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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지막 추수
주 제 : 종말론
성 경 : 계14:14-20
설 교 자 : 이동원 목사
날 짜 :
비 고 : 지구촌교회
논 지 :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기억하고 자신이 믿음에 바로 서있는가 확증해 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白 페이지 입니다.
유대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기초로 살아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무신론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2차 대전을 계기로 2차 대전 중에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찌에게 학살되는 것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보고만 계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 중에 대다수가 무신론자로 돌아섰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이와 동일한 색깔의 질문이 다른 형태를 띠고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문턱을 넘어오지 못하거나 혹은 신앙의 자리에서 떠나가고 있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은 고통을 받고 부정직한 사람들은 더 큰소리를 치며 잘사는가? 왜 의인은 고난을 받고 불의한 사람들은 오히려 출세하고 권력을 잡는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위축되어 가고 불신앙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기를 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실까?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은 의로운 분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에 대해 회의하는 혹은 기독교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러한 회의와 포기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려면 하나의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전제가 없다면, 기독교에 대해 회의하거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다고 결론짓는 것이 정당화될수 없습니다. 이 전제는 바로 “마지막 심판이 없다면…”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마지막 심판은 없는 것일까요?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 “심판은 그릇된 역사를 교정하는 하나님의 손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종종 역사 속에 간섭하셔서 불의를 심판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한 말입니다. 우리 동양에서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옳은 대로 귀착된다는 뜻입니다. 동양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정당성은 인정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줍니다.
이런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간섭하셔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들을 세워 주시는 일들이 있었지만 역사는 여전히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세상도 여전히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심판이야말로 인간 역사의 모든 오류를 청산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공의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은 있어야만 하고 또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 마지막 심판이 마지막 추수라는 낱말로 묘사 됩니다.심판때를 추수 때로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 장(章)인 마태복음 13장에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 나를 설명합니다. 그 비유 중의 하나가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예수께서 뿌린 씨는 알곡이고 원수가 심은 것은 가라지인데, 그 비유에서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 하고 묻습니다. 이때 주인은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대답합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30절).
본문에서 바로 그 추수 때가 온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추수하는 주인은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합니까? 이 추수하는 주인은 재림하실 예수님인데, 14절에 그 모습이 묘사되었습니다.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구름 타고 오실 주님이 심판을 위하여 이 땅 위에 다시 임하십니다. 예수께서 처음에 세상에 오실 때는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재림하실 때는 추수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분은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계셨는데, 금 면류관은 영광스러운 왕을 나타냅니다. 옛날에는 왕이 재판하는 역할도 했기 때문에 금 면류관은 재판장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판장으로서, 왕으로서 오십니다. 그분은 손에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계십니다.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이 마지막 추수는 두 가지로 구별되는데, 알곡 추수(14-16절)와 포도 송이 추수(17-20절)가 그것입니다.
알곡 추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첫번째 추수는 곡식이 다 익어서 그것을 거둬들이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추수입니다. 이 곡식은 택한 백성들,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천국 창고에 거둬들이십니다.
예수께서 이 추수에 관해서 어떻게 예언하셨는지 종말 장인 마태복음 24장을 보십시오. 30,31절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마지막 추수..마지막 싸움.마지막 승리방에서 모으리라.”
재림하시는 주님이 마지막 추수를 위해서 천사들을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택한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다 모으십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 창고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아들이기 위해서 주께서 천사들을 통해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시는 시간, 이것은 좋은 추수의 때입니다.
여기서 모아지는 좋은 곡식은 택한 백성을 가리키는데, 택한 백성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입니까?마태복음3장의내용을통해 답을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이 성령 세례와 불 세례가 바로 다음 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12절).
곳간에 모아들이는 알곡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예수 믿고 주님 앞에 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반절에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움을 당하는 쭉정이는 불 세례(심판의 세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의 내용을 읽어 보면, 이들 알곡과 쭉정이는 회개하고 주님 앞에 온 사람들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알곡이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니고데모 이야기가 나옵니다. 니고데모가 나아왔을 때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창고에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육(肉)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靈)이니”(6절).성령의 사역 없이는 아무도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발견하고 그분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 그들만 참 생명을 가진 알곡입니다. 그들만이 마지막 날에 천국 창고에 거두어들여질 것입니다.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상인 니고데모,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인이고, 바리새인이었으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까지 하던 랍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종교적이긴 했으나 거듭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출석하기는 하지만 참으로성령님을 통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 알곡 추수에 참여할수 없습니다. 이 얼마나 커다란 불행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추수를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정말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난 사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과 중국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국 스파이가 한 사람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사실은, 그 체포된 중국 스파이가 어찌나 미국 사람하고 똑같은지 도저히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얼굴 생김새 뿐만 아니라 제스추어도 미국 사람 같았습니다. 또 영어를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하는지 도저히 중국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습니다.아마도 중국 정부에서 10억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미국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하나를 뽑아서 아주 철저하게 훈련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완벽한 미국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게된 것 아닐까요? 그러나 이 사람이 정말 미국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미국 사람 같지만 실제는 미국 사람이 아니고 중국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으로 태어난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비슷하게 모방만 했을 뿐 그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오늘날은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열심히 모방만 합니다. 몇 년정도 교회에 다니면 찬송가도 부를 줄 알고 기도도 할 줄 알고 또 그리스도인처럼 행세할 줄도 알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스도인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겉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되는 것은성령을 통해서 다시 태어남으로써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을 나의 구세주와 주(主)로 믿는 순간, 성령이 내 영혼을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이 중생의 사실이 없는 사람은 모방에 성공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매우 슬픈 날이 올 것입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마지막 날 추수 때에 천국 곳간에 거두어들일 알곡 중에 낄 수 없는 사람들, 이 얼마나 커다란 불행입니까? 그 날, 마지막 때에 주께서는 알곡을 추수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에게 참으로 속한 사람들을 영원한 나라로 거두어들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재림에 또다른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본문 후반부인 요한계시록 14장 17절부터 나옵니다.
포도 송이 추수
본래 이 포도 송이의 상징은 구약 요엘서에서 온 것입니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욜 3:13).
포도 송이는 죄인 혹은 악인의 상징입니다. 요엘서 전체를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포도 송이란 단순히 죄인 혹은 악인이 아니라 회개를 거절한 사람들을말합니다. 사실자신의삶에 죄나악인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죄와 악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입니다. 성경은 죄 사함을 받지못한이 사람들을 포도송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그 포도 송이를 거두십니다. 천국 창고에 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향해서 진노하시려고 거두시는 것입니다. 이 포도 송이를 거두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것은 심판의 추수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날카로운)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여기서 포도가 익었다는 말은 심판의 때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 내킬 때 아무 때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셨다가 하나님의 때에 심판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6절을 보십시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貫盈)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 말씀은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을 심판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관영”이란 단어가 조금 생소해서 그 뜻이 바로 들어오질 않
을 텐데, 영어 성경을 보면 full이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죄악이 찰 만큼 차게 되면 그때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개인이든 한 민족이든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을 심판하시기 전에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 속에 여러 번 있었지만, 이제 역사 속에 살았던 모든 악인들의 죄악을 심판할 마지막 심판의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도 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심판하실 것인지 19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다 익은 포도를 따서 포도 짜는 틀에 집어넣고 쫙 짜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피 같은붉은 포도 즙이 쫙 퍼질 것입
니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 악인들이 받을 처절한 심판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20절을 보십시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문자 그대로 계산하면 1600스다디온은 32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도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1600이란 숫자는 4×4×100을 해서 나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4라는 수는 항상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1600스다디온은 심판이 세상에 꽉 찼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 밖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성 밖이란 언제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의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것, 이것은 생애 최대의 저주입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 이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겠습니까? 그러나 이들도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살아갈 수는 있습니
다. 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 설 수 있겠습니까? 아무 데도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저주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마지막 알곡 추수와 포도 송이 추수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정리해 봅시다. 41절부터 43절까지입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 회개하지 않은 자들,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았던 자들은 마지막 때에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추수의 결과입니다.마지막 때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본문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로, 나는 알곡인가 포도 송이인가?
당신은 주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바울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질문인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며칠 전에 어떤 분의 목사 시취(試取)를 하는데, 그 분이 주님이 자기 안에 계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지 뭡니까? 우리 주위에 이런 불행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버리운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미 버림받은
자들에게 마지막 추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불태워지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알곡입니까? 아니면 포도 송이입니까?
둘째로, 우리 주변의 포도 송이 이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 추수 때가 오기 전에 포도 송이 같은 이웃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고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소망입니다. 말세에는 복음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끝나고 역사의 막이 내려지는 그날에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 주님과 더
불어 해처럼 빛나는 영광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추수 때가 가까오고 있는 이 시각에 당신은 이 추수 때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하나님,마지막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읍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고 나뭇잎들이 떨어지듯 역사의 가을이 곧 찾아올 것입니다. 추수 때가 올 것입니다. 이 역사의 모든 오류와 부정당함과 모든 구부러진 것들을 영원히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고 또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곡식을 거두어들여서 영광 가운데 두시기 위하여 주께서 이 역사 속에 귀환하실 때가 가까와 오고 있는 이 시각, 하나님, 깨어 근신하며 나를 구원하신 주님 앞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게 하시고 그 감사함을 갖고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전도의 책임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