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가 있는 시평 6, 70 사경을 하다가 보니 불교계에 사경의 중요성을 전달하려고 한다,
불교정화이후에 대한불교조계종 고승들 가운데 경전을 시경하고 있는 고승들이 없다. 그시기에 고승들이 사경을 하였다고 한다면 불교경전 유포하는 목적이후에 불교계에 문화제를 보유하고 있을수 있어 불교계에 보고가 딜 수 있을 것인데 불교정화이후에 승려들이 사경을 하고 있는 승려들이 없다고 본다,
사경하는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에 사경승려들이 수천이 되었을 것이고 불교를 유포한 불교경전이 민중들에게 전달이 되었을 것이고 신라 시대에 금속활자를 활용하여 경전을 유포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라 시대의 불교는 국왕의 명영이 있어야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을 사경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불교계 정화이후에 승려들은 선수행을 목적으로 삼고 수행을 강요하였것을 생각하면 사경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한다면 사경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인데 사경을 중요시할 이 시기에 나는 결심했다. 사경을 하는마음을 내는 것은 선을 수행하는 것보다도 더 근기가 있어야 사경을 한다고 새각한다,
목판 대장경을 생각한다면 해인사 팔만 대장경을 생각하게 하지만 대장경을 판각하여고 한다면 경전을 사경해야 한다, 사경을 하지 않고서는 목판대장경을 조각할 수 있도록한다면 사경울 해야 한다,
물론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고려 시대 흥덕사에서 선사의 설법을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그런데 금속활자로 불교경전을 찍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국왕의 명령이 있어야 해다, 금속할자로 불교경전을 간행한 것이 없다는 것은 승려들이 자주적이지 모샜다고 본다,
오늘날에 선승들이 고려 시대에 국왕의 명령에 복종하듯이 자주적으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던 승려들 같다는 것을 사경을 수행하면서 알아넨 사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50년전에 사경을 실천했다고 한다면 사경의 달인이 되었을 것이고 문화제를 생산하는 기능공이 되었을 것이다. 사경승의 존재를 말이다,
사경 승이야 말로 선승들이 수행하고 있는 방법 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수행자라고 한다면 사경을 하는데 불교경전을 사경을 한다면 불교경전 사경의 기념관을 법당처럼 건립했을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했던 불교계의 승려들이다,
혹 탱화를 그림그리고 불상을 조각하고 사경을 하는 장인 승려들이 있다고 한다면 불교의 발전은 물론 이고 불교경제를 마련하는 작업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경 승이야 말로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수행자라고 칭할 수 있다.
수행자의 근본은 바로 자아를 완성하는 것이지만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은 돌을 갈아서 겨울을 만드는 일보다도 더 어럽다고 생각한다. 돌을 강아서 거울을 만드는일 그일이 어쩌면 더 쉽다고 생각 할 수도 있어 이제야 사경을 중요시하는 것은 미래에 희망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사경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진관 시인 2020년 11 월 10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