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유전자 조작으로 피 빨아먹는 암컷 모기 줄여요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6.04. 00:30 조선일보
그래픽=진봉기
‘윙~ 윙~.’ 요즘 잠을 자다가 귓가에 울리는 이 소리에 뒤척이는 분들 많을 거예요. 올해는 모기가 작년보다 더 빨리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모기와 전쟁이 벌써 시작된 것이죠. 서울시는 시내 54곳에 설치한 ‘디지털 모기 측정기’로 측정한 모기 수와 강우량, 기온 등 데이터를 이용해 ‘모기 활동 지수’를 예보하고 있는데요. 지난달 30일 서울 주거지 지역 모기 활동 지수는 66.8까지 오르며 5월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작년 같은 날(20.3)의 3.3배 수준이에요. 작년 5월 최고치(41.5)보다 1.6배 높은 수치이기도 합니다.
모기의 이른 등장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요. 모기에 물리면 가려운 것도 문제지만, 모기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병을 전파하기 때문이에요. 말라리아와 뎅기열, 일본뇌염 등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의 종류도 다양해요.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기를 해롭기만 한 곤충이라며 생태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기 개체 수를 줄이는 방법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어요. 모기,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유전자 변형으로 수컷 모기 유충만 살아남아
인간을 무는 모기는 암컷입니다. 평소에는 식물의 즙이나 꽃의 꿀을 먹어요. 그러다 산란기가 되면 알을 낳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인간의 피를 먹습니다. 영국의 생명공학 기업 옥시텍은 이 점에 주목했어요. 암컷 모기가 줄어들면 모기를 통한 감염병 발생률도 줄일 수 있다고 본 거예요.
옥시텍은 이를 위해 유전자 변형 모기를 개발했어요. 우선 연구진은 ‘tTAV’ 단백질을 만들었는데요. tTAV 단백질은 모기의 몸에서 같은 단백질을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 성장에 관여하는 세포의 활동을 방해해요. 모기 유충이 성충으로 자라는 걸 방해해 죽게 만드는 원리인 거죠.
연구진은 이 단백질이 암컷 모기의 몸에서만 발현되도록 조작한 뒤 수컷 모기가 있는 알에 집어넣었어요. 그렇게 유전자가 변형된 수컷 모기는 자연으로 방사돼 암컷 모기와 짝짓기를 하고, 두 모기 사이에서 수컷 모기로부터 tTAV 단백질을 물려받은 모기 유충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tTAV 단백질은 암컷 모기의 몸에서만 발현되도록 조작됐기 때문에 암컷 모기 유충은 성충으로 자라지 못하고 죽게 돼요. 반면 수컷 유충들은 건강하게 살아남아 다른 암컷 모기와 짝짓기를 하죠. 그러면 tTAV 단백질을 물려받은 모기 유충들이 또 태어나고 그중에서 암컷 모기 유충은 또 죽게 돼요. 이러한 번식 과정을 통해 암컷 모기를 줄여 나가는 방식인 거예요.
옥시텍 연구진은 2021년 미국 플로리다 인근 섬에 유전자 변형 수컷 모기가 있는 알을 방사했고, 1년 뒤 해당 지역에 있는 모기 알 2만2000여 개를 확보해 실험실로 가져왔어요. 그리고 이를 부화시킨 결과, 암컷 모기 유충은 성충이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옥시텍은 지난달 23일 유전자 변형 수컷 모기를 아프리카 지부티 지역에 방사했는데요. 옥시텍은 이번 프로젝트가 해당 지역의 말라리아 퇴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테리아로 모기 매개 감염병 막다
박테리아(세균)를 이용해 모기 수를 조절하는 방법도 있어요. 주인공은 ‘볼바키아 박테리아’입니다. 볼바키아 존재가 처음 알려진 건 1920년대예요. 미국 과학자들이 볼바키아에 감염된 모기를 발견했답니다. 하지만 이 박테리아가 모기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당시 미국 예일대 스콧 오닐 교수가 볼바키아로 뎅기열 확산을 차단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였어요.
볼바키아는 곤충의 몸속에서 영양소를 얻어먹으며 사는 박테리아예요. 모기를 포함해 나방·초파리 등 곤충의 60%가 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있지요. 이들은 숙주의 몸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걸 막아요. 즉 볼바키아에 감염된 모기는 뎅기열이나 말라리아와 같이 사람에게 해로운 감염병을 옮기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스콧 오닐 교수는 뎅기열을 옮기는 매개 모기인 이집트숲모기에 볼바키아 박테리아를 집어넣었어요. 브라질과 호주, 피지 등 여러 지역에 볼바키아에 감염된 모기를 방사했고, 해당 지역들에서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 등 모기를 통해 퍼지는 감염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호주의 열대 도시 타운즈빌은 뎅기열이 사실상 박멸됐다고 해요.
특히 주목할 점은 볼바키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와 일반 암컷 모기가 짝짓기해서 나온 모기 알은 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모기 개체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거예요. 반대로 암컷만 감염된 경우나 둘 다 감염된 경우에서 짝짓기해 나온 모기 유충들은 이미 볼바키아에 감염된 상태라, 다른 감염병을 옮기지 못해요. 스콧 오닐 교수가 설립한 비영리 기구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브라질에 볼바키아 감염 모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어 모기 매개 감염병을 예방하겠다는 포부를 작년에 밝혔답니다.
모기가 없어져도 괜찮을까?
이처럼 모기 수를 줄이기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하지만 한쪽에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모기가 사라지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은 ‘먹이사슬’로 연결돼 있어요. 만약 모기와 모기 유충이 사라지면, 이를 먹이로 하는 물고기나 곤충, 도마뱀 등이 생존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또 이들을 먹고 사는 상위 포식자 동물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모기 이외에 다른 생물들도 멸종될 수 있어요. 이처럼 모기는 감염병을 옮기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생명체입니다. 그런 만큼 앞으로 모기와 어떻게 공생해 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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