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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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왕관 3.
밤하늘의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는 가운데 2층의 수직 브라인드 사이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던 강여사는 시원하게 판 네크라인과 퍼프 소매가 잘 어울리는, 성숙미가 느껴지는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서서 화장대 앞에 있는 두 미녀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제 식사가 끝나가는구나."
연하늘빛과 분홍의 파스텔톤 소파에 두 미녀를 앉힌 강여사는 홀로 내려가기 전에 그린색 카피트 위에 서서 조용한 음성으로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소를 잃으면 안 돼. 특히 남자분들에게는 항상 미소를 지어야 돼. 단, 미소에는 여러 가지 미소가 있으니만큼 상황에 따라서 수줍은 미소, 친근한 미소, 요염한 미소, 거절하는 미소를 잘 짓도록 해."
윤보혜와 나비향은 여학생처럼 가만히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모를 믿고 자만심이나 우월감에 빠지지 말아. 타인에게 질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은 특히 여성분들에게 질투를 느끼게 하는 것은 미인으로서 수치야. 너희들의 선배 언니인 주라는 질투를 인생의 암으로 생각하고 대인관계를 유지해왔어. 그것이 주라의 오늘을 말해주고있는 거야. 앞으로 주라가 니들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줄거야. 그리고 보혜는 내가 아까 했던 말을 명심하고 그대로 행동하고."
"네."
알아듣겠다는 듯 윤보혜가 밝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정원에서의 만찬을 끝낸 초대객들은 연박사의 안내로 테라스를 지나서 홀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댄스를 위해 설치된 오디오에서 이끼가 촘촘한 두개의 바위 사이로 블루스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홀 반대편 끝에는 두 개의 식탁이 의자와 함께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로 초록의 자연과 르는 물로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실내 조경이 썩 잘 되어 있는 내부 풍경이었다.
천장과 샹들리에 불빛이 환하게 겨지는 순간, 2층에서 미스코리아 진과 선이 미소 띤 얼굴로 계단을 밟아 내려오고 있었다. 얼굴의 곡선과 아름다운 어깨선을 강조하는 업스타일의 의상을 입은 나비향은 스카프로 나비 모양을 만들어 뒷모습을 강조하였고 계단을 한 계단씩 내려올 때마다 포도송이 진주 귀걸이가 찰랑거려 매력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선의 뒤에서 내려오고 있는 윤보혜는 적색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노방치마 저고리엔 수많은 장미꽃이 그려져 있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국적인 외모를 풍기는 나비향과 동양의 양귀비 같은 윤보혜의 개성이 잘 어울리는 의상들이었다. 그만큼 강여사의 의상선택은 돋보이는 것이었다.
넓은 홀에 내려선 두 미녀 사이에 선 강여사는 긴 뒷머리를 반으로 갈라 볼륨감 있게 중앙으로 걷어올리고 앞머리는 여성스럽게 웨이브지게 빗어내린 헤어 스타일로 초대객들에게 약간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더블 금단추와 검정색의 바이어스가 깔끔한 정통 샤넬 투피스를 입은 강여사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초대객들에게 두 미녀를 인사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홀에는 캠코더를 어깨 위에 걸친 박만하가 초대객들 사이를 오가며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었다. 초대객들이 정원에서 만찬을 끝내고 홀로 입장하는 순간부터 줌렌즈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윤보혜와 박윤성 회장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옆에서 찍고 있는 박만하는 욕정에 불타는 눈빛을 애써 감추며 캠코더 렌즈를 미스코리아 진의 얼굴 정면에 비췄다. 그러자 진은 수줍은 미소에서 일순간 긴장된 표정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본래의 미소로 되돌아왔다.
초대객들의 귀에 익은 블루스곡이 홀 전체에 울려퍼지자,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던 권의원에게 강여사가 춤을 청했다. 마음이 맞은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홀 중앙으로 걸어가 볼륨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박회장과 금변호사가 뒤따라서 첫쌍과 합류했다. 이어서 임종도 국장과 성주라가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서로를 껴안았다. 반대로 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초대객들은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혜양은 댄스를 출 마음이 없어요?"
오른쪽 테이블 의자에 같이 앉아 있던 연박사가 춤출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진은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한복을 입어서요."
연박사는 아내의 의상실에서 근무하는 여비서가 칵테일 잔이 놓인 쟁반을 가지고 다가오자, 한 잔 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진도 한 잔 마시고 싶다고 칵테일 한 잔을 청했다. 여비서가 네 개의 칵테일 잔에서 두 개의 칵테일 잔을 연박사와 윤보혜에게 건네주고는 왼쪽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사교춤은 출 줄 알아요?"
연박사가 칵테일을 단숨에 마시고 나서 농담하듯이 물었다.
"잘 못 춰요."
윤보혜는 칵테일 잔에 다소곳이 시선을 두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좌측 테이블에는 김진건 아나운서와 유진숙 여사, 그리고 나비향이 잠시동안 대화를 나누는 듯 싶더니 두 남녀가 의자에서 일어나 홀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테이블에 혼자 남게 된 유여사는 여비서가 놓고 간 두 잔의 칵테일을 들고 윤보혜 옆으로 와 앉았다.
"박사님, 우리 의원님 춤추는 것 좀 보세요. 피봇턴이 환상적이네요. 어머, 스핀턴도 프로급이네...... 저 양반 춤박사 다됐네요. 호호호......"
유여사는 남편의 춤솜씨에 애써 흥미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즐거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강여사의 흐느적거리는 몸놀림을 지켜보고 있던 연박사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저 양반, 댄스 교습소 차려도 되겠어요. 날이 갈수록 능숙해지니......, 호호......"
유여사는 연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보혜는 반쯤 마신 칵테일 잔을 앞에 둔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볼룸댄스를 추는 네 쌍을 바라보고 있었다. 캠코더는 댄스를 추는 네 쌍을 촬영하고 있었다. 음악이 고조되고 있을 때 카메라 렌즈는 서서히 테이블 쪽으로 향해져 왔다.
"정말 의원님 춤솜씨가 훌륭하군요. 네 쌍 중 제일 돋보입니다. 하하......"
연박사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웃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칵테일 잔을 집어들었다. 단숨에 칵테일을 들이킨 그는 숨을 한번 훅 토해내고는 다시 분노의 시선이 담긴 눈빛을 홀 중앙으로 뿜었다.
"호호. 임국장님 쌍이 가장 코믹스럽네요. 임국장님은 아주 씨름을 하고 있네요. 호호호. 어머나, 저것 좀 봐. 스텝이 맞지 않아서 멈춰선 표정 좀...... 호호호......"
유여사는 칵테일을 한 모금 홀짝이고는 미안하다는 듯 반쯤 남은 칵테일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진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었다.
"오늘 파티 어때요?"
"무척 즐거워요."
"댄스 출 남자 친구는 없어요?"
미스코리아 진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우리 녹미회 회원으로 가입하세요. 보혜 양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연박사와 유여사는 다시 홀 중앙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윤보혜는 방금 전에 유여사가 한 말에 가슴 설레고 있었다. 진은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칵테일 잔을 들어 입술에 갖다대었다. 반쯤 남은 칵테일을 입 안에 털어넣고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는 순간,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미스코리아의 손이 자신의 목을 감싸쥐었다. 윤보혜의 얼굴과 손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는 듯 하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연박사가 윤보혜의 죽음을 목격한 것은 담배를 필려고 막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려던 참이었다.
"보, 보혜양, 왜 그래요......"
놀란 연박사가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윤보혜를 간신히 붙잡으면서 안색을 살폈으나 그녀의 동공은 확대될대로 확대되 있었다.
"보혜양! 보혜양!"
다급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퍼졌을 때 미스코리아 진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동시에 유여사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흐느적거리는 블루스를 잠재웠다. 유여사의 찢어질 듯한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춤동작을 멈추고 한두 사람씩 테이블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캠코더는 계속해서 테이블 쪽을 촬영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보혜 양은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
제일 먼저 달려온 강여사 옆에서 연박사가 축 늘어진 미스코리아 진의 손을 놓으며 비통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았다.
캠코더의 암시 1.
"서울시경 특수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