법이 실시되었다.
20년후 로디 조약이 체결되어 피렌체, 나폴리, 밀라노 간의 분쟁이 종식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를 공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되었다.
30년후 1464년 메디치가 코지모가 사망하자 피렌체 당국은 조례를 통해 그에게 “국부(國父, 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생전에 좋아하였던 고대 로마의 시인 키케로에게 부여되었던 영예로운 호칭이기도 하였다.
세조 10년(1464년)에 마지막으로 환구단 제사를 지내고 중단
40년후 부르고뉴 공작과 프랑스 왕 사이에서 부르고뉴 전쟁이 발발하였다.
조선시대 오례의 예법, 절차에 관해 기록한 책인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다
50년후 포르투갈에서 지원을 끌어내는 데에 실패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에스파냐로의 여정을 떠나 이듬해에 도달한다.
조선성종 경국대전편찬
60년후 메디치 가문이 플로렌스의 지배자가 되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으로 인해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는 전부 에스파냐가 차지하게 된다. 지금의 브라질의 해안가 지역은 기준선의 동쪽에 있었기에, 기준선 동쪽의 땅에 대한 권리를 얻은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차지했다.
1074년 희녕 7년 허베이에 큰 가뭄이 발생하자 구법파는 이것을 신법을 대상으로 한 하늘의 분노로 상소하여 당시 구법파의 배경이었던 황태후와 내시 그리고 구법파 관료들이 지속으로 퇴진 운동하자 신종도 왕안석을 사세부득이 해임하여 왕안석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일 7세가 정교와 가톨릭 간의 통합을 약속하며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60년전 강동6주 반환이 거절당하자 거란군이 압록강에 다리를 놓고 도하하여 고려 영토에 보주성 (현재의 의주)을 쌓았다. 이후 궁구문, 우정 등의 군사 시설과 매매원, 각장 등 시장을 설치하였다.
하인리히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노르망디에 피신해 있던 애설레드 2세가 잉글랜드로 복귀하였다.
스벤 1세가 급사하자, 그의 아들 크누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콘라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며 잘리어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렘노스 섬 전투에서 비잔틴 군대가 에게 해로 쇄도하던 키예프 루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시리아 지방의 미르다스 왕조가 파티마 왕조로부터 자치를 획득하였다.
중국 송나라의 사천 일대에서 세계 최초의 지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40년전 조이의 노력으로 그녀의 남편이 미하일 4세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레온 왕국이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은 레온 속국 신세로 독립)
포르투갈 백작이 코임브라 인근을 점령하였다.
30년전 고려에서 북방 민족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한 천리장성을 완공하였다.
송과 서하 간에 경력의 화의가 성립되었다.
송나라를 대표하는 병법서이자 세계 최초로 화약의 제조술이 기록된 무경총요가 완성되었다
20년전 초신성 폭발
.
10년후 셀주크 제국이 안티오크를 점령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의 주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20년후 레몽 4세가 툴루즈 백작으로 즉위하였다.
송철종이 신법을 전면 부활시켰다.
- 도널드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하란 전투에서 아르투크 왕조의 소크만이 지휘한 셀주크 제국군이 안티오키아 공국과 에데사 백국의 십자군을 격파하여 에데사 백국의 군주 보두앵 2세를 포로로 만들었다. 이후 탕크레드가 에데사 백국의 섭정이 된다.
- 알폰소 1세가 아라곤 왕국과 나바라 왕국의 왕이 되었다.
톡테킨이 다마스쿠스의 에미르가 되어 부리 왕조가 세워졌다. (셀주크 제국의 봉신)
40년후 여진족 연맹장 완안아구타가 거란에 선전포고 하였다-출하점전투
여진의 아쿠타가 맹안모극제를 제정하였다.
고려 예종의 요청으로 송나라가 황실 악기를 보내주었다
50년후 1124년 고려 인종 이자겸은 다른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될 경우 외척 세력이 자신에게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하여 1124년에는 셋째 딸을, 이듬해에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비로 삼게 했다
60년후 한중 지방으로 쳐들어온 금나라 군이 선인관 전투에서 남송 군대에 대패하였다
야율대석이 동 카라한 왕조를 격파하고 발라사군에 입성하여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714년에는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에브로 강까지 도달하였다. 아브드 알 아지즈는 에보라, 산타렘, 코임브라를 함락하며 포르투갈 중심부 (타호 강 유역) 를 점령하였다.
60년전 신라 제 29대 왕 태종무열왕이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 왕가의 성골 가계가 끊어지고 진골들의 왕위 세습이 시작되었다.
아르메니아 전역이 이슬람(정통 칼리파 정권)의 치하로 들어갔다.
50년전 사비성에서 일어난 백제 유민들의 백제 부흥 운동이 진압되었다.
40년전 안압지가 축조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10년후 무슬림 세력이 비잔티움 제국이 다스리는 발레아레스 제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습격하였다
20년후 프랑크 왕국군이 프리시아족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후 야지드 3세가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가 되었다.
위구르족이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건국하였다.
40년후 알만수르가 아바스 왕조 제 2대 칼리프가 되었다.
당나라의 승려 감진이 일본에 설탕을 소개하였다.
피핀 3세의 프랑크 왕국군이 롬바르디아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49년후 당대종 763년, 토번의 장수 다짜뤼공(達扎樂宮)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장안을 11일간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수모를 당함
60년후 카롤루스 대제가 롬바르디아 왕국을 정복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는 8만명의 병력을 소집하여 베르지티아의 불가리아군을 습격하여 승리하였다.
354년훈족과 알란족의 전쟁이 끝나다. 352년부터 전쟁하였다.
동진(東晉)의 환온(桓溫)이 은호(殷浩)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전진을 공격하여 장안 근처까지 진군했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60년전 왜군이 신라의 장봉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50년전 백제에서 군사를 보내어 낙랑군의 서쪽 현을 빼앗았다.
분서왕이 낙랑의 자객에게 살해당하고, 비류왕이 백제 11대 국왕이 되었다.
성한이 건국되고 이웅이 성한 제 1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로마 제국의 내전 중 하나로서, 키발라이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군이 리키니우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대방군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였다.
2년후 석씨대신 김씨 내물왕등극
10년후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동생인 발렌스에게 로마 제국 동부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왜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20년후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었다
30년후 고국양왕이 고구려 제18대 국왕이 되었다.
침류왕이 백제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였다
40년후 후연의 모용수가 서연을 멸망시켰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수곡성에서 백제의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장수왕탄생.
전진의 황제인 부등이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원군을 청하였으나 요흥의 군대가 먼저 도착하여 부등의 군대를 격퇴하였고, 부등은 살해되었다. 이후 부등의 장자인 부숭이 황제에 오르지만 걸복건귀의 군사에게 쫓겨나 땅을 빼앗긴다. 부숭은 구지의 양정에게 신세를 졌으나 구지의 양정이 걸복건귀에게 졌고, 그도 이 때 같이 죽으면서 전진은 멸망했다
프리기두스 강에서 테오도시우스 1세의 군대가 유게니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고, 유게니우스는 처형당하였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훈족이 다뉴브 강을 넘어 고트족 마을들을 약탈, 파괴하였다.
50년후 404년
고구려가 후연을 쳐서 유주(허베이)를 함락시켰다
60년후 장수왕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BC7년 봄 밤하늘에 목성이 금성으로 근접하는 현상이 당시의 점성가들 눈에 잡혔다
BC 367년 디오니시오스 1세가 죽자, 디온은 왕위를 계승한 디오니시오스 2세
아리스토텔레스 프로크세노스가 후견인이 되었고, 프로크세노스는 BC 367년 그를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보냈습니다
BC.367년에 성립한 리키니우스法으로 백년 간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해소되었다
아시리아의 내부 혼란은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재위 BC 744년 ~ BC 727년)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왕위에 오르면서 수습되기 시작한다
BC 727년 아시리아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원래 이름 '울룰라유(Ululayu)'를 '샬마네세르'로 개명하였다. 그의
BC 1087년 안드로클로스(Androclus)가 거느린 이오니아인이 아테네로부터 와서 이오니아의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투트모세 3세의 원정은 계속되어, 아프리카의 뉴비니아에서 아시아의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하였다.BC 1447년 그가 죽을 무렵, 이집트 제국은 영토와 부의 규모에 있어 역대 최고에 달함.
BC 1447년경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를 중심으로 하여 이집트를 벗어나 시나이 사막을 횡단하여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