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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白頭大幹 ]
* 위 치 : 전북 장수
* 산행일시 : 2024년 04월 27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좋은사람들)
* 산행코스 : 지지리-중재(인증)-월경산-광대치(인증)-무명봉-봉화산(인증)-매봉-복성이재-새맥이재-사치재-통안재-매요마을-고남산-방아치-여원재(34.8KM/12시간)
- 출발지점 : 전북 장수군 범암면 지지리 441 주변
- 도착지점 : 전북 남원시 운봉음 중향리 651-3 주변
* 산행시간 : 02:48~09:44 (산행 2:58분/휴식시간:0시간 44분)
* 산행속도 : 3.47km/h
* 산행거리 : 34.21km
* 날씨 : 맑음
* 기온 : 14~24
* 약수터 정보 : 매요마을 마을회관 샤워장 앞 수돗물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산행난이도 : 고도차:중, 거리:상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조망.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러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날씨도 좋은 오늘 중재에서 여원재까지 가는 산행이다.
중재는 지지리 마을에서 하차를 하여 계곡을 건너서 중재로 올라가면 된다.
지지리 마을에는 간이 화장실도 있고 계곡에 물이 있다.
계곡은 항상 물이 있어서 좌측 또는 우측으로 해서 젖지 않도록 짐 금다리를 건너야 한다.
지지리에서 월경산까지는 제법 경사를 올라야만 한다.
그렇지만 후반부에 있는 고남산보다는 못하다.
아니 경사도는 이곳이 더 심한데
30km를 넘는 산행에서 마지막 고남산 오르는 것이 상당히 힘에 부친다.
일전에 백운산에서 내려올 때 이곳 인증을 했지만.
그래도
서운하지 않게 첫 인증을 한다.
지지리에서 이곳 백두대간 접속지 중재까지는 약 900m 정도 되고 22분 정도 소요되었다.
요즘 봄이라서 이슬이 많은데.
울창한 숲에 나무가 있어서 나무에서 이슬을 다 받아 주었는지 등산로에는 이슬이 없었다.
참 그렇지만
이곳 중재를 오르는 등산로에 물길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그곳이 파여서 물이 등산로로 들어오지 않나 생각 든다.
[중치(중재)]
서쪽으로 장계와 번암면을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남북으로 진행한다. 백운산의 남쪽 사면과 중치 부근은 목장이 여러 군데 여서 목초를 나르기 위한 임도가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중치와 중기마을은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인데 이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운산리에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중재에서 가파르게 오르면 월경산 갈림길이 나온다.
백두대간 줄기에서 월경산은 조금 떨어져 있다.
갈림길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왕복 600m를 걸어야 한다.
이곳에서 중재까지는 약 1.9km 정도 되고 봉화산까지 6.0km 정도 된다.
그렇지만 월경산을 다녀오면 선두와는 거리 차가 상당하다.
선두를 따라잡는데 광대치를 지나고도 2km 정도 전체 4km는 더 걸어야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월경산] 981.9m
대간이 백운산을 거치면서 중치에서 그 기운이 잠시 떨어지는듯 하다가 월경산에서 다시 원상을 회복한다. 정상은 대간에서 150m쯤 벗어나 있다. 백운산을 한발치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는곳이다. 동북쪽에 위치한 백운리에서의 시각으로 '달이 기우는 산'이란 뜻이다.
광대치 이정표는 위에 하나 있고 이곳 표지목에서 한참 내려가면 또 하나가 있다.
[광대치]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과 함양군 대안리를 나누는 고갯길이다. 광대치 쉼터에서 대안리 대상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갈라진다, 봉화산을 앞두고 만나는 870봉에서 대간은 경상남도와헤어져 전라북도 땅으로 진행한다.다시 경상도를 만나는곳은 지리산 반야봉남쪽의 삼도봉이다. 광대치는 넓고 큰고개라는 뜻이다. 동서 양쪽에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쪽 능선과 서쪽능선은 해발이 높아 산 속에 갖혀 있는 형상이다
이곳이 무명봉쯤 되나
오늘의 일출 시간은 5시 45분이다.
지금이 오전 5시 9분 이니까 아직도 일출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
확인해 보니 무명봉에서도 1.2km 전이었다.
아직도 봉화산까지는 약 2.6km를 더 가야만 한다.
무명봉을 지나면 임도를 만나는데 이곳부터 길이 상당히 거칠다.
다행하게 오늘은 산객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잡목이나 풀들이 거세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오는데 나는 빠르게 봉화산으로 올랐다.
아무래도 봉화산의 위치가 조망이 탁 트여있어서 일출을 보는 것이 쉽기 때문에 서둘러서 왔더니
일출보다 1분 먼저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깨끗한 일출을 보는 확률이 얼마 되지 않는데.
오늘은 복 받은 날이 아닌가 한다.
10번을 산행해도 1번이나 2번 정도..!
10번 산행을 하려면 2~3달은 산행을 하는 횟수이다.
결국 일출은 1년에 몇 번 못 보는 것 같다.
[봉화산] 919.8m
명산 지리산에 가리어 그 이름조차 생소하게 들렸던 남원의 봉화산은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 구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무릇 우리나라에 봉화산이란 이름 붙은 산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처럼 이 산 역시 과거 봉화가 피어올랐던 산임에는 틀림없었을 터이다.
동네 뒷산처럼 보이던 봉화산은 5월 중순이 되면서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해발 400∼500m 고지대에 위치한 아영면으로 접어들면서 단연 눈에 띄는 모습은 봉화산 서쪽 능선을 감싸고 있는 온통 붉은 철쭉밭이다.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그저 말없이 지나는 여행객들이라 할지라도 입을 떡 벌어지게 할 만하다.
철쭉군락은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가로지르는 일명 '치재'(현지 주민들은 '짓재'라 한다)에서 백두대간 동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 첫번째 봉우리에서부터 약 500m 구간에 걸쳐 등산로와 등산로 좌우 산비탈을 비집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 구간은 말 그대로 철쭉밭이다. 사방 팔방을 둘러보아도 철쭉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심지어 좌우로 휘영청 불거진 철쭉나무들로 인해 산길이 아예 '철쭉터널'로 되어있는 곳도 있다.
봉화산 철쭉은 선연한 붉은빛을 띤다. 이곳 사람들은 봉화산 철쭉이 오히려 남원 운봉의 유명한 바래봉 철쭉이나 또는 심지어 지리산 세석고원의 철쭉보다도 더 곱고 화사하다고들 말한다.
이 철쭉밭에서 봉화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길 곳곳에도 작은 규모의 철쭉군락이 듬성듬성 이어진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봉화산 정상까지는 1시간여를 더 가야 하며, 능선 오르막길인데다가 어떤 곳은 산길을 헤치고 나가기에도 쉽지 않을 만큼 철쭉 가지가 산 길을 가로막아 가뜩이나 좁은 등산로가 비좁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모름지기 산행을 목적으로 왔다면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 산마루를 타고 철쭉 숲을 헤치고 또한 넓게 드리워진 억새평원을 지나 봉화산(919.9m) 정상에 서봐야 할 일이다.
봉화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전개된다. 북으로는 전북의 오지, 장수군의 깊은 산골 지지계곡 골짜기 좌우로 장수의 진산 장안산(1,237m)과 무령고개, 그리고 경남 함양과의 경계인 백두대간 백운산(1,279m)의 웅장한 산줄기가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 뒤돌아 남쪽을 바라보면 아영면 고원지대 들판너머로 천왕봉(1,915m)을 비롯, 반야봉과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명산 지리산의 장쾌한 산맥이 우뚝 솟아있다. 동으로는 함양 땅과 멀리 거창에까지 이르는 경상도 산하의 풍경이, 서쪽 아래로는 그림 같은 장수군 번암면 일대의 산골마을 풍경과 그 뒤로 뾰족하게 솟아 오른 만행산(910m) 등, 겹겹이 이어진 전라도 땅의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봉화산 정상의 조망도 그렇거니와 특히 5월 철쭉이 아니더라도, 가을철에 이곳을 찾아도 후회하지 않을 듯싶다. 수만 평 드리워진 억새밭은 이웃한 지리산 만복대의 그것과도 견줄 만하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 숲ON)
깨끗한 일출이 너무 좋다.
길도 제법 좋은 편이고..!
일출을 감상하고 선두권에 있는 후미도 다 같이 봉화산에서 아침을 먹었다.
자리를 깔고서 이것저것 가지고 온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벌써 5월이 다다르니 초록의 산이 너무 멋지다.
날씨도 좋아서 멀리 지리산 조망도 잘 된다.
멀리 지나온 백두대간 능선이다.
광대치를 앞으로 뒤로는 월경산쪽이다.
봉화산에서 아침을 먹고서 봉화산 매봉으로 향한다.
예전에 봉화산에서 매봉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생각했었는데.
매봉까지 거리가 상당하다.
봉화산에서 매봉까지 약 3.4km 정도 되고 1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저 앞이 매봉이다.
매봉을 가는 길에는 ㅇ ㅣ렇게 철쭉이 한창이다.
철쭉 군락지에 철쭉이 많이 있지만.
해걸이를 하는지 빽빽한 철쭉은 아니고 진달래 같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이미 진 것도 있고 이제 막 피는 꽃도 있었다.
매봉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저 멀리 봉화산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3.4km라는 거리가 상당한 것 같기는 하다.
지금 7시 정도 되었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곳 매봉에 올랐다.
복성이재로 내려가는 길이다.
복성이재까지는 가파르게 내려간다.
복성이재에서 시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게 올라야만 한다.
복성이재까지는 약 13.5km 정도 되고 3시간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복성이재에서 봉화산까지 약 3.8km , 광대치까지는 8.1km 정도 된다.
가야 하는 새맥이재까지 4.1km 사치재까지는 6.1km 정도 된다.
[복성이재] 601.4m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고개로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전, 기인 변도탄이 천기를 보고 국가에 큰 전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대비 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게 한다 하여 관직을 삭탈 당했다. 그후 전란을 대비하며 피난처를 탐색하던 중, 천기의 기운이 남쪽으로 비쳐 그 빛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북두칠성 중에 복성 별빛이 이곳에 멈추었다. 변도탄은 별빛 멎은 곳에 자리 잡아 움막을 짓고 살았다. 이런 내력으로 인해 이 고개 이름이 복성이재가 되었다. 이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며 복성이 마을을 이루었다. 복성이재의 남쪽에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서로 영토 쟁탈전을 벌였던 아막산성(전북지방기념물 제38호)이 있다.
[치재]
치재마을의 서쪽 언덕위에 있는 고개다. 흔이 이용하는 교통로는 아니다.동쪽가까이에 임도가 올라와있다. 이지역은 각종 버섯류와 산 과일,산채나물,고랭지채소등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주로 대간 동쪽사면에서 이루어진다. 고개라는 뜻이 峙와 재가 합쳐서 지명이 되었다. 치재에서면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리 성리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 마을에는 판소리에 나오는 화초장바윗거리,흰죽배미,노리다리등의 지명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고남산 이정표가 있는데 고남산까지 약 15.5km 정도 된다.
돌로 쌓은 산성 아막성이다.
[아막성]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운봉은 신라때 모산현이라 하였으며 따로 이 아막성(阿莫城),아영성,경덕,운성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를보면 운봉은 신라후기에 생긴것임을 알수있다. 이무렵 백제의 군사기지는 남원에 있고,신라의 군사기지는 모산에있어 이때 백제는 신라를 막기위해 수정산성,준향산성,합민성,가산산성,성리산성의 여러 성을 두었고, 백제는 운봉 가산으로부터 정령치 이르기까지 이중으로 순라로를 설치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두나라 사이에 국경분쟁이 치열했음을 알수있다. 그중 아막산성은 옛날 백제에서는 아막성,신라에서는 모산성으로 불렀던곳으로,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잡기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백제 무왕3년 4만의 백제군사가 이곳에서 신라군에게 전멸당했다고 한다. 성 둘레는 약 630여m에 이르고 기와조각과 백제 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북문지와 수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동쪽에 직경 1.5m의 정호지가 있다.(전북 지방기념물 제 38호)
모산성은 삼국사기에서 아막산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운봉으로 신라때 모산현,또는 아영성,아막성이라고도 적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인 운봉의 옛이름은 지금도 땅이름에 널리 쓰이는 아막이란 말과 잇닿아 아막골/아막재였던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노루삼이다.
올라야 하는 시리봉 쪽의 모습이다.
멀리 매봉과 함께 우측으로 봉화산쪽이다.
길 가다 흑염소 2마리를 보았다.
길에 앉아 있다가 그래도 사람이 온다고 피하고 있다.
새맥이재이다.
[새목이재]
시리봉과 697봉 중간에 허리를 낮춘곳이다. 남동쪽의 임도와의 사이에 샘터가 있다. 인월면 아곡리인 남쪽 2km지점 88올림픽고속도로 옆에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새목이재는 새의 목에 해당되는 고개라는 뜻이다
마가목이 이쁘게 꽃을 피웠다.
사치재로 가는 길에 담은 시리봉쪽이다.
사치재이다.
장거리다 보니 오늘 이곳에서 하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사치재(아실재)] 498m
697봉과 618봉 중간인데 현재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서는 사치마을이고, 동은 인월면 아곡리다. 조심스럽게 88올림픽고속도로를 횡단하여 원래의 대간길을 따라가라 수도 있고, 사치마을로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유치재로 직접 갈 수도 있다. 유치마을에는 장수시내버스가 들어오고, 아곡리에는 남원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동쪽 1Km 지점에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가 있다. ‘모래언덕고개’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암릉은 전혀 없고 고속도로 주변과 사치재 아래로 논과 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풍수설에 의하면[飛雁落沙비안낙사] 기러기(雁)가 모래밭에 앉은 형국이라 한다
매요마을로 가는 길이다.
매요마을을 거쳐서 고남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매요마을 마을 회관이다.
이곳에 샤워장도 있고 그 앞에 수돗가도 있는데 음용수로 먹어도 된다 한다.
혹시 몰라서 이곳에서 물을 다 채워서 올랐다.
[매요마을]
이 마을은 원래 풍수설에 의하면 옛부터 말의 허리처럼 형국이 생겼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마(馬)자와 허리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고승 유정대사(사명당)가 산천을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여 매화는 눈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피는 꽃이며 향기가 순결하여 이 마을에서 낳은 사람들은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할 것이니 마요리를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지형과 인심에 합당하다고 한 후에 마을 이름을 지금의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
[유치재]
매요리와 가산리의 중간, 사치마을과 연결되는 삼거리다. 인근의 마을은 모두 남원이지만 유치재 자체는 장수군 지역이다.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간다. 유치재를 매요마을 서쪽의 언덕으로 표시한 지도는 착오다. ‘흐름고개’, 즉 경사가 거의 없는 고개라는 의미다. ‘버드나무 고개’로도 부른다.
고남산으로 오르기 전 꼬리표가 많은 붙어 있는 비실이부부도 만났고.
내리막길에서 다시 고남산으로 오르는 길에 심마니를 만났는데. 이렇게 여러 삼을 채취해 있다 하였다.
이것은 20년 산 산삼이라 한다.
곳곳에 으름나무가 많은데 이곳에 이렇게 이쁜 꽃이 피어 있었다.
아담한 참꽃마리이다.
홀아비꽃대.
[통안재] 작은 독골재 670m
권포에서 산동 월석리 독골로 넘어가는 고개. 독골재에 비하여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란 의미. 동리 안 고개.
무덤 한편에 있는 할미꽃이다.
이미 벌써 시들고 있는데 이렇게 몇 개는 아직도 싱싱하다.
드디어 고남산이다.
힘들게 올랐다.
북진할 때에는 힘든 줄 몰랐는데.
전체 34km 중 28.5km 지점의 이곳 고남산을 오르는데 힘들다.
더워서 그런가..!
아직 더위에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이 덥다.
고남산의 정상석은 정상에서 약 20m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고남산] 846.4m
정상의 조망은 매우 훌륭하여 서부지리: 덕두산-바래봉-팔랑치-부운치-고리봉의 기맥과 반야봉아래의 크고 작은 무수한 봉우리와 도도히 뻗치는 대간의 능선이 대 장관이다. 북동으로 보면 봉화산 백운산 덕유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편으로 정읍 내장산과 광주의 무등산이 날씨 따라 오락가락 한다. 지형을 살펴보면 이곳 고남산이 남원 함양일대의 중추적인 방위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고남산 정상 부근과 함양읍 성터 부근의 지금도 남아있는 옛 성터 자리들과 작은 고을 너른 들판에 우뚝 솟은 범상치 않는 산세의 기운이 봉화대의 상징 이였지 않나 짐작된다. 고남산 산불순찰 촌노(村老)의 귀뜸이 이성계 장군이 고남산에 제단을 쌓고 큰 제를 지낸 후 왕위에 등극했다 한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백여평의 헬기장과 통신시설물이 자리하고 있음도 이 일대 시원하게 열려있는 고남산의 조망 덕이 아닐까 한다.
이성계가 황산벌 대첩을 하기 전, 멀리 운봉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계하고 3일간의 산신제를 올려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애첩이 조선 황산의 산신이 크게 노하여 불길하다 하여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지발도가 황산에서 죄 값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정상에 이렇게 표지판이 있다.
이곳까지 약 28.6km 정도 되고 8시간 18분이 소요되었다.
이곳에서 유치재까지는 약 5.4km 정도 되고 사치재까지는 7.8km 새맥이재까지는 약 9.8km 정도 된다.
가야 하는 여원재까지는 약 5km 정도 되고 입망치까지는 약 8.1km 정도 된다.
내려가는 여원재의 거리 5km가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양말을 다른 것 신었더니 너무 꽉 조여서 내려갈 때에 발가락이 아파왔다.
각시붓꽃.
고남산에는 각시붓꽃이 정말 많이 피어 있었다.
양지꽃..!
[까막재(관음치)]
간엄치, 혹은 간암재라고도 하며 덤몰(가동)에서 산동면 대기리로 가는 고개이다. 고종 31년(1894) 11월 김개남 남원 접주가 이는 동학군이 운봉 관군에게 패퇴한 곳이다.
합민성에서 서쪽 시루봉으로 향하는 방향(서쪽)에 위치, 대간길에서는 벗어나 있음
큰구술붕이.
[합민성] 641m
합민성(장교산성, 할미성, 합미성, 방학산성)은 남원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성으로, 기록에 의하면 동학농민혁명 때 운봉 민보군의 거점이었다고 한다. 조선 말 일목장군 박봉양이 동학군에게 참패를 안긴 곳이 운봉. 농민군이 패전하였다는 방아치와 관음치의 위치 또한 이곳 장치(방아치)와 합민성의 서북쪽 까막재(관음치)로 추정된다. 운봉읍 장교리의 합민성(合民城)은 이 때 쌀을 저장해 뒀던 곳이라 하여 합미성(合米城)으로도 불린다.
또한 남원시 이백면 주민들은 방학산성이라 부른다. ‘남원지’에 ‘재장교리 후 나제시고루(在長矯里 後 羅濟時古壘)’라 하였고 ‘합민성은 석축으로 주위 약 200간(약300미터)이며 산정에 있다’고 하였다. 성내 최고봉은 645m다. 성곽은 능선을 따라 서남 방향으로 누에고치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 주위는 319.6m다. 성곽의 서남각(西南角)에 우루(隅樓)를 세워 폭 6m, 길이 8m의 돌출된 적대가 있고, 그 동편에 남문, 북편에 우루대 서북각에 서문 등 세 군데의 성문 유지가 있고 서북편 중앙에 샘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서는 다수의 기와조각, 토기조각 등 삼국시대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내려가는 길이 길고 2번 정도는 오르막이 있다.
이렇게 여원재가 있는 운봉읍 장교리마을이다.
여원재에 도착을 했다.
[여원재]
남원시 운봉과 이백면을 잇는 고개로 일명 연재라고도 한다. 고개 서편으로 평원을 이룬 구릉이 운봉면이다. 섬진강 상류가 되고 섬진지류는 남원시가지를 거처 광양만으로 빠진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이었다.
왜구의 손길이 거쳐 간 자신의 왼쪽 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하였다는 이 고갯마루 주막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자결한 이 여인의 원혼은, 고려 말 우왕 때 이성계가 운봉과 함양 등지에서 노략질 중이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운봉읍 한복판의 황산으로 진군할 때, 백발의 노파로 나타나 승전의 전략을 일러주었다 한다. 왜장 아지발도를 무너뜨린 이성계가 돌아가는 길에 여원(女院)이란 사당을 지어놓아 이 고개이름이 여원재가 되었다는 것. 주민들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넘나들던 고개라 하며 연재라고 부른다.
여원재 남원쪽 고갯마루의 암벽에는 왼쪽 가슴이 없는 마애불이 있다고 하는데, 전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원재에 백두대간여원재휴게소가 있지만 폐업을 하여 하지 않고
그곳에서 100m 입망치쪽으로 가면 이렇게 빨강지붕 여원재슈퍼민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황산로 766-16
010)9277-1858
이곳은 1주일 전에 미리 연락을 해야만 식사를 할 수 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막걸리나 두부김치등은 바로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오늘도 34km를 산행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양말 때문에 고생도 했고..!
아직 더위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조금 고생은 한 것 같다.
GPS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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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봉화산에 두 여사님이 각선미를 뽐내는 군요.
지금 검색해보니 20년근 산삼 가격이 백만원 정도 하네요.
보니 정상석 담은 사진이 없네요..!
어쩔 수 없이 그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가격이 저렴한것 같은데요..!
삼이 몸에 잘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요..
양말땜에 고생하는거 저는 이해합니다. 상당이 괴로워요!! 대단한 산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