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부는 초가을입니다. 환율이나 코스피 지수는 그만 보시죠! 주말이라도 잠시 세상의 시름을 잊어보는 건 어떨까요? 피로 회복제가 꼭 약국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가까운 극장으로 가세요. 알짜 정보 없이 전단지나 뒤지는 당신을 위해 엘르가 좀 나섰습니다. 고양이 에디터의 입맛에 따라 발바닥 평점도 제공합니다. 완성도, 쾌감도 모두 '발바닥 3개'가 만점입니다. 재미로 한번 체크해 주세요!
고양이 세수: 롯데의 간판 투수 도훈(김주혁)은 패전처리 2군 투수로 전락한 후, 집에서도 쫓겨나 후배 집에 얹혀사는 신세다. 도훈의 뒷수습을 도맡아 해온 아내 유란(김선아)은 그의 막장 인생을 확실하게 고치고자 한다.
고양이 기지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김상진식 코미디다. 90년대 코미디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밀어붙이는 놀라운 뚝심을 지니고 있다. 이걸 시대착오라고 한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폭코미디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니, 이 정도면 꽤 준수한 편이다. 질량불변의 법칙처럼 꼭 지켜야 한다(?)는 '웃기다가 울리는' 한국영화의 법칙을 고스란히 따른다. 적어도 김주혁-김선아 커플의 연기에는 이견이 없다. 이들을 보는 게 즐거운 건 사실이다. 다분히 가을을 의식했는지, '암 투병'이란 눈물 폭탄을 던져준다. 김선아는 좋겠다. 늘 암에 걸려도 사랑받으니!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김주혁이 롯데 투수로 나오는 건 영화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 탓일까? 야구 영화는 부산에선 통한다! 물론 야구는 더 재밌다.
고양이 세수: 사랑하던 여선생 시빌이 자살하자 실의에 빠진 조지아는 남장을 하고 여성들을 위한 '그녀'가 되어 환락가를 거닌다. 어느 날 시빌과 똑같이 생긴 여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고양이 기지개: 레즈비언 조지아는 여성 패션지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남장 여인의 진수를 보여준다. 스스로를 지골라로 칭한다. 지골라는 여자를 대상으로 몸을 파는 직업여성을 뜻한다. 보이시한 은밀함을 지닌 배우 루 드와이옹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자주 보던 게이 캐릭터들처럼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밤의 힘을 찬미하는 그녀는 사랑의 상실과 결핍을 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과잉적인 폭군 카사노바보다는 슬픈 돈 주앙에 가깝다. 자신을 갖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선언하는 조지아는 외로운 영혼들을 모두 노예로 전락시킨다. 참으로 불온한 에로티시즘이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지골라의 불행은 잊어도 좋다. "남자, 여자, 무슨 상관인가요? 오직 사랑만 중요해요"라고 노래하는 드랙퀸 쇼가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니.
고양이 세수: 호른 레슨으로 돈을 벌던 다비드는 룸메이트를 찾던 중 자유분방한 안느를 만나면서, 아슬아슬한 동거를 시작한다. 어느 날, 호른을 배우겠다는 줄리아를 만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고양이 기지개: 포스터만 봐도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세계(침대에서 잡지 보기)를 연상시키는 사랑이야기다.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덧없고 우스운가를 보여주는 이 멜로드라마는 우유뷰단한 다비드의 헛수고(?) 때문에 우디 알랜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트뤼포에게는 앙트완느 드와넬 캐릭터를 연기할 장 피에로 레오가 있었지만, 무레 감독은 그런 불멸의 스타가 없는지라 직접 북도 치고 장구도 친다. 이 영화가 봄의 왈츠처럼 유쾌한 것은 안느를 연기하는 프레데릭 벨의 어시스트 덕분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프렌치 키스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안느는 아름답지만 부담스러운 여인의 전형이다. 그녀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교묘하게 건드린다. 몸을 허락하는 친구라니? 상상이 가나!
고양이 세수: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밀입국자를 공장에 알선하는 인력 브로커다. 어느 날 피오줌이 흐르고, 병원에선 사형선고(말기암)를 받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3개월. 이렇게 아이들을 남기고 떠날 수는 없다.
고양이 기지개: 쾌감도를 저평가한 것은 퀄리티가 낮기 때문이 아니다. 욱스발이 죽기 전까지 2시간 반 동안 관객은 '끔찍한 현실'과 맞서야 한다. 불편한 진실이다! 월급이 안 나오는 회사에 다니고 있거나 주식이 폭락해서 비자금을 전부 날린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무조건 피하자. 당신의 현실보다 10배는 더 괴롭고 찌질한 주인공이 '삶은 참 더럽다'고 속삭인다. 극장을 나오는 그 순간, 술이 땡기는 걸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욱스발은 죽어가면서 얼굴도 기억 못하는 아버지를 꿈꾼다. 미안하지만 휴머니즘이나 희망을 논하는 여행이 아니다. 남은 것은 참담한 뿐이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제목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세상사는 끔찍할 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영혼을 잃어가는 이들(바로, 당신!)을 위한 애도다.
고양이 세수: 만두 가게 청년 찬킷(주노 막)은 짝사랑하던 청윙(아오이 소라)이 보호시설로 들어가자 그녀를 위로해준다. 하지만 경찰반장에게 겁탈을 당한 청윙을 돕는 과정에서 찬킷은 집단 폭행을 당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고양이 기지개: 성인 수컷들에게 설명이 필요없는 AV계의 수퍼스타 아오이 소라가 홍콩 영화에 데뷔를 했다. 그런데 '소라'짱은 일본배우잖아? 그걸 의식했는지 감독님 머리 좀 쓰셨다. 그녀가 연기하는 청윙은 정신장애가 있고, 대사가 거의 없다. 그리고 소라가 가장 잘 하는 걸 보여준다. 간지나는 교복을 입고, 나쁜 녀석들에게 나쁜 짓을 당하고. 왜 그녀를 썼는지 바로 납득이 간다. 초반에는 임신부의 배를 자르는 잔혹 스릴러, 중반에는 순정 멜로드라마, 후반에는 <킬 빌>식의 복수 드라마를 잔뜩 섞어놓았다. 비참한 최후는 예정된 것이지만 본질로부터 너무 멀리 나간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복수한다? <의개운천>식의 하층민 멜로와 잔혹 범죄스릴러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