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지세포,소동) | •지세포리:1769년 지세포방-1889년 4개리 분리( 대동,회신, 교항,선창)-1942년 6개구로 분리(선창,교항,회진,대신,대동,공령) •소동리: 1769년 지세포방-1889년 소동리 분리-1961년 소동과 신촌 행정리로 분리 |
| 선창(船艙)마을 | 지세포리 선창마을은 조선 시대 왜구 방어의 최전방 요새인 지세포진성이 있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최근에는 라벤더 공원을 조성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다. •유배지 및 마을 전설: 마을 내에는 옛길, 우물, 탱자나무 울타리 등 유배되어 온 곳의 흔적이 남아있고 별신굿을 하던 성황당이 있었습니다. 선창에는 강구여(江口礖) 가 있어 태풍을 막아주었다. 거제읍지(巨濟邑誌)에 의하면 고종(高宗) 26年(1889) 왜공(倭供)의 미창(米倉)이 있었으니 선창리(船艙里)라 하였다. |
| 교항(橋項)마을 | 예전에 백사장이 회진, 대신, 공령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해변을 이루었다. 뒷산에는 봉수대가 있고, 새피제(새풍이재)넘어에는 미조라(석유비축기지)가 있고 주민들이 개발하여 다니던 곳이다. 예날에는 회치(단합대회)장소로 이용하였으며 근년에는 해돋이 명소로 곽광을 받고 있다. 예부터 마을 어귀에 다리를 놓아 다리목이라 하였으며 1930년 지방도 개설때 교량을 새로 놓았다. |
| 회진(會珍)마을 | 회진마을은 진주와 같은 모래가 모여있다는 뜻이며 白絲植松亭(모래위에 펼쳐진 소나무이란 뜻이다. 일운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문화재로는 지세포 고인돌이 있다. 본래 바닷가 모래밭이라 사름, 새롬이 또는 사림(沙林)이라 하였는데 구슬 같은 모래가 파도에 모여서 백사장을 형성하였고 방풍림으로 심은 소나무는 모래밭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회진(會珍)이라 하였다. |
| 대동,대신(大洞,大新)마을 | 대동, 공령, 신촌은 한마을이었으나 1940년 분리되었다. 바닷 쪽으로는 대신마을, 동쪽으로는 공령마을, 위쪽으로는 대동마을, 소동쪽으로는 신촌마을이다. 지세포 중학교 주변의 마을로 구대청과 천주교 성지가 있는 곳이며 면 중심지이다. 본래 큰골 또는 큰몰이라 하였으며 지세포진(知世浦鎭)의 대청(大廳)이 있었으니 대동(大洞)마을이라 하였다. 1928年 일운면사무소(一運面事務所)를 고현(古縣)에서 옮겨와 마을이 번창하여 대신(大新)마을이 생겼다. |
| 공령(公嶺)마을 | 원래 공신령이라 불렀는데 이는 지세포리와 소동리의 경계에 동산 같은 작은 고개가 있었으니 공령이라 불렸다. 공령마을과 신촌마을은 한마을처럼 보이는데 공령은 지세포리에 속하고 신촌은 소동리에 속한다. 공령마을 앞에는 장고방과 연결된 돌섬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영치라는 돌섬인데 크고 작은 바위가 어우러져 끝내주는 경치를 보였으며 물이 나면 소라,해삼,고동,전복,문어 우뭇가사리,미역등이 풍성한 곳이었다. 지금은 조선해양문화관이 들어선 자리 주변이다. 지세포에는 일본 어민들이 많이 살았는데 일본주택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신사터는 마을 청년들에게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이 마을은 사람의 콧들처럼 생긴 능선의 언저리 귀에 붙어 있다고 해서 공령이라 붙었다. 소동과 지세포 경계인 작은 천(소동천) 경계로 고랑 왼쪽은 신촌마을 오른쪽은 소동마을이다. |
| 소동(牛洞)마을 | 옥녀봉 아래 위치하며 초지가 풍성허여 소고을,우동,소돌몰이라 하였으며 지석묘 3기가 있다. 토박이 성씨는 정.박.주씨인데 주씨는 공령마을로 박씨는 대동마을로 가서 뿌리를 내렸다. 유물로는 광바우 쪽에 철기로 만든 칼이 출토되기도 하였으며 가락국시대 유물이 출토되기도 한 곳이다. 역사지: 옥림산(옥녀봉), 반송재, 꽃받등, 거제 밀감의 아버지 김수관 고향이다. |
| 신촌(新村)마을 | 소동마을은 1769년 지세포방-1889년 소동리 분리-1961년 10월1일 소동과 신촌 2개마을로 분리 되었다. 소동리 작은 천을 따라 동쪽은 소동, 왼쪽은 신촌이라하며 공령마을과 접한다. 바닷가 거제 씨월드, 조선해양문화관까지 신촌마을이다. 대광중학교는 후에 지세포중학교로 변경하고, 대광고등학교는 중학교가 지세포로 옮겨갈 때 거제교, 해성교로 옮겨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