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어요.” : [창문넘어도망친100세노인]

[52 김현지]

    교육공학

역사교육 김현지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바람도 너무 심하게 분다. 아침에 잠시 나갔다가 바람이 너무 강해 우산을 편 채로 걸어갈 수 가 없었다. 그냥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처리해야 할 일을 해결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너무 지쳐서 택시를 안 탈 수 가 없는 날씨였다. 집에 도착하니 급 피로가 몰려왔다. 14시, 뭘 하기에도 뭘 안하기에도 뭔가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미뤄놨던 과제를 해야겠다는 부담감도 같이 몰려와 날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무료 영화에 있는 줄 알고 열심히 찾아 봤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가 유료로 바뀌었다. 1,080원을 내고 영화를 결제했다. 결제하는 그 순간까지도 과연 졸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솔직히 오래 전에 서점에서 본 책이다. 물론 읽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보기만 했다. 책 겉표지가 파란색이던 그 책. 베스트셀러에 올라 몇 번이고 읽어보려 했지만, 책 두께가 너무 두꺼워 그냥 포기하고 말았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영화도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내용이 조금 궁금하긴 했었다. 과제를 핑계 삼아 집에 있는 티비로 영화를 결제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였는데, 결국, 보다가 중간에 졸아서 다시 보느라고 3시간 정도 걸렸다.

   영화는 시작부터 약간 당황스러웠다. 어느 겨울, 눈 쌓인 마당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기르던 고양인지, 개인지 어쨌든 반려동물이 여우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서 다이너마이트에 소시지를 감아 여우에게 복수하는 장면이 첫 장면이었다. 뭐지 싶었다. 뭔가 잔인한 장면이지만, 복수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귀여운데, 무서운 할아버지 모습이 웃겼다. 그러나 그 복수 때문에 할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고, 요양원에서 100세 생일날 창문을 통해 탈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100세 할아버지가 직접 쓴 자서전 혹은 일대기를 엿보고 있는 듯한 영화다. 어렸을 때, 부모의 부재 그리고 그 이후 폭탄과 같은 폭발하는 물체에 대한 쾌감을 느끼며 주인공 할아버지는 폭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세계 각국의 높은 사람들과 엮이게 되면서 펼쳐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그 여러 에피소드는 물론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임을 알지만 가방에 있는 돈을 찾기 위해 할아버지를 찾아온 폭주족을 냉동 창고에 넣어 살해한 것과 또 다른 폭주족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기절시키는 것과 같이 살인과 시체유기에 대해 쿨하게,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런 가벼운 장면이 조금 불편했다. 100세 노인이니까 괜찮다는 식의, 쿨한 노인, 재치 있는 노인으로 비춰지는 것이 과연 옳은 건가 싶었다. 아마도 감독은 100세 노인일지라도 ‘노인도 할 수 있다’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런 장면을 굳이 넣은 건가 싶은데, 그것이 바람직한 행동이었으면 쿨한 모습이었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요즘 교육공학 수업의 가장 큰 키워드는 ‘직관’과 ‘합리’적인 사고이다. 아무래도 그 기준에서 이 영화를 보면, 이 영화는 ‘직관’을 앞세운 그러나 사실은 대책 없는 어느 노인의 이야기 같다. 만약 진정한 의미의 ‘직관’적인 사고를 내세우고 싶었다면, 유년기 부모의 부재에서 파생된 감정을 폭탄을 터뜨리며 달래던 노인이 여러 경험을 겪으며 자신의 꿈을 향해 더 나아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할 주제는 안 되지만, 이 노인은 재미있게 살기는 했지만 모두 자신의 노력보다는 그냥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그래서 운이 좋은 노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영화 중간 중간 노인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독백을 내뱉는 장면에서 계속 말하고 있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저지르라고’ 그 말은 가장 ‘직관’적인 사고가 아닌가.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니, 노인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직관’적인 태도와 문제 해결 능력이 자연스레 습득한 것 같았다. 언제나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만, 노인은 문제를 복잡하게 보지 않았다. (노인이 젊었을 때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폭탄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면 된다고 툭 던진 말이 정답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문제를 최대한 간단하게 바라보면서,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처리하는 ‘직관’적인 태도. 영화 내내 노인은 나중의 걱정을 하기 보다는 그저 눈앞에 있는, 바로 닥친 문제만을 해결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먼 곳의 걱정을 사서 하느라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의 큰 걱정거리가 남들에게는 금방 해결책이 나오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문제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은 본인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으니까.

  100세 노인이 직관적인 태도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의 대사가 생각이 났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태도가 정답인양 교육하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에 적응된 인간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고 덤비기 때문에 직관적인 태도가 성장할 틈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태도는 계속해서 문제를 분석하고, 반성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고과정에서는 작은 뭐라도 문제의 원인으로 찾아내야 된다. 그러면 당연히 사소한 것에도 문제를 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노인이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우선 반려동물의 죽음의 원인을 찾느라 바빠 복수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양로원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며, 혹시라도 양로원에 갔다 하더라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계획을 세우느라 도망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천천히 생각해보면, 노인은 계속해서 한 마디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저지르라고’ 말이다. 노인은 어쩌면 다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아웅다웅하면서, 하루하루 조심스럽게 사는 모습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생각만 하고 계획만 세우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사고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사는데 그렇게 계획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은 거의 없다. 예상과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아마도 우린 굉장히 당황할 것이다. ‘직관’적인 사고는 대충 그냥 상황에 맞춰서 계획 없이 사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전자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이론적으로 찾아내고, 생각해낼 때, 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실행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합리적이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예상치 못한 어떤 상황들이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매뉴얼에 적힌 대로만 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재치와 꼼수, 아이디어가 콜라보 됐을 때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가 마무리 될 때 쯤, 100세 노인은 이런 말을 남긴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 재고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냥 드는 감정에 솔직할 것‘ 이라는 말을 손녀 또는 손자에게 해주려고 앞에 그 긴 이야기를 꺼낸 할아버지 같았다. 사는 게 빡세도 그래도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루하루 감정에 솔직하고, 계획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그냥 오랜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딱 하는 그런 약간의 용기가 더해진다면 삶이 좀 더 말랑말랑해지진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