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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장>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가라사대 ...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2장> 41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
이제 우리는 분명하게 예수가 헌금 혹은 재물을 받았음을 알았으며 이 설교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과부라 할지라도 반드시 세금과 헌금을 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는 가난한 과부에게서 조차 재물을 받는데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며 부자들도 생활비 전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며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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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장> 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20장에서 예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사람이 예수 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잘못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죄를 떠 넘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헌금을 받을 때에 여러 부자가 많이 넣었다고 합니다. 당대 최고의 부자 중 하나 였던 세리장 삭개오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주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부자들이 많이 넣었다면 상당히 큰 액수 였을 것 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구차한 삶을 사는 과부라는 표현을 보면 분명히 예수는 과부의 행색이 구차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과부로부터 돈을 받고 있으니 이는 그 가난한 과부가 예수에게서 돈을 받은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난한 과부가 예수에게서 돈을 받았다면 예수에게 헌금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행위가 되기 때문이고 반대로 예수는 그 돈을 받아서는 안되고 너희에게 나누어 줄 것인데 왜 헌금하냐고 했어야 옳습니다.
제자들이 음식을 사 먹이게 하자고 합니다. 이는 돈을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돈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수가 헌금을 받는 것을 우리는 보았기 때문에 이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는 돈이 항상 있었고 그 돈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와 사도들은 이들에게 음식을 자신들의 돈으로 나누어 먹이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와 사도들은 자신들의 돈을 나누어 주는 방법을 적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음식을 먹은 5천여명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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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 가로되 ...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9 ...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20 다 배불리 먹고 ...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누가복음 9장> 13 ...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요한복음 6장> 5 예수께서 ...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
이 이야기는 유명한 물고기 2마리와 빵 5개에 관한 것으로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교도들의 사악함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첫째 요한복음 6장 5절에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예수가 직접 이야기합니다. 예수는 돈을 주고 떡을 사려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4장 15절에서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 먹이려고 합니다. 그러면 현대식으로 계산을 해 볼까요? 여자와 아이외에 5천명이라 했으니 만명이라고 보고 한 사람당 천원짜리를 먹이면 1회 음식 값으로 1천만원에서 많게는 5천만원을 사용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한 돈은 예수와 제자들에게 푼 돈이였습니다.
두번째 요한복음 6장 7절을 보면 빌립이 왜 사람들로 부터 돈을 받으려 했을까요? 이는 6절에서 예수가 어디서 떡을 사서 먹게 할까라는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만약 '의자를 어디서 살까'라고 했다면 자신이 사오겠다던가 등의 여러가지 답이 나왔겠지만 떡을 사는 것은 돈을 거두는 것임을 사도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빌립이 떡을 사는 의미를 알고 있다면 정답이 한가지 밖에 없기에 예수가 시험하려 했던 것입니다. 떡의 정답은 사람들로 부터 돈을 걷는 것이였습니다.
세번째 그렇다면 사도빌립은 도대체 돈을 걷지도 않고 어떻게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말을 한 것 일까요? 성경을 읽으면서 답답하시죠? 저는 예수교도들이 답답합니다. 사도빌립은 진짜로 돈을 걷었습니다. 돈을 걷어 보니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돈을 사도들에서 받았을까요? 헌금이라는 것을 바로 위에서 설명 했음에도 사도들이 냈다고 억지를 쓰시면 안됩니다.
네번째 그렇다면 예수는 정말 그렇게 모은 돈으로 떡을 샀나요? 아닙니다. 가지고 있던 물고기 2마리와 빵5개를 나누어 먹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떡을 사려고 돈을 걷었지만 떡을 사지 않았습니다.
다섯번째 빌립의 답이 예수가 원하는 답일까요? 빌립의 답은 예수에게는 빵점 짜리 답이였습니다. 왜인지는 아래의 [10번] 글에서 설명해 드립니다.
여섯번째 떡을 먹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자와 아이를 제외 한 5천명이 먹었으니 그 5천명은 남자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만 먹었습니다. 모든 신약성경을 통틀어 사도들과 세리와 죄인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도 여자가 떡을 먹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짐작 하시겠지만 다섯번째 답과 여섯번째의 답은 아래에서 설명 하겠으니 계속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앞에서 [제8장]에서 설명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에서는 자세히 보겠고 예수에게 향유를 붓는 일화가 두번 있었는데 모두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두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먼저 마가복음의 일부를 보면 향유를 부은 여자의 행한 일이 예수에게는 매우 좋았고 흡족했나 봅니다. 그래서 모두가 알게하여 기념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내용은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예수교도들은 예수의 발에 입맞춤 하는 것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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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장> 9 내가 ...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
여자가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붓는 때와 장소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아래에서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보면 문둥이 시몬의 집인데 누가복음에서 문둥이 시몬이 바리새인이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 바리새인이 예수의 편인지 아닌지의 두가지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 바리새인은 유대인의 편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첫번째 예수의 편이였던 사람들은 모두 좋게 표현하는데 바리새인 시몬을 문둥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 바리새인 시몬은 병을 치유받았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세번째로 누가복음에서 알 수 있는데 바리새인의 집에 있는 여자가 울면서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씻기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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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가복음 14장>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누가복음 7장>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위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마태복음 26장 7절 그리고 마가복음 14장 3절에 분명히 예수가 식사 할 때에 머리에 향유를 붓는 내용입니다. 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식사 중에 옷이 물에 젖게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식사 중이라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비유이고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는 것은 예수가 옷을 벗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여자가 혼나지 않고 향유를 머리에 부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거나 발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은 전부 여자들이 예수를 목욕시키며 수종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7장에서 그 여자를 죄인이라고 37절에서 분명히 밝혔습니다. 예수에게 죄인은 재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고 증명해 드렸습니다. 재물을 바치지 않은 바리새인 시몬의 여자가 죄인이기에 바리새인 시몬도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팔려갈 운명이였던 것입니다.
자세히 봅시다. 누가복음 7장 38절이후의 내용으로 여자가 예수의 뒤에서 머리에 향유를 붓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기고 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예수에게 자기의 머리털로 씻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인 남자들이여, 여자가 여러분의 등뒤에서 머리털로 몸을 씻기는 행위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온 몸을 벗은 예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성인 남자들이여, 여러분의 여자가 예수에게 이러한 행위를 한다면 예수를 놔두겠습니까? 진정 그리 하십니까?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유럽과 미국의 예수교도들의 기본 인사가 남녀를 구분없이 서로 안고 키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월래 부터 이랬던 것이 아니라 예수교가 로마의 정식 국교가 되면서 강제로 행해진 로마의 악법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겠지만 사람의 본능으로 좋았기에 지금은 아무런 부담감없이 서로 안으며 키스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의 눈물에 화를 내는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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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9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가복음 14장> 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
그러나 진짜 문제는 누가복음 7장 38절에 있습니다.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좋아서 눈물을 흘렸나요? 여기에서의 눈물은 몇가지 함축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실제로 향유를 사용했겠지만 저 여자의 눈물이 향유였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그 눈물로 씻기고 있으니 그 여자의 슬픔으로 예수는 수종을 받고 있었던 것이며 저 여자는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수를 수종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 여자의 향유에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여자의 눈물이 향유였기에 화를 내는 것으로 너는 왜 눈물을 흘리는냐며 웃어 보라는 뜻이였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절에 이 여자의 웃음값이 삼백데나리온이였습니다. 웃어야 하는데 울고 있으니 손님을 받을 수 없고 그렇기에 삼백데나리온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를 괴롭히는 제자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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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10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4장> 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위에 보면 예수의 제자들은 분명히 여자를 괴롭혔습니다. 이는 단순히 잔소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왜 너희는 여자를 괴롭히느냐'라고 당당히 적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놔두라'고 합니다. '사도들에게 가만 있어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자를 그냥 두어라'라고 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여자가 자기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아직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어떤 상황을 벗어나려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이 괴롭혔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만 두어라'라고 한 것입니다. 정확히 이것 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욕심을 모두 채웠고 그 후에 제자들이 욕심을 채우려고 할 때에 예수는 '그만 두어라 내가 먹은 것이다 (내게 좋은일을 한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문서를 읽는 여러분 진정하세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여자를 괴롭히는 것을 예수는 잘 알고 있었다고 마태복음 26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일을 알려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라고 적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게 하라는 것인가요? '이 바보들아 모르겠느냐? 악행은 악행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나를 위해 원해서 수종드는 것 처럼 이야기하란 말이다. 너희는 매일 그러하니 유대인들로 부터 반역자라며 비난 받는 것이다. 그러니 나 처럼 이렇게 비유적으로 비유라고 전하란 말이다.'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여자의 수종은 죄 사함이며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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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46 ... 저(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
성경은 저 여자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진짜 예수교도들은 저 여자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저 여자가 몸과 눈물을 바쳐 예수를 목욕 시킴으로서 그 죄값을 치른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가 말하는 죄 사함이라고 이미 설명해 드렸습니다. 향유의 의미는 향유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여자의 눈물이였고 여자의 머리털이며 재물이였고 저 여자의 죄값은 삼백데나리온이였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죽이고 삽비라를 취하려 했으나 삽비라가 거부하여 죽였음을 상기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서의 제5장에 보면 아니니아는 묻지도 않고 (답을 듣지도 않고) 죽였고 삽비라는 살리기 위해 한 번 물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삽비라는 죽음을 선택했고 이 여자는 울면서 예수의 뜻을 따랐던 것이고 이 여자의 남자는 바리새인이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죽어서도 이렇게 굴욕을 받았습니다.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진실은 이것 입니다. 예수가 음식을 먹는 중에 여자가 향유를 머리에 부었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의 진실은 음식을 먹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와 사도들이 음식을 먹는 것은 유대인의 피와 살이라 했으니 바리새인의 죽음이며 재산을 갈취하는 그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 때에 바리새인의 여자가 예수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은 것입니다. 그 침을 예수는 향유라고 한 것 입니다. 그리고 반항하는 바리새인의 여자를 예수는 취했고 그 뒤에 사도들이 달려 들었지만 예수는 좋았던지 그만 두어라라고 한 것 입니다.
마리아는 위에서 말한 바리새인집의 여자가 아닙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첫번째 장소가 다르고 두번째 시기도 다릅니다. 따라서 둘은 다른 여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향유가 먼저 있었던 일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전의 일이고 위의 여자는 예루살렘의 여자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예수가 사랑했고 마리아는 진심으로 예수를 따랐던 여자 입니다. 이제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향유냄새가 가득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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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집 전체에 향유 냄새가 가득했으니 그 사랑의 행동 반경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집안 여기 저기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에게 수종드는 표현에서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긴다는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이제는 이해 할 것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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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이번에는 유다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이야기 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예수에게 재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유다가 그 돈을 훔치고자 했다며 오히려 유다를 비난하고 여기서도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핑계를 됩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마리아를 사랑한 것이 아닐까요? 이는 알 수 없고 추측입니다.
<천국에 없는 가난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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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여기에서 위의 바리새인의 여자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는 항상 비싼 향유로 목욕을 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난 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해명이 요한복음 8절로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나와는 항상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실화이고 비유가 아니며 예수의 진심입니다. 예수는 천국에서 가난한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들이 죽고 또 죽어도 천국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이 진실이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헤롯의 성이기에 힘없는 사람들은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있는 곳이라고 이미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를 갈릴리사람들과 유대인들이 가만 두었을까요? 아닙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를 잡고자 했지만 잡지 못했다며 이는 예수를 선지자로 알았다며 오히려 그들을 비꼬았습니다. 예수를 잡지 못한 것은 무기를 들고 있던 제자들과 무리들 때문이였기에 잡지 못한 것 뿐 입니다.
누가복음 21장 전체는 예수가 재물을 모으는 방법을 묘사한 것으로 예수가 행한 내용들을 적은 것으로 이를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적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현재의 목사들과 사기꾼들은 지구 멸망을 이야기하며 돈을 걷지만 예수는 아래의 행위들을 직접 했으니 그 사악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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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21장 전체>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 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
너무나 길어서 중요한 내용들을 적었습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1~4 절까지는 사람들로부터 돈과 헌금을 받는 내용이고 그 이후가 예수의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실제로 일어 난 일들 이며 예수가 행한 일 들입니다. 이런 놈을 신이라 추앙하는 사탄의 자식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는 곧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군대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방인의 군대라 함은 사실은 로마가 아니라 갈릴리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에 갈릴리왕 헤롯은 예루살렘과 유대인의 왕이 아니였습니다. 이는 제3장에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두 이루어 진다고 했으니 이 때는 그 당시 사람들의 세대를 의미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설교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살아 있을 때에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을 한 것 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전쟁이 일어나며 전쟁과 기근과 돌림병(온역)이 일어나며 아이를 밴 산모와 젖먹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며 이방인의 칼날에 유대인들이 죽어나가며 이방인에게 잡혀 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는 털끝하나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는 분명한 사실이며 예수는 그렇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이 예루살렘과 유대인의 왕이 될 때에 예수를 믿고 고개를 숙이고 모여서 비판하지 않고 나팔(민란)을 일으키지 않으며 재산을 가지고 다투지 말며 그 재산을 바치는 자는 살아 남을 것이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방인의 왕, 갈릴리의 왕 헤롯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헤롯이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왕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으로 이는 사실을 기반으로한 협박이였습니다. 물론 이를 잘 아는 권세가들은 이미 일찍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이들의 행동을 본 일부 깨닳은 사람들과 신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에게 돈과 헌금을 받쳤던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도 아내와 자식들을 팔고 자신은 죽음으로서 예수에게 재물을 바친 것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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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
예수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청지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일을 못하게 하려는 이야기로 시작 합니다. 그 청지기는 어둠속에 갇혀서 이를 갈게 될 것이 뻔 합니다. 그래서 그 청지기는 살기 위해 고민하는 내용이 이어서 나타납니다.
<주인에게 들킨 청지기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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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
청지기는 고민 끝에 장부를 조작하게 됩니다. 그 내용을 보면 백을 빚진 사람은 오십이라 적고 혹은 팔십이라 적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이 청지기의 행동이 옳지 않은 것 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이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는 내용이며 이렇게 했기 때문에 청지기의 일을 그만 두게 되는 것 입니다.
<유대인의 빚을 축소하는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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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
주인에게는 이 청지기가 옳지 않는 청지기 였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누가복음 16장 8절에서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라며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적은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화를 잘못 이해한 유대인들과 갈릴리인들은 빚을 얻으려 주인에게 많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에게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이 청지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이야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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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예수는 하고 있습니다. 우선 예수는 그 청지기가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롭다고 적고 있으니 일단은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것은 결국 천국이므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둠속에서 이를 갈게 된다고 했던 예수의 말도 고통속의 죽음을 의미 합니다.
이는 결국 청지기를 칭찬하는 척하며 화를 내는 것입니다. 또한 11절에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를 맡기겠냐고 말을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않습니까?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장부를 속이거나 이자를 속이거나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에게 장부는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4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한다고 비웃고 있으니 예수는 스스로 사채장사와 계집장사를 하면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꺼꾸로 바리새인들에게 씌우니 어처구니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항상 이런식이였습니다. 100 달란트에서 50을 깎아 50을 받는게 아니라 200을 받으면 어찌 되는 것 일까요? 100 달란트에서 20을 깎아 160 달란트를 받으면 어찌 되는 것일까요? 도대체 누가 돈을 더 좋아하는 것 입니까?
예수는 수 없이 비유를 이야기 했고 우리는 앞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이 비유를 말하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닳지 못했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예수교도님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예수가 '아직도 깨닳지 못했느냐'며 제자들에게 호통을 친 것이 아닙니다. 저 말은 사도들이 이 성경을 읽는 예수교도들에게 하는 말 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닳지 못했느냐'며 예수교도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유대인들과 갈릴리인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현재는 예수교도들이 읽고 있으니 그들에게 조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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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
예수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적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비유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비유 였던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호통 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한 말 일까요? 제자들이라고 한다면 아직도 여러분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둔하냐고 조롱 받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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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
예수는 마가복음 8장 17절에서 '너희 마음이 둔하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깨닫지 못해서 서로 의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도들이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는 18절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음에도 깨닳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꾸짖고 있습니다. 사도가 아니라 예수교도에게 하는 말 입니다.
<떡 다섯 개를 떼어 주고 12와 7개의 광주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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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
예수가 하고 싶었던 말은 기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떡 다섯개로 열둘의 바구니와 7개의 광주리를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떡을 나누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떡으로 거둔 재물이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10달란트로 10달란트를 번것이 아니고 5달란트로 5달란트를 번 것이 아니라 5 달란트로 50 혹은 500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들이 모르는 것입니까? 사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깨닳지 못했냐고 묻는 것은 누구에게 하는 말 입니까? 예수교의 신도들에게 하는 말이며 예수교도를 비웃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깨닳지 못하면 이 문서를 포기 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맛있는 천국의 꿀 맛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말 역시 제 말이 아니라 예수의 말 입니다.
<제자들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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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
제자들이 떡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교도들을 비웃고자 하는 이야기에 불과 합니다. 예수는 위의 15절에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완전히 다른 두 세력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러분을 혼란에 빠지게 하기 위함 입니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헤롯 모두에게 적이였을까요? 아니죠. 바리새인의 적이였습니다. 아직도 깨닳지 못 하십니까?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빼았아 먹었습니다.
<한번 더 속여 보는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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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교도들을 한 번 더 속여 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가 떡 몇개로 많은 광주리를 얻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냐고 말하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깨달았다고 하는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삼가라는 말로 깨달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가 왜 예수교도들을 조롱하는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떡 다섯개로 주운 것이 12 바구니였고 7 광주리였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예수가 말해 놓았고 이것을 깨닳아야 하는데 엉뚱한 바리새인의 누룩을 기억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교도들이 떡 5개를 나누어 주고 몇 광주리를 얻은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다만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면 그들은 예수와 사도들의 조롱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서를 읽는 독자분들은 예수교도들에게 한 번 테스트 해 보시길 바랍니다. 떡5개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에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아직도 깨닳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 다시 한번 말 합니다. 예수는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라고 물었고 몇 광주리르 얻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냐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리새인의 누룩이 아니라 예수와 사도들이 물고기 두마리와 빵 다섯개로 12개와 7개의 광주리를 얻었다는 것으로 약간의 빚을 만들어 수십 수백배의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 예수의 교훈입니다.
우리는 제11장 2번의 글에서 5천명의 남자들에게 떡을 먹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떡을 먹은 사람은 그 5천명 이외에도 많았습니다.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보고자 합니다. 먼저 위의 마태복음 14장 떡 이야기와 같은 마가복음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떡 다섯개의 관해 분명한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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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
위의 이야기는 예수의 제자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먹였는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44절을 보면 떡을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들이 아니라 남자이며 그 수가 오천명이라고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는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그 먹이는 방법은 5천명을 한꺼번에 먹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100명에서 50명으로 나누어 먹였습니다. 왜 저렇게 나누어 먹였을까요? 5천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사도들은 재물을 빼앗을 명단을 만들고 그 중에서 100명 혹은 50명씩 골라내어 떡을 먹여 죽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고 여자와 아이들은 살려 두어 노예로 썼던 것 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혼인하지 말라는 것은 유대인과 갈릴리인들의 씨를 말리기 위한 설교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들은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수십배에서 수백배의 재물을 얻은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5장과 같은 이야기이며 문서 제5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3천명이 이렇게 당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떡 일곱개의 내용을 보겠으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내용을 한꺼번에 보겠습니다. 보시면서 먼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에서는 몇가지 새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떡 일곱개의 진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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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
<떡 일곱개의 진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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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1 그 즈음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 앞에 놓더라 ...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
먼저 마가복음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적지 않고 사천명이라고만 적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을 보면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명이라고 적었으니 남자들만 먹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두번째로 이번에는 그 무리들이 예수와 함께 지낸지가 사흘이라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흘 동안 사천명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습니다. 세번째로 그렇다면 왜 예수와 사도들은 무리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을까요? 왠만하면 아무것도 안 먹이는 예수와 사도들을 피해 도망 갔을 텐데 왜 도망가지 못했을까요? 금식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먹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 무리들이 돈이 없어서도 아니며 예수와 사도들이 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한 것은 광야에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갇혀 있었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던 것이고 마참내 때가 되어 그들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고 그래서 음식을 먹였던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그들을 그냥 돌려 보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예수는 직접 사천명을 한꺼번에 보내지 않았고 흩어 보냈다고 적었습니다. 그들은 50명씩 혹은 100명씩 죽어나갔던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흘동안 갇혀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 기간동안 여자와 아이들이 팔려간것은 아닐까요?
참고로 무리들이 모인 곳이 광야라고 했고 그곳은 먹을 것도 도망가기도 힘든 곳이였습니다. 광야라서가 아니라 그곳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없는 은밀한 곳이였고 그곳에는 시설이 있었으니 사천명의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는 장치와 그들을 고문하고 핍박하는 장치들이 갖추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은 광야였고 들판이였고 예수교도들이 모인 교회였거나 유대인의 지옥이였을 것이며 그곳으로 부터 3시간 거리에 있는 들판에는 유대인 혹은 갈릴리인들의 뼈로 가득차 있을 것이고 그곳이 제5장에서 설명 한 피밭이 입니다.
여기에서는 과부의 원수에 대해서 설교를 보고자 합니다. 이는 명확하게 예수와 사도들이 사탄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원수는 예수교도들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과부는 남편이 예수교도들에게 죽임을 당해 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과부의 원수에게 벌을 내리려는 재판관이 있습니다. 그 재판관이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예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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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
이 과부의 원수를 재판해 줄것을 요청하고 있고 과부를 도와 원수에게 벌주는 재판관이 불의하다고 6절에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탁을 하는 과부 또한 불의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과부의 억울함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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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닳게 되는데 예수의 설교가 헷갈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재판관을 불의하다 하였고 결국 과부의 부탁이 불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과부의 원수를 벌하지 말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의 이야기가 기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와같이 너희도 아버지께 부탁하면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의미구나 하고 착각을 하게 되고 비유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위의 비유는 분명한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설교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과부의 원수를 재판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예수가 과부와 그 재판관을 벌 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깨닳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서를 읽는 여러분은 이제 예수의 비유가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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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정할 내용 - 원본 파일에 수정할 내용입니다.
1. 장 제목 수정하였음.
음~~ 성경은 검사의 고발논지묶음이라 이거지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네요.. 그냥 악마의 책이라고 보시면 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