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봉(660) - 도각봉(800) - 삼갈래봉(830) -
파계재(800) - 금당봉(930) - 물불산(750) - 버스 주차장(300).
"해일봉"이라는 이름은
"바다 해(海)"와 "해 일(日)"의 한자로 구성되어 있다.
"해일"이라는 단어는 "바다의 일출"을 의미한다.
산봉우리에서 바라본 일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름이다.
"길 도(道)"와 "깨달을 각(覺)". 도각봉.
"도"는 불교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고,
"각"은 깨달음을 뜻한다.
수행이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장소로 유명한 성전암이
도각봉 바로 옆에 있다.
파계재에서 파계사 입구쪽으로 볼 때
왼쪽에 불쑥 솟아오른 산이 물불산이다.
'봉'으로 부르기엔 규모가 커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여튼 '산'이라 불린다.
팔공산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것은 물불산 뿐이다.
높이가 750m.
한참을 오르고 내려갔다 다시 올라야
꼭대기에 다다른다.
산 꼭대기에선 일망무제의 조망이 나온다.
팔공산 중심부에서 서쪽이기 때문에
신림봉~낙타봉 능선 서편 봉우리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왼쪽이 해일봉. 오른쪽이 도각봉.
↓삼갈래봉.
한티재. 도각봉. 파계재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원당봉산 표석.
파계사가 대구 양반들의
무뢰한 같은 행패 때문에
애를 무진장 먹었다.
놈들은 후손 없으면
아이 점지해 달라고
절에 와서 생떼를 쓰면서도
중 앞에만 서면
발길질이고
업신여기며 거들먹거렸다.
전쟁이 나거나
부역 일거리가 생기면
자기 집 종 부리듯이
중을 강제 동원했다.
원당봉산(願堂封山)은
'원당'과 '봉산'이란 두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원당(願堂)은
왕실의 안녕(安寧)이나 명복(冥福)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
봉산(封山)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
이 원당봉산 표석은
숙종 후궁 숙빈 최씨가
영조를 회임하였을 때
순산 기도를 올려준 대가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절을 원당이라 불렀다.
왕의 출생을 도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이 표석이
양반의 횡포로부터
파계사 사찰 재산의 약탈을
어느 정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왕실과 사찰.
그리고 양반층의 역학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예가 바로
파계사 경내에 있는 '하마비'다.
↓앞면에 ‘대소인 개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라고 적혀 있다.
이 비석이 왕실의 원당에 감히 말을 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양반이나 유생들이 파계사에서
난리를 피우지 못하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양반과 유생의 횡포로부터 절을 지키고자
이 절 주지 현응대사가
숙종 임금에게 설치해 달라고
요청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정도의 뒷배가 있는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였다.
'사찰은 종이를 비롯하여 온갖 잡물을 지방 군현에 납부하여야 했고,
관청이나 양반 토호의 사적인 침탈을 당하기도 하였다.
각 사찰은 원당으로 지정받아 왕실이나 중앙 세력과 연결하여
과중한 경제적 부담과 침탈을 막고자 하였다.
궁방의 원당을 혁파하라는 조치는 간혹 내려졌지만
왕실의 원당은 없어지지 않았고
사찰에서 자의적으로 원당을 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
17세기 승군은 축성뿐 아니라 궁궐·산릉·제언 조성에도 동원되었다.
17세기 중반부터 100년간 20여 회가 넘게 삼남의 승려가
산릉 조성에 동원되었고, 궁궐 조영에도 광해군에서
현종대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참여하였다.
이 시기 국가의 요역 체제는 노동력의 직접 징발 대신
필요한 재정을 부담하게 하는 금납화(金納化)로
방향이 전환되었지만,
승려는 오히려 국역 체제에 더욱 편입된 것이었다.'
<<김용태. 한국불교사에서 인용>>
"승려들은 산성이나 왕릉, 궁궐을 짓는 공사에 무시로 동원되었지만
삯을 주지 않아 빌어먹거나 굶주렸다.
왕족들이 사냥을 즐길 때면 각도의 승려를 불러 몰이꾼으로 삼았다.
궁궐 후원의 해자 파기, 세도가의 묘지기, 시체의 수습과 매장,
관청과 세도가의 땔감 장만하기, 약초와 양념 마련,
상여 메기와 무덤파기 등의 부역에 동원됐다.
또한 절승지 유람에 유생 모시기는 가혹했다.
가파른 산길에 가마를 메고 가다 보면
돌부리에 걸린 발에서 피가 터졌고,
그 위에서 양반들이 스님의 머리에 마구 털어댄 담뱃불로
머리가 그슬리기도 했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가마를 놓치면
형틀에 묶여 곤장을 맞았다.
그렇게 사찰에 당도한 양반들은
기생을 불러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등 수행의 도장인 사찰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승려들은 양반이 떴다고 하면
절간을 비우고 줄행랑을 쳤다."
출처 : 조선팔천. 이상각 著
양반 유생들이 중을 멸시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중이 목탁만 두드리며 무위도식한다는 점이다.
제 놈들도 서민 백성들의 피 빨아먹고사는 처지였는데
중들에게 이런 이유를 갖다 대니 어처구니가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둘째는 중들이 절로 출가하여 장가를 들지 않아
인구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 머릿수대로 세금을 받아내야 하는데
중이 늘어나면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는 이유다.
참으로 웃긴다.
5백만 명 안 되는 사람도
못 먹여 살리는 곡물 생산량 때문에
조선 팔도가 춘궁기만 되면
매년 격심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으로 넘쳐났는데.
수탈 대상 숫자만 헤아리고 있었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식량 증산 방법을 머리 모아 고민해야 하는데
양반 놈들은 서원에 떼거리를 지어
명당 찾기. 족보 따지기. 관혼상제 절차 따지기에만 몰두하였다.
물불산 지명의 유래는 불확실하다.
짐작 뿐이다.
물불(勿弗). 아니 물, 아니 불.
둘 다 부정(not)의 의미를 가진다.
이중 부정이다.
그러나 여기에 별다른 뜻은 없다.
'물불'을 소리나는대로
한문으로 옮긴 것뿐이다.
그러면 '물불'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파계사 원통전에서
불경을 외우면서 물을 뿌리는 의식에서
나왔다는 말이 유력하다.
손에 든 나무막대를 이용해
물을 뿌리는 것은
물이 정화의 상징이면서도
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물뿌리'가 '물부리' '물불'로 변했다.
독경 도중에 물을 뿌리면
공기 중에 증발하는 수증기가 생긴다.
이것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닮았다.
이것은 하늘의 도를 사모하는 인간이
하늘과 대화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파계사는
근래에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이웃절 동화사 은해사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때 조선 왕실의 원당이었다는
과거의 영광,
지금은 당대 최고의 선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시쳇말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는 식이다.
('가오'는 얼굴, 체면, 자존심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장좌불와. 동구불출.
용맹정진의 선풍이 파계사 성전암을 감싸고 있다.
파계사(把溪寺)란 이름은 '파계'한 승려때문에
붙은 것이 아니다.
잡을 파, 시냇물 계.
파계사 계곡의 물줄기를 한 곳으로 모은다는 의미다.
↑금당봉(930)에서 남쪽으로 물불산 줄기가 뻗어내린다.
★ 모든 참가자는 안전수칙을 최우선으로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 ★ |
일 시 | 24.8.31.토. 오전9시 |
만남 장소 | 101번 파계사 종점 버스주차장 |
도보 코스 개요 | 해일봉~도각봉~삼갈래봉~파계재~파계봉~물불산~원점회귀. 7km.
현지상황에 따라 진행자가 도보 코스를 적절히 변경/가감할 수 있습니다. |
종료 예정 시간 | 오후 6시 |
진행자 | 한소 010/5164/4249 |
참가 신청 방법 | 참가 n / 닉네임 / 하고 싶은 말... |
준비물 | 식수, 트레킹복장, 트레킹화, 스패츠, 아이젠, 스틱, 기타 등등 도보 중에 에너지 보충할 행동식 또는 간단한 점심도시락 |
기타 참고 사항 | *정시에 출발하니 5분전까지 도착하세요. *카페의 닉명찰 패용은 다른 회원들에게 예의이고 배려입니다. 이름표가 없는 회원은 1천원을 준비해서 명찰을 구입하세요. *도보후 뒤풀이는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특기 사항 | |
도보 안전 관련 사항 자동 약정 | 우리 카페는 순수 비영리 동호회로서 카페 운영진과 도보진행자는 회원들의 편의를 위하여 일시적으로 앞장서 봉사를 하는 것이므로 도보 중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은 회원 및 동행 참가자 각자에게 있으며 카페나 진행자에게 민·형사상의 법적, 금전적 책임을 따로 물을 수 없습니다. 참가신청을 함으로써 위 사항이 상호간에 자동약정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카페차원의 보험가입은 없으니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세요.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의 안전에 최대한 주의하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