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주에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네요.
빗길 안전운전 하시고요.
가을비 내리는 오늘 오전에
우연히 광해군의 유배지였던 남문로터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제주섬은 조선왕조 500년동안 약 200여명의 유배객이 거쳐갔다
추사 김정희..우암 송시열..최익현..
북헌 김춘택은 제주에 두번이나 유배 되었으며,아버지에 이어 김춘택의
아들까지 3대에 걸쳐 제주 유배생활을 대물림했다.
유배객 조정철과 제주여인 홍윤애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진 곳도 제주섬이다.
광해군의 유배지로 추정되는 제주시 이도1동 국민은행 제주지점.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 쿠데타로 실각한 임금은 단종..연산군..광해군..
광해군은 1575년 (선조8년) 선조와 후궁 공빈 김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란한 (광해군 적소터)라는 비에 음뻑 젖은 표지석 하나만이 광해군을
기억하면 자리잡고 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폭군이라는 멍에를 쓰고 강화도로 유배 되었다가
1636년 청나라가 처들어와 광해군의 원수를 갚겠다고 공언하자
광해군 복위에 위협을 느낀 조선시대 역대 임금 중 가장 무능한 임금 인조는
그를 제주섬으로 유배시켰다.
1637년 6월 어느날
달빛만이 고요한 어등포(제주 구좌읍 행원리)에 광해군의
유배선이 도착한다.
배 위의 사면이 모두 휘장막으로 막았다가 배가 제주섬으로
도착하자 휘장막을 떼어냈다.
이때 호행별장 이원로가 이곳이 제주섬이라고 알리자 광해군은 깜짝 놀라면 크게 슬퍼하며
" 내가 어찌 여기 왔는냐" "내가 어찌 이곳까지 왔느냐"
하며 눈물만 뚝 뚝 흘리면서 크게 슬퍼했다.
제주 유배지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별장들이 상방을 차지하고
그를 아래채에 재웠으며,시중을 드는 개집종이 광해군에게 영감이라 낮춰 부르면
광해군을 몹시 천대 하였으나 그는 입을 꾹 다물며 초연한 자세로 지내다가
1641년 유배생활 18년만에 제주섬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때 광해군의 나이 6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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