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3일차 : 토네이도처럼 등장한 두 삼식이
2013. 5. 31 금. 나무들이 초록의 깃발을 흔들며 만세 부르는 날
집에는 손녀 둘이 있다. 큰 놈은 우리 나이로 6살, 작은 놈은 4살이다.
하노이에 살다가 저희 아빠의 발병으로 급거 귀국했다. 아이가 있는 집은 겪어야 하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쿵쿵 뛰어야 하는데 아래층에도 아기가 있는 집이고 보니 ' 뛰지 마' '안 돼'를 입에 달고 산다.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놀이터에 가면 같이 놀아 주는 일도 한 두 번은 어떨지 몰라도 힘이 부친다. 큰 놈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단지 내를 한두 번 돌면 그만 싫증을 내고 작은 놈은 미끄럼틀이나 그네에 오르면 나를 계속 불러댄다. 아이들은 언제나 힘이 넘친다.
아이의 아버지는 화장실 출입도 그렇고 걸어 다니는 일을 조심해야 하니. 이 일의 해결은 내 몫이다. 아내, 며느리는 식단에 맞추어 다듬고 씻고 끓이는 일에 경황이 없다.
토네이도처럼 등장한 두 삼식이. 아들 병원의 식단은 백미위주로 콩이나 깨 씨앗 있는 과일은 먹지 말라 하고 나는 현미잡곡밥에 반찬 과일 모두 삶거나 익혀 먹도록 되어 있다. 식성도 다르고 장보기도 조금씩 다르다 보니 이 스트레스는 두 여인에게 갈 것이다.
지금 겉으로는 의연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이지만 폭발하거나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면 감당하기 어려울 터. 식탁에 앉으면 앞에 놓인 반찬 접시를 깨끗이 비워낸다. 아들에게도 가끔 눈총을 준다.
포장이 거창한 구토억제제 에멘드80미리 캡슐을 3일째 되는 오늘 마지막으로 털어 넣었다. 부신피질 호르몬 니소론정은 아침에8알, 점심,저녁 각 6알인데 먹는 데도 신경 쓰이고 맛이 쓰다. 대신 녹여 먹는 위산분비 억제제 가스터디정 20미리는 달다. 그래서 맨 나중에 복용한다.
변이 조금 이상하다. 염소의 변처럼 뭉치면서 한 주먹정도의 분량이다. 변비현상인가. 기력이 조금 빠지는 느낌이 온다. 양재동 코스트코 매장 주차장에 내리면서 매캐한 매연냄새가 역겨워 오픈 된 창가에서 숨을 들이켰다. 이전에는 없었던 증상이다. 적혈구 혈소판수치가 내려간다는 현상인가.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겠지. 빨리 자라고 아내가 채근한다. 그래 글보다 건강이야.
첫댓글 말로만 듣던 환자의 고통, 적나나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