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다른 친구
4월 초이튿날, 어제 모처럼 쾌청한 봄날 神은 내게 친구를 하나 보내주었다.
예사스럽지 않은 날 친구를 만나고 와서 밤새 200자 원고지 450매를 읽다가
오늘 새벽에야 마주 다 읽고 컴 앞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된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팔도강산을 세번, 백두산을 여덟차례 올랐다고 한다.
십리마다 점을 찍은 목판 실측도로 당시 순조가 일본에 요청해 만든 지도보다 뛰어나 임진왜란 때는 대동여지도로 일본은 조선을 공략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백인백색으로 사람 사는 방법에는 정도가 없다. 모두 천양지차(天壤之差) 다르다. 고등학교 동기 480명중 평산(平傘)이란 친구의 삶은 참으로 다른 면을 시사해 느끼는 바가 큰 조춘(早春)이었다.
허경화(許卿化)! 벼슬경(卿), 될 화(化),글자 그대로 벼슬을 하라는 조상의 간절한 바람처럼 그는 인생 전반을 말(馬)과 동행하고 그리고 후반기는 성지순례로 해가 지고 달이 뜬다.

꿩막국수에서 만나자는 평산의 제의를 전날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평소 친구는 남다른 관심으로 보잘 것 없는 나의 행사에 참석해 축하해 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춘천 살면서 하많은 막국수집에 꿩막국수를 몰라 헤매다가 물어물어 쟈스민 뒷골목에서 만났을 때는 그 집 간판은 고깃집으로 명찰을 바꿔 달아 동해 막국수로 향했다.
서두에서 처럼 친구는 성지 순례를 한다. 타박타박 걸어서 국내 2000개의 공소, 성지, 천주본당을 섭렵하는데, 어느덧 절반을 마쳤다고 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우리에겐 지난(至難)한 일이 틀림없다. 최근 성지 순례가 봇물처럼 관광지로 부각되지만 차가 아닌 대중교통으로 하나하나 찾아 다닌다? 구도자 평산 허경화를 만난 봄날은 기쁨보다 왜 신은 이 친구를 내게 보냈을까하는 경각심이 앞선다.
인터넷을 찾아보라 허경화-. 음악가 성악가 , 말 전문가로 나오지만 성지순례자로 나오지 않는다.
절반인 천여 군데의 성지를 돌아보고 십리마다 점을 찍어 저녁이면 목판을 만들어 거리를 표시하던 고산자(古山子)처럼 그 때 마다 쓴 매끄럽고 티없는 글을 뭉터기로 내 앞에 주고 떠난 평산(平傘)은 분명 신의 게시리라.
글쟁이니 책을 내는데 조력해 달라는 낌새는 전혀 없다. 손사레를 치며 출간은 뒷전이다. 요셉이란 세레명만 받아놓고 년중 한번 찾는 바닥난 나에게 경고를 주는 만남같아 사뭇 두렵기까지 했다. 친구는 아니 필립보평산 허경화는 성자처럼 내 앞에서 별난 촌뜨기 허경화를 실제 증명이라도 한 것이 분명했다.
보헤미안처럼 아니 리빙스톤처럼 투박한 황색 가죽가방에 낡아 칙칙한 폴더폰, 진정 과거 타임머신만을 줄기는 깡 촌놈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친구, 트레이드 마크리라. 육순을 맞아 결행을 마음먹은 성지 도보 순례가 진정 유별나다. 가족이 가끔씩 장소를 확인하는 글이 나오긴 하지만 글쎄 가능할까?

막국수 한그릇을 뚝딱 해치운 평산, 그는 어지러움증이 영양결핍으로 요즘은 저녁을 먹는단다. 아니 천여곳을 보도로 순례를 하다보니 떨어진 구두 뒷창은 물론 통풍, 족저근막염, 하지 정맥도 아우성이다. 남과 다른 삶을 살아오며 스스로 겸손하고 서민임을 앞장서 내로라하게 물려받은 하많은 재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가용 또한 처분한지 오래-.
삼만 천원을 전중에 넣고 이천년 전의 사도바울이 되어 오직 두다리로 뚜벅뚜벅 걷는다. 끼니는 주로 비빔밥으로 때우고 찜질방 새우잠도 마다않고 또 걸으며 신의 음성에 귀기울인다. 부끄럽지 않고 하루를 보내지만 식도락처럼 찾아다니지 않는다. 달콤한 유혹일랑 뿌리쳐 그 좋은 회 한번 취하지 않고 점을 찍으며 자신과 투쟁을 한다.
모태 신앙인 누이의 도움으로 임헌규신부님을 만나 귀의하여 애막골에서 영세를 받고 17년 10월 뒤늦게 거두 곰실공소에서 세례 견진성사를 받은 필립보 허경화-. 지금 거처를 후평동 성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늦깎이로 입문해 전국을 신의 소리에 귀기우리며 찾아가는 신앙생활-. 기쁨과 설레임을 참지 못한다는 친구의 삶은 많은 에피소드를 원고지에 쌓여 때로는 미소짓게 한다.
호주대학을 다닐 때, 아니 승마관련 외국에 출장가서 일찍 저녁이면 셔터내리는 외국의 일정에 여관에 틀어박혀 시간 때우기로 읽은 것이 성경이란다.

밤새 그의 견문록,기행문,성지답사기를 대충 다독했는 데도 골이 띵하다.
친구는 울릉도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4월을 보낸단다. 춘천 4월 셋째주 15-20일까지 KBS 1층에서
개최하는 수필화 개인전을 귀뜸하니 메모를 한다. 그리고 홀연히 왕진가방 같은 황색 가죽가방을 들고 남춘천 역으로 사라진다. 도보로 전국을 순례해 팔다리가 그야말로 무쇠같다.
한번 오는 우리네 인생길-.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내내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것은 무엇인가?
도를 닦는 도인? 속죄한다. 지극히 겸손하다. 간이역과 대중교통에 이골이 났다. 아니 일부러 즐겨 선택한 촌놈 행세 또한 평범을 웃돈다.
승마와 반평생을 보낸 친구는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소록도 주민, 음성꽃동네에 무료 승마 체험장을 마련하는 일, 승마정 건립비가 수월치 않은 역사(役事)라고 던지고 간 39p에 기록되어 있다.
인무원려(人無遠慮)면 필유근우(必有近憂)라고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일렀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근심이 생긴다.
한번 뿐인 우리네 인생-. 古稀에 성큼 올라선 춘고 39회 동기생들-.저마다 이시간 나름대로 무엇을 하며
봄날 익어가고 있겠지. 친구의 원고 끝부분이 떠오른다. 생의 마지막에는 순례길 속 행복했던 모습에 머물고프다. 슬슬 하늘나라 가는 길을 그려보자꾸나 ! 허경화 필립보-.

<백윤기 조각가의 말>
첫번이라는 횟수를 순례지 평창 필립보 생태미을 성당에서 절반의 성공 마침표를 찍은 평산 허경화!!
그의 벼슬은 진정 무엇인가? 하느님과 통하고 픈 간절함 속에서 이번 달은 또 얼마나 울릉도 성지는 그에게 설렘을 안겨줄까? 건투를 빈다.(끝)

2019. 4.3 德田 이응철
첫댓글 '삶이 다른 친구'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훌륭한 친구분들을 많이 소유하신 덕전님이 마냥 부럽습니다!!
네 춘천에서도 내로라하는 손꼽히는 재벌이지요. 그런데도 겸손하고 승마로 국가대표아들을 둔 친구는
하루 3만 천원으로 타박타박 걸어서 순례를 하면서 멋진 자가용외면하고 주지육림과 담 쌓고,한 때 아들 친구에게 말을 한필 사준 재력가 -.핸드폰도 옛날 작은 덮개 폰 그는 이미 신의 음성을 듣기위해 전신을 바쳐 천여군데를 다니는 구도자이지요. ㅎ 춘천 허씨 ㅎ
필립보 허경화님, 존경스러운 철학자이십니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소록도 주민, 음성꽃동네에 무료 승마 체험장을 마련하는 일" 꼭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아ㅡㅡㅡ네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