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스쿨링 체험 ; 김장 전과정 체험 2
다듬은 대파를 씻는 과정. 사진엔 없지만 쪽파, 갓도 씻었다.
그룹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의 일은 김장 때 제일 많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연중 많은 일을 하게 한다. 관념은 경험에서 생긴 인상(印象)의 축적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을 관념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생각은 사람이 하지만 생각이 사람을 끌고간다고 했다. 도시에서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참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훌륭한 우리 아이들이지만, 어떤 일을 시켜도,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 매우 적은 양의 일을 하되, 완성도가 낮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대충 하거나, 억지로 하거나(아이에 따라 그러기도 하지만 이따금일 뿐이다) 하지않고 참 열심히 한다. 일을 시켜보면 안다. 파 다듬는 건 서툴지만 무 나르는 건 잘한다. 모종 심을 땐 서툴지만 땅 파기는 잘한다. 정말 열심이다. 단지 일에 숙달된 신체가 아닐 뿐이다.
누구나 잘하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삶은 신체 활동의 누적이다. 물론 정신이 신체에 작용은 하지만. 신체가 정신의 작용을 수용하지 못하면 정신도 무너진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 알고보면 건강한 정신은 곧 신체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데이비드 흄이 주는 메시지다. 김장 얘기 아니었나? 옆길로 샜다.
배추를 절이는 일은 1년에 한 번이라서인지, 손의 촉감과 눈으로 판단하는 절여짐 정도가 늘 낯설다. 해서 절이는데 필요한 소금량을 미리 정해둔다. 100포기에 25kg. 우리는 이렇게 한다. 하지만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는 그렇지 않다. 저울, 필요없다. 모든 걸 감각으로 안다. 경험이 풍부해져서 경지에 오르면 숫자는 무의미해진다.
나도 제법 신체를 통제할 줄 아는 쪽에 속한다. 각종 도구도 곧잘 다루는 편이다. 하지만 시골 아주머니, 할머니의 눈부시게 유연한 손놀림, 시골 아저씨, 할아버지의 쉽고도 능숙한 도구 다루는 장면 앞에서는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일하다 그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그 사람들 얼굴에서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확인하곤 한다. 그 표정은 '(도시 사람치고) 그 정도면 참 잘하는 거야' 라는 뜻이다. 아~ 경지의 무한함이여~
일하는 중에 휴식을 겸한 새참 또는 간식 시간은 늘 즐겁다. 어른은 막걸리 한 잔, 아이들은 빵과 과자. 덤으로 수능생 축하엿도 나눠먹었다. 그러나, 그 엿 때문에 어금니에 씌운 금빛 지붕이 벗겨졌다. 곧바로 치과에 갔고 견적 30만원을 받았다. '금빛 지붕'을 내가 깨물어서 변형이 됐다나? 참으로 삶은 우발적이다!
"근데 내 금 왜 안돌려줘요?" 했더니, 치과 사무장(?) 왈, "원칙상 의료부산물(!)은 병원외 반출이 안되며, 그 금들을 모아 잘 팔아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쓴다"고 한다. 그 말에 찍소리 못했다. 이런, 미련한 놈. 어려운 사람 돕겠다는데서 약해지는 그 마음엔 나도 자비심 많은 사람이라고 보여지고 싶은 거? 당당하게 내 금 달라고 해서 내가 직접 도와줄 수 있었잖아!!! 교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권리 포기나 소비 지출, 그 딴 거 개나 줘버릴 수 있을 때까지 욕심이나 비우자, 얍!!!
김장 전날 저녁, 낮에 애써 다듬고, 씻어서 물기 빼둔 김장재료들을 이젠 깍고, 썰고, 갈고, 채썰기를 한다. 다행히 칼에 다친 아이가 없다. 살과 손톱 위를 스쳐 놀래기만 했단다. 작년엔 한 아이 손가락 끝 껍질을 베어내서 소동이 났었다. 위험하지만 안할 수는 없다. 나도 어릴 때 다쳐봐야 조심할 줄 안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내가 구잡스러웠다는 뜻이겠지? 구더기 무섭다고 장 아니 담글 순 없다.
이날 저녁도 허리아픈 신음소리가 조금은 났었다. 파 썰다가 하염없이 우는 특이체질도 있었고.
드디어 김장의 꽃, 김장속 넣기! 배추와 김장속이 적당히 섞여야 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정해진 방법이 없다. 매년 아이들에게 시범을 한두 번 보여주고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모두 하나의 시범 동작을 봤지만 아이들마다 해석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바꿔보려고도 잘 안하지만 바꾸려고 해도 잘 안된다. 능동성이 있어야 하고, 감각과 신체 움직임이 풍부한 경험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김치통에 넣는 내 몫이다. 김장속을 많이 넣었다싶은 사람의 배추와 덜 넣었다 싶은 배추를 한 통에 섞어넣고, 전체적으로 부족하다 싶을 때는 김장속 한 주먹씩 집어다 펴넣곤 했다.
드디어 2016삶년도(2016학년도 수학능력... 흉내)를 위한 2015년 김장을 끝냈다. 절이기도 약간 심심하게 잘 여졌고, 김장속도 안짜고 시원고소매콤달달하게 잘 만들어졌다. 김장속을 넣다가, 남을 듯하여 보다 더 넣으라고 독려했다가 결국 조금 모자라게 되어 '김장속 늘이기작업'을 한 점이 옥의 티였다.
아이들도 그 지난한 과정을 잘 견디어냈고 수시로 일의 즐거움이나 보람을 느끼는 듯 했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나서 먹는 컵라면의 추억도 어우러졌을 것이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역경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김장은 생각보다 다양한 경험 과정이 있다. 김장은 생각보다 큰 역경이다.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들릴 듯 말 듯한 아이들의 (허리가 아파서 내는) 신음소리가. 아이들은 감각을 신체 활동으로 표현하는 어려움과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정신이 경험을 통해 새로워지고 풍부해졌을 것이다.
첫댓글 막상 볼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구천사 아줌마의 손동작과 감각에 정말 놀랐어요! 숙달된 사람과 안된 사람의 차이를 크게 느꼈습니다. 이외에 이번 김장으로 습관 등 정말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위버멘쉬 하겠습니다.
풀꽃에서 하는 많은 경험들을 통해 정신이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김치가 맛있게 되어 참 뿌듯합니다.
감각적으로 하는 천사아줌마를 보면 놀라워요.... 역시 일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잘하게 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