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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하원갑자엔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로 바뀐다.바이킹이 프앙스에 국가를 세운다.타지마할 건설시작
음하원갑자엔 소수림왕,문종 등 문치주의임금 등극,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으니 조선정권이 바꿨어야 했다.
그리고 목기운을 수렴하고 다음간지 申을 관대하기에 금기운이 엄청 강하다. 신유처럼 멈취있는 것보다 더 강하게 행동한다.
물론 성격이 아니면 잘난척하고자 한다.
하원갑자(신금)
1991년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 지방선거가 다시 시행되었다.
6월 12일 -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다.
8월 19일 - 소련의 보수파들이 8월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연금하다. (~21일)
9월 17일 -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엔에 가입하다.
년말 소비에트가 붕괴된다,
60년전 장개석이 30만대군으로 공산당토벌에 나섬.
일본이 만주 침략.만주사변터짐.
우가키 가즈시게총독은 1931년에 예편과 동시에 또다시 사이토 마코토의 후임으로 조선 총독에 부임했다. 취임 직후 그는 무단통치 대신 문치를 내세워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 농촌진흥운동을 추진하였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전후 조선의 인력을 식량증산과 대륙침략전쟁에 총동원하였다. 또한 최남선, 윤치호, 이광수 등 조선의 지식인들에 대한 회유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한인애국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령 김구(金九)가 한중 우의(韓中友誼)와 일본 수뇌암살을 목적으로 1931년 조직하였다.
간부는 단장인 김구를 비롯해 이유필(李裕弼)·이수봉(李秀峰)·김석(金皙)·안공근(安恭根) 등이며, 단원은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이덕주(李德柱)·유진만(兪鎭萬)·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 등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창립, 안창호, 조소앙 등은 조선혁명당 창립
한국독립당의 당군인 한국독립군은
북만주에서 중국군과 연합군을 편성하여 항일전투를 전개하는 동안 남만주에서는 조선혁명당 예하의 조선혁명군이 별도로 한·중연합으로 작전을 수립하고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931년 일제가 9·18사변을 일으키자 조선혁명당은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김학규(金學奎)·김이대(金履大)를 당대표로 하여 중국 당국과 협의하였다.
국민당내 백색테러집단 남의사결성
1931년 오성륜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판스현위의 무장조직인 적위대(赤衛隊)를 결성하였는데, 후에 동북항일연군의 모태가 되었다.
김일성활동시작,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는 해체되고 잔존병인 세화군(世火軍)은 5월 3일에 동방혁명군(東方革命軍)으로 개칭하였으나, 이후 내분이 일어나고, 최창걸도 1931년 11월 조선혁명군에 사살되어 소멸한다.이때 군정위원으로 활동하다 양세봉부대에게 사살될뻔함.
김일성이 다시 나서는것은 1933년부터이다.
한국 독립당은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들어서자 1931년 12월에는 1931년 12월 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이 지린성 자위군 총지휘관 딩차오(丁超)와 만나 연합 전선을 결성할 것을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중국 하얼빈의 호로군(護路軍)과 한중 연합군을 결성한다.
48년전 독립운동 일본 관동군의 검문, 검속, 간도특설대 등의 토벌로 부대 전력이 극도로 약해짐.공산당은 만주를떠나 소련으로 이주
100만명에 이르던 관동군은 1943년 가을 이후에는 전력을 동남아시아를 위시한 남방 전선으로 이동하게 되어 만주의 전력이 약화됐다
지청천 광복군총사령이 주인도 영국군 몬트비튼 대장과 군사상호협정 체결
조선총독부, 해군 지원병 모집요강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는 대한민국의 독립 필요성을 인정받았고, 미국 의회에 의한 승인을 받기도 했다.
1943년 이후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이 미국의 적대 세력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결코 방관할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커밍스가 분석.
36년전 소련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 바르샤바 조약 기구 설립. 제1차 수단 내전 시작. 제1차 타이완 해협 위기 종결. 반물질이 최초로 인공적으로 생성됨. 중앙 조약 기구 설립
24년전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어,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2위는 윤보선 후보.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사실상 승리,
12년전 한국 100억불 수출달성
1631년 9월 17일 -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이끄는 스웨덴군이 교황군을 격파하다.
인도의 아그라에 타지 마할 건축 시작.
임란 선봉장 카토 기요마사탄생. 박새채탄생
60년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레판토 해전이 발발하여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다
필리핀에 마닐라가 건설된다
케플러탄생. 이황,남명조식 사망
48년전 율곡 이이 십만양병설 주장 • 니탕개의 난, 신립 여진 물리침
누르하치 복수다짐
36년전 1594~1595년으로 추정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한여름밤의 꿈을 저술했다
누르하치 대명복수 다짐
24년전 영국이 아메리카에서 영국 최초로 성공하게 될 식민지(제임스타운 거주지)를 세웠다.
조선 통신사 파견
12년전 영국이 인도에서 첫 식민지 점령
- 명나라를 원호하러 간 조선의 무신 강홍립이 후금군에 패하여 항복했다.
- 요하네스 케플러가 루터교와 결별하다
12년후 -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
- 30년 전쟁 후반 로크루아 전투에서 대(大)콩데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스페인군을 격파하다.
24년후 2차북방전쟁.스웨덴 폴란드침략
36년후
48년후 영국에서 인신보호법 공포.
무굴제국 제 6대 황제 아우랑제브에 의해 지즈야 부활.
남십자자리(남십자성)가 단독의 별자리로 설정된다.
비둘기자리가 큰개자리로부터 분리된다
60년후 미셸 롤에 의해서 롤의 정리가 증명되었다
과학자 로버트 보일사망
1271년 원 건국,여몽 연합군이 삼별초의 진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배중손과 승화후 온을 죽임.
9차 십자군이 아크레에 도착하였다. 에드워드는 일 칸국에 맘루크 협공을 요구하는 사신을 보냈다
쿠빌라이가 원제국이라 칭함
60년전 1211년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서요는 신나이만으로 개편되었다. 카슈가르를 함락시켜 동 카라한 왕조를 멸망시켰다
48년전 몽고보다 1223년5월, 왜구가 김해 지방에 침입하였다. (왜구에 관한 최초의 기록)
36년전 1235년 금을 멸망시킨 몽골 제국군이 남송에 대한 1차 침공을 가하였다. 몽골군이 사천을 공격하였다.
니케아 제국의 황제인 요한네스 3세 두카스가 불가리아 제2제국의 이반 아센 2세의 군대가 라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으나 장 드 브리엔느가 협상을 통해 2년간의 휴전을 얻어내었다.
24년전 1247년 바투 칸이 구유크 칸의 소환에 형제들을 대신 보냈다.
구유크 칸이 서방 원정을 준비하였다.
아폰수 3세가 포르투갈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12년전 1259년 - 몽골 제국의 몽케 칸이 남송 원정 중 사천의 조어성 전투 중에 사망하였다.
-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케아 제국군이 아카이아 공국 - 에페이로스 공국 - 시칠리아 왕국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루이 9세와 헨리 3세가 쌍방 간의 전쟁을 종결하고 잉글랜드가 플랜태저넷 왕조의 프랑스 내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프랑스의 잉글랜드 귀족파 지원을 멈춘다는 파리 조약이 맺어졌다.
킵차크 칸국의 속국인 노가이 칸국의 군대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공격하였다.
12년후 1283년 잉글랜드의 웨일즈 정복이 완료되었다
라인펠덴 조약으로 알브레히트 1세가 동생 루돌프 2세를 내치고 오스트리아 - 스트리아 공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
원나라 군대가 크메르 제국을 침공하였다. 앙코르의 왕 자야바르만 8세는 별다른 전투 없이 항복하여 원나라에 연공을 바치게 되었다.
원나라 군대가 참파의 수도 비자야를 함락하였다.
모스크바 대공국이 수립되었다.(키예프 루스의 해체)
24년후 1295년 일 칸국의 가잔 칸이 즉위하며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전비 충당을 위하여 각각 성직자에게 과세하였다. 이에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교황의 동의 없는 성직자 과세에 반발하며 필리프 4세의 프랑스 교회에 대한 과세를 금하였다. 이는 14년 후의 아비뇽 유수의 단초로 작용한다.
36년후 1307년 - 원무종이 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 에드워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 교황 클레멘스 5세가 구호기사단의 로도스소유를 인정하였다.
48년후 1319년 아라곤 왕국의 왕위계승자 하이메가 카스티야 공주와의 결혼과 계승권을 포기하고 출가하여 수도자의 길을 택하였다.
마그누스 에릭손이 3살의 나이로 노르웨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6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도시 니케아가 오스만 군대에게 함락되었다
고다이고 덴노의 반 막부 운동 소식이 측근에 의해 누설되면서 그는 호조씨에 의해 폐위되고 왕자가 고곤 덴노로 즉위하였다. (북조의 1대 덴노)
이후 동아시아에 왜구들이 들끊게된다.
911년
궁예가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으로 바꿈.
911년 궁예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는지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으로 바꾸고 연호도 '수덕만세'로 바꿉니다.
아직 나주에 남아있던 왕건은 군대를 그대로 북상시켜 무진주의 경내를 공략하러 출정합니다.
바이킹,노르망디 왕국 세움
프랑스의 왕 샤를 3세이 바이킹의 우두머리인 롤로와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을 맺었다
프랑크의 루트비히 4세, 동프랑크 왕국의 마지막 카롤링 가문의 왕사망
콘라트 1세선거로 즉위한 국왕인데다 마자르 족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해 그의 왕권은 취약했다,공식 직함을 동프랑크의 국왕이라 하였으나 이후 그의 왕국은 독일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60년전 팜플로나 공국,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
오토1세탄생.로타르1세의 중프랑크 위태
48년전 863년 동로마에서 파견한 키릴, 메토데이 형제가 모라비아에 도착하여 양국 간의 우호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에 동프랑크는 1차 불가리아 제국과 동맹하였다
36년전 875년 - 카를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 황소의 난이 발발하였다.
24년전 887년 베렌가리오 1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아르눌프 폰 케른텐이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선거에서 동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12년전 899년 대 에드워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12년후 후당의 공격으로 후량의 수도 카이펑이 함락되며 후량이 멸망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이 부르고스 넘어 이베리아 고원 중북부 점령, 세고비아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마드리드 근방)
24년후 935년후백제의 왕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유력한 왕위계승후보였던 아우 금강을 살해하였다. 이후 그는 후백제 제2대 왕으로 즉위하였다.금산사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견훤은 과거의 적국이었던 고려에 귀순하였다.
- 신라의 56대 왕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함으로써 신라가 56대 992년만에 멸망하였다
36년후 요나라군의 공격으로 오대십국시대의 후진이 멸망했다.
카이펑에서 유지원이 오대십국시대 후한을 건국한 뒤 후한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48년후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비잔틴콘스탄티노스 7세 사망
로마노스 2세의 즉위
60년후 비잔티움 제국군이 파티마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실리스트라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키예프 대공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진흥왕이 즉위한지 12년째 되는 551년, 나이는 18세였다. 왕은 나라의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꾸었다. '나라를 열었다'는 뜻이다. 본인이 어머니의 섭정 또는 이사부의 대리통치를 벗어나 직접 통치하겠다는 뜻이다.
그러자니 어머니 곁에 있는 권신 이사부를 밀어내야 했고, 두 번째 권력가인 거칠부와 가야 김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진흥왕은 전선에 나가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던 이사부를 경주로 불러들이고, 군권을 거칠부와 김무력 등에게 준다. 나아가 임금은 전투로 빼앗은 지역을 직접 순시하며(巡狩), 피정복 주민을 다독이는 정치행사를 가졌다.
진흥왕이 친정체제를 구축한 이후의 행적을 보면
12년 (551년)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꾸었다. 거칠부 등에게 명해 고구려를 침공케 해 10개 군을 취했다.
60년전 장수왕이후 손자 문자명왕이 고구려 21대 왕이 되었다
제노이 죽고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8년전 503년 신라의 지증왕이 명칭 '신라'를 공식 국호로 지정하고, 중국식 군주 호칭인 '왕(王)'호를 사용했다. 또한 순장제도를 폐지했고,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기위한 석빙고도 만들었다
36년전 귀정사가 창건되었다.
24년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삼촌(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뒤를 이어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의 왕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였다.
12년전 539년 벨리사리우스가 밀라노를 점령하였다.
프랑크 족이 동고트 왕국의 요청을 받아 리구리아를 공격.
벨리사리우스의 비잔틴 군이 수륙 양면으로 동고트 왕국의 수도인 라벤나를 포위 공격하였다. (~540년 5월)
12년후 563년아일랜드 출신 수도승인 성 콜룸바가 12명의 동료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오나 섬에 도착하여 선교의 본부로 삼을 수도원을 세웠다
24년후 575년 지게베르트 1세: 프랑크 왕국의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의 왕사망
진흥왕 죽기전해.
36년후 587년 앙델로 조약에 따라 힐데베르트 2세가 숙부 군트람의 양자가 되었다.
막하가한이 동돌궐 6대 가한이 되었다.
48년후 599년 금산사가 창건되었다.
신라의 고승 원광이 흥국사를 창건하였다
백제혜왕죽고 법왕즉위
60년후 샤흐르바라즈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안티오크를 점령하였다
191년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함.
동탁 토벌전(董卓討伐戰)은 190년~191년에 동탁과 동탁에 대항하여 연합군을 결성한 관동의 지방 세력 간의 싸움이다. 동탁이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며 공포 정치를 행하자 관동의 지방 세력들은 원소를 중심으로 연합군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연합군 대부분은 동탁과 싸우기를 꺼려 조조 · 위자 · 포신 · 왕광 · 손견만이 동탁과 교전을 벌였고, 동탁은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여 연합군의 예봉을 피했다. 손견이 여러 차례 이긴 데 힘입어 연합군은 낙양을 빼앗았으나 내홍이 일어나 분열되어 동맹은 결렬되고, 동탁이 주축이 된 후한 조정은 지방에 대한 통제를 잃었으며, 지방 세력의 할거 · 경쟁 구도로 바뀌었다. 정사에서 손견은 낙양의 우물에서 전국옥새를 발견했으나 이를 눈치챈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옥새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손견은 어쩔 수 없이 원술에게 옥새를 강탈당했다.
낙양(洛陽)에서 군사를 거둔 원소는 한복(韓馥)을 속여 기주(冀州)를 차지하고 이로 인해 북방의 강자 공손찬(公孫贊)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홀로 동탁을 쫓던 조조는 동탁의 장수 서영(徐榮)에 패해 산동(山東)으로 돌아간다. 황건적 잔당을 토벌하면서 아우른 병사들로 청주병(靑州兵)을 새로 조직하고 새로운 인재들을 받아들이니 이는 훗날 천하를 호령하게 될 조조의 힘의 근거가 된다. 원술(袁術)은 회남(淮南)에서 사사로이 칭제(稱帝)할 준비를 갖추고, 유표에게 원한을 갖게 된 손견은 결국 유표와의 싸움에서 전사하여 강동(江東)에는 손책(孫策)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황건의 잔당에게 시달리던 공융(孔融)을 도와준 계기로 도겸(陶謙)으로부터 서주(徐州)를 양보 받게 되는 유비(劉備)는 드디어 일방의 군웅으로 거듭난다. 천도한 장안성(長安城)에서는 왕윤(王允)이 여포(呂布)를 설득해 동탁을 죽이고 이각(李傕)과 곽사(郭汜)의 난정(亂政)으로 서량(西凉)의 마등(馬騰)과 익주(益州)의 유언(劉焉)이 장안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돌아간다. 이로써 본격적인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가 시작되고 삼국이 정립하기까지 수많은 싸움들이 벌어지게 된다.
48년전 143년 일성왕 말갈을 정벌하려다 중지하다
36년전 155년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아달라이사금 2년차
24년전 167년 - 신라의 지도자 아달라 이사금의 명을 받은 일길찬 흥선은 2만명의 보병을 이끌고 한수를 넘었고, 이에 백제가 두려워하여 화친을 청하고 사로잡았던 주민 1천명을 모두 돌려주었다.
12년전 179년 신대왕죽고 고국천왕이 고구려 9대 국왕이 되었다
12년후 203년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공격하여 그 수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손권의 무장인 능조, 서곤이 전사하고, 후방에서 산월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회군하였다.
- 말갈이 신라의 경계를 침범하다
24년후 215년 손권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위나라의 합비를 공격하였으나 장료, 악진, 이전이 이끄는 7천 군대에 패하고 퇴각하였다.
양평관에서 조조군이 장로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6년후 227년 동천왕이 고구려 11대 왕이 되었다.
위나라 상용에서 맹달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동방 원정을 떠나 호라즘, 시스탄을 정복하고 쿠샨 제국의 복속을 받아내었다. 그는 남방으로도 군대를 보내 바레인을 점령하였다
48년후 239년 조방이 위나라 제3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아브리투스에서 고트족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지휘하던 황제 데키우스와 그의 아들이 전사하였다. 데키우스 사후 그의 아들인 호스틸리아누스와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가 로마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호스틸리아누스는 전염병에 의해서 곧 사망하였다
bc170년 그라쿠스 형제의 부친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셈프로니아 바실리카를 세움.
60년후 전한의 황제 무제가 대외 원정으로 인해 소비되어진 국가 재정을 새로이 보충하기 위해 국가가 각 지방의 산물을 조세로 거두어들여 다른 지방에 운송, 판매하여 이익을 거두는 균수법과, 가격이 쌀 때 국가가 매입하였다가 가격이 비쌀 때 매입한 물건을 판매하여 이익을 거두는 평준법을 실시하였다.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가 스키타이인들을 격퇴하고 보스포루스를 장악하였다
60년전 로마의 상인들이 일리리아인들에게 살해당하자 로마는 일리리아로 대사를 보내 항의하려 했으나 일리리아의 지도자 테우타의 심기를 건드린 이들은 일리리아군에게 살해당하였고, 이에 로마는 테우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코르키라 섬을 점령하였다.
진나라가 한신의 한나라를 멸망시켰다.
bc 530년 페르시아캄비세스 2세선왕 키루스 대왕이 동쪽의 정벌에서 죽자 제국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고
하원갑자(인목)
1811년
네덜란드 나라없이 2년간 지배당함.
미국은 땅을 사들이고 다음해 영국과 전쟁. 미국최초은행 성립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던 1811년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벌어진다
조선은 홍경래의 난 일어나고
김이교(金履喬)의 조선 통신사가 쓰시마 섬을 방문.
이러한 일본의 발전상은 조선의 학문계에도 영향을 끼쳤고, 북학파의 거두인 박제가는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예로 들어 해외무역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학문적으로도 일본의 유학 사조인 고학(古學)의 연구성과가 조선에 들어와 정약용 등을 비롯한 실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 멕시코의 혁명군을 이끈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가 처형되었다.
60년전 택리지가 저술되다.
프랑스에서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주도 하에 백과전서 1권이 출판되다
미국인구 100만.
48년전 1763년 파리 조약을 통하여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종전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캐나다를 영국에게 할양하고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 할양해야 했다
- 7년 전쟁이 종전되었다.
36년전 1775년 - 패트릭 헨리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명연설을 하다.
- 렉싱턴 전투: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다
24년전 1787년 미합중국의 헌법이 탄생하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프라하에서 초연되다
12년전 1799년 건륭제 사망.장수하는 왕들 끝. 조지와싱턴 사망.
- 안개의 달 18일 쿠데타 발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1공화국의 총재 정부를 전복시키다.
알라스카 러시아땅으로 선언.
12년후 1823년 2일 - 미국의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의 영향력 행사를 거부하는 외교노선을 제창하다. 먼로 독트린의 시작.
24년후 1835년 - 페르디난트 1세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다.
- 멜버른 경이 로버트 필의 뒤를 이어 영국의 수상직에 오르다.
- 찰스 다윈을 태운 비글 호가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하다.
헬리 혜성이 지나가다
36년후 1847년 미국-멕시코 전쟁: 베라크루스에 미군 지상군이 상륙.
- 라이베리아가 독립을 쟁취하다
48년후 1859년 수에즈 운하가 착공되다.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발발.
-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받은 사르데냐 왕국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물리치고, 이탈리아 내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을 일소시키다
60년후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이 선포되고 빌헬름 1세가 통일 독일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다. 비스마르크가 초대총리
신미양요가 발발. 6월 10일 초지진 전투, 6월 11일광성보 전투. 전원사상
1451년 동로마를 2년후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가 즉위한다.세종다음 문왕이 즉위한다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실시
66년전 포르투갈 주앙1세 즉위.
60년전 토지 제도인 과전법이 만들어져 조선 전기 양반사회의 경제 기반을 이루게 된다.
고려기득층 몰락. 사학12도 폐지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세비야에서 유대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부주교 에르난 마르티네즈의 선동과 함께 4천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시나고그가 파괴되었고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학살이 일어났다
48년전 1403년 오스만 제국이 갈리폴리 조약을 체결, 비잔틴 제국의 실지를 반환하고 그 종주권을 인정하였다.얀 후스가 보헤미아에서 존 위클리프의 개혁을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후스파의 시작.
조지아 왕국이 티무르에게 복속하였다.
36년전 1415년 포르투갈 왕국, 엔리케 왕자의 지휘로 세우타 점령, 대항해시대의 개막.
24년전 1427년 아조레스 제도-북대서양 중부에 있는 포르투갈이 발견
12년전 1439년 아조레스 제도에 이주시작
12년후 1463년 동국지도가 완성되었다.
심경언해가 완성되었다.
홍문관이 신설되었다.
24년후 1475년 크림 반도에 위치한 제노바 공화국의 식민지 가자리아(Gazaria)가 오스만 제국에 함락.
- 크림 반도에 위치한 테오도로 공국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
36년후 1487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인도를 향해 출항하였다
48년후 1499년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아메리카 항해가 시작되었다
슈바벤 전쟁 : 스위스 연맹과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마지막 전쟁. 전자의 승리.
60년후 1511년 포르투갈이 믈라카와 호르무즈를 점령하였다.
우즈베크인의 나라인 히바 칸국이 건국되었다
1091년 - 노르만 군대가 시칠리아의 마지막 무슬림 거점이었던 노토를 함락, 시칠리아 정복을 완료하였다.
- 페체네그족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으나, 알렉시오스 1세의 비잔틴 군대에게 대패하였다. (레부니온 전투)
60년전 1031년 후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였다. 코르도바 토후국이 세워지고, 지브롤터 해협 일대는 세비아의 월경지가 돤다.
앙리 1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원호가 탕구트 족의 수장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48년전 1043년 셀주크 제국이 이란 북부 타바리스탄의 지여르 왕조를 격파하고 속국화 하였다.
경력변법
- 영국의 왕 참회왕 에드워드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 금성이 목성을 가리다.
36년전 1055년 셀주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함락시켜 부와이흐 왕조가 멸망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디난트 1세가 이베리아 고원 중부 일대의 무슬림과 동행한 크리스트 교도 세력을 공격, 세이스와 자모라를 점령하였다.
24년전 1067년 송신종이 북송 제 6대 황제에 즉위하였다
북송의 왕안석이 부패 청산 운동을 시작하였다
셀주크 제국이 카이세리를 점령하였다.
올라프 3세와 마그누스 2세가 노르웨이의 공동 국왕이 되었다.
12년전 1079년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 2세가 크라코프의 주교를 죽인 후 동생 블라디스와프 1세에게 양위한 후 헝가리로 피신하였다.
할스텐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12년후 1103년 보에몽 1세가 다니슈멘드 왕조로부터 석방되었다.
악비탄생
인도의 고아에서 대홍수가 일어났다
24년후 1115년 여진, 금나라 세움
36년후 1127년 금이 수도 개봉을 공격하였고 그로인해 휘종,흠종등의 많은 왕실의 사람들이 금에게 끌려가면서 북송 멸망.
6월,흠종의 동생인 고종이 강남 지역에 남송을 세움.
48년후 1139년 중국 하남에서 남송군이 금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크타피가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 대한 보호를 보장해 주었다.
보르고뉴출신 십자군이었던 아폰수 1세가 즉위하며 포르투갈 왕국이 건국되었다.
60년후 1151년 가즈니 전투에서 알라 알 딘이 이끈 구르 왕조 군대가 가즈니 왕조 군을 격파, 바흐람 샤를 포로로 잡고 도시에 방화하였다.
731년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48년전
36년전
24년전
12년전
12년후
24년후
36년후
48년후
60년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칸타브리아 일대의 우마이야 왕조 거점들을 점령하고 영토를 도우로 강 이남으로 확장하였다.
부르비아 강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아스투리아스 군대를 격파하고 갈리시아를 휩쓸었다
60년전 신라가 나당전쟁중에 당나라로 부터 사비성을 탈환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다
371년 고국원왕 백제에 전사
소수림왕 즉위하고 동진(東晉)의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이 사마혁(司馬奕)을 폐위시키고 사마욱(司馬昱)을 즉위시키다.
1년전 전연멸망 경쟁선비족인 탁발선비
탁발식이 죽고 탁발규탄생 6세에 대나라 망하나 16세에 북위세움
60년전
유총이 군대를 이끌고 서진의 도읍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서진의 황제 사마치를 사로잡았다. 황태자인 사마전을 포함한 3만명이 살해되었고, 낙양은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가 니코메디아에서 제국 내에서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는 칙을 공포하였다.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일단로마 제국 동방의 정제가 되었다.
48년전
36년전
24년전
12년전
12년후
24년후
36년후
48년후
6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에페소에서 에페소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2개의 본성인 인성과 신성이 서로 혼돈과 분리됨이 없이 일치를 이룬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네스토리우스파를 단죄하였다
11년 아우구스투스 말년이다
아르타바누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60년전 신라 남해차차웅탄생.
갈리아지역 일리시야에서 케사르는
부관 안토니우스의 공으로 베르긴갈틱스의 항복을 받아낸다.
48년전
36년전
24년전
12년전
12년후
24년후
36년후
48년후
60년후 로마군이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헤로디온 요새를 점령하였다
bc350년 연나라 상곡 공략,이후 전쟁 잦아짐
진나라 상앙의 2차 변법(變法) 실시로 120년후 한공략 10년통일전쟁의 기초를 다진다.
60년후 삼니움 전쟁 - 로마의 장군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가 삼니움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50년에 걸친 삼니움과의 전쟁을 끝맺었다
60년전 펠로폰네소스 전쟁 : 키지코스 해전에서 아테네군이 스파르타,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군은 흑해 주변의 넓은 곡창지대를 획득하여 더욱 원활한 식량 조달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아테네의 함대가 민주정으로의 복귀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준과두정제였던 5000인 회가 다시 기존의 민주정 체제로 회귀하였다.
카르타고의 이베리아 반도 식민지가 분리 독립에 성공하여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마고는 시칠리아로 눈을 돌려 이곳을 공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