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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7) 6세기 ② - 베네딕투스의 영성
지도사제 18.05.22 08:06
기도, 노동, 독서 중심의 수도 생활
베네딕투스가 가르친 중요한 수도 생활은 기도, 노동, 독서였습니다.
베네딕투스는 수도자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성독(聖讀)을” 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강조
베네딕투스는 매일 적어도 2~4시간씩 정기적으로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즉, 소리 내어 읽는 독서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다면 독서에 집중도 잘 될 것이고, 하느님 말씀도 선포할 수 있어서 유용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베네딕투스는 저서 말미에 독서 목록으로 성경 말씀 이외에 교부들의 가르침들이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포함시켰습니다.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2) 12세기 ⑥ - 생 빅토르회의 신비신학
지도사제 18.06.16 08:05
후고는 순명으로 교만을 극복하고, 욕망과 악습을 짓밟아서 극복하며, 성경 독서와 묵상으로 무지를 극복하고, 영성적인 열정을 더 높은 선을 추구하는 데 활용해 완덕에 다다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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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제2장 - 04 하느님은 역사 속의 위인들과 성경 안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신비롭고 진실하게 그리고 찬양받으실만한 방법으로 아주 평범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무화 16.08.18 21:16
하느님에 관해 기록된 말씀은 신비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건들 안에 표현된 그분 말씀 역시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은 참으로 봉인된 것이며, 이 두 권의 책과 관련하여 "글자는 사람을 죽인다"(2고린 3, 6)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육안으로 우리는 자연의 태양과 빛을 바라볼 수 있지만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업적을 알아내고자 하는 영혼의 눈은 닫혀 있습니다.
거기에는 빛 대신 어둠이 있어 안다는 것은 무지함이며, 우리가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훨씬 더 신비로우신 하느님에 관해 쓰여진 말씀이며 또 역사적 사건들은 숨겨지고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과 관련된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채려 한다면, 두 눈을 감고 이성적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이다" 라고 말하는 그들은 "성경에 쓰여져 있는 모든 것이 진실" 이라고 확신합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짧을수록 그들은 그것을 공경하고 하느님 지혜의 심오함을 경배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옳고 또 합당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종이에다 잉크로 쓴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매순간 고통을 받으면서 행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무슨 이유로 우리는 그분께 똑같은 관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그분의 진리와 선성(善性)을 받들어 모시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흡족해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으로써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을 감각과 이성에 의지하여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성경에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그분의 활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신앙이 아닌 다른 눈으로 그것을 읽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다른 눈을 가지고 그것을 읽게 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제2장 - 05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고 계시지만 그 문자들은 심판 날까지 볼 수 없을 것이다.
무화 16.08.25 22:07
구약성경 전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신비로운 흔적을 보여주는 하나의 자그마한 도표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단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만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제 우리 마음을 떠나 더 이상 복음을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행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일러주신 새로운 복음을 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종이가 될 것이고 우리의 행동들은 잉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작용은 펜이 되고 그 펜으로 그분은 생명을 주는 복음서를 쓰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쇄소와 같은 이 세상을 떠나 마지막 영광스러운 그날이 닥쳐올 때까지 이 복음서를 읽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우주 안에서 행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각각의 모든 글자가 그 자체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작은 모양으로 매우 심오한 신비들을 지니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우리가 어떻게 읽을 수 있으며 또 얼마나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같은 신비들을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믿음으로써만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오니 성령이시여, 생명의 책 안에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도록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를 염원하오니 보잘것없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제가 볼 수 없는 것을 믿게끔 하여 주십시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시고 설명하시며 책의 글자들을 배열하시어 그 책을 알아듣게끔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입니다.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제4장 -07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온유하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는 길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화 17.03.09 22:54
그분의 영은 끊임없이 명을 받아 매일의 생활 안에서 완성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일어난 이 같은 진리의 결과를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따라 살고자 한다면 단순하고 완전하게 하느님의 활동에 우리 자신을 내맡겨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활동의 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히브 13,8).
그분의 일은 끝마쳐졌지만, 되어지기로 남아 있는 일은 매 순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게 해 드리고 우리에게 대한 그분의 원하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복음이고 성경 전체이며 또한 율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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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신학 사랑학
제1부 그리스도교 전통
제1장 배경(Ⅰ) 신약성경 진리의빛 24.02.07 07:44
일찍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기도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했다.
제2장 배경(II) 성경 그대로되었다 24.03.13 07:06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훗날 신비신학이라 일컫는 것을 서서히 깊이 있게 구성해 왔다면, 그 출처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다.
교부들은 기도를 어디서 배웠을까? 우리가 지금 신비주의적 기도라 부르는 것을 어디서 배웠을까?
앞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주요 출처가 성경임이 밝혀진다.
교부들의 작품을 언뜻 살펴보기만 해도 얼마나 그들이 성경을 읽고 또 읽었으며 성경에 관해 묵상하고 성경을 생활화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작품들은 당시를 배경으로 한 성경의 해석판에 불과하다.
좋은글 성서신학 석학 정양모 신부 "교회만 다니면 뭐하나, 예수공부 안 하면 그리스도인 아닌데.."
무량 17.08.31 08:49
“예수 공부는 어렵다. 예수 닮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포기한다.
공부도 포기하고, 닮기도 포기한다.
그런데 그게 뭘 뜻하는지 아나. 그건 그리스도인이 되는 걸 포기하는 것이다.
교회만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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