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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즈음의 이별
박경선
아들 ‘레오’와 딸 ‘레아’를 키우는 엄마는 이들 남매의 성격이 너무나 달라서 정신이 없다. 레오한테는 ‘좀 나서지 마라.’고 시키고. 레아한테는 ‘좀 나서봐라.’고 시킨다.
1. <레오의 친구들>
레오는 아침마다 경비실 앞에 학교 버스가 와서 태워 가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나가서, 경비 할아버지한테 책가방을 맡겨놓고 차가 올 때까지 논다. 화단에서 곰벌레도 잡고 개미도 따라다니면서 논다. 차가 와서 뛰어오면, 할아버지가 번쩍 안아 차에 올려준다. ‘할아버지의 손자인가?’ 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형들과도 친하다.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순간에도, 형들이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면 기어이 틈새로 고개를 뒤민다. ‘와, 형아들 잘하네!’ 추임새도 넣는다. 그러다 보니 형들도 레오 이름을 다 안다. 재빠르고 인사성이 있어서일까? 놀이터에서 만나 뛰어가면 게임 한 판을 시켜주는 형도 생겼다. 레오는 그 형들이 고맙다. 집에 있는 누나도 고맙긴 하다. 레오가 학습지 문제를 잘 풀어 백 점 맞으면, 누나 핸드폰으로 게임 한판 시켜준다. ‘너 그러면 게임 한 판 안 시켜 준다?’ 누나의 엄포에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누나한테 고분고분 잘 보여야 한다.
2. <레오와 교장선생님과의 이별>
대구에 살던 레오네가 서울 근처로 이사하게 되었다. 레오는 그 많은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어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공산초등학교와 교장선생님 걱정이 앞섰다. 늘 운동장에서 등교 시간에 맞아주던 대머리 교장선생님을 두고 전학 갈 수 없어 교장실에 인사하러 갔다.
“레오구나. 오늘 기분이 안 좋으냐?”
교장선생님은 교장실 한편에 마련해 둔 달콤 창고에서 ‘에너지 바’를 몇 개 집어와 탁자 위에 놓으며 레오를 맞았다.
“저 서울로 전학 가요.”
“그래? 아빠 일터가 바뀌었구나. 축하해!”
“그런데 걱정이에요. 공산초등학교에 들어올 신입생이 세 명뿐인데 저까지 전학 가서….”
“교장이 할 걱정을 대신 해주네. 고맙다, 고마워!”
“교장샘, 우리 공산초등학교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데, 선생님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형아들도 좋고, 다 좋은데 왜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오지 않지요?”
레오의 말은 진심이다. 아침마다 일찍 와서 운동장을 열 바퀴 돌면 한 학기에 한 번씩 ‘건강 바퀴 돌기 상’도 주고, 틈틈이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으면 다달이 ‘다독 상’도 주고, ‘자연 관찰 기록상’ ‘지구 살리기 아이디어 상’ 등 2학년 레오가 받은 상장만 해도 10장이 넘는다.
“그래서 교장샘, 제가 공산초등학교를 만들었어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찰흙으로 빚은 학교 모형 두 개를 끄집어내어 한 개를 교장선생님 앞으로 밀었다.
”교장샘이 저 보고 싶거나 힘들 때 이것 보고 힘내세요.”
조그만 학교 얖에는 레오가 가망 메고 손 흔드는 모습이 생생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저도 교장샘이 보고 싶거나 힘 들 때 이것 보고 힘낼게요.”
하면서 자기 앞으로 당겼다. 조그만 학교 앞에 세워둔 교쟝선생님 모형도 대머리가 두드러지게 빚어져 있었다.
“햐, 참 녀석! 장차 큰 인물이 될 텐데 오래 지켜보지 못해 아쉽네!”
교장선생님은 레오를 덥석 안아 올려 ‘지구 한 바퀴!’ 하면서 빙 돌려주었다.
3. <레오와 레아가 전학해 온 날>
레오는 엄마 손을 잡고 오륜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섰다. 전학 와서 3학년이 된 것부터 좋았다. 팔짝팔짝 뛰면서 신이 나는데 누나는 뒤에서 어거적어거적 걸어왔다. 엄마가 물었다.
“왜, 어거적거리냐?”
“엄마 없이 우리끼리 가면 안 돼요?”
“왜? 엄마가 못나서? 아니면 엄마가 늙어서?”
“예, 친구들 엄마는 젊은데….”
엄마는 깜짝 놀랐다. 37살에 낳은 딸이 엄마가 늙었다며 싫어하다니…. 그래도 첫날이라서 교무실까지 찾아가 아이들을 맡기고 갔다.
학교에서 돌아온 레오는 오늘도 신이 났다.
“엄마, 공산초등학교에서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 오륜초등학교가 나한테 딱 맞아요. 우리 담임 은나영 선생님은 학생들을 사랑해요. 친구들 오우빈, 김재윤, 배유나, 도윤이랑도 많이 친해졌어요.”
그런데 레아는 말이 없다.
“레아는 오늘 어땠어?”
“전학 온 것 표 안 내려고 했는데요. 화장실이 어디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는데 초희라는 아이가 따라와서 가르쳐 줬어요.”
“고맙구나. 초희랑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말이 많아서 제 귀가 따가워서 싫어요. 그래서 도서실 책이나 빌리려고 담임선생님께 ‘책 빌릴 때 독서 카드가 있어야하냐고 물었는데 ’모르겠는데?‘ 하시데요. 그러자, 친구들이 도서실로 데려가 주었어요.”
그때 엄마 눈빛이 번개처럼 번쩍였다.
“레아, 너는 당분간 책 읽지 마. 새 학기 초에 전학 왔으니, 친구가 필요해. 친구를 사귀어야지.”
레아는 친구보다 책이 더 좋다고 구시렁거렸고, 엄마는 레아 눈을 똑바로 보며 힘주어 말했다.
“너한테 친절하게 대해준 친구 세 명을 택해서 네 명 그룹을 만들어야 돼. 세 명이면 둘이 한 명을 왕따 시킬 수도 있거든.”
레아가 반응을 안 보이자, 엄마는 특명을 내렸다.
“오늘 학교 가다가 마주친 8단지 그 아이 말이야. 내일은 그 아이 손잡고 우리 집에 와서 간식 간단히 먹고 가도록 해라. 그래야 친해지거든.”
레오는 친구가 넘쳐서 걱정인데, 레아는 친구 없이 조용히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글쓰기가 취미라서 두 아이 엄마는 엄마대로 걱정이다.
4. <레아의 고민>
-어쩌다가 혼자-
나는 어쩌다가 혼자가 되었지
만약에 내가 대구에서처럼
세민이와 함께 더샵 음악 미술 학원에 다녔다면
지금 나는 세민이랑 음악이나 마술을 하고 있겠지
이게 다 내 동생 때문이야.
동생이 축구하니까
엄마가 축구장에 가야 되기 때문이야
외할머니도 지금 팔공산에 계시지
나는 어떡해
레아는 이 시를 써서 대구 외할머니랑 주고받는 카톡방에 올렸다. 할머니가 곧장 전화했다.
“레아, 오늘 혼자 있구나. 어쩌누, 우리 레아가 외로워서….”
“할머니는 가족이 싫은 적 없었어요?”
“글쎄….”
할머니는 레아가 묻는 뜻을 가늠할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저는 동생이 싫어요. 동생이 없으면 엄마는 내 차지인데….”
“그래 맞아, 이 할미도, 어릴 때 남동생한테 밀렸어. 맛있는 건 남동생만 주고, 남동생이 대들어도 남동생 편만 들어주어서 많이 울었지.”
“하하, 남동생한테 밀렸어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 휴대전화도 나만 사주고 엄마, 아빠 없을 땐 누나가 엄마, 아빠라고 대들지 못하게 하거든요. 호호호!“
“하하하! 네가 더 좋으네.”
“할머니 우리 집에 언제 오셔요?”
“글쎄, 차차!”
“내 생일 날 꼭 오세요. 알았죠?”
“그래 나도 너희들이 보고 싶어 혼자 운단다. 너희들이 이 할미 집에 와서 놀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랑, 작은 밥숟가락만 봐도 쓸모없는 것들 같아 눈물이 나고, 레아가 좋아하던 오이무침만 봐도 눈물이 나고, 레오가 좋아하던 진미채만 봐도 눈물이 나고….”
“할머니, 그래도 참으며 살아야지요. 엄마한테 할머니 빨리 오시게 이야기해 볼게요. 학원 갈 시간이라서 끊어요. 뚜 뚝!”
할머니는 레아가 서울 갈 때 주고 간 편지를 다시 들여다본다. 할머니가 활짝 웃는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다.
<할머니, 제가 가끔 사진 보낼 테니 이것 보시고 힘내세요. 서울 오실 때, 요 실 팔찌 꼭 끼고 오세요. 레아 올림>
할머니는 레아가 만들어준 실 팔찌를 끼고 힘을 내어본다. 으샤으샤!
5. 외할머니 오신 날
“얘. 여기가 어디라고 더러운 책가방을 막 갖다 놓니? 얼른 가방 내려.”
도서실 책상 위에 레오 책가방이 입을 벌리고 널브러져 있자, 옆자리에 있던 분홍 원피스 입은 아이가 레오에게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러닝셔츠에 땀을 훔치던 레오가 뻘쭘해져서 일어나서 책가방을 내리려는데, 누나가 레오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머. 소중한 책이 든 책가방을 흙바닥에 놓으라고? 흙바닥에 두었다가 들면 손바닥까지 더럽혀져 병균이 옮을지도 모를 텐데. 정말 더러운 걸 모르네.”
레아의 눈총을 받은 분홍 원피스 아이가 고개를 획 돌리더니 도서실을 급히 빠져나가 버렸다.
“누나, 거들어줘서 고마워!“
“뭘!”
레아도 세액 웃었다. ‘넌 내 동생이잖아.’ 하는 말이 들어 있는 웃음이었다.
그 사건이 있고부터 레오가 더 고분고분해졌다. 둘이 같이 ‘할머니 서울 모시기 작전’을 꾸몄다. 할머니랑 주고받는 카톡방에서 영상 통화를 하며 할머니께 미끼를 던졌다.
“할머니 오셨을 때 영화만 나오는 텔레비전도 할머니 방에 갖다 뒀어요. 레오가 단독 사물함대도 갖다 두었고요. 할머니가 좋아하는 가곡 콘서트장 표도 엄마가 예약해 두었어요.“
휴대전화가 없는 레오는 누나 등 뒤에서 목소리만 크게 높였다. ‘할머니 사랑해요!’ 그래도 할머니가 더 잘 들으시게 한 번 더 크게 소리쳤다. ‘할머니 정말 사랑해요!’
드디어 대구에서 할머니가 오셨다. 서울역에 마중 나와 오는 길에 두 아이는 저희끼리 규칙을 정했다.
“가위바위보로 이기는 사람이 할머니랑 자기다.”
‘앗싸!’ 레오가 이겼다. 레아가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할 말은 있다.
“내일은 무조건 내가 할머니랑 잘 테야. 그래야 공평하잖아. 한 밤씩 자기니까.”
그때 엄마가 훼방꾼처럼 끼어들었다.
“너희들 각자 공부 다 끝나야 할머니랑 놀 자격을 줄 거야.”
그날 아이들은 저녁 먹기 전까지 각자 방에서 숨소리도 안 들리게 숙제를 다 했다. 저녁을 다 먹고 레오가 할머니 방으로 건너왔다. 레오의 문제집을 매기던 할머니가 혼잣말하셨다.
“이거 내가 계산이 틀리나? 난 답이 17 같은데?“
그 말에 레오가 들여다보더니 ‘아 제가 실수했어요.’ 하며 답을 고쳤다. 누나라면 틀렸다고 가위표로 좍 그을 텐데. 할머니는 다시 한 번 들여다볼 기회를 주어서 고마웠다. 할머니랑 잠 잘 때 레오는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하며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레아가 할머니 방문을 열며 실 뜨개질 도구를 들고 왔다. 새벽잠이 없는 할머니가 심심할까 봐 같이 놀아주려고 사둔 놀이 도구였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같이 뜨개질 했다. 6시 30분에 레오도 깨어났다. 레오는 오목 판을 들고 할머니 앞으로 왔다. 할머니는 두 아이랑 놀아주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두 아이가 학교 가고, 부부가 직장 가고, 할머니는 아파트 앞 공원에 나가 비둘기도 만나고 강아지도 만나고 늙수그레한 동네 할머니도 만났다. 점심 먹고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원 없이 읽었다. 집에 오면서 레아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를 사왔다.
저녁때 케이크에 불을 켜고 레아의 생일을 축하했다. 저녁 7시에는 ‘영화 음악 콘서트’ 표를 사두어 연주를 들으러 갔다. 모두가 열심히 듣는데 레오는 몸이 뒤틀렸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라서 같이 오긴 했는데, 모르는 노래뿐이라서 재미가 없었다. 드디어 끝이 났다. 레오는 신나게 손뼉을 쳤다. ‘야. 해방이다. 이젠 집에 간다!’ 하며 일어서는데 ‘앙코르’ 소리에 다시 한 번 연주를 했다. 하는 수 없어 레오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디어 끝이 났다.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박수를 했다. 사람들도 더 큰 소리로 ‘앙코르’를 외쳤다.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다. 레오는 화가 잔뜩 났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연주가 끝나자 레오는 일어서서 손나팔을 해대고 소리쳤다.
“이젠 제발 나오지 마세요. 오줌도 살 것 같고, 화장실도 가야 해요. 제발 제발요!”
드디어 끝이 났다. ‘후유, 다행이다!’ 레오는 얼굴이 빨개졌다.
“레오야, 아까 뭐라고 소리쳤니? 아주 손나팔을 하고 소리치던데?”
할머니는 레오가 연주에 감동해서 소리친 줄 알았을까? 그런데 레오가 할머니 귀에 대고 소곤
거렸다.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두 번, 세 번 자꾸 연주해서 뿔이 났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서 제발 끝내라고 소리쳤지요. 뭐!”
“하하, 그랬구나.”
할머니만 들은 레오의 진심에 할머니만 미안했다. 그날 밤은 레아가 할머니를 독차지했다. 할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잠들 때 레아는 ‘인도 명상 음악’을 틀어달라며 잠들었다. 할머니랑 잠버릇 코드가 딱 맞아서 좋았다.
다음 날, 아침, 두 아이는 학교에 가면서 할머니께 인사 하러 왔다.
“할머니 제 생일날도 오셔야 해요.”
레오가 후다닥 나가고, 책가방을 메고 뒤따라가는 레아 얼굴이 어둡다. 왜일까?
“할머니 잘 가세요. 어린이날 또 놀러 오세요.”
할머니는 뒤돌아서서 깊숙이 인사하고 가는 레아가 힘이 없어 보여 걱정이었다. 대구 내려 오는 기차 속에서 할머니는 레아 문자를 읽었다.
“할머니 십년을 살다보니 이별이 이렇게 슬픈 것인 줄 알겠네요. 잘 내려가세요. 또 봐요. 우리!”
2025년 3월 11일 3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