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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자계산기의 도전 - 의식은 인간두뇌의 기능이다
북경중의병원의 한 노의사는 간염병치료에 능숙하여 많은 환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매일 열정적으로 환자들의 병을 봐 주었지만 아무리 해도 다 봐 줄 수가 없었다. 1979년에 과학연구부문에서는 그에게 제자 한명을 보내주었다. 이리하여 그의 피동적 국면이 곧 개변되었다. 이 제자는 불과 10몇초 사이에 약처방 한장씩 떼므로 반나절에 천여명의 환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이 제자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솜씨가 라른가? 워낙 그것은 전자계산기였다. 이 전자계산기는 간염병의 8개 주형, 36개 아형과 환자의 구체적 증세에 근거하여 2억여종의 각이한 약처방을 뗄 수 있으며 각이한 환자에 알맞는 약처방을 뗄 수 있다.
이는 전자계산기를 의학에 응용한 실례이다. 현세기 40년대에 나타난 전자계산기는 갈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여러 면에 응용되고있다. 전자계산기는 기선이나 비행기나 우주 로케트의 항행을 조종할 수 있으며 가장 복잡한 운산(셈-편집자 주)을 번개같이 해치울수 있으며 물음에 대답할 수 있으며 장기를 둘 수 있으며 사람을 대신하여 일부 노동을 할 수 있다. 한창 발전하고 있는 전자계산기과학은 철학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였다. 우리들은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이 방면의 연구를 참답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전자계산기(전자두뇌라고도 함)가 인간의 부분적 정신노동을 대체할 수 있고 인간의 부분적 사유를 모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면 이것은 기계도 사유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면 ≪사유는 인간두뇌의 기능이다≫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가 계속 성립될 수 있는가?
이것은 확실히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이 문제가 물질의 일차성, 의식의 이차성에 관한 원리와 직접적으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질의 일차성과 의식의 이차성은 우선 물질은 의식의 원천이고 의식은 물질의 장기적 발전의 산물이며 고도로 조직된 특수한 물질인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데서 표현된다. 만약 기계도 사유할 수 있고 사유가 인간두뇌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위에서 말한 원리를 또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때문에 의식은 어떻게 기원하였는가, 그것과 물질은 어떤 관계인가, 기계가 사유할 수 있는가 하는 등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의식의 산생은 물질의 반영형태의 장기적 발전의 결과이다
의식, 사유와 같은 이런 정신적 현상은 본래부터 있었는가? 이 문제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답은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객관적 관념론자들은 의식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인정하며 의식이 물질에 앞설 뿐만 아니라 물질을 창조하였다고 인정한다.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모든 물질은 다 인간두뇌 속의 의식에 불과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의 공통된 점은 물질이 일차적이고 의식이 이차적이라는 것을 부인하며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라는 유물론적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그들의 이런 이론의 황당성을 완전히 증명하였다
의식은 결코 물질처럼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일정한 단계에까지 발전한 뒤에 나타난 것이다. 모든 물질형태는 다 반영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반영능력은 저급적인 데로부터 고급적인 데로의 발전과정을 거치었다. 자연계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생산노동에 의하여 유인원의 두뇌가 인간의 두뇌로 발전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의식이란 이런 특수한 반영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레닌은 ≪모든 물질이 다 그 본질상 감각과 근사한 특성, 반영의 특성을 가지고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이다.≫(≪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레닌선집≫, 제2권, 113쪽)라고 말하였다. 이 가설은 일련의 과학발전의 성과에 의해 실증되었다. 현대정보과학이 증명하다시피 이런 반영은 모두 일정한 형태의 정보전달과 정보교환에 의해 실현된다.
자연계의 무기물은 물리적 반응이나 화학적 반응이 있을 뿐이다. 밀물과 썰물은 달, 태양, 지구사이의 일련변화에 대한 바닷물의 반응이다. 달빛은 햇빛에 대한 반응이다. 광석의 각이한 색깔은 산화작용에 대한 반응이다. 외계의 자극에 의해 나타나는 무기물의 이런 변화는 감각과 비슷한 단순한 반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반영형태는 단순한 정보운동을 동반한다.
무기물의 장기적인 발전에 의하여 유기물이 생산된 후에야 생물의 반영형태나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반영형태가 복잡한 정보운동에 의하여 생명에 자기 통제의 새로운 기능을 가져다 주었다. 이런 반응이 식물과 하등동물의 몸에서는 최초에는 자극에 대한 감수성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이런 반응은 자체에 직접 작용하는 환경에 대하여 감수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외계의 정보(자극)에 대하여 이로운 것을 따르고 해로운 것을 피하는 느린 반응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해바라기꽃은 태양을 따라 돌고 함수초는 외적 물체에 부딪치면 잎을 오그리며 아메바는 자기에 불리한 화약약품을 피할 수 있다. 식물과 하등동물의 이런 반응은 정보에 의해 나타난 통제로서 유기체로 하여금 변화된 외적 조건에 적응되게 한다. 이런 반영형태는 아직 감각은 아니지만 감각의 맹아를 포함하고 있다.
유기체와 환경사이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자극하는 수량이 증가됨에 따라 일부 생물체의 표면에는 특수한 감각세포가 점차 형성되었으며 감각능력이 생기게 되었다. 감각기관의 가일층의 발전과 각종 감각기관의 전문화로 하여 신경계통이 형성되어 각종 감각기관을 연결시키게 되었다. 신경계통의 진일보의 발전에 의해 중추신경계통(뇌와 척수를 포괄함)과 주위신경계통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등동물은 신경계통을 통하여 주위환경과 서로 연계하고 운동기관을 조절하며 그것을 반응한다. 이것이 곧 반사이다.
반사란 외적 자극에 대한 유기체의 신속하고도 확정적인 반응이다. 반사는 무조건반사와 조건반사로 나뉜다. 무조건반사는 어떤 자극물에 의하여 직접 일어나는 반사이다. 이것은 신경계통을 가지고 있는 모든 동물에게는 선천적인 것이며 저급적인 신경활동이다. 이를테면 음식물이 입안을 직접 자극하면 타액이 분비되고 강한빛을 받으면 동공이 작아지며 어떤 동물은 약한 소리를 들을 때 귀를 쫑긋 세우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무조건반사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도 역시 무조건반사이다. 조건반사는 어떤 자극물의 신호에 의해 일어나는 반사로서 동물발전의 고급적 단계, 즉 척추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개에게 밥을 먹일 때마다 개를 부르면 그 소리는 개에게 있어서 밥의 신호로 될 수 있다. 그리하여 개는 이 신호를 듣기만 하면 밥이 없어도 타액을 분비하게 된다. 동물교예단의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는 것, 돼지나 소들이 규정한 시간에 오줌똥을 누는 것 같은 것은 다 훈련에 의해 이루어진 조건반사이다. 이러한 무조건반사와 조건반사의 능력은 바로 동물의 심리 또는 저급적인 의식이다. 이것을 우리가 말하는 인류의 의식이라고 할 수는 물론 없다.
고등동물은 조건반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잡할 활동을 할 수 있다.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싱가포르에 있는, 전문훈련을 받은 일부 원숭이들은 말라이어 단어 25개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명령만 내리면 나는듯이 높은 나무에 기어올라가 주인이 요구하는 나무잎과 꽃을 따온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열대식물을 연구하기 위하여 늘 이런 조수들을 데리고 삼림속에 들어가 표본을 채집한다. 상해 서교공원에 있는 어느 한성성이(열대지방에 사는 큰 유인원의 한가지-편집자 주)는 구경꾼들에게 늘 비교적 어려운 체조를 해보이거나 비교적 어려운 교예재주를 부린다. 이 성성이는 또 안경을 끼고 바늘귀에 실을 꿰어 손수건을 기울줄 알며 손수건을 흔들면서 관중에게 인사도 할 줄 안다. 이로부터 원숭이와 같은 이런 고등동물들은 맹아상태의 의식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뚜렷이 볼 수 있다.
고등동물이 인류로 발전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의식이 산생하였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제1신호계통, 즉 조건반사를 가지고있다. 그러나 사람은 또 동물에게 없는 제2신호계통, 즉 언어에 의해 일어나는 다른 종류의 조건반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가 제1신호계통과 제2신호계통에 기초하여 진행하는 사유활동이 바로 의식활동이다. 의식이 산생됨에 따라 언어 등 새로운 정보형태가 나타났으며 물질의 정보운동도 관념적 성분을 띠게 되었다. 엥겔스의 말로 하면 ≪사유하는 정신≫은 ≪지구위의 최고의 창작품≫1) ≪1) ≪자연의 딴증법≫, 한문판,제3권, 462쪽≫이다.
사유라는 이 가장 고급적인 반영형태는 인간의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다. 인류는 동물과 달라서 단순히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의식적으로 자연환경을 변혁하여 자기들의 수요에 맞게 한다. 인간은 노동과정에서만 자기를 자연계와 구별하고 객관세계를 계획적으로 합목적적으로 개조할 수 있으며 객관세계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인식하고 추상적 사유능력을 형성할 수 있다.
의식의 산생과 의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구유물론과 원칙적으로 구별된다. 구유물론은 단지 생리학적 각도에서 의식활동을 설명하면서 의식을 인류의 자연적 생리현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의식은 물론 생리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의식은 사회적 실천,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의식은 처음부터 사회적 산물인 것이며 오직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의연히 그러한 산물인 것이다.(≪독일의식형태≫,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제1권, 44쪽)
물질의 반영형태의 발전과정으로부터 우리는 생명이 없는 물질과 생명이 있는 물질은 모두 이러저러한 반영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그러나 오직 물질의 장기적 발전과정에서 인류가 산생된 후에야 의식이란 이런 가장 고급적인 반영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의식은 인간두뇌의 기능이다
무엇때문에 인류에게만 사유가 있는가? 그것은 고도로 조직된 특수한 기관인 인간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유는 인간두뇌의 기능이다.
옛날사람들은 과학지식이 부족한 까닭에 사유와 인간두뇌와의 관계를 똑똑히 알지 못하고 흔히 심장을 사유기관으로 보았던 것이다. 맹자는 ≪마음의 관능은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지금은 물론 누구도 심장을 사유의 기관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자연과학은 사유의 기관이 심장이 아니라 대뇌라는 것을 오래전에 벌써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인간의 대뇌피질은 140억개 이상의 뇌세포를 포괄하고 있는데 그 부동한 구역은 상응한 감각기관과 연결되어 하나의 완전한 중추신경계통을 이루고 있다. 대뇌는 중추신경계통의 조절중심이다. 대뇌의 후두엽은 시각을 주관하고 대뇌의 측면홈에 있는 측두엽부분은 청각을 주관하며 기타의 전두협, 두정엽 등등도 세밀한 분공에 의하여 각각 자기의 전문직책을 감당하고 있다.
감각, 기억, 사유와 같은 인간의 정신활동들은 각각 정보를 획득하고 저축하며 그것들을 분석,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대뇌의 부동한 부위의 생리적 활동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사실이 있다. 캐나다의 한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마이크로파전극으로 대뇌피질 오른쪽의 상측두엽에 자극을 주었더니 환자가 갑자기 ≪저는 관현악의 연주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하면서 흥에 겨워 노래까지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미크로파전극의 자극으로 시경 계통에서 전달하여온 정보를 대체하여 대뇌피질에 저축되고있던 관현악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 결과이다. 이 의사는, 기억이란 녹음테이프와 같아서 대뇌의 어느 한 점을 자극하면 기억의 자성이테프를 풀어 놓을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또 예를 들면 뇌하수체에는 0.5미리미터의 간격을 두고 호감중추와 혐오중추가 있는데 미크로파전극으로 전자를 자극하면 심정을 더없이 유쾌하게 할 수 있지만 자극부위가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혐오중추를 건드리게 되어 상반되는 정서와 행위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은 인간의 두뇌가 확실히 인간의 정신활동의 물질적 기초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두뇌라는 이 특수한 물질과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대뇌에 의존한다. 대뇌가 손상받으면 사유에 지장을 받게 되며 심지어는 사유능력까지 상실하게 된다. 소련의 저명한 물리학자 란디우는 어릴 때 신동이라고 불리웠으며 12살때 대학에 들어가 동시에 두개 학부의 학과를 배웠다. 그는 물리학면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여 1962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가 한창 나이 젊고 정력이 왕성할 때 뜻밖의 자동차사고로 뇌부의 손상을 엄중하게 받아 사고능력과 기억능력을 상실하게 되 었다. 그후 그는 6년을 더 살았지만 다시는 과학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이다. 언어가 있어야 인간은 사유를 할 수 있다. 언더는 사회적 노동 가운데서 산생되었다. 인간은 노동 가운데서 사상을 서로 교류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발음기관이 형성되었고 언어가 산생되었다. 언어의 산생으로 하여 인류의 사유능력이 높아졌고 대뇌가 발전하게 되었다. 대뇌피질도 이로부터 언어중추를 형성하게 되었다. 언어중추는 또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말을 듣고 단어의 함의를 인식하는 등 4개의 중추로 나뉘어졌다. 이런 언어중추는 인류의 언어활동을 담보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두뇌만 가지고있는 것이다. 동물은 언어중추가 없기 때문에 동물에 있어서는 실물이나 그 어떤 특정적인 정보만이 조건반사의 정보로 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를 놓고 말하면 실물이나 그 어떤 특정적인 신호 뿐만아니라 언어도 조건반사의 정보로 될 수 있다. 사람들이 호랑이란 말만 들어도 낮색이 변하게 되는 그 도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검은 성성이새끼를 사람의 생활환경 속에 가져다 놓고 말을 배워주었는데 세살이 되었을 때 검은 성성이새끼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일부 고등동물들이 언어를 장악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데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겁은 성성이 같은 고등동물들은 사람의 유도와 훈련을 거쳐 일부의 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뇌에 언어중추가 형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류처럼 언어를 장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사유하는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 어떤 동물의 두뇌에도 없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객관사물이 사람의 감각기관에 작용한 것이 신경계통에 의하여 대뇌에 전달되면 대뇌피질의 활동이 일어나게 되고 사유도구인 언어로써 감각한 재료를 개괄하면 사물에 대한 의식이 형성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의식은 인간두뇌의 기능이다. 관념론자들이 의식은 물질을 떠나 존재할 수 있다고 설교하는데 이것은 과학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독일에 아베나리우스(1843∼1896년)라는 관념론철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경험비판론이라는 주관적관념론유파의 창시인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두뇌에 대한 사유의 의존관계를 부인하면서 ≪사유는 두뇌의 산물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두뇌의 생리적 기능도 아니다≫라고 단언하였다. 레닌은 이런 관념론철학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그것은 뇌수가 없는 철학이라고 하였으며 ≪뇌수에 의하지 않고 사유한다는 이론이다.≫(≪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레닌선집≫, 제2권 94쪽)라고 하였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관점은 왜 오류인가? 그것은 정신현상을 인간의 두뇌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남북조시기의 걸출한 유물론사상가 범진(약 450∼510년)은 이런 관점을 유력하게 논박하고 ≪형체가 존재하면 정신도 존재하고 형체가 사라지면 정신도 소멸한다≫는 신멸론사상을 제출하였으며 육체를 떠나 정신이 존재할 수 없다고 명확히 지적하였다. 그는 육체와 정신과의 관계를 ≪칼날과 칼날의 예리성≫과 같다고 생동하게 비유하였다. 다시 말하면 육체는 칼날과 같고 정신은 칼날의 예리성과 같으므로 칼날의 예리성은 칼날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칼날이 없어졌는데 그 예리성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늘 어찌 육체가 없어졌는데 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으랴≫고 말하였다. 그의 탁월한 사상은 지금도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의식은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 이 과학적 논단은 물질이 일차적이고 의식이 이차적이라는 유물론의 원리를 강유력하게 증명하였다. 이는 관념론과 근본적으로 대립될 뿐만 아니라 물활론, 속류유물론의 관점과도 원칙적으로 구별된다. 철학사에서 일부 유물론자들은, 의식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인간의 뇌수의 속성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물질이 다 의식을 가지고 있고 감각과 사유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만물은 다 영혼이 있다는 이런 물활론관점은 종교와 관념론에 지반을 남겨놓았기 때문에 유물론을 끝까지 관철할 수 없었다. 19세기 50년대에 구라파에서 유행되었던 속류유물론철학은 의식도 물질이라고 보면서 뇌수가 사유을 낳는 것을 간장이 담즙을 분비하고 신장이 오줌을 분비하는 것과 같다고 인정하였다. 이는 다른 한 극단으로부터 의식과 물질과의 계선을 흔동하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유를 물질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물론을 판념론과 혼동하는 방향으로 그릇된 일보를 내디디는 것을 의미한다.≫(≪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레닌선집≫, 제2권 315쪽)
의식은 물질(인간의 뇌수)의 특성이지 결코 물질 그 자체는 아니다.
만약 의식도 물질이며 양자간에 본질적 구별이 없다고 인정한다면 철학의 기본문제도 존재하지 않게 되며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도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커다란 오류인 것이다.
전자두뇌는 인간의 두뇌를 떠날 수 없다
사유가 인간두뇌의 속성이며 기능인 이상 인간의 두뇌를 떠나서는 사유가 실현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자두뇌의 출현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처음에 이야기하던 문제로 돌아가기로 한다.
20세기 과학기술의 위대한 성과인 전자계산기의 광범한 응용은 전반 과학기술의 발전을 유력하게 추동하여 생산기술혁명을 일으켰으며 사회생활의 여러 면에 거대하고도 심원한 영향을 주었다.
지난날에는 하기 어려웠던 많은 일들이 전자계산기의 출현으로 하여 현실로 변했다. 이를테면 100여년 전에 어느 한 수학자는 ≪4색정리≫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는 지도를 그릴 때 아무리 복잡한 지도라 할지라도 네가지 색깔만 쓰면 된다고 하였다. 세가지 색깔은 모자라고 다섯가지 색깔까지는 필요없으니 네가지 색깔이면 알맞다는 것이다. 이 정 리 는 옳은 것이지만 실증되지 못하고 있었다. 1776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두 수학자가 전자계산기를 이용하여 이 정리를 증명하였다. 그들은 전자계산기로 1,200 시간이나 운산하였고 200억개의 논리적 판단을 하였다. 어떤 사람의 추측에 의하면 전자계산기를 이용하지 않고 인공으로 운산한다면 한사람이 매일 24시간씩 운산하여도 30만년이 걸려야 한다고 한다. 전자계산기가인간의 사유를 모방하여 인간의 부분적 정신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이 성과에서 영양을 섭취하여 자기의 학설을 풍부히 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전자계산기의 출현도 사유는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데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을 개변시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전자계산기가 사유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장차 그 주인을 초월하여,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다.
우선, 인간의 사유에 대한 전자계산기의모방은 인간의 뇌수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인간의 사유의 결정이다. 만일 전자계산기가 사유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의 뇌수의 산물인 것이다.
1979년에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는 능숙한 트럼프선수와 전자계산기계통과의 도박을 붙인 적이 있었다. 이 트럼프선수는 얼림수를 써서 연속 몇판 이겼다. 그후 전자계산기는 상대방의 수를 간파하고 방법을 바꾸어 승리 하였다. 이 전자계산기가 교훈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설계자가 여러가지 얼림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프로그램에 편입하여 넣었기 때문이다. 전자두뇌의 뒤에서 작용하는 것은 여전이 인간의 두뇌이다.
전자두뇌의 기억은 사실에 있어서의 인간이 축적기 속에 넣은 대량의 정보이며 전자두뇌의 추리는 사실에 있어서는 인간이 연역에 필요한 논리를 기계에 가르쳐준 것이며 전자두뇌의 결론은 인간이 넣은 프로그램과 수치의 논리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기계는 넣지 않은 것을 내보낼 수 없다. 아무리 총명한 기계라 하여도 그것은 다 인간이 설계하고 제작하고 조종하는 것이므로 인간이 이러한 기계를 창조하는 가운데서 더욱 총명하여졌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기계가 인간보다 더 총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기계가 인류를 지배한다고는 더구나 말할수 없다.
다음으로, 인간의 사유에 대한 전자계산기의 모방은 인간의 사유자체와 질적 차이가 있다. 기계도 사유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런 사유에다는 마땅히 인용부호를 쳐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계산기의 사유는 하나하나의 전자요소의 장치에 의해 실현되며 전자운동은 물리적 운동형태에 속하며 전자계산기는 물리적 운동의 법칙에 복종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운동형태에 속하는 인간의 사유는 물리적 운동형태를 포괄하지만 그것을 물리적 운동형태로 귀결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사유는 객관적 세계를 개조하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실천과정에서 산생되고 발전된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하고있는 일의 의의를 알고 있지만 기계는 이러저러한 규칙을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양자를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듣는 바에 의하면 이리아크전자계산기를 제일 먼저 이용하여지은 악곡 ≪이리아크 현악4중주연주연곡≫이 이미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 악곡의 작곡방식은 선택규칙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접수할수 있는 배열로 되도록 음부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음악가들은, 이런 악곡은 사람들의 흥취를 자아낼 수 있을 뿐 사람의 재능이라 할만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작곡한 것은 사회적 실천 가운데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소재를 수집하여 드높은 감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이지 물리학의 어떤 법칙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음부를 이어놓은 것이 아니다. 전자계산기가 작곡한 것은 극상해야 그 어떤 지력기술에 지나지 않으므로 예술창작이 아니다.
모든 도구는 다 인체의 연장에 불과하다. 굴토기는 사람의 손의 연장이며 차바퀴는 사람의 다리의 연장이며 확성기는 사람의 입의 연장이며 전자두뇌는 사람의 두뇌의 연장이다. 그러나 굴토기가 손이 아니고 차바퀴가 다리가 아니고 확성기가 입이 아니고 전자두뇌도 사람의 두뇌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전자계산기가 사유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그것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고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에 대한 전자계산기의 모방은 금후에도 틀림없이 계속 더 크게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인간의 두뇌를 대체할 수 없다 인간의 두뇌는 전자계산기에 지혜를 가져다주었고 전자계산기는 또 인간의 두뇌를 더욱 총명해지게 하였다. 인간은 전자계산기의 출현과 발전으로 하여 일부 번쇄한 정신노동에서 날로 벗어나 창조성이 더욱 풍부한 사업에 정력을 돌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두뇌는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며 인간의 사유는 더욱 큰 역할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사유는 인간두뇌의 기능이고 전자계산기는 인간의 두뇌의 연장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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