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주노> 고정관념화된 어른들에게
맛깔나는 영화여행/2005 건방떨기
2011-07-04 20:10:35
<2005년 2월 18일 개봉작 / 15세 관람가 / 102분>
<김호준 감독 / 출연 : 박민지, 김혜성, 임동진, 김자옥>
어른들은 그런다. 자기만이 옳고, 자기 뜻대로만 하면 세상이 다 ‘만사형통’인 줄 안다. 자만에 빠진 어른들은 더 나아가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고, 인간을 ‘개조’시키겠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사람의 주위에는 늘 불행한 사람이 한 명 이상 존재한다. 그 불행의 씨앗이 커지면,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패닉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자만’과 ‘독재’에 빠진 그런 사람의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회는 그만큼 불행해지고 그로 인해 피해자는 속출하게 된다. 그만큼 한 사람의 “어른”이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래서, 인성교육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올바른 가치관 정립과 또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겸허하게 포용할 줄 아는 대인관계는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제니 주노>는 이미 한차례 사회적 고정관념에 대한 시험을 거쳤다. 15세의 임신. 사실,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밝게 임신을 받아들이는 현대의 청소년은 매우 드물거나,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니 주노>가 15세의 임신이라는 파격적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선뜻 거부감이 일기 전에 15세의 임신 자체가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실수였든 고의였든 우리사회의 현실에서 15세의 임신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어디서든 고통받고 있을 그네들의 모습은 존재하는 것이기에, <제니주노>의 문제는 영화가 아닌 우리 사회적인 병폐로서의 문제제기를 시도한다. <제니주노>는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에 대한 판타지다. 이 판타지는 <몽정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몽정기>가 있을 법한 성적 호기심에 대한 접근이라면, <제니주노>는 직접적으로 임신까지 했고, 또 임신한 사실에 대해서 처음에는 숨기고 약간 고민하긴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밝게 세상을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우리는 ‘일탈’한 청소년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볼 수 있다. <제니주노>가 청소년들의 일탈을 부추기는 영화라고 떠들지만, 이미 ‘임신’하여 고민하고 있을 청소년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한 순간의 ‘실수’로 잿더미가 되어버린다면…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하게 했던 우리 환경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먼저 우리의 환경보다 그들을 먼저 탓한다. 청소년기. 방황기에 있는 그들에게 길을 똑바로 인도를 하지는 못할지언정, 강압과 억압 그리고 편견만을 강조하며 우리 자신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편견으로 고정화된다. 그것이 “고정관념”이다. <제니주노>가 비판받아야 할 점이라면 문제제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해법을 정확히 제시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판타지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런 시늉만 했을 뿐 별다른 깊은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그 점은 오히려 절망에 빠진 이들을 더욱 더 절망적으로 몰고가는, 파탄의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제니주노>는 항상 들떠 있으며, 그들의 미래는 부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고정관념’화된 어른들은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의 뜻을 꺾으려 할 것이며, 그들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의견은 애초에 들어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어떤 잘못을 한 것인지 그들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생소한 어린 자식의 임신. 그들은 <제니주노>의 상황에 처한다면, 먼저 상처를 입을 것이며 스스로의 상처를 먼저 치유하느라 자식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여유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영화는 그런 어른들을 은근히 비꼰다. 영화 속의 어른들은 결국은 <제니주노>에게 두 손을 들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어이없고 설득력이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절망적이기만 하다. 그렇다. <제니주노>는 문제제기만 했을 뿐. 깊이있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설득력이 부족한 결말과, 마냥 행복하기만 한 그들. 영화 속의 어른들은 <제니 주노>에게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다. 또한, 끝까지 그들을 허락한 것이 아니다. 다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현실은 어떻겠는가. 주노가 택시를 잡아타고 제니를 쫓아갔다. 주노가 제니의 차를 따라잡고, 택시기사들이 일제히 그녀의 차를 향해 나아갔을 때, 제니의 양수가터지고 애기를 낳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말이란 말인가? <제니주노>는 그렇기 때문에, 15세의 아이가 임신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면, 그들을 그래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니? 라고 ‘어처구니없이’ 묻는 판타지다. 그 판타지는 별다른 맛은 없다. 그러나, 어쨌든 무엇인가 계기는 되어야 할 것이다. 15세의 임신.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15세의 임신은 일반적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오늘날의 사회는 15세에 임신한 것이 그다지도 사회적인 문제가 된단 말인가? “고정관념”은 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문제가 있는 학생은 어딘가에서 그 이유가 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분명히 그 원인이 어딘가에 있다. 사회의식의 성장은 “왜”라는 질문에 있다. 그 사람을 욕하기 전에 “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자. 아주 지독한 “고정관념”에 빠진 사람은 때로는 사람을 아주 지독하게 피곤하게 한다. 그 사람은 ‘왜’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나’를 먼저 주장하는 사람이다. ‘나’를 너무 세우지 않는 것도 좋지 않지만, ‘나’만 고집하는 것은 더욱 더 피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