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원자핵공학과 교수)
참 어려운 시대다.
20세기 초반 까지는 천재면 되는 시대였다.
수많은 과학혁명이 천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그걸로 부족하다.
아무리 천재여도 혼자서는 되지 않는 시대다.
창의성에 덧붙여 더불어 활동할 수 있는 소통과 협동력이 요구된다.
거기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술에 대한 적응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에 나의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할지가 항상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좋아하면서도 소질이 있는 분야 찾기.
오감으로 체험함으로써 지식 만들기.
학문의 경계를 넘어 놀아보기.
새로운 것 뿐 아니라 아는 것도 질문해 보기 등.
파인만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심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실상 현실은 너무 많은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첫째 아이가 "하나고르기"를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간다.
늘 함께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아내가 찾아냈던 프로그램이다.
첫째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본인이 보기에 완벽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상대에게 꺼내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나고르기"는 이런 첫째에게 퍼즐처럼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다.
과학관에서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하나 고르고,
여기에 대한 자료를 도서관과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줄 수 있도록 마인드맵을 작성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 발표한다는 것은
첫째 아이에게 있어 수줍음을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이 되었다.
처음에는 걱정도 컸다.
마인드맵이나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스스로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발표를 할 수 있을까?
시간을 쪼개 도움을 줘야했고 자기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발표하는 모습에 안타까움도 느껴야 했다.
친절한 "하나고르기" 선생님께서는 그저 웃으시며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하셨다.
첫째 아이는 이제 어디를 가든 "하나고르기"를 한다.
과학관, 미술관, 박물관 등 가리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스스로 마인드맵을 그리고, 그러면서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ppt나 포스터 등 발표 자료를 만들어본다.
자신이 준비한 것을 가족들 앞에서 발표하는 목소리도 제법 당당해졌다.
이제 나는 "하나고르기"를 고등교육에 접목해보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학부생과 대학원생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골라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발표와 토론을 통해 끈질기게 늘어지며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독립적인 연구자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고르기"가 바로 학문탐구의 본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도 많은 정보와 관심사가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어려서 부터 이러한 탐구 자세를 배울 수 있다면
바다에 숨겨진 보물을 캘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바다의 흐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인재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