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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사!
우여사!
남촌각단이 우여사
북촌각단이 우여사
우여사!
우여사!
먼저 남촌각단에서 줄을 벌려라 하고
고함 소리가 나오기가 바쁘게 북촌각단에서는
우여사하고
줄을 당기니 당기려고 핀 팔꿈치가
본디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 해
우여사 하고
줄을 당기나 발가락에 있는 힘을 다하고
온몸을 뒤로 제켜도 한번 앞으로 나갔든 팔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북촌각단에서 다시 힘을 모아
우여사 하고
벌여든 팔을 당기니 남촌각단 전체가
신을 싣은 상태에서 살짝 당겨 온다.
다시 남촌 각단 누군가 줄을 깔고 앉아라.
하고 함성을 지르니
재빨리 남촌 사람은 당기든 줄을 땅에다 깔고
앉아버리니 북촌 사람들은 닭 쫓든 개모양 허탈해 한다.
조금만 더 당기면 이길 수 있었는데
줄을 깔고 앉아 버리면 줄다리기 규정에 의하여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줄을 당길 수 없는데
북촌 사람들은 일종의 작전 타임을 하고 있는데
남촌각단에서 꾕콰리와 징, 북을 치며
한바탕 농악놀이로 단합을 하고
줄을 향해 올해에는 이기도록 소원을 빌고
막걸리 한잔을 가득 부어 줄을 향해 부우니
나이가 제일 많으신 용산 할배가 다시
한잔의 술을 마시다 용왕님 이술을 드시고
남촌이 이기게 하여 달라고 절을 한다.
그리고는 야 이 사람아!
자네도 한잔해야 술기운으로 당기지 하며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하고, 막걸리를 받은 원길이는
다시 고모집 형님 한잔 하시더 하며 권한다.
자 이번에는 제일 앞에 내가 설께요한다.
방금 먹은 술기운이 몸에 퍼지기도 전에 자원하여 나서며
자 여러분!
처음 줄을 당길때 힘을 잘모아 먼저 당깁시더 한다.
줄은 원래 골목을 끼울때부터
양쪽 진영에서 힘이 제일 센 사람이 나와
암놈 줄과 수놈 줄을 교배하여 끼울때부터
기싸움으로 시작되며 이골목을 앞장서는
사람의 자세와 손에 익을때 까지
골목을 이리 제키고 저리 제키고 밀었다 당기고
옆으로 제키고 하며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부터 하는데,
북쪽의 젊은 병돈이 에게는 아무도 힘을 당할 사람이 없어
처음 시작되는 기싸움에 남쪽 대표 권장군이
젊은 사람에게 밀려기에 올해는 남쪽이 지겠다는 에감을
느꺼으나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당사자만 알고 느끼는 감정 이다.
남촌의 단합행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있든
북촌 사람들은 누구집 왔나 오지 않았나 하며
집집마다 인원을 챙겨 보다가 누구집 안 왔쓴데
무슨 이유냐하고 무영이을 보고 반문 하니
무영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누군가 올해에 줄을 당기지 않으면
마을의 협조는 받을 생각은 말어하고 고함을 친다.
그러다가 품물을 가지고 온 점목이가
쾽콰리을 치니 북은 둥둥 둥둥하고 소리을 내고
징소리가 어두운 2월의 밤 하늘을 향해 쾽 하고 여음을 울린다.
그러더니 쾽콰리을 치든 사람이 줄을 항해 반절을 하고
딴딴 딴따 따다 하며
뒷거름을 치며 줄을 한 바퀴 돌으니
징과 북은 따라가며 소리을 낸다
우리편은 이번에 올해 시집 온
새각시 술 한잔 치이소하고
새색시 도동댁 며느리 왔는기요 하고 묻는다.
그러자 환택이가 지난 겨울에 시집온
도동댁 며느리의 손을 끌고 당기면서
술잔에 가득 부우며 이술을 잡수시고
올해 아들을 놓게 하여 주시소 하며 술잔을 받아 줄을 항해 붓는다.
자!
우리 북촌도 막걸리 한잔 하고 줄을 당깁시더 하며
막걸리을 이사람 저사람 친소에 따라 권하고 권 한다.
올해에 꼭 이겨야 풍년이 듭니데하며
환택이는 좀 처럼 마사지 않는
만식이을 향해 술을 권하고
이번에 정신을 잘 차려 방금과 같이 줄을똥 살동 당깁시더 한다.
막걸리을 한잔 마신 원길이가
남촌 골목을 잡고
북촌에는 병돈이을 대신하여 환택이가 나선다.
먼저 손잡이을 서로 편하게 할려고
손에 침을 밷아가며 여기 쥐었다 저기 쥐었다 하며
손싸움을 하고 한번더 침을 바르면서 의지을 태운다.
원길이는 이번에는 기어코 이겨야 되겠다 하며
뒤을 돌아보고 조금전 상의한데로
하자고 하며 암호을 한다.
남촌 사람들은 이번은 힘을 모으려고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두지 말기로 했고
자지줄을 당기지 말고 원줄을 당기자고 의논을 했는데
자지줄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엉성엉성하게 사람을 배치하고
나머지 어른들은 앞장의 원줄을 당기고
여자와 어린 아이들은 뒤로 베치을 하는데도
어린 진욱이는 힘도 없으면서 어른들 사이에 끼인다.
권장군은 남촌 대표이기 때문에 일일이
작전데로 인원 배치을 하고
욱이 니는 애이니 뒤로 갈아하니
어번에는 남촌이 이겨야 됩니더 하며
머리을 글그며 뒤로 가기을 거부 하나
권장군의 말을 어길수는 없으니
반항이 썩인 말로 나중에 내가 크면 한번 보자하며 투정을 부린다.
그러나 어린 나이라도 이겨야 된다는
사명감에 더 이상 반항은 못하고
새끼줄을 잡으로 가는 사이에
이번에는 남촌에서 먼저
우여사!
하고 시동을 걸어 줄을 선제 공격을 한다.
북촌 사람들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남촌에서 먼저 줄을 당겨 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힘도 모우지 못한 상태에서
우여사!
하고 줄을 당기나
펴졌든 팔은 좀처럼 당겨 오지을 안는데 다사 남촌에서
우여사!
하고 줄을 당겨 버리고
이번에는
우여사가 아니고 한박자가 빠른
우이사 하며 재차게 당기니
북촌 사람들은
어린아이 젖먹는 힘을 다해
우여사 오호 하며
한반자 반이나 숨을 조절하며
다리에 힘을 주나 후들 후들 떨리면서
온 몸을 11시 방향으로 하여 몸을 제키고
다리을 벌여 발악을 하나 한번 밀린 줄은 당겨 오지 않고
역전을 시키려고 온 몸 힘을 솟는다.
줄당기기는 각자의 힘이 좋다고 하여도
단합하여 당기지 않는 줄은 힘이 분산되고
응원의 구령이 맞지 않으면 반감이 되기 때문에
북촌 사람들은 줄을 땅에 놓아 재충전을 하고 대책을 상의 하여야 하나
당겨간 팔을 당기다 보니 힘이 빠지고 있다.
줄당기기는 힘으로 당기면서
체중을 싣어 온 몸으로 당겨야 함에도
북촌 사람들은 순간을 놓치고 당겨간 팔힘으로
줄을 당기고 있으니 짧은 시간이지만 제 힘에 지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제대을 막 한 맏식이가
줄을 깧고 앉아라 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러나
한순간이 늦었다.
말을 하는 사이에 남촌사람들은 한입으로
우여사!
하고 힘을 주고 고함을 치니
북촌의 줄은 쭉 당겨 가면서 겨우 줄에
궁둥이을 얹어 않아 버릴수 있으나 시간을 놓지고 말았으나
조마 조마 하게 정해 놓은 선을 넘지는 않았다.
일년에 한번씩 이월 초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당수나무 밑에서
동민들의 줄소리을 내야만 마을에 평화가 들며
무사하게 한해을 보낼수 있는 것이
어른들의 경험이고 전해 받은 풍습이지만
수년 전부터 도시로 객지로 나간 사람이 많고 보니
참여 인원은 아무래도 줄고만 있다.
엣날부터 줄당기기 하는 날 저녁에는
한마을에 살면서도 한번도 보지 못한 이웃집 처녀을 볼수 있고
처녀들 또한 옆집 총각을 만나 바라 볼수 있는 날이나
초하루의 날들은 달이 없고
어두운 관계로 자세히 열굴을 볼수가 없다.
소문으로만 듣고 보든 순자을 만날 수 있고
깜깜한 밤이므로 줄당기는 척 하고 순자 손목을 잡기도
할 수가 있으나
그런 배짱을 가진 총각은 좀 처럼 없다.
수년전 삼귀동에 주인집 처녀와 일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줄을 당기는 척 하고
손목을 잡고 줄을 당기디가 자가도 모르게 사랑으로
변하여 연애을 하여 임신을 하게 되어
두사람은 야간 도주을 하여으며
주인집 집안은 폐가 망신을 당하고
그 아버지는 마을에 낮을 들고 살수가 없다하여
결국에는 나무에 밧줄로 목을 메어 자살을 하였는데
산속 깊은곳 큰나무에서 목을 멘 관계로
수일이 지나 시체을 찿을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머슴은 자기가 사모하는 처녀집에
다른 사람보다 한가마니 덜 받고
농사일을 하기로 했고
자기 집에도 농사가 좀 있는데 머슴살이을 한 것을 보면
사전 계획이라 소문이 있었다.
주인 최부자는 자기 딸과 머슴의 이상한 관게을
사전에 눈치을 채고 딸을 조심 시켜는데
지난 보름날 저녁에 한숨을 자고
보름달이 하도 밝아 소원을 빌고나서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두사람의 불륜 관계을
목격을 하고 두사람을 부러 닦달을 받아보니
돌으킬수 없는 사이가 이미 되어 버렸고
최부자 집 자기 딸이 두사람 사이을 갈라 놓으면
죽어 버리 겠다고 처음에는 에원을 하며 바고 빌드니
나중에는 죽어버리 겠다고 도로 으름장을 놓으며
머슴도 내가 이집에 한가마니을 덜 받고 온 것은
순전한 어른 딸 때문이니
우리 두사람을 멀리 보내 달라고
죽을 각오로 부탁을 하니,
최부자는 다른 사람이 모르게 야밤 도주을 시키고
자기는 목을 멘 것임음을 알고는
이웃 사람들은 두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죽었다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 이야기도 있음을 볼 때
마을사람 전부가 나와 줄당기기을 하면
누가 감쪽같이 없어져도
으래이 줄당기기에 있겠지 하는 안심으로 지낼수도 있어든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두사람의 인연은 참사랑으로
인정이 되어 사랑을 할려면 웃마을 최부자집 딸 같이
용기와 각오가 있어야 된다고
부러워 하였으며 때마침 조 영남의 최 진사댁 노래와 더불어
유명 인사가 되었으며
야간 도주시 최부자가 몰래준 자금을
종자돈으로 삼아 장사을 하여많은 돈을 벌어
당시의 최부자댁 집을 수리 하여 수년 전에 이사을
왔어 팔순이 넘은 친정 어머니을 모시고 살며
당시 봉건적인 시대의 인연의 만남과
주인집 딸에게 반하여
다른집 보다 서갱을 적게 받으면서 남몰래
사랑한 이야기을 가끔씩 하다
벌써 세월의 뒤안길은 예순을 넘기고 있다.
두사람은 돌아가신 최부자 생각에
한평생 말 싸움 한번 못했다고 하며
한 생명과 바꾼 사랑을 하였기에 부산 객지 생활시는
이을 물고 억척스럽게
살았는 고생담을 말을 할때는 참된 사랑의 아품을 알수 있었다.
여자들은 가지줄을 당기고
어린 아이들은 자지줄 제일 뒤에서 함성에 맞추어
줄을 당기며 한 살씩 먹을 때마다
골목이 있는 앞으로 나갈수 있고
성인이 되어 힘을 할 수가 있으면
골목 싸움을 위해 앞장을 써나 일에 지친 관게로
골목 싸움을 원하는 사람이 없지만
영웅 심리와 기어코 이겨야 한다는
오기에 자원 하여 나서고 있으나 이골목 싸움을 하다가
삼귀동에서는 허리을 다친 사람이 있었어
근래에는 골목 싸움은 진정성이 약간 결여 되기도 하지만
오늘 저녁 기싸움은 볼만한 구경 거리가 되었다.
오늘 당기는 줄같은 것을 만들려면
줄당기는 이틀전에 우선 상의을 한다.
올해는 어떤 정도의 줄을 만들어야 하나 하고
의논을 한 후에 집집마다
동일하게 볕집을 모아야 하고
모은 집을 한단 한단 풀어 뿍적을 제게 하여야 하는데
손으로 다하지 못할시는
탈곡기로 돌려 뿍적을 제거 하고
그 집단을 굵게 묵어 물에 담구었다가
다음날 줄을 만든다.
줄을 역을 때는 당수나무 눂은 갖가지에 메달려서
셋사람이 집을 이어 빙빙돌고 돌아
셋사람이 역은 것을 차례 차례 바꾸어 가면서
주고 받고 받고 주면 한 가닥의 세끼 줄이 되며
있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온몸을 뒤로 제끼면서 힘껏 당기면은
같은 줄이라도 좀좀하여
여러사람이 당겨도 귾어지는 법이 없는데
엉성 엉성 두문 두문 집을 대어 역으면은 힘에 의하여
줄이 끊어지면 힘이 분산되고 균형을
잃어버려 줄을 놓힘으로써 그해는 지고 만다.
또한 많은 사람이 넘어지면 다치는 사람도 있어
남촌과 북촌은 자기의 줄을 확실하게 당 어야 하며
나이 많은 어른들이 지켜 보고 있기도 하였다.
그런 원줄을 셋가닥 역고
세끼줄은 원줄 보다 굵기가 작게 하여
원줄을 반틈으로 접고 세끼줄로 동여메고
한 가닥을 벌리면 원줄이 셋가닥,세끼줄이 셋가닥이 되며
그 원줄에 사람이 붙잡고 세끼줄에 사람이 들어서서 집으면
100여명은 당길수 있는 줄이 되며
원줄과 세끼줄을 역어 줄끼리 동여 메기 위해서는
줄을 빙빙 돌려야 할때는 줄이 길어 달구지 타이어을 들고
메달아서 빙빙 돌리면
그 줄은 자동으로 세끼줄 같이 꼬이고 꼬이므로
볕집은 여물어져 줄의 강도가 여물어
수십명이 당겨도 끄덕도 않는 훌륭한 줄이 되기도 하며
줄당기기에 이긴 촌의 줄을 끊어 돌돌 말어
지붕위에 던져야그 날의 줄당기기가 끝이 나는데
여물게 빙빙 돌려 만든 줄은 낫이나 칼로 베어도
줄을 만들때 볕집을 묵에 축인 관계로 잘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줄당기기을 하는 날에는
낫을 갈아 놓고 칼을 가아 놓아 밤에 줄 끊기에 용이 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 줄을 지붕위에 던질때는
올해 우리집 풍년을 기원 하여야 하고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아들을 낳도록 하여 달라고 빌면
아들을 낳았다고 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것들은 결국 미신으로 여겨졌고
요즘에는 1년에 한번씩 줄당기는 소리을 내기 위해
밧줄을 사용하고 보관을 했다가
다음에 사용 하니 그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줄을 만들때는 남촌과 북촌이 똑 같은
볕집의 량을 사용 하여야 하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굵거나 길어도 안되며
동일한 조건으로 하도록 전부터 규정이 되어 있음을 볼때
어른들의 나누는 셈은 정확 하였든 것이다.
줄당기기의 줄을 전날 저녁때까지 만들어
신성하게 접고 접어 나란히 마주보게
줄당기는 자리에 하루 밤을 제우고는
다음날 저녁에 막걸리와 풍악을 치며
새로 만든 줄을 오늘 당기는
청년과 장골들이 모여 어께에 줄을 메고
당수나무을 합 바퀴 돌아 가지런히 펴면서 암놈 줄과
수놈 줄을 교미을 하는데
암놈줄은 언제나 남촌 사람이 하고
북촌 사람은 수놈이 된다.
이때 사용되는 골목나무은
아주 강도가 강한 나무가 되어야 하며
작은 나무가지를 사용 하면 이쪽과 저쪽이 당기고 당기면 불어져서
한쪽이 몽땅 넘어지며 다치는수가 허다 하다.
오늘은 여물기로 소문난 살구나무을 사용하여
골목을 했기에 불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권장군은 장담하며 큰 소리 치고 있다.
이 골목나무을 만드는 사람은 부정이 없어야 하며
상주나 올해 자식 결혼을 앞둔 사람은 만들면 아니 되고
결혼을 정해 놓은 총각도 만들면 안되기 때문에
곰목을 만드는 행운이 돌아가는
사람은 한해는 마을 대표가 되기도 한다.
각 촌에서 준비된 막걸리을 모두 마신 다음에
다시 촌별로 작전이 짜여지며
이번에는 남촌에서는 권 장군이 골목을 잡고
북촌에서는 환택이가 맞는데 힘으로야 하면
권 장군이고 꾀로 하면 환택이가 앞서나
노련미는 권 장군이 앞서며
권장군은 현재 마을의 모든 일을
동장 다음으로 맡아서 처리 하며
사라호 태풍에 헤험을 하여 삼귀동에서 떠 내려오는
사람을 구한적 있어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장군 하고 부르기도 하였다.
키는 육척이나 되고
배짱은 한이 없어 마을의 모든 산을 도지 내어
소나무을 하여 영천장에 내다 팔아
그 돈으로 논을 세마자기나 쌓어 농사을 짖고 있고
요즘에는 담배 농사을 하여 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 다시 줄당기기가 시작 된다.
이번에는 남촌은 쾽쾨리 소리로 신호을 하고
북촌은 북으로 신호을 하기로 하여 의논이 되었는데
줄을 탱탱하게 당기고 있었는데 먼저
남촌의 쾽과리가 같이 신호을 하여도
소리가 먼저 나게 되어 남촌에서 먼저
우여여사! 한다.
이어 북촌에서도
우여여사!
하고 함성을 지른다.
이번에는 남촌의 쾽쾨리 소리가 따단따단하고 울려대니
우여여사! 가
우여사!로 변하고
북촌에서도 북을 계속 두들겨 덴다.
남촌의 줄이 살짝 당겨 가드니
쾽콰리 소리가 한번 크게
탕 하고 울리니 다시 남촌 사람이
유여사!
하고 가슴에 줄을 끼고 남자 여자 어린 아이들 까지
우여사!
하고 말에 맞추어 뻣었든 팔을 당기니
북촌 줄이 한뼘 밀려 간다.
그러더니 북촌의 줄은 두가닥으로 갈라지며
다시 우여사!
하고 줄을 당기나
남촌 사람들은 여섯가닥의 줄을 벌리고
한가닥은 길 같의 나무에다 칭칭 감아버리니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세끼줄에다 몰려
우여여사!
하고 줄을 당기니
가자기 줄이 확 당겨오며 모두 뒤로 넘어지고,
청년들은 골목을 서로 잡으려고
니도 나도 골목나무 위에 모려드니
금방 아우성으로 변하고 어떤 사람은 코피가 나서야 뒤로 물러 선다.
모두 골목은 생각지 않고
써로 골목 싸움에 정신이 없을 때
만식이가 이을 지켜 보고 있다가 골목을 싹 잡아 뻐어서
이겼다 하고
고함을 치니 닭싸움만 하다가 놓처 버린
골목을 바라만 보고 있으니
쾽콰리 소리가 나고 징소리가 들리며 북소리가
봄 날의 밤 하늘을 울려 퍼진다.
이긴 촌의 줄을 끊어 지붕 위에 던지는 소리가 나며
몰래 자른 줄을 치마속에 감추어 집으로 가져 갔어
소원을 빌고 빌었으나
아들,딸 낳는 것은 하늘의 소관에 관한 사항이고
풍년은 그 해의 날씨에 관게되는 것이기에
미신으로 치부 되어 새마을 운동이 제창되고 보니
미신으로 타파 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알았는데 줄당기기는
한번은 북촌이 이기고 한해는 남촌에서 이기고 하는
윤번재가 되어 왔다 갔다 이기고 지고 하였다고 하며
그 이유는 남촌과 북촌의 나뭄에서
이기고 지고 지고 이겼든 사유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어른들의 지혜로움을 알수 있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고
골고루 나누어 가짐으로써 한해의 안녕을 기원 했고
나눔을 공평하게 함으로써
마을의 단합을 할수 있으며 단합이 되어야
풍년도 된는데 그 풍년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여건도 있지만 이웃과 서로 협력을 하여 도우며
고통으로 나눔을 가지게 됨으로
풍년을 갖을수 있었든 경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음력 설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봄기운이 불어 오기는 염원 하다.
겨우네 얼었든 얼음이 녹기도 하고
새로 다시 얼기도 하는데 밤과 아침에는 얼음이 얼고
낮에는 해빙이 되어 수심 낮은 지역의 얼음은
발스케이트을 타면 얼음이 내려갔다 올라오고
반복을 하니 아이들은 재미가 있어
이번에는 너 차례이니 한번 지나가라 하며 제촉을 한다.
한쪽에서 갈라진 사이로 물이 올라 왔어
얼음 위에는 물이 싸르르 깔리는데
스케이트을 타고 지나가면 그 물이 둘로 갈라자며
두꺼운 얼음이 꺼지지 않고
스프링 같이 울렁 울렁 거리니 아이들은
스릴을 느끼며 계속 하여 반복을 하며
이번에는 얼음이 께질 것만 같은 것 같으면서
꺼지지 않기에 재미을 느끼는데,
결국 한사람은 물에 빠지게 되어 있다.
야! 상락야
저기 저쪽에 있는 나무 가지을 좀 꺽어 오느라
내 옷 좀 말려야 집에 갈수 있데이
우리 엄마 물에 빠진것을 알면 꾸중을 하니
불에 옷을 좀 말려야 겠다고 하며
바지를 벗어 옆에 있는 용락이와 옷을 뱅 돌려
물기을 제거 하고 모닥불에 이리 펴고 저리 펴면서 옷을 말린다.
겨울 이라하여도 불기운을 맞은 바지는
하얀 수증기을 발생 시키며
뜨거운 모닥불로 인하여 금방 마른다.
워낙 모닥불이 화력이 좋은 관계로
불에 말인 바지가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자세히 바라보면 불기운에 바지가 누렇게 되기도 한다.
세용는 큰일이다.
올해 설에 엄마가 고경 장날에
콩 한말을 팔아서 새로 구입한 옷을 누렇게 되면
곧 떨어지고 말았든 사실을
지난번 바지에서 알수 있었든 것이다.
그때에도 스케이트을 타다가 물에 빠져
옷을 말려는데 너무 모닥불에 쬐이는
관계로 바지가 누렇게 되어 엄마가 꾸중을 하고
새로 싼 옷을 오늘 또다시 물에 빠져
엄마 모르게 말리려다
또 누렇게 되었으니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생각 한다.
야 이너무 세끼야!
콩 한말과 바꾼 옷인데
한달도 되지 안되어 또 새옷을 태웠단 말인가!
새 학년이 되면 입고 가라고 싼 옷을 불에
태우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하며
하나 뿐인 아들을 향해 꾸중을 한다.
당시로는 콩 한말이라 하여도 굉장한 것이며
까아만 바지는 교복이 되기도 하였으며
여러집 아이들이 이와 같이 불놀이을 하다가
바지나 웃돌이을 태우고 하였다.
우리들은 그렇게 자랐다.
까아만 고무신과 운동화가 한 컬래 밖에 없어
오늘에 물에 젖으면 내일 당장 신을 신이 없어
강가의 나무 가지을 꺽어 모아 신발을 말려으며
할매,엄마가 싸다준 까아만 새옷도 물에 젖어 말리다 보니
불에 태워 먹고 엄마에게 혼이 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무한히 살기 좋은 오늘날 아이들은 세탁기에 말리면 되지 하고 의문을 가지나
비누도 하이타이도 없고 양재물만 있었든 시절이라
어디 세상을 원망 할수 없고
식구가 많은 집안의 엄마들은 흰바지 저고리 두루막을 빨다보면
힘이 지치고 거기에다 우리들의 옷을 젖어가면
돌아서서 개구장이 자식을 나무라기에 조금 이라도 엄마의 수고을
덜어 보려고 새옷을 말리다 헌 옷이 되었다.
우물이나 개울이 바로 집 앞에 있는 집들은 그런 엄마들의 고생을 모르나
시냇물이 먼 곳에 있는 집들은 지개에 져다 빨래터 까지 가야 했다.
탕갓방구
첫댓글 이제는 현실로 돌아오시지?
봉님께서 님에게 현실로 돌아오시지 함에있어... 님은 그럼 몽중에 있단말이오? 저도 이글을 읽으니 어릴적 내가살았던 마을에서 아랫마을과 웃 마을로 나누어 정월대보름날 줄당기를 하던 장면이 떠오르는구료. 작년 3월엔가는 경남 창녕 영실에가서 수백명이 매달려 줄당기를하는 것을 보고 같이 동참을하고 줄 한줄기를 끊어오기도 하였는데... 님께서도 영실축제에한번 갔다오시구려. 늘 좋은 나날되시길... 그런데 실명은 누구요.
이글을 읽고..오래된 우리네 풍습 줄다리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또 순간 순간 지나간 세월의 사고 사건들을 잘표현하여 활동 사진처럼 잘 읽어 습니다 그러나 머섬과 주인집 처녀의 표현에느 처녀 총각의 연애 사건을 불륜이라 표현함이 좀 그러네요?옜날에야 좀그랬드라도 지금의 표현으로 아무렀치도 않은 사랑이고 사랑을 이루기위해 머슴도 살고 또한 남녀가 사랑을 이루었으니 박수처야죠.........아울러 폐가망신이 아니라 그당시 시대상황은 이해되나 . 동네에 웃사 .하였다고 표현 함이 좋을듣합니다.너무 주관적인 표현은 차당실 본인들 ...당사자는 작은 표현이 크개 해석 될수 있습니다 잘 읽어습니다...
최부자집 딸 이야기는 조금 수정이 되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