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트 M1911. 워낙에 유명한 총이기 때문에 도데체 기사화 하려 하니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의 물건이다. 원래 명총 탐구 코너는 에어 소프트 건으로서 '명총'에 해당하는 놈들을 골라 자세히 소개하자는 기사인데 콜트 1911에서만큼은 그정도로 하고 넘어가기엔 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다. 에어 소프트건 컬렉터와 게이머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고 흥미 있을 부분을 짚어 가며 이 명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가고자 한다. 아주 오랬동안...
1. 초천재의 등장
총기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천재로 평가받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J.M.브라우닝...그는 콜트 M1911이나 하이파워 같은 권총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소총, 산탄총, 기관총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총이란 총은 다 만들어낸 사람이며, 좀 살벌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을 쉽고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죽이는 도구'를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일전에 TV에서 본 듯한데, 어떤 총기 설계자께서는(윈체스터였던가?)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총에 맞고 숨진 사람들이 원혼이 돼서 평생동안 그를 괴롭혔다고 하는데 발상이 좀 기발한 귀신인 것 같다. 그럼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은 누굴 원망해야 하는 건지...

J.M.브라우닝(John Moses Browning, 1855 ~ 1926)
이양반은 일생동안 무려 128건의 총기 관련 특허를 등록했으며, 이 특허를 이용한 스포츠/밀리터리 총기류는 그가 총기 설계자로 활동했던 47년간 무려 5천만정 이상에 달했다. 정말 천재중의 천재라 할 수 있는 양반인데 그의 재능은 사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볼수 있다. 그의 아버지 조나단(Johnadan) 또한 어렸을 적부터 총에 대한 흥미를 느껴 19살때부터 부돌식 격발식 총기를 만들어대기 시작하더니 평생 건샵을 운영하며 '총쟁이' 인생을 걸었던 부친 되시겠다.
아들인 브라우닝도 오랫동안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총쟁이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브라우닝의 재능 또한 아버지 못지 않아 1878년에 그의 첫번째 자작품인 '단발 산탄총'의 설계도를 윈체스터사에 팔아넘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1883년부터 윈체스터사에서 근무한 이래 수많은 종류의 총기류를 진짜 '미친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브라우닝의 첫 작품 - 윈체스터 M1885
브라우닝은 단발식 산탄총을 시작으로 다연발 펌프액션식 산탄총(M1887, M1897), 레버액션 라이플(M1886)에 이어 반자동 산탄총까지 설계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현재도 산탄총 하면 기껏 수동식 펌프액션 모델인데 이미 19세기에 반자동 산탄총을 만들어냈으니 그의 천재성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듯.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 갔던 것일까...브라우닝의 '신제품'은 윈체스터사의 윗분들에겐 좀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는지 결국은 백지화 되고 말았다.

하지만 브라우닝은 이 설계 도면을 윈체스터의 경쟁 업체였던 레밍턴 사에 그대로 팔아 넘겨 그 유명한 Auto-5 산탄총을 결국 완성시키고 만다. 그가 설계한 총기는 그 외에도 BAR(Browning Automatic Rifle)와 같은 자동 소총, Browning .50 caliber Machine Gun 류의 기관총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데, 워낙에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인물인지라 브라우닝은 당대의 총기 명가인 윈체스터, 레밍턴 뿐 아니라 콜트, 벨기에의 FN을 넘나들며 수많은 총기를 완성시켰다. 대략 살펴보도록 할까?

브라우닝사에서 생산한 Auto-5 산탄총

본인이 설계한 Auto-5 Shotgun을 들고 한컷. 이총은 M1911 피스톨,
1894 윈체스터 라이플에 이어 그가 설계한 최고의 산탄총으로 손꼽힌다.

윈체스터 펌프액션 산탄총 M1897

윈체스터 레버액션 산탄총 M1894

M1918 BAR(Bwowning Automatic Rifle). 콜트사가 생산권을 갖고 있었지만
물량이 딸려 여러 메이커에서 공동으로 생산한 모델.

M2 .50 Caliber [12.7mm] 기관총
아직까지 중기관총으로는 이녀석을 대체할 물건이 없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사용중이다. 화약식 총기류가 전장의 주무기로 사용되는한 은퇴할 없을 듯. 브라우닝이 FN사에서 근무할때 만들어낸 명작.

역시나 FN에서 만들어낸 브라우닝 M1910 포켓 피스톨.
1차대전을 촉발시킨 원흉이기도 하다.

M1935 하이파워 - 요녀석은 기본설계까지만 하고 숨지는 바람에
브라우닝의 총이라고 분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신다.
2. 자동권총을 만들다
반자동 산탄총에 이어 브라우닝의 다음번 관심사는 '기관총'이었다. 그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1889년, 브라우닝은 총기 설계자 맥심(Hiram S. Maxim)이 개발한 '완전 자동 기관총'에 자극받아 윈체스터 M1873 레버액션 라이플에 가스압을 이용한 자동장전 메커니즘을 끼워 넣는데 성공했으며(윈체스터 M1873 레버액션 라이플을 베이스로 만든 건 맥심도 마찬가지) 1890년과 1891년에는 이를 기초로 한 본격적인 기관총을 만들어 냈다. 이 물건은 콜트 사에서 M1895 라는 이름으로 콜트사에서 대량생산 되었으며 마를린(Marlin)사도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생산했다.

브라우닝 & M1895 기관총
이 기관총의 우수함을 알아본 미 육군/해군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군용으로 대량 구매했다. 브라우닝의 머리에는 또다른 구상이 떠오른다. 기관총이 성공했으니 이를 권총에 도입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곧바로 작업에 착수, 셀프 로딩 방식, 즉 탄의 발사와 장전이 기관총처럼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권총을 구상하고 곧바로 그의 첫번째 자동권총 M1895를 완성시킨다.

M1895. 총열이 리코일 스프링 아래에 있고,
탄피 배출구도 프레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
리볼버에 비해 자동권총의 가장 큰 장점은 속사가 용이하고 재장전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신뢰성이 부족해서(이점은 1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야 어느정도 해결됐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제대로 된 자동권총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브라우닝의 첫번째 자동권총 M1895는 격발시 생성되는 가스압의 힘으로 자동장전을 하는 기종으로 토글액션 방식의 권총이었다. 그런데 토글액션이 뭔가?

토글액션 방식의 대표주자 루거 P-08, 사진은 다나카 에어건
토글액션 방식은 자동권총에 적용된 첫번째 동작 구조인데, 만들기가 까다롭고 제조상태가 조금만 불량스러워도 오작동이 되는 관계로 루거 P-08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여하튼 이 자동권총에 자극받은 브라우닝의 첫번째 권자동권총도 토글액션 기구를 도입했다.

최초의 자동권총인 C93은 1893년에 등장했다. 이걸 수정한 모델이 바로 루거 P-08
당시 자동권총의 대세는 토글액션 방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길.
루거 P-08이나 C93의 토글액션 로킹 기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브라우닝의 첫번째 자동권총은 어찌보면 독자적인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고 볼수 있지만 디자인에서는 벌써부터 콜트 M1911의 형태가 살짝 드러난다. 사실 M1895의 외형은 브라우닝이 훗날 디자인하는 모든 권총들의 모태가 된다고도 볼수 있다. 그리고 이 모델은 완전자동 발사기능을 없애기 위해 스프링으로 작동하는 디스커넥터를 방아쇠 메커니즘에 연동시켰다. 이 디스커넥터 방식은 그가 나중에 설계한 자동권총뿐 아니라 소총, 반자동 산탄총에도 쓰이게 된다. 또한 M1895는 그립 프레임 내부에 탈착이 가능한 상자형 탄창(지금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을 사용하며 방아쇠는 탄창을 에워 싼 형태의 링크와 연결되어 격발 유닛과 연동되었는데 초기 유럽제 자동권총에 비하면 브라우닝의 M1895는 훨씬 간단하고 안정적인 구조로 우수한 성능의 권총이었지만 대량생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브라우닝은 얼마 후 새로운 프로토 타입 권총 2종을 만들어 냈다.
3. FN M1900 & Colt M1900
첫번째 스타일은 포켓 피스톨이라 불리는 단순 블로우백 모델들로 벨기에의 FN에서 생산한 M1900과 콜트사에서 생산한 M1903을 들수 있겠다.

FN M1900 7.65mm(좌), Colt M1903 .380스페셜(우)
잠시 FN M1900에 대해서 살펴보고 넘어가자. 이 모델은 벨기에의 FN사에 브라우닝의 설계로 만든 벨기에에서 생산된 피스톨(보통 자동권총을 피스톨이라 부른다)중에서 최초이자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은 자동권총 이었다. 기초 설계는 1896년에 이루어 지고 이듬해 약간의 수정보완을 거쳐 도면이 완성되었으며 1898년 이 설계를 벨기에의 FN사에 넘겨 M1899라는 모델명으로 1899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1900년에는 총열 길이가 122mm에서 102mm로 약간 짧아지는 구조변경이 이루어져 M1900이라 명명되어 벨기에의 제식 권총으로 선택 되었다. 구조적으로는 매우 단순하고, 디자인이 예뻤기 때문에 애칭으로 <Browning No.1>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유럽 전역에서 민수용, 경찰용으로 널리 판매되었다. 사용하는 7.65mm 탄은 미국에서는 .32ACP라 불리는 놈들이었는데 위력은 그리 세지 않지만 리볼버 만큼이나 조작이 쉽고 장탄수도 7발이나 되었고 무엇보다도 재장전이 리볼버에 비해 너무도 편리했으므로 유럽 일대에서 자동권총에 대한 지지도를 확고히 끌어 올리기도 했다.
특징이라면 리코일 스프링이 총열 위쪽에 있다는 것인데, 덕분에 탄피 배출구가 슬라이드가 아닌 프레임에 만들어져 있다. 격발 방식도 상당히 독특한데 오늘날의 글록 등에 사용되는 스트라이커 격발 방식(해머를 쓰지 않고 공이 스프링의 힘으로 직접 뇌관을 가격하는 방식)이며 리코일 스프링이 파이어링 핀 스프링 역할을 겸하고 있다. FN M1900와 같은 소형 자동권총에 이어 브라우닝이 설계한 물건은 '좀 강한 탄을 쓰는' 콜트 M1900이었다.

Colt M1900 .38ACP
이 모델은 '브라우닝 쇼트리코일' 구조가 처음으로 도입된 권총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진도를 더 나가기 전에 쇼트리코일(short recoil)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보자.
4. 쇼트 리코일이란 무엇인가?
자동권총은...'격발 -> 탄피배출 -> 재장전'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연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탄환을 연속적으로 쏴제낄려면 탄두가 빠져나간 탄피가 우선적으로 배출돼야 한다. 그럴려면 슬라이드가 후퇴해야 하는데, 슬라이드가 너무 일찍 후퇴해버리면(폐쇄 상태가 너무 일찍 개방되면) 가스가 탄피배출구로 새버린다. 결국 탄두의 위력도 약해지고 사수의 얼굴도 잘 구워져버린다.

리볼버 같은 구조라면 후퇴고 나발이고 없고, 탄피가 프레임에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가스가 뒤로 샐 염려는 전혀 없다. 사진은 마루이 파이슨 에어건
FN M1900같이 약한 탄을 쓰는 총은 스프링의 힘과 슬라이드의 무제만으로도 총열과 슬라이드의 폐쇄상태를 유지할수 있다. 워낙 단순한 방식이라 단순 블로우백(simple blowback)이라는 용어를 쓴다.

단순블로우백 방식의 대표주자 발터 PPK. 총열은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으며
스프링 혼자서 슬라이드를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38 Colt Automatic 같은 강력한 탄을 쓰는 Colt M1900같은 물건에는 단순 블로우백 방식으로는 턱도 없다. 굳이 단순블로우백 방식을 고수하겠다면, 좀더 강한 스프링, 좀더 무거운 슬라이드를 올리면 되겠지만 그랬다간 인간의 힘으로 들수도...코킹할 수도 없는 총이 돼버린다.
그래서 브라우닝이 개발한 테크닉이 바로 브라우닝식 쇼트리코일으로 이는 콜트 M1911을 비롯해서 하이파워를 거쳐, 현대의 대표적인 자동권총인 시그 P220 시리즈, 글록으로까지 전수됐다. 브라우닝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탄두가 빠져나가는 동안 총열이 슬라이드를 붙들어 매게 한 것!

1911 피스톨의 작동과정을 눈여겨 보시도록.
위 그림을 잘 보시면 총열과 슬라이드의 홈이 서로 맞물려 있는게 보이실 텐데, 탄두가 빠져나가는 극히 짧은 동안 총열은 슬라이드와 한몸이 되서(폐쇄돼서) 뒤로 살짝 후퇴한다(그래서 쇼트 리코일이란 용어를 쓴다). 그러다가 캠의 작용으로 총열과 슬라이드의 결합이 풀리고 슬라이드만 관성의 힘으로 끝까지 후퇴하며 탄피를 배출한다. 이 구조는 콜트 M1900에 처음으로 적용되었으며 이 모델이 조금씩 변형, 수정되어 M1911로 진화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구조라니...정말 놀랍지 않은가?

Colt M1900 분해도. 바렐에 링크가 2개 달린 것이 특징.
M1900은 고장 없이 작동이 잘 되었으며 곧바로 대량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기 생산분 몇 정은 미군에 보내져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곧바로 날아든 반응은 '이따우 쓰레기를....' 이었다. 당시 미국의 보병, 기병, 포병들은 자신들의 임무에 적당한 부무장의 개념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약간씩 다르긴 했지만 리볼버에 대한 신뢰는 공통분모였다. 게다가 이들이 보기에 M1900은 불편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부무장 주제에 두 손을 모두 써서 조작해야 하고(슬라이드 코킹), 오발사고 나기 딱인 안전장치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5. M1902
총이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우선은 군을 공략해야 하는 법. 브라우닝은 군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련의 뻰치에도 굴하지 않고 개량모델을 만들어낸다. 우선 슬라이드 스톱을 부착해서 탄이 떨어지면 슬라이드가 입을 벌리고 멈추게 했다. 이렇게 하면 탄창을 갈아끼울 때 슬라이드 코킹을 또다시 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재장전 시간을 줄일수 있는데 이는 현재의 자동 권총에서는 기본이 된 기능이기도 하다.

콜트 M1902 밀리터리 버전 .38ACP
그밖에 부실했던 M1900의 안전 장치를 삭제했고 그립 프레임의 길이를 늘리면서 탄창의 용량도 1발 늘여서 8발이 되었다. 또한 랜야드 링, 세레이션(슬라이트 코킹시 미끌어 지지 말라고 파 놓은 홈) 등도 추가했다. M1902는 생산되던 시기 내내 자잘하게 설계 변경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세레이션이나 해머의 디자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M1902 밀리터리 버전은 미군의 요구사항에 점차 맞추어져 갔고 민수용으로 1927년까지 생산이 되었으나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콜트 M1903 .38ACP 포켓 해머 버전
이번에는 사용탄의 위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실 M1902가 사용하고 있는 .38ACP탄의 위력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스미스 앤 웨슨' 사에서 1902년에 개발되서 아직까지도 '강력한 탄'으로 인정받는 리볼버용 .38스페셜 탄보다도 더 강력한 놈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미군이 .45 구경 이상의 '괴물'같은 탄을 원했다는 것. 현재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제식 권총의 구경이 '저위력(?) 9mm 파라블럼탄인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어쨌건, 미군이 갑작스레 강력한 부무장을 원하게 된 배경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6. 모로(Moro)족과 만나다
브라우닝이 한창 총기 설계자로 명성을 날리던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한참 전쟁 중이었다. 쿠바를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의 압정이 심해지자 쿠바인들은 반란(..이라기 보다는 민족 봉기에 해당하겠다)을 여러 차례 일으켰지만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고 도와는 나라가 없었다.
그러다가 1895년 일어난 대대적인 저항운동은 여러 미국인들을 자극하여 많은 의용군들이 쿠바인을 돕기 위해 쿠바로 향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단순히 '고통에 시달리는 타국민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숭고한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은 미국인의 쿠바에 대한 경제적 관심(주로 쿠바의 설탕이 그 대상품이었다)이 높아졌고, 언론의 발전에 수반하여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허스트의 《뉴욕 저널》등의 신문사가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사실을 과장해서 보도하거나 군국주의(軍國主義)를 구가하기도 해서 점차 전국적으로 해외진출의 기운을 조장하고 있었다.
결국 1898년 쿠바에 사는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군함 메인호가 아바나항에서 격침된 사건을 빌미로 미국과 스페인 양국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불과 수개월 만에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나고 말았다. 이 전쟁의 결과로 그해 12월 10일, 파리 조약이 체결되어 쿠바는 독립하고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은 미국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손쉽게 얻은 필리핀에서 미국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필리핀은 수많은 섬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13세기 경부터 이곳에는 힌두교, 이슬람교가 이곳에 전해져 있었지만 특별히 강한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16세기 경 스페인이 이곳을 접수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통일이 이루어 지게 되었지만 워낙에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몇몇 지역에는 그들의 고유신앙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다.
필리핀 민다나오섬 일부에는 소수의 이슬람교 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로(Moro)족이라 불리웠다. 가뜩이나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이들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극성스러운 미국인들이 이곳에 몰려 들면서 모로족은 더더욱 위축 될 수 밖에 없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자꾸 남의 땅에 들어와서 감 놔라 배추 놔라 교회 지어라 하니, 결론은 한가지 뿐이었다.

모로족은 달랑 가죽옷 하나 걸쳐 입고 칼, 화살, 창으로 총으로 미군에게 달려들었다. 총으로 무장한 미군 입장에서 모로족 전사들과의 전쟁은 땅 짚고 헤엄치기, 누워서 떡먹기, 도랑파고 가제 잡기, 누이좋고 매부좋고였다.



모로족 전사들의 장비
하지만 일방적으로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전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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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굳~~
ㅋㅋㅋ전쟁이다 십숑 에서 피식...ㅋㅋ 잘보고 갑니다~~
전쟁이다 십숑... 명대사로 강추함다...!!! 콜트 진짜 명총이죠...
선 리플 후 감상~ 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