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임금님의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주셨습니다.
임금님의 벗들을 제치시고 임금님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시편 45:7]
시편 45편은 왕실의 혼인잔치를 위한 고라자손의 축가다.
시편의 분류에 따르면 '제왕시'에 해당되는 노래다. 그러므로 '용비어천가'에 해당한다.
왕을 찬양하는 노래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7)'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노래는 왕의 정의로움과 상관없이 불리어지게 되어있다.
시편 45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움'까지 연결시키는 해석자도 있으나 조금 과하다 싶다.
그냥, 시편 45편은 '왕실의 결혼식을 위한 축가'이며, 결혼식 축가이니만큼 찬양일색의 용비어천가일뿐이다.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왕', 다윗이 그런 왕이었는가?
때로는 정의롭기도 했고, 악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도 때때로 의롭지 못했고, 악했다.
인간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느 시대나 권력을 잡은 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는 울려퍼지기 마련이다.
정의롭지 못하고, 악한 왕에게도 간신배들에 의해 용비어천가는 울려퍼지고, 왕은 그 노래에 취하기 마련이다.
이 시대가 불행한 것은 '나단'같은 예언자가 없다는 것이며,
나단 같은 예언자의 소리가 있다고 한들 불의한 권력이 이를 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편 시인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라고 너무 쉽게 "아멘!"하지 말라.
그냥,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말라.
자신이 시편의 시인을 괴롭히는 당사자가 될 수 있음도 잊지 말라.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허무맹랑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신앙은 얼마나 불행한가?
시편 45편은 나에게는 불편한 '용비어천가'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