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러 슈퍼에 갔다-유민서 회원의 <그림슈퍼>
춘천에 사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숨겨진 벚꽃 명소 중에 에리트아파트가 있다. 벚꽃은 아니지만 흰 눈이 제법 휘날리던 2월 21일 에리트아파트 상가에 자리잡은 <그림슈퍼>를 찾았다. 이번에 재개된 밥상토크 첫 진행자로 당첨(!)되어 유민서 회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재개된 밥상토크는 회원의 일터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일터 토크’로 콘셉트가 살짝 바뀌었다.) <그림슈퍼>는 유민서 회원이 그림 작업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거나 취미미술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회원이 내려준 향기 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퇴계동, 한림대 병원 근처를 거쳐 우두동에서 3년간 드로잉카페를 운영하다가, 작년 10월 지금의 장소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렇게 숨어 있는 장소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특이하게도 회원이 보살피고 있는 ‘길고양이’를(앗! 냥이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고, 근처 한림대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그림슈퍼라는 이름이 궁금하다며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참, 한림대 그림동아리 학생도 조언을 구하고 갔다 한다. 연인끼리 와서 같은 그림을 그리거나, 스티커나 키링 같은 소품을 만들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림슈퍼>는 손님맞춤형이다.(^^) 일반 화실이나 학원처럼 정형화된 커리큘럼이 있거나, 본격적으로 재료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그릴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는 그때그때 유회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하면 된다.
<그림슈퍼>에 왔으니 나도 그림을 하나 그려서 가야지 싶어서 처음으로 오일파스텔화에 도전해 보았다. 먼저 유회원이 오일파스텔을 다루는 법과 색의 조합에 대해 설명한 후, 독일 유학 당시 좋아했다는 화가(클라우스 푸스만)의 그림을 따라 그려 보라고 했다. 초보자에게는 이런 모사가 꽤 도움이 된다고 한다. 두 시간 남짓 서툴게 선을 그리고 색을 채우고, 위에 또 색을 덧입히니 그럴듯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초보치고는 잘 그렸다는 격려성 칭찬도 들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유회원은 그날 마감인 춘천문화재단에서 공모하는 사업지원서를 열심히 썼다. 지역의 대학생이나 청년들과 그림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와 쇼츠, 인스타에 중독되다시피 한 이십대들에게 천천히 그림을 그리고 완성해가는 과정은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부디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를 바란다.
사진 찍기를 원하지 않는 유민서 회원 대신에 내가 그림을 들고 인증샷을 찍고 오늘의 토크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이 있냐고 묻자, ‘별다른 것 없이 지금까지처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늘 그랬듯이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말로 이해했다. 곧 3월이다. 근처 캠퍼스가 개강을 하면 오가는 사람들도 늘 것이고, 4월이면 <그림슈퍼> 바로 앞 공터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인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꽤 북적북적할 것이다. 그때쯤 나도 <그림슈퍼>를 방문해서 봄날의 풍경을 담아보려고 한다. 민우회 회원분들도 그림에 살짝 빠지고 싶다면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젊은 예술가의 단단하지만 소중한 꿈을 응원한다. (회원 김양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