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설 1990년에 시벨리우스는 다가오는 새 세기를 축하하여 개최된 파리 세계 박람회에 헬싱키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이끌고 참가했고 이어 독일과 북구 여러 나라를 순방 연주했다. 이듬해에도 중부 유럽과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이 경험은 시시각각 변모해 가는 20세기 초의 예술 사조를 직접 체험하고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조금씩 스케취하고 있던 교향곡 2번이 그러한 체험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 작곡과 초연 1902년에 완성한 교향곡 제2번은 그 해 3월 8일에 자신의 지휘로 헬싱키에서 초연했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37세에 불과했지만 이 초연은 핀란드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억된다. 해당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었음은 물론이고, 그 직후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앙코르 공연이 세 차례나 열렸으며, 일련의 공연들은 전부 매진되었던 것이다. 당시 핀란드 국민들은 「핀란디아」의 작곡가가 발표한 ‘애국적인’ 신작 교향곡에 열렬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특히 시벨리우스 음악의 권위자였던 지휘자 로베르트 카야누스는 이 교향곡을 ‘러시아의 압제에 대한 핀란드의 저항정신과 궁극적인 승리를 그린 작품’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역시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였던 지휘자 슈네보익트는 각 악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했다. “제1악장은 압제, 압박이라든가 사상에 번민하지 않는 핀란드인의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나타내고, 제2악장은 러시아의 잔인한 압박에 시달리며 애국심에 불타는 핀란드인의 심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3악장은 국민적 감정을 환기시키면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국가 조직에 대한 요구를 말하고 있다. 이어서 제4악장은 구세주의 출현을 예상하는 위안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실제로 작품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 곡의 감동적인 피날레를 들으면서 ‘애국심’을 떠올리는 건 별로 어색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은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의 작품이 아니던가. 심지어 1940년대에 한 음악학자는 아예 작품에다 ‘해방 교향곡’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오늘날에도 핀란드에서는 이 작품이 종종 ‘독립 교향곡’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작곡가 자신은 그러한 ‘국가주의적인’ 해석을 거부한 바 있다.
■ 해설 혹자는 이 곡을 가리켜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작품이 시벨리우스의 자연에 대한, 특히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애정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예의 ‘애국적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곡에 투영된 자연의 이미지는 복합적이다. 다시 말해서 남유럽의 이미지와 북유럽의 이미지가 혼재돼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곡 당시의 정황을 돌아보면, 이 작품의 내용은 ‘핀란드 민족정신의 발현’보다는 ‘시벨리우스 개인의 위기와 극복’ 쪽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 두 명제에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이 곡의 매력은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 곡에서 남유럽의 온화한 풍광과 눈부신 태양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북유럽의 서늘한 기운과 신비로운 오로라를 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이 곡을 들으며 불타는 애국심과 민족정신의 고양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에 대한 돌파구를 찾거나 해방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
▲ 제1악장 : Allegretto(알레그로보다 조금 느리게), D장조, 6/4박자 지극히 단순한 음계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8마디의 서주에 이어 ‘전원의 테마’로 불리는 주요주제가 클라리넷과 오보에로 제시된다. 이 경쾌하고도 소박한 주제의 후반부는 호른의 고즈넉한 울림이 장식한다. 이후 곡은 이 주요선율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티브들이 어우러지며 자유로운 환상곡풍으로 전개된다. 혹은 또 하나의 주제를 짚어내 ‘소나타 형식’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원 주제에 의한 환상곡’으로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와 변화무쌍한 흐름을 내포하고 있는 악장이기 때문이다.
▲ 제2악장 : Tempo Andante ma rubato(느린 템포로 그러나 연주자 임의로), d단조, 4/4박자 곡은 팀파니의 묵직한 연타에 이어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피치카토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죽음의 이미지는 파곳이 꺼내놓는 음산한 단조 주제로 표현되며, 이것을 바탕으로 긴장감 넘치는 극적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유려한 장조 주제는 위로 혹은 비애처럼 다가온다. 이 주제의 유래는 시벨리우스가 피렌체에서 떠올린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종교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이 곡은 준엄한 최후의 심판대를 마주한 인간의 불안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표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제3악장 : Vivacissimo(vivace보다 더 빠르게), B♭장조, 6/8박자 이 악장은 흔히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c단조(일명 ‘운명 교향곡’)」의 스케르초 악장에 비견된다. 그 곡처럼 이 곡도 스케르초와 트리오(중간의 삽입구)로 이루어져 있고, 단락 없이 다음 악장으로 이행한다. 다만 베토벤의 경우에는 스케르초의 재현이 확대되며 피날레로 넘어가는 데 비해, 이 곡에서는 트리오가 한 번 더 재현된 다음 넘어가는 점이 다르다. 질주하는 스케르초와 목가적인 트리오의 대비를 통해서 독특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악장이다.
▲ 제4악장 : Allegro moderato(보통의 빠르기로), D장조, 3/2박자 앞선 악장의 말미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이 영웅적인 피날레는 찬란하고 감동적이며 사려 깊다. 더없이 단순하기에 뇌리에 즉각적으로 각인되는 첫 번째 주제선율은 때로는 힘차게 노래되고 때로는 점진적으로 고조되면서 듣는 이에게 가슴 벅찬 감흥을 안긴다. 그 흐름은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처럼 좌절과 혼돈의 시간을 떨치고 승리와 확신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반면에 핀란드 민요풍의 두 번째 주제선율은 비감에 젖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시벨리우스의 부인인 아이노의 말에 따르면 이 선율에는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처제에 관한 상념이 녹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모든 고뇌와 역경을 딛고 희망의 미래를 향해 의연하게 전진하는 발걸음이 그려진다. 그 절정에서 오보에, 트럼펫, 트롬본 등이 함께 연주하는 찬가는 실로 눈부시다.
■ 감상
▬ 전곡 (50: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